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파 홍성유(洪性裕, 1928~2002)는 소설과 미식, 두 세계를 종횡무진 누빈 한국의 대표적 식도락가형 작가이자, ‘맛집 붐’의 원형을 만든 1세대 음식 칼럼니스트다. 문단에서는 김두한의 일대기를 다룬 소설 「장군의 아들」의 원작자, 식도락 세계에서는 「한국의 맛있는 집」 시리즈의 저자로 기억된다.
생애와 문학적 출발
홍성유는 1928년 서울에서 태어난 토박이로, 10남매 중 다섯째로 자라며 도시적 감수성과 생활 감각을 자연스럽게 체득한 세대였다. 경동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했는데, 이력만 놓고 보면 관료나 법조인의 길이 어울리는 경로였지만, 그는 결국 문학과 글쓰기를 평생의 직업으로 택했다. 1957년 한국일보 소설 공모에 「비극은 없다」가 당선되면서 본격적으로 문단에 데뷔했고, 이후 현실 인식과 남성적 문체가 돋보이는 작품들로 이름을 알렸다.
그의 문체는 ‘호방한 남성적 문체’라는 평가를 자주 받는데, 이는 인물의 거친 숨결과 시대의 폭력성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직설성과 연관돼 있다. 동시에 그는 역사의 이면, 특히 공적 서사에서 밀려난 인물들의 그늘을 파고들어 현재적 역사 의식을 드러내는 데 집중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러한 성향은 이후 김두한을 소재로 삼은 장편들에서 극대화되며, 영화와 대중문화 영역으로까지 확장된다.
대표작과 ‘장군의 아들’
대중에게 백파를 강하게 각인시킨 작품은 김두한의 일대기를 다룬 장편으로, 영화 「장군의 아들」의 원작이 된 소설이다. 그는 김두한을 단순한 깡패나 폭력배로 소비하기보다, 일제 강점기의 모순과 해방공간의 혼란을 통과한 ‘풍운아’로 그려내며 한국 현대사의 이면을 서사적으로 재구성했다. 이러한 접근은 역사적 사실과 허구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대중이 ‘역사 읽기’를 시작하도록 만드는 장치이기도 했다.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인생극장」 역시 1930년대와 그 전후의 격동기를 배경으로, 권력 주변부 인물들의 삶을 통해 한국 현대사의 그림자를 비춘 작품으로 언급된다. 이 작품에서 드러나는 인물들의 거칠면서도 애잔한 정서는, 훗날 그가 식도락 기행문에서 보여주는 인간에 대한 애정 어린 관찰과도 연결된다. 소설과 음식 글쓰기가 별개의 영역처럼 보이지만, 백파에게 둘은 모두 ‘사람과 시대를 이해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맞닿아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문단의 식도락가, ‘한국의 어니스트 헤밍웨이’
홍성유는 소설 문학과 미식 평론에 모두 정통한 인물로, 일부 평론가와 동료 작가들 사이에서 ‘한국의 어니스트 헤밍웨이’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이는 단순한 칭찬을 넘어, 삶의 현장에 깊이 발을 담근 작가, 먹고 마시고 여행하는 경험을 문체로 승화시키는 작가라는 의미에 가깝다. 그는 술자리와 식탁을 인간 관계와 시대 감각이 교차하는 중요한 무대로 보았고, 이 경험을 소설과 칼럼에 녹여냈다.
문단에서 백파는 ‘최고의 식도락가’로 불렸다. 동료 작가들 사이에서도 그는 전국의 맛집 정보를 쥐고 있는 인물, 새로운 맛을 찾아 끊임없이 길을 나서는 여행자형 작가로 통했다. 실제로 그는 1970년대 후반부터 여행사들과 협업해 전국을 유람하며 드라이브 코스별 맛집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했고, 이 경험이 여러 매체의 칼럼과 책으로 이어진다. ‘작가’와 ‘식객 칼럼니스트’라는 이중적인 정체성은 한국에서 비교적 이른 시기에 등장한 전례로, 이후 수많은 음식 칼럼니스트와 맛집 작가의 모델이 됐다.
‘한국의 맛있는 집’ 시리즈와 맛집 문화의 원형
백파의 이름을 지금까지도 유통시키는 작업은 무엇보다 「한국의 맛있는 집」 시리즈다. 1987년 「한국의 맛있는 집 666점」이 처음 출간된 뒤, 1994년 「한국의 맛있는 집 999점」, 1999년 「한국의 맛있는 집 1234점」으로 이어지는 이 시리즈는 당시로서는 압도적인 규모의 맛집 데이터베이스에 가까웠다. 인터넷과 블로그, SNS가 전무하던 시절, 이 책은 사실상 전국 맛집 정보의 거의 유일한 ‘레퍼런스북’에 가까운 위상을 지녔다.
한 중년 음식 칼럼니스트의 회고에 따르면, 인터넷은커녕 음식에 관한 제대로 된 책이라곤 백파의 「한국 맛있는 집」 한 권뿐이었던 시절, 이 책을 의지해 차도, 정보도 없이 전국을 아홉 번 돌며 3,500개의 맛집 자료를 축적했다는 증언이 남아 있다. 이 일화는 백파의 작업이 단순한 개인적 미식 취향을 넘어, 후대 음식 글쓰기를 하는 이들에게 ‘지도’와 같은 역할을 했음을 잘 보여준다.
이 시리즈가 가진 특징은 ‘숫자’로 명명된 제목에서 드러나듯, 전국 각지의 식당들을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정리했다는 점이다. 그가 소개한 집들은 서울과 대도시의 유명 한식당뿐 아니라 지방의 소규모 노포, 이름 없는 식당까지 포함했고, 이는 오늘날 ‘로컬 맛집’ 탐방의 선구적 형태로 볼 수 있다. 또 그의 기준은 단순히 유명세가 아니라, 음식의 정통성, 재료의 성실함, 주인의 태도, 지역성과 역사성 같은 요소들을 함께 고려한 것이었다고 평가된다. 이런 점에서 백파는 후대의 상업적 ‘맛집 리스트’와 구별되는, 취재와 검증을 중시한 1세대 음식 칼럼니스트였다.
취재 방식과 ‘마지막 풍류객’이라는 별칭
동아일보는 그를 “이 시대의 마지막 풍류객”이라 표현하며, 맛과 술, 여행과 글쓰기를 엮어낸 생활 방식에 주목했다. 그는 전국 각지를 순례하듯 돌며 맛집을 발굴했는데, 초기에는 조리 방법이나 재료에 대해 꼬치꼬치 묻다가 오해를 받아 멱살잡이를 당하는 일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이 일화는 ‘취재하는 식객’이라는 그의 면모를 보여주는 동시에, 당시 음식점들이 레시피와 비법을 외부에 드러내는 데 얼마나 민감했는지를 보여주는 시대적 풍경이기도 하다.
백파의 음식점 탐방 경력은 약 20년에 걸쳐 이어졌고, 그는 조선일보와 주간조선 등 주요 매체에 별미 음식점에 대한 글을 지속적으로 연재했다. 주간조선에는 ‘백파 홍성유의 식도락기행’이라는 코너로 등장해, 각 지역의 특색 있는 음식과 술, 그 뒤에 서 있는 사람들의 사연을 풀어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단순히 ‘어디가 맛있다’는 정보 나열에 그치지 않고, 음식과 공간을 둘러싼 역사와 풍속, 인간 군상을 함께 묘사하는 방식으로 자기만의 장르를 만들었다. 이러한 접근은 오늘날 신문과 잡지의 푸드 에세이, TV 푸드 다큐멘터리의 초기형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음식 칼럼니스트 1세대와 영향력
여러 언론 분석에서 백파는 ‘식객 칼럼니스트 1세대’ 가운데 가장 큰 인기를 누린 인물로 꼽힌다. 그는 엄밀한 의미의 ‘미식가’라기보다, 맛있는 음식을 찾아 전국을 돌아다니는 ‘식도락가형 작가’에 가까웠다는 평가가 함께 붙는다. 이는 미식이 특정 엘리트의 취미가 아니라, 길 위에서 만나는 민중의 음식, 지역의 일상 음식까지 포괄하는 영역임을 몸으로 보여준 사례였다.
그의 작업은 1990년대 중반 국내 첫 여행작가협회의 탄생에도 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있다. 여행과 음식, 글쓰기를 결합한 모델이 하나의 업으로 자리 잡는 과정에서, 백파의 별미기행은 분명한 선례였기 때문이다. 또 그의 책과 칼럼은 이후 수많은 방송 프로그램, 특히 ‘맛집 소개’ 포맷을 갖춘 예능과 교양 프로그램들에 기본 데이터와 서사의 틀을 제공한 것으로 평가된다. 예를 들어, SBS ‘맛있는 집’ 리포터로 활동한 인물이 백파의 글을 계기로 도예가에서 훈제 바비큐 전문점 사장, 나아가 그의 식도락 수제자로 불리게 된 일화는, 백파가 실제 외식업 현장의 변화를 이끌어낸 사례로 자주 인용된다.
후배 세대와 오늘날의 재조명
블로그와 온라인 칼럼 등에서는 백파를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음식 칼럼니스트”로 회고하며, 그의 「한국 맛있는 집 999점」, 「별미여행」 등을 ‘노포의 교과서’처럼 다루는 글들이 여전히 올라온다. 특히 오래된 노포를 취재하는 글에서 백파가 과거에 언급했던 집들을 다시 찾아가, 세월의 변화를 비교하는 방식으로 그의 자료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 과정에서 백파의 책은 단순한 맛집 가이드북을 넘어, ‘외식업 지도’이자 ‘미각의 문화사 자료’에 가까운 의미를 얻게 된다.
언론에서는 음식 칼럼니스트 1세대를 조명할 때, 표성흠 등과 함께 백파를 반드시 언급하며, 그를 가장 대중적 인기를 누린 식객 칼럼니스트로 평가한다. 이는 그가 방송에 자주 등장해서가 아니라, 텍스트 중심의 시대에 신문과 잡지를 통해 오랜 기간 독자와 만나며 신뢰를 쌓았기 때문이다. 후대 칼럼니스트들은 인터넷 이전 시대에 ‘발로 뛴 데이터’의 상징으로 백파를 참조하며, 지역성과 진정성을 중시하는 맛집 탐방의 기준점을 거기서 찾고 있다.
죽음과 평가, 그리고 유산
백파는 2002년 11월 24일 숙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가톨릭 신문과 주요 일간지는 그의 별세를 전하며 “이 시대의 마지막 풍류객”, “문단 최고의 식도락가”라는 표현을 반복했고, 이는 곧 그의 삶이 어떤 이미지로 집약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서울 태생의 도시 지식인, 법대를 나와 소설가가 된 지식인, 그리고 전국을 떠돌며 민중의 밥상과 술자리를 기록한 식객이라는 세 얼굴이 그 안에 겹쳐 있다.
그의 유산은 크게 두 축으로 정리할 수 있다. 하나는 김두한 서사를 중심으로 한 대중소설과 영화 원작자로서의 궤적이다. 다른 하나는 「한국의 맛있는 집」과 여러 식도락 기행문을 통해 구축한, 한국 근현대 외식 문화의 기록자라는 측면이다. 오늘날 우리가 ‘맛집 지도’, ‘맛집 데이터베이스’라고 부르는 것들의 원형에는, 백파가 발로 뛰어 만든 목록과 서사가 깊게 스며 있다. 특히 인터넷 이전 시대에 축적된 그의 현장 기록은, 시간이 지날수록 사라져 가는 노포와 지역 식당들을 복원하는 데 중요한 역사적 자료가 된다.
요약적 의미와 오늘의 독해
백파 홍성유를 오늘의 시점에서 읽는다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맛’과 ‘글쓰기’가 어떤 방식으로 결합해 대중문화의 한 축을 이루게 되었는지 그 기원을 더듬어 보는 일에 가깝다. 그는 작가이자 취재자, 미식가이자 여행자였고, 이 복합적 정체성을 통해 음식 칼럼이라는 장르를 개척했다. 또 그의 작업은 오늘날 포털과 SNS를 기반으로 한 ‘리뷰 경제’ 이전, 한 개인이 책임을 지고 맛집을 소개하던 시대의 신뢰 구조를 상징한다는 점에서, 저널리즘의 관점에서도 흥미로운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