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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식좌의 밥상 34년 전통 족발 명가

족발 한 상은 단순히 돼지 다리 몇 점을 썰어 내는 접시가 아니라, 장시간 고아낸 수육의 깊은 맛, 젤라틴이 응축된 껍질의 탄력, 새우젓과 마늘, 쌈채소와 막국수가 한데 어울려 만들어내는 복합적인 식경험에 가깝다. 한국인의 야식 문화와 술 문화, 그리고 피난민의 도시사까지 함께 담겨 있는 상차림이라는 점에서 족발 한 상은 하나의 작은 역사이기도 하다.

기원과 역사, 야식이 되기까지

오늘날 우리가 먹는 형태의 족발은 대개 서울 장충동을 기원으로 꼽는다. 한국전쟁 당시 북한 출신 피난민들이 장충동 일대의 적산가옥에 정착하면서, 고향 황해도·평안도에서 먹던 돼지족조림에 중국식 오향장육의 방식과 향신료를 접목해 탄생시킨 음식이 현재의 족발이라는 설명이 지배적이다. 황해도의 향토음식이던 ‘갱엿돼지족조림’은 돼지족을 삶아 갱엿과 간장, 생강 등을 넣고 윤기가 돌도록 조린 음식이었는데, 이 조리법이 피난민촌에서 서울식 간장 조림, 그리고 더 강렬한 단짠의 야식 메뉴로 변주되었다고 볼 수 있다.

장충동 족발 골목의 형성에는 입지적 요인도 크게 작용했다. 장충체육관과 남산 국립극장, 동국대 일대의 유동 인구가 몰리며 경기 관람 후, 공연 관람 후 들르는 밤 음식으로 족발이 각인되었고, ‘평안도집’을 필두로 ‘뚱뚱이할머니집’, ‘평남할머니집’ 등 분가한 가게들이 골목을 이루며 명성이 전국으로 확산됐다. 싸고 배부르며 술안주로도 훌륭한 돼지족은 당시 가난한 피난민의 생계를 떠받치는 자원이자, 도시 노동자와 서민의 밤 배를 든든히 채워주는 음식이 되어 오늘날 ‘국민 야식’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조리법과 맛의 구조

족발 한 상의 중심에는 당연히 족발 그 자체가 있다. 기본적으로 돼지족은 차가운 물에 1~2시간 이상 담가 핏물을 빼고, 잔털을 제거한 뒤 초벌로 데쳐 잡내와 불순물을 제거한다. 이후 대파, 양파, 마늘, 생강, 월계수잎, 통후추 같은 향신 채소를 넣고 한 번 더 삶아 비린내를 줄이고, 간장과 설탕, 물엿, 소주 또는 맛술, 때로는 된장과 커피(혹은 에스프레소)를 더해 중불에서 1시간 30분에서 2시간 남짓 서서히 조린다. 이 과정에서 껍질과 힘줄의 콜라겐은 젤라틴으로 변하며, 속살은 수분을 머금은 채 부드럽게 익어 간장과 향신료의 맛을 흡수한다.

족발의 외관을 좌우하는 것은 간장 비율과 불 조절이다. 진간장과 양조간장, 때로는 색을 더 진하게 해주는 노추간장(노두유)을 섞으면 불그스름하면서도 윤기 나는 빛깔을 얻을 수 있고, 커피나 흑설탕을 더하면 한약재를 넣은 듯한 향과 색이 더해진다. 너무 센 불에서 오래 끓이면 껍질이 터지거나 과도하게 쪼그라들 수 있어, 최근에는 2시간 30분가량 약불에 가깝게 유지하며 식감과 수분을 세밀하게 조절하는 레시피가 공유되기도 한다. 족발이 다 익으면 바로 써는 대신 여열로 뜸을 들이며 식히는 과정이 중요한데, 이 시간을 통해 육즙이 다시 내부로 재분배되고 껍질과 살 사이가 안정적으로 굳어 얇게 썰기 좋다.

앞다리(앞발)는 상대적으로 살이 많고 식감이 단단한 편이라 고기 씹는 맛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선호되고, 뒷다리는 더 묵직한 크기와 비율로 판매되며 부위마다 껍질과 근육, 힘줄 비율이 달라 식감의 층위가 다양하게 나타난다. 껍질은 탱탱하고 미끌거리지만, 잘 익힌 족발의 껍질은 치아를 살짝 튕기듯 들어가면서도 쉽게 잘려나가는 탄력을 보여주며, 속살은 잡내가 거의 없고 간장 베이스의 짭조름한 맛과 단맛이 균형을 이룬다. 여기에 마늘, 후추, 각종 향신 채소의 향이 은은하게 배어 족발 한 점만으로도 꽤 복합적인 향미를 느낄 수 있다.

새우젓, 쌈채소 그리고 곁들임들

Pork trotters

Pork trotters 

족발 한 상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같이 떠오르는 것이 작은 그릇에 담긴 새우젓이다. 새우젓은 보통 육젓을 사용하며, 새우젓 자체에 다진 마늘과 고춧가루, 깨소금, 썰어 넣은 고추, 그리고 생수를 1:1 내지 1:1.5 비율로 섞어 양념 새우젓을 만들면 족발에 올렸을 때 짠맛이 부드럽게 풀리면서도 감칠맛이 살아난다. 돼지껍질과 지방층의 느끼함을 젓새우의 발효된 짠맛과 마늘의 알싸함이 잡아주는 구조인데, 한 점을 찍어 입에 넣으면 먼저 새우젓의 소금기와 마늘 향이 올라오고, 뒤이어 간장에 조린 족발의 단짠이 입안을 채우며 고소한 지방이 혀를 타고 퍼진다.

쌈채소 역시 족발 한 상의 중요한 축이다. 상추, 깻잎, 로메인 같은 채소에 족발 한 점을 올리고, 새우젓과 쌈장을 약간 더한 뒤, 생마늘이나 고추를 곁들이면 식감의 대비가 매우 선명해진다. 껍질과 지방이 많은 족발에 아삭한 채소와 약간의 매운맛이 더해지면서 입안의 기름기를 씻어주는 동시에, 소화 부담도 덜어주는 역할을 한다. 최근에는 알배추나 쌈무를 함께 내는 집도 많은데, 알배추의 달콤한 수분감과 쌈무의 새콤함이 족발의 진한 맛을 정리해 주며 입안을 리셋해 다음 한 점을 다시 충분히 즐길 수 있게 한다.

족발집 상차림에서 빠지기 어려운 것이 막국수나 쫄면류의 면 요리다. 살짝 매콤새콤한 양념에 비빈 막국수 한 젓가락과 족발 한 점을 함께 먹으면, 탄수화물과 지방, 단백질의 비율이 이상적으로 맞아떨어지는 느낌을 준다. 양파절임, 장아찌류, 부추겉절이 등도 자주 등장하는데, 이들은 한 접시를 다 먹어갈 즈음 느껴질 수 있는 족발 특유의 무게감을 다시 끌어올려 마지막 한 점까지 비교적 가볍게 먹을 수 있게 도와준다. 결과적으로 족발 한 상은 메인 접시 하나와 수많은 보조 반찬이 서로의 부족함을 보완하는 구성으로, 각 요소가 맛의 균형을 맞추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집에서 차리는 족발 한 상의 디테일

배달 족발이 일상화된 지금도, 집에서 직접 삶은 족발로 한 상을 차리는 일은 여전히 특별하다. 가정용 레시피에서는 미니족(단족)과 장족을 섞어 사용하며, 핏물 제거와 잔털 정리, 초벌 데치기를 꼼꼼히 하는 것이 관건이다. 이 과정에서 커피나 에스프레소, 된장, 맛술을 함께 넣어 삶으면 잡내 제거와 함께 색감을 살릴 수 있고, 이후 간장과 설탕, 물엿 비율을 조절하면서 집안 식구 입맛에 맞는 단짠 정도를 정한다. 삶아낸 뒤에는 캐러멜 색소 등을 쓰지 않아도 간장과 커피만으로도 충분히 짙고 윤기 있는 색을 낼 수 있고, 실온에서 살짝 식혔다가 썰면 족발집 못지않은 모양과 식감을 구현할 수 있다.

상차림에서는 냉장고 속 반찬을 최대한 활용하되, 족발과의 궁합을 고려해 조합하는 것이 좋다. 집에서 직접 차린 족발 상에는 상추쌈과 쌈장, 각종 장아찌류(양파, 마늘종, 깻잎, 호박잎 등), 부추 겉절이와 김치, 매실장아찌 같은 새콤달콤한 반찬이 자주 올라가며, 이 정도 구성만 갖추어도 전문 족발집에 크게 뒤지지 않는 만족도를 낼 수 있다는 후기가 많다. 새우젓 양념은 족발과 보쌈 모두에 두루 어울리는 범용 소스로, 한 번 넉넉히 만들어두면 여러 번 활용할 수 있고, 남은 족발은 불족발이나 볶음 요리로 재탄생시키기도 한다. 이렇게 보면 집에서 차리는 족발 한 상은 단지 외식 메뉴의 복제라기보다는, 각자의 주방 환경과 선호를 반영해 커스터마이징된 작은 연출에 가깝다.

오늘의 족발 한 상이 가진 의미

오늘날 족발은 한국인의 야식이자 술안주, 가족 외식 메뉴로서 일상 속에 깊이 들어와 있다. 장충동과 공덕동 같은 ‘족발 골목’은 도시의 미식 지형을 상징하는 장소가 됐고, 매운 양념을 더한 불족발이나 냉채족발, 보쌈 스타일과의 혼합 메뉴 등 다양한 변주가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족발 한 상이 가지는 핵심은 여전히 비슷하다. 오랜 시간 정성 들여 삶아낸 돼지족과, 그 주변을 둘러싼 새우젓, 쌈채소, 김치와 장아찌, 면 요리들이 한 상에서 서로의 맛을 북돋우며, 함께 둘러앉은 사람들의 대화와 술잔을 자연스레 길게 만들어주는 음식이라는 점이다.

북녘의 향토음식과 피난민의 생계, 그리고 도시 서민의 밤을 지탱해온 이력이 겹겹이 쌓인 족발은, 그 자체로 근현대사의 흔적을 품은 한 접시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족발 한 상을 마주할 때, 우리는 단지 고기와 곁들임을 먹는 것이 아니라, 그 뒤에 놓인 시간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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