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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ewslife108@gmail.com

  • 와이너리 쉐이퍼

    샤퍼 빈야즈(Shafer Vineyards)는 나파 밸리에서도 “힐사이드 컬트 카베르네”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와이너리로, 힐사이드 셀렉트(Hillside Select)를 중심으로 나파 컬트 와인의 역사를 써 내려온 생산자입니다. 한국의 신세계 그룹이 인수한 와이너리라 국내 애호가들에게도 특히 상징성이 큽니다.

    나파밸리의 힐사이드 전설, 샤퍼의 탄생

    샤퍼의 이야기는 1970년대 초 미국 출판업계에서 일하던 존 샤퍼(John Shafer)가 제2의 인생을 찾아 나파 밸리로 이주하면서 시작됩니다. 그는 23년간의 출판 경력을 뒤로하고 1972년 스택스 립 디스트릭트(Stags Leap District)에 약 210에이커(약 85헥타르)의 포도밭이 딸린 부동산을 매입해 본격적으로 와인 생산에 뛰어들었습니다. 당시 이 부지에는 1920년대부터 이어져 온 노후한 포도밭이 있었고, 토양 역시 경사가 심하고 암반이 드러난 험한 지형이어서 대대적인 재정비가 필요했습니다.

    존과 가족은 기존 포도나무를 뽑고 재식 밀도와 방향을 재설계했으며, 급경사지에는 계단식(테라스) 포도밭을 조성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힐사이드(언덕) 포도밭의 기반을 닦았습니다. 그 결과 현재 샤퍼는 나파 주요 구역에 걸쳐 약 240에이커 안팎의 자체 포도밭을 보유한 ‘철저한 에스테이트(자체 포도밭 중심)’ 생산자로 성장하게 됩니다.

    샤퍼의 첫 상업 빈티지는 1978년이며, 이 와인은 1981년 시장에 출시됐습니다. 1970년대 후반 나파가 본격적으로 프리미엄 카베르네 소비뇽 산지로 각광받던 시기와 맞물리며, 샤퍼는 초반부터 “신흥 강자”로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가족 경영과 ‘힐사이드 셀렉트’의 탄생

    샤퍼의 성장에는 존의 아들 더그 샤퍼(Doug Shafer)의 합류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더그는 1983년 와이너리에 합류해 포도밭과 양조 전반을 함께 이끌기 시작했고, 이 시기에 상징적인 플래그십 와인인 힐사이드 셀렉트(Hillside Select Cabernet Sauvignon)가 탄생합니다. 힐사이드 셀렉트는 이름 그대로 스택스 립 동쪽 경사면의 엄선된 구획에서 나온 포도를 모아 만든 “베스트 오브 베스트” 카베르네 소비뇽으로, 특정 블록의 포도를 엄격히 선별해 한 병에 집약하는 컨셉을 취하고 있습니다.

    더그는 1990년대 들어 와이너리 운영과 브랜드 전략을 책임지는 사장(프레지던트) 역할을 맡으며, 존은 이사회 회장으로 물러나 점차 경영 2선으로 물러났습니다. 이 과정에서 1994년에는 엘리아스 페르난데스(Elias Fernandez)가 정식 와인메이커로 임명되었고, 더그는 경영과 마케팅, 엘리아스는 양조와 포도밭 운영을 책임지는 구조가 자리 잡게 됩니다.

    샤퍼는 기술적 혁신에도 앞서 있었는데, 2004년에는 미국 와이너리 가운데 최초로 전체 전력을 100% 태양광으로 전환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고가 컬트 와이너리의 이미지와 더불어 지속가능성, 친환경 생산이라는 이미지를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스택스 립 디스트릭트와 힐사이드의 의미

    샤퍼의 심장부는 나파 밸리 동쪽에 위치한 소규모 산지, 스택스 립 디스트릭트 AVA입니다. 이 지역은 낮에는 충분한 일조량, 밤에는 산에서 내려오는 찬 공기에 의해 온도 차가 크게 벌어지며, 화산성과 침식 토양이 뒤섞인 자갈·자갈점토·암반 토양이 특징입니다. 이런 조건은 카베르네 소비뇽의 짙은 색, 풍부한 구조감, 강한 탄닌과 동시에 우아한 산도를 만들어 내는 데 매우 유리합니다.

    초기 나파 밸리 와이너리들은 주로 계곡 바닥의 평지에 포도밭을 조성했지만, 샤퍼는 경사진 힐사이드 포도밭의 잠재력에 주목했습니다. 힐사이드 포도밭은 토양이 얕고 배수가 좋아 포도나무가 자연스럽게 스트레스를 받으며, 그 결과 작은 알, 농축된 과실, 두꺼운 껍질을 가진 포도가 자라게 됩니다. 이를 통해 얻어지는 카베르네 소비뇽은 진한 카시스와 블랙베리, 흙과 흑연, 미네랄 향을 풍부하게 드러내는 스타일로 평가받습니다.

    이러한 테루아 덕분에 샤퍼의 힐사이드 셀렉트는 종종 “나파 컬트 카베르네의 교과서”로 불리며, 긴 숙성 잠재력(30–40년 이상)과 함께 높은 평가를 받아 왔습니다.

    포트폴리오: 다섯 개의 핵심 와인

    오늘날 샤퍼의 포트폴리오는 소수 정예에 가깝습니다. 공식적으로 소개되는 코어 라인은 다음 다섯 가지입니다.

    1. Red Shoulder Ranch Chardonnay
    2. TD-9 Cabernet Sauvignon
    3. One Point Five Cabernet Sauvignon
    4. Relentless (Syrah 기반 레드)
    5. Hillside Select Cabernet Sauvignon

    스택스 립의 힐사이드 카베르네에 더해, 샤퍼는 카네로스(Carneros) 지역의 포도밭에서 샤르도네와 메를로도 재배합니다. 카네로스는 나파 밸리 남단, 샌프란시스코 만에서 올라오는 냉한 공기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 서늘한 지역으로, 산도와 구조감을 유지한 샤르도네에 이상적인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레드 숄더 랜치 샤르도네 (Red Shoulder Ranch Chardonnay)

    레드 숄더 랜치는 카네로스에 위치한 단일 포도밭으로, 샤퍼의 화이트 와인 중 플래그십에 해당합니다. 이 와인은 풍부한 과실미와 크리미한 텍스처, 충분한 오크 풍미를 갖추면서도 산도를 살려 과도하게 무겁지 않은 균형을 지향하는 스타일로 알려져 있습니다.

    TD-9 카베르네 소비뇽

    TD-9는 예전 샤퍼의 메를로 기반 와인 라인을 대체해 등장한 레드 블렌드로, 현재는 카베르네 소비뇽 중심의 나파 밸리 레드 와인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름 ‘TD-9’는 과거 더그 샤퍼가 트랙터를 운전하며 농사를 배우던 시절, 트랙터 기어 표시에서 따온 것으로 알려져 있어, 가족사와 와이너리의 농사 중심 철학을 담고 있습니다.

    원 포인트 파이브 (One Point Five Cabernet Sauvignon)

    원 포인트 파이브는 샤퍼를 대표하는 에스테이트 카베르네로, 스택스 립 디스트릭트의 여러 구획에서 수확한 카베르네를 블렌딩해 만듭니다. 이름은 ‘1.5 세대’(1.5 generation)를 의미하는데, 존과 더그, 두 세대가 함께 와이너리를 키웠다는 의미에서 “한 세대와 그 절반”, 즉 부자(父子)가 이어온 세대를 상징합니다. 힐사이드 셀렉트에 비해 접근성이 좋고 가격대도 낮지만, 스택스 립 특유의 부드러운 탄닌과 농밀한 카베르네 캐릭터를 잘 보여주는 와인으로 평가됩니다.

    릴렌틀리스(Relentless)

    릴렌틀리스는 기본적으로 시라(Syrah)에 소량의 페티트 시라(Petite Sirah) 등을 블렌딩해 만드는 ‘론 스타일’ 나파 레드입니다. 샤퍼가 카베르네 중심 와이너리로 알려져 있음에도, 릴렌틀리스는 강렬한 과실미, 스파이스, 육향, 스모키한 뉘앙스를 갖춘 와인으로 독자적인 팬층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이름 ‘Relentless’는 엘리아스 페르난데스의 끈질긴(존경 어린 의미의) 집념에서 따왔다고 전해집니다.

    힐사이드 셀렉트(Hillside Select Cabernet Sauvignon)

    힐사이드 셀렉트는 샤퍼의 최정상 라인이자 나파 컬트 카베르네의 상징적인 레이블입니다. 100% 카베르네 소비뇽으로, 스택스 립 동쪽 힐사이드의 특정 블록에서 수확한 포도만으로 양조합니다. 이 와인은 보통 30개월 안팎의 긴 기간 동안 100% 새로운 프렌치 오크에서 숙성되며, 보르도 그랑 크뤼 못지않은 장기 숙성 잠재력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2019 빈티지를 예로 들면, 힐사이드 셀렉트는 카시스와 자두, 블랙베리, 흑연, 흙, 바이올렛, 미묘한 민트·삼나무 향을 복합적으로 드러내며, 구조감이 매우 풍부하면서도 탄닌이 매끈하게 다듬어진 스타일로 리뷰되고 있습니다. 평론가들은 이 와인이 30–40년 이상 숙성 가능한 “vin de garde(장기 숙성형 와인)”라고 입을 모읍니다.

    또한 힐사이드 셀렉트는 세계적인 와인평론가 로버트 파커로부터 무려 6차례나 100점을 받은 와인으로, 이 기록은 샤퍼를 “나파 컬트 와인의 시초”, “마이다스 손”이라는 별명과 함께 전설적인 반열에 올려놓은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했습니다.

    생산 규모와 양조 철학

    샤퍼는 1978년 첫 빈티지에서 약 1,000케이스 정도를 생산하던 소규모 와이너리였으나, 현재는 연간 약 32,000 케이스 수준의 생산량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포트폴리오 전체가 에스테이트 중심 생산이며, 와이너리 바로 아래에는 와인 숙성을 위한 동굴형 셀러(케이브)가 암반을 파고들어 조성되어 있습니다.

    엘리아스 페르난데스는 1984년부터 샤퍼에서 와인을 만들어 온 베테랑 양조가로, 나파 밸리 고급 와인 업계에서 가장 오랜 기간 한 와이너리에 몸담고 있는 인물 중 하나입니다. 그는 포도밭에서의 꼼꼼한 관리와 수확 시점의 정밀한 판단, 그리고 숙성 과정에서의 세밀한 블렌딩을 통해 매 빈티지마다 높은 일관성을 구현하고 있습니다. 샤퍼의 양조 철학은 과실의 풍부함과 오크 사용의 관대함을 인정하면서도, 과도한 과숙과 알코올의 과잉을 피하고 테루아의 특성을 유지하는 균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한국과의 인연: 신세계 인수

    샤퍼는 2022년, 한국 소비자에게 더욱 크게 회자되는 계기를 맞습니다. 바로 신세계 그룹의 부동산·럭셔리 계열사인 신세계 프라퍼티가 샤퍼 빈야즈를 인수한 사건입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인수 금액은 약 2억 5,030만 달러 수준으로, 스택스 립 디스트릭트의 225에이커 포도밭을 포함한 전체 에스테이트가 거래 대상이었습니다.

    신세계는 미국 현지 자회사인 스타필드 프로퍼티(Starfield Properties)를 통해 인수를 진행했으며, 엘리아스 페르난데스와 기존 포도밭·양조 팀은 그대로 유지하기로 하면서 와인의 스타일과 품질을 지키는 방향으로 소유권만 바뀐 구조를 취했습니다. 신세계 L&B는 자사 사이트에서 샤퍼를 “나파밸리의 마이다스 손”, “나파 컬트 와인의 시초”, “로버트 파커로부터 6번의 100점을 받은 와이너리”라 소개하며 힐사이드 셀렉트를 포함한 주요 레인지 유통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이 인수는 한국 기업이 나파의 상징적인 프리미엄 와이너리를 거머쥔 사례로, 국내 와인 시장과 관광·럭셔리 비즈니스 측면에서도 의미 있는 사건으로 평가됩니다.

    방문 경험과 와이너리 투어

    Shafer Vineyards

    샤퍼는 나파 밸리 방문객에게 비교적 소규모·프라이빗한 형태의 테이스팅을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힐사이드 셀렉트 익스피리언스(Hillside Select Experience)”라는 프로그램이 유명한데, 이 프로그램에서는 힐사이드 셀렉트의 20년 이상 연대차를 포함한 네 개 빈티지를 시음하는 동시에 힐사이드 포도밭과 계단식 테라스를 둘러볼 수 있는 투어를 제공합니다. 이 경험은 힐사이드 테루아의 변화와 빈티지 차이를 비교해 볼 수 있어, 나파 컬트 와인 애호가들이 꼭 해보고 싶어 하는 버킷리스트 중 하나로 꼽힙니다.

    와이너리는 나파 밸리 특유의 구릉지 풍경 속에 자리 잡고 있으며, 태양광 패널, 동굴형 셀러, 계단식 포도밭 등이 어우러진 설계로 “현대적인 나파 프리미엄 와이너리”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최근 동향과 확장

    샤퍼는 스택스 립 디스트릭트 내에서의 포도밭 기반을 한층 강화하기 위해, 2022년 인근의 ‘와일드푸트 빈야드(Wildfoote Vineyard)’ 일부를 포함하는 약 46헥타르(114에이커)의 포도밭을 추가 매입했습니다. 이 토지는 카베르네 소비뇽, 카베르네 프랑, 메를로 등이 식재된 고품질 포도밭으로, 더그 샤퍼는 이를 “매우 특별한 포도밭”이라고 표현하며 향후 샤퍼의 핵심 원료 공급원으로 활용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습니다. 이로써 샤퍼는 스택스 립 디스트릭트 내 에스테이트 포도밭 포트폴리오를 더욱 공고히 하게 되었고, 힐사이드 셀렉트와 원 포인트 파이브 등 주요 카베르네 라인의 장기적 안정성을 확보했습니다.

    한편, 샤퍼는 힐사이드 셀렉트와 릴렌틀리스 등 일부 라인에서 지속적으로 최고 수준의 평론가 점수를 받으며, 나파 컬트 와인 시장에서 여전히 강력한 존재감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신세계 계열 유통망을 통해 보다 안정적으로 물량이 공급되는 한편, 가격대는 컬트 와인에 걸맞은 높은 수준을 형성하고 있어 “투자용·셀러용 와인”으로도 주목받는 상황입니다.

  • 2026 광안리 드론쇼

    2026년 광안리 M 드론라이트쇼는 매주 토요일 밤, 광안리해변과 광안대교를 배경으로 약 1,000대 내외의 드론이 만들어내는 상설 야간 공연이자, 설·카운트다운 같은 시기에는 2,500대 규모의 특별 공연까지 열리는 부산 대표 야간 관광 콘텐츠입니다.

    행사 개요와 2026년 운영 방식

    광안리 M 드론라이트쇼는 부산 수영구청이 주관하고 민간 기업이 협력하는 형태로 운영되는 상설 드론라이트쇼로, 2026년에도 기본적으로 “매주 토요일 야간, 회당 10~12분 내외”라는 틀을 유지합니다. 공연 장소는 부산광역시 수영구 광안해변로 일원, 즉 광안리해수욕장 전 구간이며, 특정 유료 좌석 없이 해변 어디에서든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는 무료 공연입니다. 관람료가 없다는 점 덕분에 여행객부터 인근 주민, 가족 단위, 커플, 사진가까지 관객 구성도 매우 다양하게 형성되고 있고, 매주 테마를 달리해 재방문 수요도 상당히 높은 편입니다.

    운영 시간은 계절에 따라 달라집니다. 3월부터 9월까지의 하절기에는 1회차 20시, 2회차 22시로 하루 두 번 진행되며, 10월부터 2월까지의 동절기에는 19시와 21시에 진행되는 방식이 2025년 말 기준으로 공지되어 있습니다. 2026년에도 같은 기본 구조를 유지하면서, 설날·연말 카운트다운 등 특정 날짜에는 1회 단독 특별 공연으로 편성하는 경우가 있어 방문 전 공식 홈페이지나 비짓부산 공지 확인이 필수입니다.

    정기 공연: 토요일 상설 드론쇼

    정기 공연은 “광안리 M(Marvelous) 드론라이트쇼”라는 공식 명칭으로, 매주 토요일 밤에 열리는 상설 프로그램입니다. 회당 공연 시간은 약 10~12분이며, 광안대교 위와 광안리 앞 바다 상공을 무대로 수백~1,000대 규모의 드론이 동원됩니다. 정기 공연의 특징은 매주 테마와 스토리를 바꾸는 구성에 있습니다. 2026년 1월에는 “소망 우체국” 같은 새해 키워드 테마가 편성되었고, 수영구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같은 이름의 공연 영상이 실시간 중계 및 다시보기로 제공됐습니다.

    2026년 3월의 경우, 부산 지역 블로그 및 여행 정보에 따르면 봄 시즌 콘셉트와 화이트데이 특집을 포함해 총 네 차례의 토요 공연이 준비되었으며, 각 회차마다 러닝타임은 10분 내외로 유지된다고 안내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계절·기념일·지역 이슈에 맞춰 스토리 라인을 바꾸기 때문에, 같은 해 여러 번 방문해도 다른 공연을 보는 효과가 있습니다.

    특별 공연: 설·카운트다운 등 2,500대 드론쇼

    상설 공연과 별도로 2026년에는 설 연휴와 연말연시를 중심으로 대규모 특별 공연이 편성되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설날을 맞아 2026년 2월 14일 토요일 저녁 8시에 1회 한정으로 열리는 설 특별 드론라이트쇼가 공식 관광 사이트를 통해 공지되었습니다. 이 설 특별 공연은 평소 약 1,000대 안팎이 투입되는 상설 공연과 달리 2,500대 규모의 드론이 투입되는 대형 연출이라는 점이 강조되었고, 광안리SUP존 앞 삼거리부터 민락회타운 구간까지 차량 통제가 병행될 정도로 현장 운영도 강화됩니다.

    연말 카운트다운 공연 역시 2,500대 드론을 활용한 대규모 퍼포먼스로, 2025년 12월 31일 24시에 2026년을 맞이하는 카운트다운 특별 공연이 개최되었습니다. 이 공연은 23시 56분 드론 이륙 후 0시 정각에 맞춰 새해 숫자, 병오년 상징 이미지, 불꽃 형상 등을 연출하며, 교통 통제와 와이파이 일시 중지, 유튜브 “수영구 TV” 라이브 방송까지 포함된 복합 이벤트로 운영되었습니다. 새해 직후에는 연합뉴스 등 언론을 통해 광안리 하늘을 수놓은 새해맞이 드론라이트쇼 사진과 영상이 보도되며 부산 대표 새해 카운트다운 공간으로 자리잡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드론 규모·연출 방식과 기술적 특징

    광안리 M 드론라이트쇼는 “국내 최대 규모 상설 드론라이트쇼”라는 문구로 홍보될 만큼, 투입되는 드론 수와 연출 스케일이 다른 지역 상설 공연보다 큰 편입니다. 상설 공연에는 약 1,000대, 설·연말 카운트다운 같은 특별 공연에는 2,500대까지 투입되며, 3차원 공간에서 수십 개의 장면을 순차적으로 구현하는 구성이 일반적입니다. 공연 중 드론들은 캐릭터, 한글 문구, 해·달·별, 말(적토마), 새해 숫자, 하트·반지 같은 로맨틱한 패턴 등으로 변형되며, 음악과 음향 효과에 맞춰 타이밍을 정교하게 맞추는 방식으로 연출됩니다.

    기술적으로는 GPS 기반 포지셔닝과 사전 입력된 비행 경로, 와이파이·전용 통신망을 활용한 동시 제어 등으로 수천 대의 드론을 한 몸처럼 움직이게 만들며, 기상·통신 상황에 상당히 민감하다는 점도 공식 안내에 명시됩니다. 그래서 비나 강풍, 태풍, 통신 상태 악화가 예상될 경우 하루 전 또는 당일에도 공연이 취소되거나 지연될 수 있다는 공지가 반복적으로 강조됩니다. 설 특별 공연처럼 대규모 드론이 투입되는 날에는 통신 간섭 방지를 위해 행사 시간대 공공 와이파이를 중지하는 조치도 병행됩니다.

    연출 시간은 약 10~12분으로 제한되어 있지만, 한 회차 안에서 프롤로그–본편–피날레 구성으로 테마를 이어가는 스토리텔링이 특징입니다. 예를 들어 “소망 우체국” 공연에서는 소망을 담은 편지가 출발해 하늘로 올라가는 장면, 편지가 별과 함께 퍼져나가는 장면, 마지막으로 새해나 미래를 상징하는 키워드와 캐릭터가 등장하는 식의 스토리 라인을 따르며, 음악도 이에 맞춰 구성됩니다.

    관람 시간·장소·접근 방법

    관람 시간은 앞서 언급했듯 하절기(3~9월) 20시·22시, 동절기(10~2월) 19시·21시가 기본 골격으로, 전체 10분 내외 공연입니다. 관객 입장에서는 시작 시각보다 20~30분 정도 여유를 두고 자리 잡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광안리 해변은 전 구간 자유 관람이 가능하지만, 사진·영상 촬영을 고려한다면 광안리 해변 중앙부, 즉 광안대교가 정면으로 보이는 구역이 가장 선호되는 포인트로 여러 후기·안내 글에서 추천되고 있습니다. 삼각대를 활용하면 드론 패턴과 광안대교 조명이 함께 잘 담기며, 2회차 공연(동절기 21시, 하절기 22시)을 선택하면 상대적으로 인파가 덜해 혼잡을 피하기 좋다는 팁도 많이 공유됩니다.

    광안리해수욕장 일대는 지하철과 버스 접근성이 좋아 대중교통 이용이 권장됩니다. 설 특별 공연이나 카운트다운 같은 날에는 광안리SUP존 앞 삼거리~민락회타운 구간 차량 통제가 시행되므로, 자가용 이용 시 인근 공영주차장·민락동 쪽 주차 후 도보로 이동하는 패턴이 일반적입니다. 또 설 특별 공연의 경우 행사 시간대(19~21시)에 광안리 인근 공공 와이파이가 중지된다는 공지가 있어, 현장에서 실시간 SNS 업로드나 라이브 방송을 계획하는 관람객은 미리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실전 관람 팁과 취재 포인트

    관람·취재 관점에서 보면, 1) 시간대 선택, 2) 위치 선정, 3) 기상·통신 체크, 4) 주변 동선 파악이 핵심 포인트입니다. 시간대의 경우 가족 단위 관람이나 어린이가 포함된 경우 1회차(20시 또는 19시)가 적절하고, 사진·영상 퀄리티와 인파 분산을 고려한다면 2회차(22시 또는 21시)가 나은 선택으로 거론됩니다. 위치는 광안리 중앙 해변이 기본값이지만, 살짝 옆으로 이동해 인파를 피하거나, 광안리 카페 2~3층, 민락 수변공원 쪽에서 약간 비스듬히 보는 구도도 프레이밍 측면에서 자주 추천됩니다.

    기상·통신 상황은 공식 홈페이지 공지와 비짓부산, 수영구청 SNS를 통해 수시로 업데이트되므로, 특히 비·강풍 예보가 있는 날에는 출발 전 반드시 당일 공지를 확인해야 불필요한 헛걸음을 줄일 수 있습니다. 설 특별 공연처럼 교통 통제와 와이파이 중지가 병행되는 날에는 대중교통 이동, 사전 오프라인 지도 저장, 공연 전후 식당·카페 예약 등을 미리 준비하는 것이 현장 체감 만족도를 좌우합니다. 취재용으로 방문한다면 수영구 TV에서 제공하는 라이브 스트림·VOD 화면과 현장 촬영 영상을 비교해 연출 구성을 분석하거나, 2,500대 드론이 연출하는 특정 형상(말, 숫자, 한글 문구 등)을 스틸 컷으로 확보하는 것이 기사·콘텐츠 제작에 유용합니다.

    또 하나의 포인트는 광안리 드론쇼가 단순한 야간 쇼를 넘어 부산이 야간관광·MICE 도시로 전략을 가져가는 상징적인 콘텐츠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연말 카운트다운과 설 특별 공연을 중심으로 지역 상권과의 연계, 교통·통신 인프라 운영, 시민 안전 관리가 종합적으로 작동하는 사례이기 때문에, 경제·도시정책 취재 관점에서 보면 지역 관광 수요 창출과 도시 브랜드 강화에 어떤 효과를 내고 있는지 추적해보는 것도 의미가 큽니다.

  • 예멘 후티

    예멘 후티는 예멘 북부 자이드 시아파 공동체의 종교·부흥 운동에서 출발해, 2000년대 중반 이후 중앙정부에 대한 반란 세력, 그리고 2010년대 중반 이후에는 사실상 예멘의 실질 집권 세력·지역 강자로 성장한 무장 정치조직이다. 오늘날에는 ‘안사르알라(Ansar Allah, 하나님의 지원자들)’라는 공식 명칭으로, 이란과 연계된 ‘축(軸)’의 일원으로 평가받으며 홍해·바브엘만데브 해협, 심지어 이스라엘과 미국까지 겨냥하는 지역 안보 변수로 부상했다.

    종파·지역 기반과 사상적 뿌리

    후티의 사회적 기반은 예멘 북부 사다(Saada)와 그 주변 산악지대에 집중된 자이드 시아파(Zaydi Shi’a) 공동체다. 자이드는 이란의 열두이맘파와는 다른 전통을 가진 시아의 한 분파로, 역사적으로는 수 세기 동안 북예멘의 이맘국(신정 왕조)을 이끌며 정치·종교 권위를 동시에 행사해 왔다. 1962년 북예멘 공화정 혁명으로 자이드 이맘 체제가 붕괴한 뒤, 자이드 엘리트와 종교 네트워크는 공화국 체제 속에서 점진적으로 영향력을 잃었고, 특히 1990년 남북 예멘 통일 이후에는 사우디의 후원을 받은 살라피즘·와하비즘이 북부 지역에 대거 유입되면서 자이드 종교·교육 인프라가 위축되었다. 후티의 초기 움직임은 바로 이 자이드 정체성의 위축과 살라피 확산에 대한 방어·부흥이라는 성격을 강하게 띠었다.

    사상적으로 후티 운동은 자이드 부흥주의, 반제국주의·반미·반이스라엘 정서, 예멘 민족주의가 혼합된 이념적 구도를 보인다. 이들은 ‘알룰 알바이트(Ahl al-Bayt, 예언자 가문의 후손)’가 정치·종교적 통치에 특별한 정당성을 가진다는 전통적 자이드·하심 계열의 관념을 어느 정도 계승하면서, 이를 통해 특정 혈통, 특히 후티 가문과 그 주변 하심(Hashemite) 엘리트의 통치 정당성을 강조해 왔다는 비판을 받는다. 일부 연구자들은 후티 이데올로기가 ‘신적 혈통’에 기반한 우월주의·지배 정당화를 내포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이를 예멘 사회 내부 갈등을 장기화·심화시키는 구조적 요인으로 본다.

    후티가 내세우는 구호는 이들의 정체성을 상징적으로 압축한다. 대표적인 슬로건은 “신은 위대하다, 미국에 죽음을, 이스라엘에 죽음을, 유대인들을 저주하라, 이슬람에 승리를”이라는 문구로, 모스크·거리·집회 현장에 빈번히 등장하며 이들이 지향하는 반미·반이스라엘 정치 노선을 보여준다. 이러한 구호는 이란 혁명 지도자 호메이니가 주도한 급진 시아파 정치 사상과도 일정 부분 연결되며, 실제로 후티는 이란식 혁명 레토릭과 상징을 차용해 자신들을 제국주의·시온주의와 맞서는 전선의 일부로 위치 지어 왔다.

    한편, 후티는 표면적으로는 예멘 내부의 부패, 부족 정치, 중앙정부의 무능과 종파 차별을 비판하며 ‘예멘 민족주의’ 또는 ‘반부패·사회 정의’를 주장해 온 탓에, 초기에는 자이드 시아뿐 아니라 일부 수니파(특히 샤피이파) 주민들로부터도 동조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후티가 권력을 장악한 지역에서 수니파 모스크 폐쇄, 종교 기관 통제, 특정 부족과의 무력 충돌이 이어지면서, 초기의 범종파적 호소력 상당 부분은 희석되었다는 평이 많다.

    1990년대: 종교·사회 운동에서 무장조직의 씨앗까지

    후티의 기원은 1990년대 초 북예멘 사다 지역에서 시작된 종교·청년 운동 ‘알샤바브 알무민(Al-Shabab al-Mu’min, 신실한 청년들)’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모임은 후세인 바드루딘 알후티(Hussein Badreddin al-Houthi)와 그 가족, 자이드 성직자들이 주도해 자이드 교리 교육, 코란 연구, 정치·사회 토론을 진행하면서 점차 조직적 색채를 띠게 된다. 사우디가 후원한 살라피 학교와 사원 네트워크가 확대되자, 이들은 자이드 신학과 전통을 회복하겠다는 명분으로 활동을 강화했고, 동시에 예멘 정부가 걸프전 이후 미국과 밀착하며 ‘반테러 전쟁’에 동참하는 데도 비판적 입장을 드러냈다.

    1990년대 후반부터 후세인 알후티는 예멘 의회 의원 경험을 바탕으로, 반미·반이스라엘·반사우디 정서를 결합한 정치·종교 연설을 통해 영향력을 넓혔다. 이 시기 후티의 활동은 대체로 평화적·선전 중심이었지만, 예멘 정부와 사우디는 이들의 확산을 잠재적 안보 위협으로 인식했다. 자이드 부흥이라는 종교적 의제와 함께, 사다 지역 주민들이 체감하던 정치·경제적 소외, 부족 간 불평등, 중앙정부의 개발 소홀 등이 겹치면서 후티 운동은 지역적 불만의 중심 축으로 빠르게 자리잡았다.

    2004~2010년: 여섯 차례의 반란과 내부 전쟁

    2004년, 후세인 알후티와 그의 추종자들은 알리 압둘라 살레 정권과 공개적인 무력 충돌에 돌입한다. 정부는 반미·반이스라엘 구호를 외치는 후티 집회를 ‘체제 전복·폭동’으로 규정하고 지도부 체포령을 내렸고, 후티 측은 이를 자이드 공동체에 대한 탄압으로 간주하며 무장 저항에 나섰다. 2004년 6~9월 사이 벌어진 1차 전투에서 수백~수천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9월 정부군은 후세인 알후티를 사살했다.

    후세인 사망 이후, 그의 동생 압둘말리크 알후티(Abdul-Malik al-Houthi)가 무장조직의 정치·군사 지도자로 부상했고, 아버지 바드루딘 알후티는 영적 지도자·상징적 존재로 남는다. 이후 2010년까지 6차례에 걸친 정부-후티 간 내전이 반복되었는데, 전투는 주로 북부 산악지대에서 치러졌지만 사우디-예멘 국경지대까지 확전되기도 했다. 특히 2009년 6차 전쟁 당시 후티 전투원들이 사우디 영내로 진입하자, 사우디는 공군·지상군을 동원해 직접 전투에 개입했고 이는 후티-사우디 간 구조적 적대 관계의 출발점이 된다.

    여섯 차례의 전쟁은 후티를 ‘지역 반군’에서 조직적 군사세력으로 변모시켰다. 산악 게릴라전에 능한 후티는 부족 네트워크, 자이드 종교 네트워크를 활용해 병력을 동원했고, 정부군의 강경 진압과 인권침해는 오히려 후티에 대한 동정 여론과 지원을 확산시키는 역효과를 가져왔다. 2010년경 전투가 일단락되었을 때, 후티는 북부 사다와 인근 지역에서 사실상의 자치 통치 구조를 구축하며 중앙정부와는 다른 행정·치안·사법 체계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아랍의 봄과 권력 공백, 후티의 기회

    2011년 튀니지·이집트에서 시작된 아랍의 봄은 예멘에도 반정부 시위를 촉발했고, 장기 집권자 알리 압둘라 살레는 결국 물러나게 된다. 2012년 사우디·걸프협력회의(GCC)의 중재 아래 부통령이던 압드라부 만수르 하디가 과도 대통령으로 선출되면서, 표면적으로는 ‘체제 전환’이 이뤄졌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구체제 엘리트·부족 네트워크·군부의 이해관계가 그대로 남아 있었고, 경제·사회 구조 문제는 거의 해결되지 않았다.

    이 시기 후티는 ‘국가 대화 회의(National Dialogue Conference)’ 등 정치 과정에 제한적으로 참여했지만, 자신들의 요구(북부 자이드 지역에 대한 정치·경제적 권한 확대, 지방 자치권 강화 등)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동시에 살레의 측근 세력과 이슬라흐(Islah, 무슬림형제단 계열 이슬람주의 정당) 사이의 갈등, 남부 분리주의, 알카에다 아라비아반도 지부(AQAP) 등 복수의 갈등 축이 얽히며 중앙정부의 통치 역량은 심각하게 약화됐다. 이 복잡한 권력 공백과 다중 위기가, 후티에게는 ‘사다의 반군’에서 ‘전국적 정치·군사 행위자’로 도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흥미로운 점은, 후티가 한때 자신들의 철천지원수였던 옛 대통령 살레와 전술적 동맹을 맺었다는 사실이다. 살레는 하디 정권과 사우디에 대한 복수와 정치적 복귀를 원했고, 후티는 살레가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던 공화국 수비대 등 군부 일부, 부족 네트워크를 활용해 남부·중부로 확장할 수 있었다. 이 ‘기이한 동맹’은 후티의 수도 진격과 정권 장악에 결정적 역할을 했지만, 훗날 파국적 결별을 향한 시한폭탄이기도 했다.

    2014~2015년: 사나 함락과 사실상 국가 장악

    Houthi-controlled Yemen map

    Houthi-controlled Yemen map 

    2014년, 후티는 연료 보조금 삭감 조치에 분노한 대중 불만을 끌어안으며 북부에서 중부, 수도 사나(Sanaa)로 빠르게 남하했다. 하디 정부는 군부 내부 분열과 부족 간 갈등으로 제대로 저항하지 못했고, 일부 군부·부족 세력은 아예 후티와 공모하거나 소극적으로 방관했다. 2014년 9월, 후티는 거의 무혈에 가까운 방식으로 사나를 장악했고, 이후 수도 및 북부·서부 전략 거점을 빠르게 손에 넣었다.

    2015년 1월 후티는 하디 대통령과 내각을 사실상 가택연금에 가까운 상태로 몰아넣고 사임을 강요했으며, 2월 6일에는 의회를 해산하고 ‘최고 혁명위원회(Supreme Revolutionary Committee)’라는 기구를 설치해 자신들의 통치 구조를 공식화했다. 하디는 남부 아덴(Aden)으로 탈출해 ‘합법 정부’ 수립을 선언했지만, 후티의 군사적 우위 앞에 아덴마저 위협받자 결국 2015년 3월 사우디아라비아로 도피했다.

    이 시점부터 예멘은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하디 정부(뒤에 대통령위원회로 재편)’와, 수도와 인구·경제 핵심을 장악한 후티 정권(안사르알라), 여기에 남부 분리주의 세력(STC) 등 삼중 권력 구조가 뒤엉킨 전면 내전에 돌입한다. 후티는 이후 수도 사나를 포함한 북부·서부 상당 부분을 통제하며 ‘후티 예멘’이라는 별도의 실질 통치 영역을 구축하게 된다.

    사우디 연합군 개입과 이란 요인

    하디가 사우디로 도피한 뒤, 사우디는 후티의 남진과 아덴 함락을 ‘레드라인’으로 간주하고 2015년 3월 ‘결연한 폭풍 작전(Operation Decisive Storm)’이라는 이름으로 대규모 공습을 개시했다. 사우디는 아랍에미리트(UAE)를 비롯한 수니파 아랍 국가, 그리고 미국·영국 등 서방의 정보·군사 지원을 등에 업고 ‘예멘 합법 정부 복원’을 명분으로 삼았고, 동시에 후티를 이란의 ‘대리 세력(proxy)’로 규정해 중동에서의 이란 확장을 차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란의 역할은 예멘 내전 내내 국제적 논쟁의 중심에 있었다. 다수 연구·정보기관은 이란이 후티에게 무기·탄도미사일·드론·훈련·자문을 제공해 왔다고 본다. 특히 홍해·바브엘만데브 해협과 사우디 심장부를 타격할 수 있는 장거리 드론·미사일 전력은, 후티 단독으로 구축하기 어렵고 이란 혁명수비대(IRGC)의 기술 이전·밀수 지원이 있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란과 후티는 공식적으로는 ‘도덕적·정치적 지지’ 수준이라고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레바논 헤즈볼라, 이라크 시아 민병대와 더불어 ‘이란 축(axis)’의 한 축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것이 국제 연구기관들의 중론이다.

    다만, 후티를 전적으로 ‘이란의 꼭두각시’로만 보는 시각에 대해서는 비판도 존재한다. 일부 분석은 후티가 자체적인 예멘 내부 정치 의제와 부족 기반을 가진 독립 행위자로, 이란 지원은 중요한 요인이지만 후티 전략을 전적으로 지배하는 수준은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장기간의 사우디 군사 개입과 봉쇄가 후티의 반사우디·반외세 정당성을 강화하고, 이란과의 결속을 더 촘촘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는 연구도 있다. 최근 사우디-이란 관계가 정상화되고 예멘 전선에서도 휴전·협상 움직임이 나타나면서, 후티가 이란의 통제에서 어느 정도 독자성을 강화하는 조짐을 보인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통치 방식과 인권·사회 문제

    후티가 장악한 지역에서는 자체 행정·사법·치안 체계를 기반으로 사실상의 국가 운영이 이루어지고 있다. 세금·관세·원조 물자 배분, 교육·언론·종교기관 통제 등을 통해 후티는 북부 예멘 인구 수천만 명의 일상을 좌우하는 실질 정부로 기능한다. 그러나 이 통치 방식은 국제 인권단체와 유엔 보고서들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아왔다. 반대파 정치인·언론인·활동가에 대한 체포·강제실종, 언론 검열과 사전 허가제, 국영·사립 교육과정의 이념적 개편 등은 후티의 권위주의적·종교적 통치 성격을 드러낸다.

    종교·종파 차원에서도, 후티는 자이드 기반을 앞세우며 수니파 특히 살라피 세력에 대한 강경한 탄압을 가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사다 지역의 살라피 중심지 다마지(Dammaj) 학원이 봉쇄·파괴되고, 살라피 종교 시설 상당수가 폐쇄·압류된 사례가 대표적이다. 동시에 일부 수니파 부족과의 동맹·공존 관계도 존재해, 후티의 종파 정책은 지역·상황별로 이중적 양상을 보인다.

    또한 후티는 어린이·청소년을 대규모로 동원해 전선에 투입하고, 지뢰·무차별 포격 등 국제인도법 위반 사례를 반복해 왔다는 비판을 받는다. 사우디 연합군 또한 폭격으로 민간인 피해를 초래해 전쟁 범죄 의혹을 받는 만큼, 예멘 내전은 후티·연합군·각종 민병대 모두가 심각한 인권 침해를 저지른 ‘전면적 인도주의 재난’의 양상을 띤다.

    홍해·레드시에서의 군사 행동과 지역 안보

    후티는 예멘 북부·서부를 장악하면서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바브엘만데브 해협과 홍해 남단에 접근할 수 있는 지리적 위치를 확보했다. 이들은 2010년대 후반부터 사우디 유조선·상선에 대한 미사일·드론·보트 폭탄 공격, 지뢰·기뢰 매설 등을 통해 해상 교통을 위협하며 자신들의 영향력을 과시했다. 이는 사우디의 수출·수입, 글로벌 석유·물류 흐름에도 직접적인 리스크를 가하는 행위로, 후티는 이를 ‘사우디·UAE의 예멘 개입에 대한 정당한 보복’이라고 주장해 왔다.

    2020년대 들어 후티의 해상·미사일 역량은 한층 고도화되었다는 평가다. 유엔 전문가 패널과 씽크탱크 보고서들은 이란이 후티에 제공한 미사일·드론 기술, 부품·자문이 홍해·아덴만까지 사정권에 두는 공격 능력 향상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분석한다. 이 때문에 후티는 단순한 예멘 내 반군이 아니라, 홍해·인도양·지중해를 잇는 글로벌 해상 공급망을 위협할 수 있는 ‘지역 비국가 군사 행위자’로 인식되고 있다.

    팔레스타인 문제나 이스라엘과의 갈등 국면에서도 후티는 ‘예루살렘·가자 지지’를 표방하며 이스라엘을 직접 겨냥한 미사일·드론을 발사하겠다고 공언하거나, 실제로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해 사우디·요르단·미군 방공망에 의해 요격되는 사례도 보고되었다. 이처럼 후티는 자신을 ‘반이스라엘·반미 시아 축’의 일원으로 재포지셔닝하며, 예멘 국내 이슈를 넘어 중동 전역의 세력 균형과 안보 레짐에 영향을 미치는 존재로 부상했다.

    후티-살레 동맹의 붕괴와 권력 구조 재편

    사나 함락과 내전 초기에 후티와 옛 대통령 살레의 동맹은 상당한 시너지를 발휘했으나, 양측의 이해관계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후티는 혁명·종교·정체성 담론을 내세워 새로운 통치 질서를 구축하고자 했던 반면, 살레는 자신과 가족 중심의 구체제 엘리트 체재 복귀를 노렸다. 시간이 흐르면서 양측 사이에는 군 지휘권·재정·외교·사우디와의 협상 문제 등을 둘러싼 갈등이 누적됐다.

    결국 2017년 말, 살레는 사우디·UAE와 접촉하며 후티에 대한 ‘전향’을 시사했고, 후티는 이를 반역으로 간주해 사나에서 살레 측 세력과 충돌했다. 교전 끝에 살레는 후티에 의해 사살됐고, 그의 정치 조직인 국민총회의 상당 부분은 후티의 강압 아래 재편되거나 분열했다. 이 사건은 후티가 예멘 정치에서 오랜 기간 영향력을 행사해 온 ‘공화국 엘리트’를 물리적으로 제거하고, 독자적 권력 구조를 공고히 한 분기점이었다. 동시에 상당수 수니 부족·옛 살레 지지층은 후티에 대한 불신·비판을 강화하며, 후티 정권의 종파·혈통 중심 통치에 대한 반감을 키우는 계기가 되었다.

    국제 질서·지정학 속 후티의 의미

    후티는 오늘날 여러 층위에서 읽힐 수 있는 존재다. 예멘 내부에서는 북부 자이드 공동체의 정체성·권력 회복을 추구하는 종교·정치 운동이자, 부패한 중앙정부·부족 엘리트·외세 개입에 대한 반발을 대변하는 무장 세력이라는 이미지가 공존한다. 동시에 통제 지역 내에서의 권위주의 통치, 혈통·종파 중심 권력 구조, 인권 침해 등은 이들을 단순한 ‘해방 세력’으로 포장하기 어렵게 하는 요소다.

    지역 차원에서는 이란과 느슨하면서도 전략적인 동맹 관계를 맺은 ‘비국가 행위자’로서, 사우디·UAE 등 걸프 군주국과의 힘겨루기에서 중요한 지렛대 역할을 한다. 홍해·바브엘만데브 해협, 사우디 본토·에너지 인프라, 심지어 이스라엘과 미군 기지를 사정권에 두는 미사일·드론 능력은 중동의 전통적인 국가 간 억지 구조를 크게 흔들고 있다. 이란 입장에서 후티는 지리적으로 걸프·레반트 축과는 다른 남쪽 전선을 제공하며, 미국·사우디·이스라엘에 대한 간접 압박 수단이 된다.

    국제 사회에서는 후티를 법적으로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도 논쟁거리다. 일부 국가는 후티를 테러조직으로 지정했고, 또 다른 국가들은 인도주의 접근과 평화협상 필요성을 이유로 전면 테러 지정에 신중한 태도를 보인다. 유엔 차원에서는 후티를 예멘의 한 ‘당사자’로 인정하고 휴전·정치 협상에 참여하도록 유도하면서도, 인권 침해·무기 금수·제재 대상이라는 이중적 접근을 병행하고 있다.

    향후 전망과 구조적 난제

    예멘 전체 인구의 상당 부분이 후티 통제 지역에 살고 있고, 수도 사나·주요 인구 거점·국가 기관 상당수를 장악한 상태에서, 후티를 완전히 제거하거나 예멘 정치에서 배제하는 시나리오는 현실성이 크게 떨어진다는 평가가 많다. 사우디도 10년에 가까운 군사 개입을 통해 후티를 굴복시키지 못한 채 막대한 비용·안보 리스크만 떠안게 되자, 최근에는 휴전·협상을 통해 ‘관리 가능한 공존’을 모색하는 쪽으로 전략을 조정하고 있다.

    다만, 후티의 이념 구조—혈통 중심 통치 정당성, 강한 종파·우월주의적 요소, 무장 투쟁을 핵심 수단으로 보는 문화—가 크게 변하지 않는 한, 이들이 포괄적·포용적인 예멘 국가 건설의 주체가 될 수 있을지에는 회의적 시각이 지배적이다. 남부 분리주의, 알카에다·IS 잔존세력, 각 부족·지역 세력의 이해관계를 조정하지 못하면, 설사 휴전·권력분점 합의가 이뤄지더라도 ‘냉전적 내전’ 상태가 장기화될 위험이 크다.

    결국 후티를 둘러싼 예멘·중동 정세는 단순한 종파 갈등이나 ‘이란 vs 사우디’ 대리 전쟁으로 축소해 이해할 수 없다. 자이드-살라피, 부족·엘리트·농촌·도시의 오랜 구조적 불평등, 냉전 이후 미국 주도의 역내 안보 질서, 걸프 산유국의 패권 경쟁, 이란 혁명 이념의 확산, 팔레스타인 문제와 이스라엘 안보, 그리고 홍해·인도양을 관통하는 글로벌 해상 물류 체계까지, 다양한 층위의 요소들이 후티라는 하나의 조직에 응축되어 있는 셈이다.

  • 삿포로 우니동 맛집

    삿포로에서 우니동을 제대로 즐기려면, ‘우니 전문점’과 ‘시장형 식당’을 나눠서 보는 게 좋습니다. 아래에서는 대표적인 우니동 맛집 몇 곳을 중심으로, 분위기·주문 팁·가격대·어떤 타입의 여행자에게 맞는지까지 자세히 정리해 보겠습니다.

    삿포로 우니동을 이해하기

    삿포로에서 먹는 우니동의 가장 큰 특징은 원재료가 대부분 홋카이도산이라는 점입니다. 하코다테·샤코탄·요이치 등지에서 올라오는 성게들이 한데 모이는 도시라, 산지까지 가지 않아도 수준급 우니를 접하기가 상대적으로 쉽습니다. 다만 산지와의 거리·유통 과정 차이 때문에, ‘명반을 쓰지 않는 곳’과 ‘냉동·해동 비율이 높은 곳’의 퀄리티 차이가 확연히 느껴지는 시장이라는 점도 함께 기억해야 합니다.

    또 하나 중요한 건 시즌입니다. 홋카이도 우니 최성수기는 대체로 여름이지만, 삿포로 도심의 우니 전문점들은 시즌에 따라 산지를 바꾸거나, 냉장 유통망을 활용해 일정 수준 이상의 퀄리티를 연중 유지하려는 편입니다. 그래서 겨울이나 초봄에 가더라도, ‘브랜드화된 우니 전문점’에서는 꽤 만족스러운 그릇을 만날 확률이 높습니다.

    1. 우니 무라카미 삿포로점 – 정석의 ‘우니 전문점’

    우니 무라카미(うに むらかみ)는 하코다테에 본점을 둔 우니 전문 체인으로, 삿포로점은 JR 삿포로역 인근 일본생명 삿포로 빌딩 지하 1층에 자리합니다. JR 삿포로역에서 도보 5분 정도라 캐리어를 끌고 이동하기에도 수월하고, 삿포로 시계탑·홋카이도 도청 구 본청사 등 관광 동선과도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위치입니다.

    가장 많이 언급되는 장점은 ‘명반을 쓰지 않는 우니’입니다. 일반적으로 성게는 형태 유지를 위해 명반 처리를 하는데, 이게 과하면 쓴맛과 특유의 화학적인 향이 올라옵니다. 무라카미는 이 명반을 쓰지 않는 대신, 물류·보관 과정을 엄격히 관리해 우니 본연의 단맛·크리미한 질감을 최대한 살리는 컨셉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실제 한국인 블로거 후기에서도 “쓴맛이 거의 없고 달콤하면서 녹진하다”는 표현이 반복됩니다.

    내부 분위기는 ‘시장형 식당’보다는 호텔 다이닝에 가까운 깔끔한 인테리어, 조용한 조도, 친절한 서비스라는 평가를 많이 받습니다. 좌석 구성은 테이블석과 카운터석이 섞여 있고, 혼밥·커플·소규모 가족 모두 무난하게 수용 가능한 구조라고 보면 됩니다. 한국인 방문이 많아 메뉴판에 어느 정도 영어 표기가 되어 있고, 사진 메뉴 위주로 주문하면 크게 어려움이 없습니다.

    대표 메뉴는 단연 우니동(성게덮밥)과 우니 사시미, 우니 그라탕, 우니 차즈케 등 ‘우니 단일 재료로 풀어낸 코스’ 성격의 라인업입니다. 특히 우니동의 경우, 그릇 전체를 덮어버릴 정도의 성게가 올라가 “푸짐하지만 가격도 만만치 않다”는 반응이 많고, 덕분에 ‘삿포로에서 한 번쯤 각오하고 먹는 우니 성지’ 포지션을 갖게 되었습니다. 예약은 전화 예약이 원칙이라 한국에서 미리 예약하려면 카드사 컨시어지나 호텔 콘시어지 서비스를 활용하는 게 안전합니다.

    이 집이 어울리는 타입은, 시장 특유의 소란스러움보다는 정돈된 환경에서 우니에 집중하고 싶은 여행자, 가격이 다소 높더라도 ‘쓴맛 없는 명반 무첨가 우니’를 확실히 경험하고 싶은 사람입니다. 기자 입장에서 후기용 사진을 찍고 맛과 서비스까지 함께 정리하기에도 상당히 좋은 샘플이 됩니다.

    2. 네무로 우니마츠리 – 삿포로 우니동 신흥 강자

    네무로 우니마츠리는 한국인 여행자들 사이에서 최근 몇 년 사이 급부상한 ‘우니동 맛집’으로, 블로그 후기를 중심으로 인지도가 크게 올라간 곳입니다. 2024년 여름 여행 후기를 보면, 사장님이 굉장히 친절하고, 해산물의 신선도가 좋아 “다음에 또 오고 싶다”는 식의 평가가 눈에 띕니다.

    이곳의 강점은 메뉴 구성입니다. 순수 우니동도 있지만, 우니·연어알·다른 해산물을 섞은 삼색덮밥이 특히 인기가 많은데, ‘우니만 먹으면 질리지 않을까’ 하는 심리적 허들을 자연스럽게 낮춰 줍니다. 실제 후기를 보면, 처음에는 부담감을 줄이기 위해 특상삼색덮밥을 시켰다가, 막상 먹어 보니 우니가 너무 맛있어서 “차라리 우니동만 시킬 걸 후회했다”는 내용이 등장합니다. 이는 곧 이 집 우니 퀄리티가 생각보다 훨씬 높다는 간접 지표이기도 합니다.

    내부는 아담한 공간에 테이블·카운터가 적절히 섞여 있어, “‘동네 숨은 맛집’ 같은 온도감”으로 묘사됩니다. 혼자 가도 카운터석에서 무리 없이 식사할 수 있고, 2–3인 일행이 테이블을 차지해도 과하게 붐비지 않는 규모라는 점이 장점입니다. 무엇보다 사장과 직원들의 친절함이 꾸준히 언급되는데, 우니·해산물에 익숙하지 않은 손님에게 먹는 순서나 간장 양 조절 등을 조용히 안내해 주어, 생우니 초보자에게도 진입장벽이 낮은 편입니다.

    여행 동선 차원에서 보면, ‘한 끼를 우니에 올인하기엔 망설여지지만, 그래도 우니의 핵심 맛을 제대로 보고 싶다’는 여행자에게 적합합니다. 삼색덮밥을 고르면, 우니가 입에 잘 맞지 않더라도 다른 해산물로 어느 정도 리스크 헤지가 가능하고, 반대로 우니가 너무 마음에 들면 다음날 다시 들러 우니동 단일 메뉴를 주문해 보는 식으로 변형도 가능합니다.

    3. 니조시장 일대 우니동 – 시장의 활기, 취향 타는 퀄리티

    삿포로 니조시장은 털게·우니·카이센동 등 해산물 덮밥으로 이미 유명한 곳입니다. 여러 블로그와 영상 후기를 보면, “시장 특유의 북적임과 신선한 해산물을 한 번에 즐길 수 있다”는 점이 공통적으로 언급됩니다. 우니동만 놓고 보면, 가게별 편차가 크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니조시장 내 식당들은 보통 성게뿐 아니라 카니(게), 이쿠라(연어알), 가리비 등을 섞은 카이센동을 전면에 내세우는 경우가 많고, 우니를 포함한 믹스덮밥으로 주문하는 손님 비중이 큽니다. 이 구조 때문에, 우니를 전문적으로 엄선해서 쓰는 집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다양한 재료 중 하나’ 정도로 사용하는 가게도 상당수입니다. 따라서 우니동 단일 메뉴의 감동이 우니 무라카미 급으로 나오리라 기대하면 다소 실망할 수 있습니다.

    반면 시장 특유의 장점도 분명합니다. 원하는 조합(전부 우니, 우니+이쿠라, 우니+게 등)을 즉석에서 골라볼 수 있고, 그날그날 상태가 좋은 재료를 추천받을 수도 있습니다. 또, 활기찬 시장 분위기 속에서 한 그릇을 비워내는 경험 자체가 여행의 한 장면이 되기 때문에, ‘분위기+맛’을 한 번에 챙기고 싶은 여행자에게는 여전히 강력한 옵션입니다. 다만, 가격 대비 우니의 순도와 풍미만 놓고 평가한다면, 앞서 소개한 전문점들보다 평가가 갈리는 편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합니다.

    4. 삿포로 우니동 선택 가이드

    삿포로에서 우니동을 어디서 먹을지 결정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본인이 우니에 얼마나 익숙한지, 그리고 한 끼에 쓰고 싶은 예산 수준입니다. 우니 경험이 거의 없고 비릿함에 대한 걱정이 있다면, 명반을 쓰지 않고 쓴맛을 줄이는 쪽을 지향하는 우니 무라카미 같은 전문점을 우선 검토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여기에 삼색덮밥 옵션이 있는 네무로 우니마츠리를 ‘세컨 옵션’으로 가져가면, 부담을 상당히 낮출 수 있습니다.

    예산 측면에서 보면, 우니 무라카미는 “푸짐하지만 비싼 가격”이라는 한국인 후기가 반복되는 만큼 고가대에 해당하고, 네무로 우니마츠리는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하다는 인식이 많습니다. 니조시장 일대의 경우 메뉴 구성이 다양해 예산 선택 폭은 넓지만, ‘확실한 우니 맛’을 최우선 가치로 둔다면, 가게 선별과 사전 조사가 어느 정도 필요합니다.

    정리하면, ‘1회성이지만 확실한 경험’을 원하면 삿포로 도착 직후 우니 무라카미에서 첫 끼를 해결하는 동선이 좋고, 우니와 다른 해산물의 조합을 즐기며 가볍게 여러 번 나눠 먹고 싶다면 네무로 우니마츠리나 니조시장 쪽을 며칠에 걸쳐 나눠 방문하는 방식이 합리적입니다. 기자 입장에서 취재·사진·스토리까지 고려한다면, 우니 무라카미의 ‘명반 무첨가 스토리’와 네무로 우니마츠리의 ‘동네식당 같은 친근함’을 대비시키는 구성이 기사 구조에도 잘 맞을 것입니다.

    대표 우니동 스폿 한눈에 보기

    구분상호위치·동선특징이런 사람에게 추천
    우니 전문점우니 무라카미 삿포로점JR 삿포로역 도보 5분, 일본생명 빌딩 B1명반 무첨가 우니, 고급스러운 분위기, 우니 요리 다양비릿함 없이 ‘정석 우니’를 한 번에 경험하고 싶은 경우
    우니·해산물 식당네무로 우니마츠리삿포로 시내, 소규모 식당 형태우니·삼색덮밥 인기, 사장 친절, 아담하고 편안한 분위기우니 초보, 해산물 믹스를 좋아하고 예산 부담을 줄이고 싶은 경우
    시장형 식당니조시장 일대 가게들삿포로 니조시장 안우니·카이센동, 시장 특유의 활기, 가게별 편차 큼시장 분위기와 함께 여러 해산물을 빠르게 경험하고 싶은 경우
  • 영국 밀턴킨스 스타디움 MK

    영국 밀턴킨스(Milton Keynes)에 있는 스타디움 MK(Stadium MK), 국내에서 ‘밀턴킨스 스타디움’으로 불리는 이 구장은 잉글랜드 프로축구 클럽 밀턴킨스 던스(MK Dons)의 본거지이자, 지역을 넘어 국제 무대까지 오르는 현대식 다목적 스포츠·엔터테인먼트 복합공간이다. 이 경기장은 2000년대 중반 밀턴킨스의 도시 정체성과 스포츠 인프라를 재구성한다는 큰 프로젝트의 핵심 시설로서 탄생했고, 현재는 축구·럭비·콘서트·대형 행사까지 포괄하는 ‘스포츠 허브’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공식 명칭과 위치, 명칭의 유래

    스타디움 MK의 공식 명칭은 “Stadium MK”이며, 스타일상 ‘stadium:mk’ 또는 ‘stadiummk’처럼 표기되는 경우가 많다. 이 이름은 도시명 Milton Keynes의 약자 MK를 공식 브랜드 아이덴티티로 내세우려는 밀턴킨스의 도시 마케팅 전략과 맞닿아 있다. 이는 단순한 스포츠 시설이 아니라 ‘MK’라는 도시 브랜드 자체를 상징하는 랜드마크로 설계된 공간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구장은 밀턴킨스 남부의 덴비그(Denbigh) 지역 벨트리(Bletchley)에 위치해 있으며, 현지에서는 “덴비 스타디움(Denbigh Stadium)”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는 해당 지역의 명칭과 연계된 지명으로, 도시 전체보다는 구체적인 행정지역을 지칭하는 로컬 네임이다. 국제 행사나 미디어 보도에서는 대부분 Stadium MK가 사용되지만, 지역 주민·팬들 사이에서는 Denbigh Stadium이라는 이름이 여전히 통용된다.


    건설 배경과 개장 과정

    밀턴킨스 스타디움의 건설은 원래 2003년 위imbledon FC가 런던에서 밀턴킨스로 이전한다는 결정 이후 가속화된 프로젝트다. 위imbledon FC는 2003년도에는 기존 국립하키경기장인 National Hockey Stadium(수용 인원 약 4,000명)을 임시 홈구장으로 사용했고, 공식적으로 2004년에 밀턴킨스 던스(MK Dons)로 이름을 바꿨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도시 전체에 어울리는 대형 프로축구 전용구장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2002년경부터 밀턴킨스시와 투자자·클럽이 협력해 새로운 스타디움 건설을 추진하게 된다.

    2005년 2월 17일에 착공을 시작한 스타디움 MK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포츠 아레나 전문 설계사 Populous(당시 HOK Sport Architecture)가 설계를 맡았으며, 건설사는 Buckingham Group Contracting이 담당했다. 2년여에 걸친 공사 끝에 2007년 7월 18일에 MK Dons가 첼시 XI와의 친선전으로 실제 첫 경기를 치렀고, 공식 개장식은 같은 해 11월 29일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처럼 왕실의 참석은 이 구장이 단순한 축구장이 아니라, 국가 수준의 스포츠 인프라로 인정받았다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설계 특징과 건축 구조

    스타디움 MK는 Populous가 설계한 현대식 축구 전용구장으로, “유럽 엘리트 스타디움 기준”(UEFA Elite Stadium specifications)을 충족하도록 설계됐다. 구조적으로는 360도 원형 설계로, 4개의 주요 스탠드(북쪽 스탠드, 동쪽 스탠드, 서쪽 스탠드, 그리고 홈 팬 응원지역인 The Cow Shed)가 경기를 중심으로 감싸는 형태를 갖추고 있다.

    특히 2000년대 중반 이후 영국에서 새롭게 건설된 구장들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톱 로딩(top-loaded)’ 구조의 360도 오픈 콘코스(Open Concourse) 개념이다. 이는 관람석 맨 위에 360도로 둘러싸인 콘코스를 두어, 경기 중일 때도 팬들이 경기를 바라보며 자유롭게 이동·휴식·식사·음료를 즐길 수 있도록 한 설계로, 콘서트나 대형 이벤트 등 다양한 프로그램 진행 시 활용도를 극대화하려는 전략이 반영된 것이다.

    지붕은 높은 구조를 유지해, 필요 시 상단에 제3층을 추가해 30,700석에서 최대 약 45,000석까지 확장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이는 인근 대도시(예: 런던, 버밍엄, 맨체스터 등)와 달리 대형 스타디움이 부족한 지역을 보완하는 한편, 향후 UEFA 챔피언스리그·유로파리그 또는 국제 대회 유치 가능성에 대비한 전략적 결정으로 평가된다.


    수용 인원과 피치·시설 규격

    현재 스타디움 MK의 정식 수용 인원은 전좌석(all-seater) 기준 약 30,500~30,700석으로 집계된다. 일부 자료에서는 30,530석이라고 표기하기도 하는데, 이는 좌석 배치 수정·라인마크·장애인석 등에 따라 소폭 변동된 수치로 이해하면 된다.

    구장은 2층 구조로 구성돼 있으며, 개장 초기에는 22,000석 수준의 하부 층만 공개되고 상부 층은 향후 수요에 따라 점진적으로 확장하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2012년경 상부 층 좌석 설치가 완료되면서 30,000석대 중반의 수용 인원을 확보했고, 이후에도 UEFA·RFU(잉글랜드 럭비협회) 등 국제 기관이 주관하는 대형 대회를 수용할 수 있는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다.

    피치(playing surface)는 11인제 축구 국제 표준 규격인 105m × 68m로 설계되어 있으며, “Desso GrassMaster”라고 알려진 하이브리드 잔디 시스템을 사용한다. 이 시스템은 자연잔디와 합성섬유를 혼합해 강한 강도와 내구성을 유지하면서도 축구 경기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 도입된 방식으로, 겨울철과 하절기의 잦은 강우에도 빠른 복구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홈팀 MK Dons와 경기 운영

    스타디움 MK의 주요 ‘앵커 테넌트(anchor tenant)’는 바로 밀턴킨스 던스(Milton Keynes Dons FC)다. 이 클럽은 위imbledon FC의 이전을 계기로 2004년에 창단된 팀으로, 2007년 새 구장 개장 이후 현재까지 이곳을 유일한 고정 홈구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MK Dons는 2020년대 기준으로 잉글랜드 풋볼 리그 시스템 내에서 리그투(League Two) 또는 리그원(League One)을 오가는 중견급 팀으로, 소위 ‘프리미어리그’에 비해 자본 규모는 작지만, 비교적 안정적인 구장 운영과 지역 커뮤니티 프로그램으로 명성이 있다. 스타디움 MK는 이러한 중위권 팀의 수요를 감안해, 정규 리그·컵 대회·유소년 경기·여자 축구 등 다양한 레벨의 경기를 수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2022년에는 UEFA 여자 유로 2022 대회에서 몇 경기를 유치하며 국제대회 무대 경험이 쌓인 바 있으며, 이는 여자축구 확산과 동시에 스타디움 MK의 국제적 위상 상승에도 기여했다.


    국제 대회와 럭비, 기타 스포츠 활용

    스타디움 MK는 ‘축구 전용’이라는 정체성이 강하지만 실제로는 국제 럭비·여자 축구·친선경기 등 다양한 종목과 형식의 대회를 유치해 왔다. 대표적으로 2015년 열린 럭비 월드컵에서는 프랑스 대 캐나다전, 피지 대 우루과이전 등이 이곳에서 개최됐고, 이때 관중 수는 28,000명 이상에 달하는 등 높은 집객력을 보였다.

    럭비 경기 유치는 스타디움 MK가 단순히 축구 클럽의 홈구장이 아니라, 영국 럭비 풋볼협회(RFU)와 잉글랜드 럭비 경기 조직에 기여하는 시설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또, 잉글랜드 U21 대표팀의 일부 친선경기나 유럽 청소년 대회 조별 경기 등이 열린 사례도 있으며, 이는 구장의 경기 조건과 접근성, 숙박·교통 인프라(예: 온사이 호텔)가 국제 수준으로 평가받았다는 의미다.


    콘서트·대형 이벤트와 다목적 기능

    스타디움 MK는 단순한 스포츠 경기장이 아니라, 콘서트·페스티벌·기업 이벤트 등 다목적 공연장으로도 운영된다. 360도 콘코스와 대형 스크린, 고성능 조명·오디오 시설, 라운지·VIP 룸 등이 갖춰져 있어, 수만 명 규모의 라이브 콘서트나 팝 페스티벌 데이투어 이벤트 등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SMK Live” 같은 뮤직·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이벤트가 1년에 여러 차례 이곳에서 열리며, 사랑받는 K‑팝·팝·힙합 아티스트들의 공연이 계획된 사례도 있다. 이는 도시 전체의 문화 인프라를 보완하고, 주말·공휴일에만 사용되는 경기장을 ‘일상적 문화 공간’으로 전환하려는 전략에 부합한다. 또한, 기업 컨퍼런스·제품 런칭·전시회 등 대형 B2B/B2C 이벤트를 유치함으로써, 연간 고정 수익원을 확보하려는 운영전략도 함께 작동한다.


    온사이트 호텔과 주변 인프라

    스타디움 MK의 또 다른 특징은 경기장 부지 내에 호텔이 직접 연결돼 있다는 점이다. 시설 확장 과정에서 스탠드 상부 및 주변 공간을 활용해 300여 개 이상의 호텔 객실을 짓고, 경기일·대형 이벤트 기간에 맞춰 패키지 숙박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이 온사이트 호텔은 팬들이 경기 전후에 바로 인근에서 머물 수 있게 해주는 편의성을 제공하며, 먼 거리에서 온 원정 팬·유럽 각지에서 온 관광객에게도 매력적인 요소가 된다. 동시에 대형 콘서트나 컨퍼런스 참가자들이 ‘경기장·콘서트홀·회의장·숙박’을 한 장소에서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경쟁력 있는 비즈니스·라이프스타일 데스티네이션으로 자리 잡으려는 전략이 드러난다.

    주변 인프라는 밀턴킨스의 교통망과도 긴밀히 연결돼 있다. 구장은 M1 고속도로 근처에 위치해 차량 접근성이 뛰어나며, 인근의 밀턴킨스 센트럴(Milton Keynes Central) 기차역을 통해 런던·리버풀·셰필드·뉴캐슬 등 영국 전역에서 접근이 가능하다. 도시 전체가 넓은 도로망과 자전거 도로를 갖춘 계획도시(Planned Town)라는 점도, 대규모 인파가 몰리는 스포츠·콘서트 이벤트에 대한 교통 혼잡 완화에 도움이 된다.


    관람 환경과 팬 경험

    스타디움 MK는 “팬 친화적(fan‑friendly)” 설계를 강조하며, 특히 좁은 통로·긴 계단·멀리 떨어진 음식·음료 판매대 같은 전통적인 축구장의 단점을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360도 콘코스는 관람석보다 높은 위치에 위치해, 팬들이 경기장을 한눈에 내려다보며 이동하면서도 경기를 놓치지 않도록 설계됐다.

    또한, 각 스탠드별로 패밀리 시트(Family Area), 장애인·동반자석, 휠체어 좌석, 청각·시각 장애인을 위한 특수 지원 시설 등을 갖추고 있어, 모든 연령층과 장애 유형을 고려한 접근성을 확보하고 있다. 팬 경험 강화를 위해 디지털·AI 기술 도입도 진행되고 있는데, 2026년 기준으로 5G와 인공지능을 활용한 실시간 팬 서비스·데이터 분석·경기장 내 와이파이 최적화 등이 테스트 또는 적용 단계라는 보도가 있다.

  • 놀라운 토요일 놀토 별빛남문시장 순대 전골 순대국 순댓국 맛집 식당

    순대 전골은 피순대와 돼지 부속, 각종 채소와 버섯, 들깨가루를 넣어 얼큰하면서도 구수하게 끓여 먹는 한국식 탕·전골 요리로, 겨울철 보양식이자 해장용 메뉴로 사랑받는 음식입니다.10000recipe+2

    순대 전골이 어떤 음식인가

    순대 전골은 기본적으로 순대국과 전골의 중간 지점에 있는 음식으로, 뜨겁게 끓이면서 먹는 ‘탕’의 속 풀리는 느낌과, 각종 채소와 사리를 더해 술안주·식사 겸용으로 즐기는 ‘전골’의 즐거움을 동시에 가진 메뉴입니다. 일반적으로 막창이나 곱창 등에 선지를 채운 피순대와 머릿고기, 오소리감투 같은 돼지 부속이 함께 들어가 국물에 특유의 진한 돼지 풍미를 더해 줍니다. 여기에 깻잎과 들깨가루를 듬뿍 넣어 돼지 특유의 잡내를 잡고, 고소하고 걸쭉한 질감을 만들어 내는 것이 특징입니다. 칼칼한 고춧가루·고추장 양념에 사골 또는 잡뼈 육수를 쓰면 해장용으로 좋을 정도로 깊고 시원한 맛이 나고, 버섯·콩나물·부추 등을 넉넉하게 더하면 한 끼 식사로도 부족함이 없는 전골이 됩니다.blog.naveryoutubesweet-cook.tistory+1youtube10000recipe

    순대와 순대 전골의 유래와 맥락

    순대 자체는 동아시아와 북방 유목 문화권에서 발달한 ‘창자 속을 채운 고기 음식’ 계열에 속하며, 국내에는 대체로 삼국 시대 중국과의 교류, 혹은 고려 말 몽골군의 침입과 함께 피순대 문화가 들어왔다는 두 가지 설이 전해집니다. ‘순대’라는 말은 만주어로 피를 뜻하는 ‘성기’와 창자를 뜻하는 ‘두하’를 합친 ‘성기 두하’에서 온 것으로 추정되며, 19세기 후반 조리서인 「시의전서」에 ‘슌대’라는 표기가 최초로 등장합니다. 이후 개성의 ‘절창’ 같은 지역 순대부터 피순대, 야채순대, 찹쌀순대 등 각 지역·상황에 맞는 다양한 형태로 발전해 왔고, 오늘날에는 분식집 길거리 음식과 순대국밥, 순대 전골처럼 ‘한 끼 식사’ 카테고리까지 폭넓게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순대 전골은 이런 순대·돼지 부속 문화를 바탕으로, 술집 안주와 식사용 탕 사이에서 ‘사골육수+칼칼한 양념+들깨’이라는 조합을 통해 전문점 스타일의 메뉴로 정착한 유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seon1982.tistory+5

    맛과 식감의 구조

    순대 전골의 맛을 이루는 핵심 축은 진한 돼지 육수의 감칠맛, 고추 양념의 칼칼함, 들깨·깻잎의 고소함과 향, 그리고 순대·부속·채소가 만들어 내는 다양한 식감의 대비입니다. 사골이나 잡뼈, 머릿고기 등을 오래 끓인 육수는 돼지고기 뼈에서 나오는 글루탐산과 내장류에서 나오는 이노신산이 어우러져 깊고 묵직한 감칠맛을 만드는데, 이는 순대국의 맛 구조와 유사하되 전골에서는 양념이 더 강해 풍미가 보다 직선적으로 다가옵니다. 양념장에는 보통 고춧가루, 고추장, 된장, 다진 마늘, 국간장 또는 진간장, 때로는 새우젓이나 액젓, 참치액 등을 섞는데, 된장이 더해지면 구수함과 함께 비릿한 향을 잡아주고, 고추장과 고춧가루는 화끈함보다는 칼칼한 향과 붉은 색감을 담당합니다. 들깨가루는 물에 풀리면서 국물에 걸쭉한 점성을 부여해 입 안에서 부드럽게 퍼지는 느낌을 주고, 깻잎과 청양고추, 대파는 상큼하고 매운 향을 더해 느끼함을 상쇄하며 입맛을 돋웁니다. 순대는 삶는 과정에서 당면이 팽창해 터지기 직전의 탱글한 식감을 주고, 머릿고기나 오소리감투 같은 부속은 오도독·쫄깃한 씹는 맛을 보태 전체적으로 식감 대비가 뚜렷한 전골이 됩니다.youtubefotomani.tistory+3youtubeblog.naver+3

    기본 재료 구성과 선택 포인트

    집에서 순대 전골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재료는 순대와 육수, 그리고 향을 담당하는 채소와 양념입니다. 순대는 선지가 들어간 피순대를 쓰면 국물에 선지 특유의 묵직한 맛이 더해져 전문점에 가까운 풍미를 낼 수 있고, 선지가 부담스럽다면 야채순대나 당면순대를 사용해 상대적으로 가볍고 깔끔한 스타일로 끓일 수 있습니다. 돼지 부속은 머릿고기, 소창, 오소리감투, 막창, 염통 등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데, 부속을 많이 넣을수록 국물은 풍부해지지만 잡내 관리가 중요해지므로, 충분한 데치기와 들깨·깻잎·된장 양념을 병행하는 것이 좋습니다. 채소는 양파, 대파, 청양고추, 깻잎, 콩나물, 느타리·팽이 등 버섯류가 기본으로 쓰이며, 부추나 미나리, 배추를 더해 시원한 향과 씹는 맛을 보강하기도 합니다. 육수는 멸치·다시마를 끓여 만드는 맑은 국물에 양념을 더하는 방식과, 시판 사골육수를 사용하는 방식 두 가지가 흔한데, 사골육수를 사용하면 집에서도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에 전문점에 가까운 깊은 맛을 구현하기 쉽습니다. 여기에 당면, 떡국 떡, 우동사리, 라면사리 등을 추가하면 ‘밥+면+떡’이 한 냄비 안에서 완성되는 일종의 일상형 퓨전 전골로 확장할 수 있습니다.food.azoomma+2youtube10000recipe+1youtubeseon1982.tistory

    집에서 만드는 순대 전골 조리 과정

    가정용 순대 전골은 크게 육수 준비, 재료 손질, 양념장 만들기, 전골 조립과 끓이기 네 단계로 나누어 생각하면 이해와 조리 모두 편합니다. 먼저 육수는 물에 멸치와 다시마를 넣어 끓여 감칠맛이 우러나면 다시마를 먼저 건져내고, 멸치를 충분히 더 끓인 뒤 건져내 맑은 육수를 준비하거나, 시판 사골육수에 물을 섞어 끓여 둡니다. 이때 대파 흰 부분과 청양고추를 함께 넣고 끓였다가 건져내면 기본 육수에도 은은한 매운 향과 단맛이 배어 순대 전골 양념과 잘 어울리는 베이스가 됩니다. 재료 손질 단계에서는 순대를 2~3cm 정도 두께로 썰어 준비하는데, 너무 얇게 썰면 끓이는 동안 터져 국물이 지저분해지고, 너무 두꺼우면 양념이 잘 배지 않으므로 적당한 두께를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머릿고기나 부속은 미리 삶아 둔 것을 쓰는 경우가 많으며, 잡내를 줄이려면 끓는 물에 한 번 데친 후 찬물에 헹구어 사용하면 좋습니다. 양념장은 된장, 고추장, 고춧가루, 다진 마늘, 국간장 또는 진간장, 맛술, 후추, 들깨가루 등을 한 데 섞어 미리 만들어 두면 전골을 끓일 때 간 맞추기가 수월하고 맛도 고루 퍼집니다. 전골냄비 바닥에는 양파와 대파, 버섯, 콩나물 등 채소를 깔고 그 위에 순대와 부속을 보기 좋게 올린 뒤, 만든 양념장을 군데군데 얹고 준비한 육수를 부어 센 불에서 끓이다가 끓기 시작하면 중불로 줄여 들깨가루와 깻잎을 넣고 한소끔 더 끓여 마무리합니다. 완성 단계에서 청양고추와 부추, 미나리 등을 올리면 향이 살아나고, 라면사리나 우동사리를 중간에 넣으면 국물 맛이 면에 스며들어 별도의 메인 요리 없이도 한 냄비로 식탁이 완성됩니다.sweet-cook.tistory+1youtube10000recipe+1youtubeseon1982.tistory+1

    전문점 스타일로 응용하는 팁

    집에서 전문점 수준에 가까운 순대 전골을 구현하려면 육수의 밀도와 양념의 구조, 들깨·선지의 비율 조절을 신경 쓰는 것이 좋습니다. 먼저 육수는 사골육수만 사용하는 것보다 사골육수와 멸치·다시마 육수를 섞어 쓰면, 뼈에서 나오는 묵직한 맛과 해산물·채소에서 나오는 시원한 맛이 동시에 살아나 보다 입체적인 국물이 됩니다. 양념은 고춧가루 비율을 높여 색과 향을 강조하고, 고추장은 과하지 않게 써서 단맛이 지나치게 올라오지 않도록 조정하면 술안주용으로 어울리는 ‘칼칼하지만 무겁지 않은’ 맛에 가깝게 조율할 수 있습니다. 들깨가루는 끓이는 과정 초반에 일부를 넣어 국물에 충분히 풀리게 하고, 마지막에 다시 한 번 추가해 표면에 살짝 뜨도록 하면, 국물이 너무 묽지 않으면서도 입에 닿는 순간 들깨 향이 살아있는 구조를 만들 수 있습니다. 순대는 피순대와 야채순대를 반반 섞거나, 피순대를 기본으로 하되 일부는 당면순대를 섞는 식으로 여러 종류를 섞어 쓰면 한 냄비 안에서 서로 다른 식감과 맛을 즐길 수 있고, 머릿고기·오소리감투·막창 같은 부속을 조금씩 섞으면 한층 전문점에 가까운 느낌을 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순대가 너무 오래 끓어 터지지 않도록 처음부터 전량을 넣기보다 일부는 먼저 넣고, 나머지는 중간에 추가로 넣어 ‘갓 끓인 순대’ 식감을 유지하는 것도 집에서 시도해볼 만한 디테일입니다.fotomani.tistory+2youtube10000recipe+1youtubeseon1982.tistory+1

  • 놀라운 토요일 놀토 서울 별빛남문시장 나폴리탄 스파게티 파스타 맛집 식당

    나폴리탄 스파게티는 이름 때문에 이탈리아 남부 항구 도시 ‘나폴리’를 떠올리게 되지만, 실제로는 전후 일본에서 탄생한 대표적인 요쇼쿠(洋食, 서양풍 일본식 요리) 케첩 파스타다. 토마토소스 대신 토마토 케첩을 듬뿍 사용하고, 햄·소시지·피망·양파 등을 볶아 만든 달콤하고 구수한 맛이 특징으로, 지금은 일본 가정식과 다이닝, 커피숍 메뉴의 상징 같은 존재가 되었다.

    이름과 개념, 이탈리아의 ‘나폴레타나’와의 차이

    ‘나폴리탄(Napolitan)’이라는 말 자체는 영어로 ‘나폴리풍, 나폴리식’을 뜻하며, 본래 유럽에서 토마토 소스를 곁들인 파스타를 나폴리풍이라 부르던 데서 유래했다.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실제로 먹는 것은 스파게티 알라 나폴레타나(Spaghetti alla Napoletana)로, 잘 익힌 토마토를 베이스로 만든 본격 토마토 소스 파스타이지 케첩 파스타가 아니다.

    반면 일본식 나폴리탄 스파게티는 공장제 토마토 케첩을 소스의 중심에 두고, 때로는 그에 약간의 토마토 소스나 버터, 간장, 우유, 설탕 등을 보조적으로 섞어 감칠맛을 끌어올리는 요리다. 이탈리아의 나폴레타나가 토마토 본연의 산미와 허브 향을 살린 소스 파스타라면, 일본의 나폴리탄은 케첩의 단맛·산미·인위적 감칠맛을 활용한 볶음 파스타라는 점에서 개념이 분명히 다르다. 그래서 일본 방송에서는 실제 나폴리 사람들에게 나폴리탄을 먹여 보고 “나폴리에는 이런 파스타가 없다”는 반응을 담은 기획도 제작된 바 있다.

    전후 일본, 요코하마와 미군, 그리고 호텔 뉴 그랜드

    Napoli spaghetti with sausage

    Napoli spaghetti with sausage 

    나폴리탄 스파게티의 탄생 배경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연합군 주둔 시기의 일본, 특히 항구 도시 요코하마의 상황과 밀접하게 얽혀 있다. 요코하마의 고급 호텔인 ‘호텔 뉴 그랜드(Hotel New Grand)’는 전후 한동안 연합군에 의해 징발되었고, 이곳 주방에는 미국에서 들여온 케첩, 통조림 햄·소시지, 통조림 야채 등이 대량으로 유입됐다.

    당시 호텔 셰프 이리에(이루이) 등이 미군이 케첩을 뿌려 먹는 마카로니와 파스타 요리를 보고 이를 일본인의 입맛에 맞게 재해석한 것이 오늘날 나폴리탄의 직접적인 출발점으로 알려져 있다. 삶은 스파게티에 소금과 후추, 토마토 케첩을 섞어 먹던 미군의 단순한 ‘밥반찬’을, 일본 측 셰프가 신선한 양파·피망·햄을 볶고 케첩을 가열해 소스화한 뒤 면과 함께 볶아낸 완성된 한 접시 요리로 승화시킨 셈이다.

    이 호텔 뉴 그랜드는 지금도 “나폴리탄 파스타의 발상지”를 자처하며, 당시 방식을 계승한 자가제 토마토 소스형 나폴리탄을 대표 메뉴로 내세우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붉게 코팅된 케첩 볶음 파스타’와 달리, 뉴 그랜드식 나폴리탄은 케첩의 영향을 받았지만 케첩이 아닌 별도 토마토 소스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이후 대중에게 널리 퍼진 케첩 직사용 스타일과는 결이 조금 다르다는 것이다.

    일본식 케첩 파스타로의 정착 과정

    나폴리탄이 일본 전역에 퍼지는 과정에서는 순수 호텔 스타일을 그대로 복제하기보다, 더 값싸고 간편한 ‘케첩 볶음’ 형태가 주류를 이루었다. 전후 물자 부족 상황에서 생토마토나 진짜 토마토소스를 충분히 쓰기 어려웠던 현실, 그리고 케첩이 싸고 보존성이 뛰어난 대량생산품이었다는 점이 맞물리며, 케첩은 곧 서민용 파스타 소스로 자리 잡았다.

    이렇게 탄생한 나폴리탄 스파게티는 일본의 커피숍(키사텐)과 대중 레스토랑의 대표 메뉴가 되었고, 요쇼쿠 문화의 중심 메뉴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일본 파스타 협회가 제시하는 레시피에서도 ‘나폴리탄’은 토마토 케첩을 베이스로 한 간단한 볶음 스파게티로 정의되며, 특정 고급 레스토랑의 전유물이 아니라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소박한 파스타로 규정된다. 지금은 편의점에서도 ‘소시지 듬뿍 나폴리탄’ 같은 상품이 출시될 정도로 완전히 대중적인 일상 음식이 되었다.

    기본 재료 구성과 맛의 구조

    Japanese Neapolitan Spaghetti

    Japanese Neapolitan Spaghetti 

    나폴리탄 스파게티의 재료 구성을 보면, 일본식 요쇼쿠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 기본적으로 스파게티 면, 양파, 피망(특히 초록 피망), 햄이나 베이컨·소시지, 양송이 등 서양풍 재료가 쓰이지만, 조리법과 간은 일본인 입맛에 맞게 조정되어 있다.

    먼저 면은 보통 1.7~2.0mm 정도의 스파게티를 쓰지만, 일본에서는 2.2mm급의 굵은 면을 쓰는 걸 정석처럼 여기는 곳도 있다. 굵은 면은 케첩 소스의 강한 맛과 잘 어울리고, 식감이 쫄깃해 ‘볶음 면’의 느낌을 강조하는 데 유리하다.

    채소는 양파와 피망이 핵심인데, 양파는 달큰한 향과 단맛을, 피망은 특유의 쌉싸름하고 풋풋한 향을 더해 케첩의 단맛과 산미를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여기에 양송이나 통조림 머시룸을 넣으면 식감과 향이 살짝 더해지고, 햄·소시지·베이컨은 소금기와 육향, 지방의 고소함을 공급한다.

    소스는 토마토 케첩이 중심이고, 여기에 토마토소스를 섞어 새콤함과 농도를 조절하거나, 간장·우유·설탕 등을 더해 감칠맛과 부드러움을 조정하는 경우가 많다. 버터를 마지막에 넣어 마무리하면 케첩의 인위적인 맛이 부드러워지고, 전체적으로 고소하면서도 ‘레스토랑 햄버그 정식’ 같은 향이 나 일본식 양식의 분위기가 더욱 살아난다.

    맛의 구조는 기본적으로 달콤·새콤한 케첩의 맛, 볶은 양파와 햄에서 나오는 구수함, 피망과 후추의 향, 그리고 버터와 치즈의 고소함이 중첩되는 방식이다. 이 때문에 어린아이에게는 친숙하고 달콤한 파스타로, 어른에게는 ‘어릴 적 다이닝에서 먹던 맛’을 떠올리게 하는 노스탤지어의 요리로 소비된다.

    대표적인 나폴리탄 레시피, 조리법의 흐름

    일본 파스타 협회나 각종 레시피 사이트, 브런치 글 등을 종합하면, 전형적인 나폴리탄 스파게티 레시피의 큰 흐름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먼저 재료 준비 단계에서는 양파와 피망을 채 썰고, 마늘이 들어가는 레시피라면 마늘을 편으로 썬다. 햄이나 소시지는 두껍게 썰거나 소시지에 칼집을 내주고, 양송이나 머시룸이 있다면 얇게 썰어 둔다. 소스용으로는 케첩을 기본으로, 간장·우유·설탕·돈가스 소스·치킨스톡 등 레시피에 따라 필요한 재료를 미리 계량해 섞어 두면 조리 중에 편하다.

    면 삶기는 보통 소금(물 1리터 기준 1큰술 정도)을 넣은 끓는 물에 스파게티를 넣고 포장지 표기 시간보다 1분 정도 덜 삶는 방식이 많이 쓰인다. 나폴리탄은 면을 다시 팬에서 볶기 때문에, 알덴테보다 살짝 단단한 정도로 삶아두면 볶는 동안 익으면서 적당한 식감이 된다. 면을 건져낸 뒤에는 약간의 올리브유를 뿌려 가볍게 버무려 면끼리 들러붙지 않게 해두기도 한다.

    팬 조리 단계에서는 먼저 기름(올리브유 또는 식용유)을 두르고, 마늘이 있을 경우 마늘을 먼저 약불에서 천천히 볶아 향을 낸다. 그다음 양파, 햄·소시지, 양송이, 피망 순으로 넣거나, 피망은 식감을 살리기 위해 마지막 단계에 넣어서 살짝만 볶는 레시피가 많다. 이때 소금, 후추로 가볍게 밑간을 해 두면 재료에서 나오는 수분과 함께 맛이 배어든다.

    케첩 처리 방식은 레시피마다 차이가 있는데, 팬 가장자리나 별도 팬/그릇에 케첩을 ‘한 번 볶아서’ 사용하면 시판 케첩 특유의 날맛과 신맛이 줄고 향이 깊어진다는 팁이 자주 등장한다. 어떤 레시피는 케첩, 간장, 우유, 설탕을 미리 섞어 소스화한 뒤 볶은 재료에 부어 졸이듯 가열하여 농도를 맞춘다. 일본식 가정 레시피에서는 돈가스 소스나 우스터 소스를 한 작은술 정도 넣어 깊은 감칠맛과 카라멜라이즈된 풍미를 추가하기도 한다.

    이후 삶은 스파게티 면을 팬에 넣어 재료와 함께 볶으면서 소스가 면에 골고루 코팅되도록 잘 섞어준다. 농도가 너무 되직하면 면수나 물을 약간 넣어 조절하고, 맛을 보면서 소금·후추로 최종 간을 맞춘 후, 마지막에 버터를 한 조각 넣어 녹여주면 풍미가마무리된다. 접시에 담아 파마산 치즈 가루와 파슬리를 뿌려 내면 가장 전형적인 나폴리탄 스파게티의 완성이다.

    레시피 요소 비교

    요소전형적 나폴리탄 레시피 특징
    1.7~2.2mm 스파게티, 살짝 덜 삶기
    기본 채소양파, 피망, 양송이 또는 머시룸
    육류 재료햄, 베이컨, 비엔나 소시지 등 가공육
    소스 베이스토마토 케첩, 때로 토마토소스 병행
    감칠맛 첨가간장, 돈가스 소스, 치킨스톡, 설탕 소량
    풍미 마무리버터, 파마산 치즈, 파슬리
    조리 스타일재료 볶기 → 케첩(소스) 가열 → 면과 함께 볶기

    변주와 현대적 재해석, 문화적 의미

    나폴리탄 스파게티는 그 자체로도 완성된 요리지만, 일본식 퓨전의 상징답게 수많은 변주 버전이 존재한다. 우선 토핑 측면에서는 반숙 계란을 올려 노른자를 터뜨려 비벼 먹는 버전, 치즈를 듬뿍 얹어 그라탱처럼 구워내는 버전, 핫도그용 굵은 소시지나 다양한 야채를 추가한 풍성한 버전 등이 있다.

    소스 조합도 꾸준히 실험되고 있는데, 케첩과 시판 토마토 소스를 1:2 정도 비율로 섞어 케첩의 강한 인상을 줄이고, 여기에 생토마토나 방울토마토를 볶아 넣어 신선한 산미를 더하는 레시피가 인기다. 다른 레시피에서는 우유나 생크림을 조금 넣어 케첩 소스를 크리미하게 바꾸고, 고추기름이나 페페론치노를 넣어 매운맛을 강조하는 형태도 나타난다.

    또한 나폴리탄은 파스타를 넘어 도시락, 편의점 즉석식, 냉동식품 등으로도 확산되었다. 편의점에서는 ‘고독한 미식가’ 영화와의 콜라보 제품처럼, 소시지를 잔뜩 올린 나폴리탄을 간편식으로 내놓으며 일본식 B급 미식 문화와 대중문화 이미지를 함께 소비하게 만든다.

    문화적 의미 측면에서 보면, 나폴리탄 스파게티는 일본이 서구 음식 문화를 자기화하는 과정에서 만들어낸 대표적인 하이브리드 산물이다. 이탈리아 나폴리의 전통과 미국식 가공식품(케첩)이 일본 전후 사회의 맥락 속에서 만나, 일본인의 입맛과 생활 리듬에 맞는 새로운 양식 메뉴로 재구성된 사례인 것이다. 이 때문에 일본 국내에서는 ‘정통 이탈리안’이라기보다, 쇼와 시대 키사텐 문화와 함께 기억되는 향수어린 요리로서의 상징성을 갖고 있다.

  • 놀면 뭐하니 먹빼 모임 칼국수 수제비 식당

    놀면 뭐하니?》는 유재석을 중심으로 ‘쉬는 날에 뭐라도 해보자’는 발상에서 출발해, 부캐·프로젝트·멤버십 체제까지 진화해 온 MBC 대표 주말 예능이다. 2019년 첫 방송 이후 한국 예능의 포맷 실험실 역할을 하며, 성공과 부침을 동시에 경험한 장수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프로그램 개요와 기획 의도

    《놀면 뭐하니?》는 2019년 7월 27일 파일럿과 뒤이은 정규 편성을 통해 안착한 MBC 토요일 저녁 예능으로, 현재도 토요일 저녁 시간대에 방송되고 있다. 제목은 일상에서 흔히 쓰는 “놀면 뭐하니, 그럴 시간에 뭐라도 해보지”라는 말에서 따왔고, ‘잃을 건 없으니 노느니 차라리 해보자’는 가벼운 도전 정신을 예능 콘셉트로 끌어올렸다. 초기 기획은 유재석의 ‘쉬는 날’을 관찰하면서, 작은 아이디어를 릴레이처럼 여러 사람에게 넘기고 확장해 가는 구조를 통해 새로운 콘텐트를 발굴하는 것이었다.

    프로그램의 기본 철학은 ‘유재석 1인의 시간을 다양한 사람들과 연결해 새로운 서사를 만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카메라 릴레이, 부캐 육성, 프로젝트 그룹 결성, 음악·예능 콜라보 등 한 시즌 내에서도 다양한 형식이 시도되었고, 이 과정에서 기존 방송에서 보기 어려웠던 인물이나 포맷들이 대거 등장했다.

    1인 체제와 부캐 프로젝트의 전성기

    시작 당시 《놀면 뭐하니?》는 유재석 단독 출연 체제에서 출발해, ‘유재석을 따라다니는 카메라를 다음 사람에게 릴레이로 넘긴다’는 콘셉트로 눈길을 끌었다. 제작진은 사전 회의에서 “작은 부분에서 시작해 다른 사람들과 릴레이 형식 콜라보를 하며 확장한다”는 기획 의도를 공유했고, 이 아이디어가 카메라 릴레이, 유플래시, 뽕포유로 이어지며 프로그램 대표 색깔을 만들었다.

    초기 전성기를 견인한 건 무엇보다 ‘부캐 세계관’이다. 유재석이 유산슬(트로트 가수), 유두래곤(댄스 가수), 유야호(프로듀서) 등 다수의 부캐를 연달아 선보이며, 음악·예능 프로젝트를 결합한 새로운 포맷을 제시했다. 이 부캐들은 곧 실제 프로젝트 그룹으로 확장되었고, 싹쓰리, 환불원정대, MSG 워너비, WSG 워너비 같은 팀이 음원 차트와 지상파 음악방송까지 장악하면서, 예능과 가요계를 가로지르는 화제성을 만들어냈다.

    이 시기 《놀면 뭐하니?》는 단순 관찰 예능을 넘어, 예능 프로그램이 음원과 공연, 캐릭터 IP를 종합적으로 기획·운영하는 플랫폼 역할을 한 셈이다. 특히 싹쓰리·환불원정대 프로젝트는 「무한도전」의 향수를 자극하면서도, 그보다 더 짧고 집중된 프로젝트 구조로 소비 패턴 변화에 적응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제작진 교체와 멤버십 예능으로의 전환

    그러나 2021년, 초창기 기획을 주도했던 김태호 PD가 퇴사로 하차하면서 프로그램은 큰 변곡점을 맞는다. 김태호 PD 시절 《놀면 뭐하니?》는 유재석 중심의 실험적인 1인 체제와 프로젝트 예능의 성격이 강했지만, 이후 제작진 교체와 함께 포맷 역시 점차 ‘고정 멤버 시스템’에 가까운 방향으로 이동했다.

    정준하, 하하, 신봉선, 이미주가 합류하면서 ‘유재석 혼자 놀던 프로그램’에서 5인 체제의 멤버십 버라이어티로 변신했고, JMT(무한상사 세계관을 잇는 직장 코미디), 각종 특집 미션, 단체 여행 및 상황극 형태의 에피소드가 강화됐다. 이 변화는 「무한도전」을 연상시키는 세계관과 멤버 구성을 통해 친숙함을 주었지만, 동시에 “처음의 실험성과는 거리가 멀어졌다”는 시청자 평가도 낳았다.

    멤버십 체제 전환은 안정적인 웃음과 캐릭터 관계성을 확보하는 데 유리했지만, ‘부캐·릴레이·프로젝트’라는 《놀면 뭐하니?》만의 독자 정체성을 희석시키는 결과도 가져왔다. 특히 음악 프로젝트 이후 그만한 임팩트를 가진 새 포맷이 이어지지 못하면서, 과거의 영광과 비교되는 보도·평론이 점차 늘었다.

    2025년 이후: 멤버 재편과 코너 다변화

    시청률 정체와 화제성 감소 속에서, 제작진은 2020년대 중반에 들어서며 멤버와 포맷을 잇따라 손질했다. 2025년에는 고정 멤버로 활약하던 박진주·이미주가 동시에 하차하고, 유재석·하하·주우재·이이경 4인 체제로 개편하는 강수를 두었다. 이는 프로그램 시작 이후 네 번째 수준의 큰 출연진 변화로, 특히 여성 출연자만 빠진 구성이라는 점에서 여러 해석과 비판을 불러왔다.

    동시에 프로그램은 연간 단위로 다양한 코너를 시도하며 활로를 모색했다. 2025년 방영분을 정리한 기록을 보면, ‘겨·일·식·날·양·착·배·인·가’와 같이 한 글자 제목의 코너들이 회차별로 배치돼 있고, 설 연휴 특집, 직업 체험, 양심 냉장고, 소액 미션, 음악 프로젝트까지 다양한 형식이 교차한다. 예를 들어 설 특집인 「설에도 일하는 사람들」에서는 멤버들이 고속도로 안전 순찰, 톨게이트 현장 등을 체험하며 시청자에게 ‘명절에도 일하는 사람들’을 조명하는 콘셉트를 선보였다.

    또한 2025년에는 베테랑 예능인 이경규와 함께하는 ‘양심 냉장고’ 콘셉트의 특집이 부활하는 등, 기존 인기 예능 포맷과의 콜라보도 시도되었다. 한편 ‘만 원으로 뭐하니?’ 같은 기획에서는 적은 예산을 가지고 하루를 보내거나 미션을 수행하는 게임 요소를 강조하며 예능적 재미를 강화했고, 이는 초창기 ‘노는 김에 뭐라도 해보자’는 프로그램 타이틀 정신과도 다시 연결되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최근 화제 코너: ‘인사모’와 80s 서울가요제

    2025년 후반부 《놀면 뭐하니?》에서 특히 눈에 띄는 건 ‘인기 없는 사람들의 모임(인사모)’과 ‘80s MBC 서울가요제’ 프로젝트다. ‘인사모’는 하하가 “인기 없는 사람들의 모임을 만들자”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해, 개그맨 허경환, DJ 투컷, 감독 장항준 등 스스로를 ‘인기 없다’고 자조하는 인물들을 모아 팬미팅을 목표로 활동하는 콘셉트로 진행됐다. 여러 회차에 걸쳐 모임 결성, 콘텐츠 제작, 팬미팅 준비와 실제 팬미팅까지 서사를 축적해 가면서, 자존감·관계성·팬덤 문화를 예능적으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80s MBC 서울가요제’는 1980년대 가요제 분위기를 재현하는 음악 프로젝트로, 유재석·하하가 주축이 돼 참가자를 모집하고, 예선과 선곡, 본선까지 이어지는 과정을 예능으로 구성했다. 진성 등 트로트·대중가요 가수들이 출연해 80년대 감성의 무대를 선보이고, 최종 합격자 15인을 공개하는 등 실제 음악 경연 형식을 가진 점에서 예전 프로젝트들의 ‘가요계 접수’ 기조를 잇는 성격이 강했다.

    이 두 프로젝트는 1인 체제 시절의 프로젝트 예능 DNA와, 현재 멤버십 구조의 단체 예능 포맷이 절충된 형태로 볼 수 있다. 개별 인물의 사연과 캐릭터를 중심에 두되, 이를 하나의 기획(팬미팅, 가요제)으로 묶어 다회차 서사를 만들었다는 점에서다. 이처럼 《놀면 뭐하니?》는 여전히 프로젝트형 콘텐트를 포기하지 않고, 시대 감성과 출연진 조합에 맞는 변주를 시도하는 중이라고 할 수 있다.

    평가와 향후 과제

    《놀면 뭐하니?》는 초창기 유재석 1인 체제와 부캐 프로젝트로 신선한 충격을 주며 한국 예능의 새로운 모델로 떠올랐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신선함과 진부함 사이’에 놓였다는 평가를 반복적으로 받았다. 「무한도전」 제작진과 유재석의 재결합이라는 상징성 덕분에 시작부터 높은 기대를 받았고, 실제로 여러 프로젝트가 음원 차트·대중 담론을 장악했으나, 그만큼 이후 시기에는 과거의 성공과 끊임없이 비교되는 부담을 안게 됐다.

    김태호 PD 하차 이후 제작진과 포맷이 잦게 바뀌고, 멤버 재편이 반복되면서 ‘정체성이 흔들린다’는 비판도 꾸준히 제기됐다. 특히 2025년 여성 출연자 2인 동시 하차 후 4인 체제 개편은, 시청률 회복이라는 현실적인 이유에도 불구하고 ‘단기 처방’에 가깝고 프로그램의 근본 경쟁력을 복원하기엔 미지수라는 분석이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면 뭐하니?》는 여전히 토요일 저녁 지상파 예능 슬롯을 지키고 있으며, 매년 새로운 코너와 프로젝트를 통해 활로를 찾고 있다. 2019년 이후 꾸준히 예능 인재를 발굴하고, 예능·음악·시사·다큐멘터리 요소를 넘나드는 혼합 장르를 시도해 왔다는 점에서, 한국 예능 제작 환경 안에서 하나의 실험 플랫폼이자 브랜드로 자리 잡은 것만은 분명하다. 향후에는 초창기 기획 의도였던 ‘작은 아이디어를 릴레이로 확장한다’는 정신을 어떻게 지금의 멤버 구도·시대 감각과 접목할지, 또 ‘프로젝트 예능’의 새 버전을 어디까지 진화시킬지가 관건으로 보인다.

  • 한국계 최초 나사 우주 비행사 조니킴

    조니 킴(Jonny Kim)은 미 해군 네이비실 요원, 하버드의대 출신 의사, 그리고 나사(NASA)의 한국계 최초 우주비행사로, 2025년 국제우주정거장(ISS) 임무를 수행하며 실제로 우주에 나간 인물이다.

    성장 배경과 가정사

    조니 킴은 1984년 2월 5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한국인 이민자 가정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부모는 미국 이민 1세대로, 로스앤젤레스 코리아타운 인근에서 생활하며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환경 속에서도 교육과 근면을 강조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학창 시절 내성적이고 자신감이 많지 않은 청소년이었고, 학교에서 특별히 두각을 나타내는 ‘천재형’ 인물도 아니었다고 여러 인터뷰에서 회상했다. 다만, 가정 형편과 이민 2세로서의 정체성 속에서 “스스로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다”는 욕망이 강했고, 그것이 훗날 군 입대와 의대 진학, 나사 지원으로 이어지는 내적 동력이 됐다.

    그의 부모는 장시간 일하며 가족을 부양했고, 어린 조니는 부모 세대가 겪었던 이민자의 고단함을 보면서 ‘희생’과 ‘책임’의 가치를 체득했다고 한다. 그는 훗날 “내가 하고 싶은 일”과 “다른 사람을 돕는 일”이 겹치는 지점을 평생의 진로로 삼게 되는데, 이때의 경험이 크게 작용했다고 여러 차례 언급했다.

    해군 입대와 네이비실 시절

    조니 킴은 18세가 되던 2002년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미 해군에 자원입대했다. 그는 자신감이 부족하고 진로에 대한 뚜렷한 그림이 없던 자신을 바꾸기 위해, 가장 극한의 환경에서 사람을 지키는 역할을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특수부대 네이비실(US Navy SEAL)에 도전했다. 네이비실 훈련은 혹독하기로 악명이 높고, 지원자의 상당수가 중도 탈락하지만 그는 이 과정을 통과해 정예 대원으로 선발됐다.

    훈련을 마친 뒤 그는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에 주둔한 실 팀 3(Seal Team THREE) 찰리 소대에 배치되었다. 여기서 그는 특수전 전투의무병(Special Operations Combat Medic), 저격수(sniper), 항법사(navigator), 선두수(point man)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했다. 군 생활 동안 그는 이라크 자유작전(Operation Iraqi Freedom)을 지원하기 위해 두 차례 파병되었고, 100회가 넘는 전투 작전에 참가했다.

    그는 전투 현장에서 동료를 잃는 비극을 여러 차례 경험했고, 이 과정에서 “더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싶다”는 갈망이 강해졌다. 실제로 그는 전장에서 부상병을 살리기 위해 응급처치를 수행하며, 의학 지식의 한계를 절감했다고 회고했다. 이런 경험이 훗날 그가 의사의 길을 선택한 직접적인 계기가 된다.

    조니 킴은 전투 공로를 인정받아 실버스타(Silver Star), 브론즈스타(Bronze Star with Combat “V”) 등 고위 훈장과 여러 군 복무상을 수여받았다. 단순히 “강인한 전사”에 그치지 않고, 위기 상황에서 침착하게 팀을 보호하는 리더십과 책임감이 특출났던 것으로 평가된다.

    학업 도전: 수학 학사와 하버드 의대

    조니 킴은 군 복무 중 장기적인 진로를 고민하며, 해군의 병사-장교 전환 프로그램(enlisted-to-officer program)을 통해 대학 진학을 결심했다. 그는 현역 신분을 유지한 채 학업을 병행했고, 결국 샌디에이고 대학(University of San Diego)에서 수학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수학을 전공으로 선택한 것은 논리적 사고와 문제 해결 능력을 극대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대학 시절 그는 네이비실에서 체득한 자기관리 습관을 학업에 그대로 적용했다. 철저한 시간관리, 체력 관리, 목표를 작은 단계로 쪼개 성취하는 방식은 그가 뒤늦게 학문 세계에 뛰어들고도 우수한 성과를 내는 기반이 되었다. 이러한 노력 끝에 그는 미국 최고의 의과대학 중 하나인 하버드 의과대학(Harvard Medical School)에 합격한다.

    하버드 의대에서 그는 의학박사(MD) 과정을 밟으며, 특히 응급의학(Emergency Medicine)에 관심을 두었다. 전장에서의 경험으로, 한정된 시간과 자원 속에서 생사를 가르는 결정을 내려야 하는 응급의학이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분야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의대 졸업 후 그는 매사추세츠종합병원(Massachusetts General Hospital)과 브리검여성병원(Brigham and Women’s Hospital)이 공동 운영하는 하버드 소속 응급의학 레지던시 프로그램에서 인턴·전공의 과정을 시작했다.

    의사로서의 그는 중환자 치료와 응급실 진료를 담당하며, 환자의 상태를 빠르게 파악하고 우선순위를 정해 치료를 시행하는 능력을 갈고 닦았다. 전장에서 전우를 살리려 했던 마음은 응급실에서 환자의 생명을 지키는 전문성으로 확장되었고, 그는 의료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해 나갔다.

    나사 지원과 우주비행사 선발

    조니 킴이 우주비행사를 진지하게 고려하게 된 계기는 하버드에서 응급의학 수련을 받던 시기였다. 이때 그는 우연히 과거 우주비행사이자 의사·물리학자로 활동했던 스콧 퍼래진스키(Scott Parazynski)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퍼래진스키는 우주비행사로서의 경험과, 과학·의학·탐험이 어떻게 결합되는지를 들려주었고, 이는 조니 킴에게 강렬한 영감을 주었다.

    그는 “더 큰 차원에서 인류에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자신의 군 경력·의학 지식·공학적 소양이 우주 탐사라는 분야에서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후 그는 나사의 우주비행사 선발 공고를 접하고 지원을 결심한다.

    2017년, 나사는 전 세계 수천 명의 지원자 가운데 극소수만을 선발하는 우주비행사 후보자(Astronaut Candidate) 선발 결과를 발표한다. 이때 조니 킴은 한국계 미국인으로서는 최초로 NASA 소속 우주비행사 단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그는 현역 해군 장교(계급: 중령급에 해당하는 Lieutenant Commander) 신분을 유지한 채 나사에 파견되는 형식으로, 군과 우주 기관 양쪽에서 활동하는 독특한 커리어를 이어가게 되었다.

  • 이승희 약사 프로필

    이승희 약사는 ‘천사약국’이라는 브랜드와 함께 약사, 경영자, 방송인, 대한약사회 홍보위원이라는 여러 얼굴을 가진 인물로, 20대 중반에 강남구 최연소 개국약사 타이틀을 얻으며 주목받기 시작했다.pharm21+2

    기본 프로필과 약사 커리어

    이승희 약사는 중앙대학교 약학대학 98학번으로, 약대를 졸업한 뒤 외국계 제약사인 얀센(Janssen)에 영업사원으로 입사하며 처음에는 회사원으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어린 시절에는 수학자를 꿈꿨지만, 부모의 현실적인 조언과 진로 고민 끝에 약대를 선택한 케이스로 알려져 있다. 얀센 재직 당시에는 의대 교수들을 상대로 한 영업에서 두드러진 실적을 올렸고, 자신의 얼굴이 인쇄된 쇼핑백을 제작해 맞춤 음료를 매일 들고 찾아가는 등 상당히 공격적이면서도 전략적인 영업 스타일을 보여줬다는 일화가 전해진다.tikitaka.co+3

    제약사에서 약 1년가량 영업을 경험한 뒤, 그는 언론사 시험(언론고시)에 도전하며 전혀 다른 커리어를 모색하기도 했다. 실제로 언론사 최종면접까지 올라갔을 정도로 언론 분야에 대한 관심과 역량을 보여줬지만, 같은 시기 강남 일원동에 약국 자리가 났고 “약국 자리는 한 번 놓치면 1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생각에, 최종면접을 포기하고 개국을 선택했다는 결정적 장면이 여러 기사에서 반복해서 소개된다.naver+2

    이 선택의 결과로 그는 만 24세에 강남구 일원동에서 ‘천사약국’을 열었고, 당시 강남구 최연소 개국약사라는 이력을 얻으며 이슈가 됐다. 약국은 서울 강남 일대, 특히 일원역과 삼성서울병원 인근 상권을 기반으로 성장했고, 개국 후 10년이 채 안 되는 기간에 다수의 약사를 포함한 두 자릿수 인원이 근무하는 대형 약국으로 규모를 키웠다.byhosu.tistory+4

    천사약국: 조직과 경영 철학

    천사약국은 강남구 일원동에 위치한 약국으로, 개국 후 시간이 흐르며 단순 ‘동네 약국’의 범위를 넘어서는 매출과 인력 규모를 갖춘 약국으로 성장했다. 기사와 블로그에 따르면, 개국 10년이 채 되기 전에 풀타임 약사 4명, 파트타임 약사 2명, 기타 스태프를 포함해 총 13명에 이르는 직원이 근무하는 약국으로 성장했고, 최근에는 약국 매출이 연 100억 원을 훌쩍 넘는 수준에 도달했다는 서술도 등장한다. 한 블로그에서는 연 매출 약 165억 원 규모의 약국으로 소개하며 ‘이건 거의 중견기업 수준의 약국’이라는 표현까지 덧붙이고 있다.ordinary-disaster.tistory+3

    이승희 약사는 약국 경영의 핵심으로 ‘직원 관리’를 가장 먼저 꼽는다. 그는 “약국 직원 관리가 약국 경영의 첫걸음”이라는 말을 여러 인터뷰에서 반복하며, 약국이 힘들어졌다고 해서 직원 처우를 후순위로 돌리는 관행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고 밝힌다. 실제로 천사약국에서는 반차·월차를 기본적으로 보장하고, 유급 출산휴가 등 복지 제도를 적극적으로 운영함으로써 직원들이 장기 근속하는 문화를 만들었다는 내용이 전해진다.clien+3

    이승희 약사는 다른 약국에서 일하다 온 직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전 근무지에서 형편없는 대우를 받은 경험이 많다는 점에 놀랐다고 말한다. 그는 약국이 예전보다 수익 구조가 어려워졌다는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그럴수록 직원 복지와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한다. 이러한 철학 덕분에 천사약국은 직원 이직률이 낮고, 적지 않은 수의 인원이 오랜 기간 함께 일하는 조직으로 자리잡았다는 평가를 받는다.clien+3

    또한 그는 약국 직원의 스케줄을 ‘순환 근무제’로 운영하는 것과 관련해 인건비 부담이 커지는 현실을 언급하면서도, 열악한 근무 환경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구조를 바꿔야 약국 업계 전체가 지속가능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약사들이 경영과 직원 관리에 소홀한 경우가 많다는 점을 꼬집으면서, 전문직이자 사업가로서 경영 마인드를 갖춰야 한다는 메시지를 덧붙이기도 했다.naver+2

    올리브영 가맹과 다각화된 사업

    천사약국 외에도 이승희 약사는 국내 대표 헬스&뷰티 스토어인 올리브영의 가맹점(초기 1호 가맹점) 운영을 5년 이상 이어오며 사업 영역을 다각화해 왔다. 처음 올리브영이 해당 지점을 직영 형태로 운영하던 시절, 가맹점 체제로 전환되면서 그가 이를 인수해 가맹 형태로 운영하게 됐다는 설명이 기사에 등장한다. 약국과 드럭스토어를 동시에 운영하는 구조는 의약품과 뷰티·헬스케어 상품을 함께 다루면서 시너지를 내는 모델로, 강남 상권 특성에도 잘 맞아 떨어지는 전략으로 평가된다.naver+2

    이승희 약사는 올리브영 가맹 운영 역시 ‘직원 관리’와 ‘현장 중심의 세세한 경영’을 강조한다. 그는 가맹점의 경우 제품·영업·직원 관리 등 대부분을 가맹주가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부담이 크지만, 직원 관리만 제대로 된다면 크게 힘든 점은 없다고 말한다. 이는 약국 경영에서 강조하던 철학이 뷰티·헬스 스토어 운영으로 확장된 사례로 볼 수 있다.naver+1

    사업 구조 측면에서 보면, 이승희 약사는 전통적 약국 비즈니스에 머무르지 않고, H&B 스토어, 유튜브·방송 활동을 결합한 일종의 ‘퍼스널 브랜드+헬스케어 리테일’ 모델을 구축하고 있다. 이런 경영·브랜딩 방식은 의료인·약사가 단순 처방조제 역할을 넘어, 소비자와 직접 소통하며 건강 정보를 전달하고, 동시에 리테일 비즈니스를 확대하는 최근 흐름과 맞닿아 있다.youtubeyoutube+1

    방송·유튜브 활동과 공적 마스크 브이로그

    이승희 약사는 방송 출연과 유튜브, 각종 온라인 콘텐츠를 통해 대중에게 이름을 알린 ‘스타 약사’이기도 하다. 팟캐스트·유튜브 기반 시사예능 프로그램인 ‘매불쇼’에 출연해 건강·약 정보, 라이프스타일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천사약사’라는 별명과 함께 대중적 인지도를 쌓았다. 매불쇼 팬 커뮤니티에서는 그의 외모와 입담, 전문성이 화제가 되며 ‘장난 아니다’는 반응이 이어졌고, 이를 계기로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서도 인물상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졌다.youtube+1youtube+1

    2020년 코로나19 초기, 정부가 공적 마스크 5부제를 시행했을 때 그는 천사약국의 하루 일과를 브이로그로 기록해 공개했다. 이 영상에서는 마스크 소분 작업부터 판매까지, 공적 마스크 제도가 약국 현장에 어떤 부담과 변화를 가져왔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마스크 품귀와 긴 대기 줄, 민원, 재고관리 등으로 전국 약국이 극심한 업무 과부하에 시달리던 시기였기에, 현장의 약사가 직접 전하는 이 브이로그는 정책 담당자와 일반 대중 모두에게 큰 참고 자료가 됐다.facebookyoutube

    또한 건강·피부·영양제 관련 유튜브 콘텐츠도 꾸준히 제작해왔다. 예를 들어 한 건강 프로그램에서는 ‘최강 동안 약사’라는 타이틀로, 자신이 실제로 섭취하는 영양제와 피부 관리 루틴을 설명하며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이러한 방송·유튜브 활동은 그가 단순히 약국 카운터 뒤에 서 있는 약사를 넘어, ‘건강 인플루언서’이자 공신력 있는 정보 전달자로 자리매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youtubeyoutubeyoutube

    대한약사회·강남구약사회에서의 활동

    이승희 약사는 개인 사업과 방송 활동뿐 아니라, 대한약사회와 지역 약사회에서도 공식 직함을 맡고 있다. 여러 기사에 따르면 그는 대한약사회 홍보위원으로 활동하며, 약사 직능과 약국 현안을 대외적으로 알리는 역할을 해 왔다. 또한 강남구약사회에서는 보험정보위원장을 맡아 지역 내 약국의 보험 관련 업무, 제도 변화 대응 등에 관여하고 있다.x+2

    이러한 단체 활동은 그가 개인의 성공에 머물지 않고, 직능단체와 지역 커뮤니티 속에서 약사 전체의 위상과 근무 환경 개선을 고민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실제로 그가 언급하는 ‘직원 처우 개선’이나 ‘약국 경영 마인드’에 관한 메시지는, 자신의 약국만이 아니라 약사 사회 전반을 향한 화두로도 기능한다. 언론고시를 준비했던 경험 덕분인지, 그는 인터뷰와 강연, 미디어 출연에서 메시지를 구조적으로 전달하는 데 강점을 보이는 편이다.newsis+5

    이미지, 별명, 대중적 인식

    대중 매체에서는 이승희 약사를 ‘얼짱 약사’, ‘미녀 약사’, ‘천사약사’ 등으로 부르며 외모와 브랜딩을 함께 다루는 경우가 많다. 중앙대 약대 98학번, 강남구 최연소 개국약사, 대한약사회 홍보위원, 올리브영 1호 가맹점 운영자라는 이력을 가진 그는, ‘미모와 능력을 동시에 가진 사기캐릭터’라는 표현으로 요약되기도 했다. 이런 별칭은 대중의 관심을 끌어올리는 데 기여했지만, 동시에 약사의 전문성을 외모 이슈와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라는 과제를 함께 안기기도 했다.tikitaka.co+3

    그는 인터뷰에서 “늘 새로운 도전과 만남을 꿈꾼다”고 말하며,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도 중심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제약사 영업, 언론고시 도전, 강남 개국, 대형 약국 경영, 올리브영 가맹 운영, 유튜브·방송 활동, 약사회 공식 직함 등, 여러 루트를 거쳐온 자신의 커리어를 ‘새로운 도전에 대한 갈증’이라는 한 흐름으로 설명하는 셈이다.pharm21+2

    또한 그는 인스타그램 등 SNS를 통해 골프, 일상, 촬영 비하인드 등을 공유하며 보다 친근한 이미지를 쌓고 있다. 이런 활동은 약사라는 직업에 대해 ‘딱딱한 전문가’ 이미지를 완화시키고, 소비자와의 거리감을 줄이는 데 일정 부분 기여하고 있다.instagram+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