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 ‘꺼먹지’는 겨울 무청을 소금·고추씨로 절여 5개월가량 숙성해 만드는 충남 당진의 대표 여름 김치이자 저장 발효 음식입니다.
꺼먹지가 어떤 음식인지
꺼먹지는 한마디로 말해 무청을 소금에 절여 검게 익힌 김치로, 이름 그대로 ‘꺼먼 김치’에서 온 말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김장철인 11월 말쯤 당진 일대에서 수확한 무의 잎과 줄기를 통째로 항아리에 담아 소금, 고추씨와 함께 층층이 켜켜이 넣어 염장한 뒤 이듬해 5월부터 꺼내 먹습니다. 숙성 기간은 대략 150일, 약 5개월에 이르는데 이 과정에서 무청 색이 점점 짙어져 검게 변하기 때문에 ‘꺼먹지’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말려서 만드는 시래기와 달리 꺼먹지는 ‘말리지 않고’ 바로 염장해서 숙성시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충남 당진은 예부터 무와 배추 생산이 많은 지역이고, 서해안의 천일염전이 발달해 있어 소금을 이용한 염장·저장 방식이 자연스럽게 생활문화로 자리 잡았습니다. 먹을거리가 지금처럼 풍부하지 않았던 시절, 겨울에 수확한 무청을 그냥 버리지 않고 다음 해 여름까지 먹기 위해 개발된 절임·발효 방식이 바로 꺼먹지로 이어졌습니다. 이처럼 꺼먹지는 단순한 반찬이 아니라, 농업·염전·계절 식생활이 맞물리며 형성된 당진의 토속 저장 음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유래와 역사적 맥락
문헌 기록에 따르면 꺼먹지는 ‘11월 말경 수확한 무청을 소금과 고추씨와 함께 항아리에 넣어 절였다가 다음 해 5월부터 꺼내 먹는 당진의 여름 김치’로 정의됩니다. 겨울 내내 꽁꽁 언 밭에서 무를 캐고 난 뒤 남는 무잎은 원래라면 버려지기 쉬운 부산물이었지만, 당진 사람들은 이를 염장해 이듬해 더운 여름까지 먹을 수 있는 식량 자원으로 바꾸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꺼먹지는 빈한한 농가의 절약 정신과 ‘남김 없이 먹는’ 식문화가 응축된 결과물입니다.
당진 일대의 무·배추 생산은 충남에서도 손꼽힐 만큼 많아, 수도권으로도 대량 출하될 정도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러나 과거에는 산물이 아무리 많아도 저장 기술이 부족하면 겨울·봄을 나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에, 무청·무·배추를 염장해 오래 두고 먹는 방식이 필수적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무의 잎을 절여 먹는 ‘무청지’가 발전했고, 그중 당진식 장기 염장·숙성 형태가 ‘꺼먹지’라는 독자적인 이름과 형태로 정착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같은 지역에 ‘짠지’ 같은 또 다른 염장 채소 음식이 함께 발달했다는 점도 눈에 띄는 부분입니다.
꺼먹지가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 계기는 2014년 8월 프란치스코 교황의 솔뫼성지 방문입니다. 당시 당진 솔뫼성지에서 열린 사제단 만찬과 아시아 청년대회 참가자 식사 메뉴에 ‘꺼먹지 비빔밥’이 올라 외국인들에게도 호평을 받았고, 이후 언론과 방송에 자주 소개되면서 당진 대표 향토음식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최근에는 지역 농가레스토랑, 농가맛집, 로컬푸드 식당 등을 통해 ‘꺼먹지 정식’ 같은 이름으로 상업화·브랜딩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만드는 법과 발효 과정
꺼먹지를 담그는 시기는 크게 11월 말~12월 김장철 전후로 잡습니다. 우선 당진 일대에서 재배한 겨울 무를 수확한 뒤, 무를 잘라내고 남은 무청을 깨끗이 정리해 준비합니다. 항아리 바닥에 무청을 한 겹 깔고, 그 위에 굵은 소금과 고추씨를 넉넉하게 뿌리는 식으로 켜켜이 쌓아 올리며, 열 줄기 기준으로 소금 약 500g, 고추씨 한 컵 정도를 사용하는 방식이 소개됩니다. 일부 레시피에서는 여기에 소주를 약간 부어 잡균 번식을 막고 저장성을 높이는 방법도 사용합니다.
이렇게 항아리에 가득 채운 뒤 뚜껑을 닫고, 서늘한 곳에서 약 150일 정도 숙성시키면 무청이 처음의 푸른빛을 잃고 점차 갈색·흑갈색으로 변해 ‘꺼멓게’ 됩니다. 이때 단순히 색만 변하는 것이 아니라, 무청 조직이 부드러워지고 발효가 진행되면서 특유의 구수한 향과 깊은 감칠맛이 생깁니다. 완전히 숙성된 꺼먹지는 염도가 매우 높기 때문에 그대로는 먹기 어렵고, 꺼내서 한 번 삶아준 뒤, 물에 길게는 10시간 이상 담가 짠맛을 빼는 과정을 거칩니다. 이후 물기를 꼭 짜서 비빔밥, 볶음, 찌개, 전 등 다양한 요리에 넣어 활용합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점은 ‘말리지 않고 바로 염장한다’는 점입니다. 시래기는 보통 무청을 말려서 저장하지만, 꺼먹지는 생 상태의 무청을 그대로 소금과 고추씨로 절여 장기 숙성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식감과 풍미가 조금 다릅니다. 장기 숙성 과정에서 생기는 흑갈색과 특유의 구수한 맛이 다른 지역 시래기·무청지와 구별되는 당진 꺼먹지만의 정체성을 만들어 줍니다.
맛과 식감, 영양적 특징
꺼먹지는 겉모습만 보면 검게 변해 있는 탓에 낯선 이들에게는 다소 이색적으로 보이지만, 짠기를 충분히 빼고 조리하면 의외로 부드럽고 구수한 맛이 특징입니다. 장기간 숙성 과정에서 무청의 섬유질이 유연해져 질긴 느낌이 줄고, 삶은 뒤 볶거나 끓이면 입 안에서 부드럽게 씹히면서도 시래기 특유의 씹는 맛은 남아 있습니다. 향은 젓갈처럼 강하게 발효된 향이라기보다는 오래 묵힌 김치와 유사한 깊은 구수함, 약간의 산미가 더해진 풍미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영양적으로는 무청 자체가 식이섬유와 무기질, 특히 칼슘과 철분, 비타민 등이 풍부한 채소이기 때문에 꺼먹지 역시 이러한 장점을 그대로 이어받습니다. 당진시 홍보 자료에서도 꺼먹지가 식이섬유와 무기질이 풍부한 음식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물론 소금에 절여 만든 음식인 만큼 염도가 높다는 단점이 있지만, 실제 식탁에 오를 때는 삶고 물에 오래 담가 짠맛을 상당 부분 제거하기 때문에 완성된 요리 단계에서는 일반 김치·시래기 요리와 염분 수준이 크게 다르지 않게 조절할 수 있습니다.
맛의 조합 측면에서 보면 꺼먹지는 들기름, 마늘, 된장, 깻묵장(깻묵을 넣고 끓인 장)과 매우 잘 어울립니다. 들기름의 고소함이 꺼먹지의 구수한 풍미를 살려주고, 된장의 짭조름한 맛과 함께 끓이면 깊은 국물 맛이 나기 때문에 ‘비빔밥용 나물’과 ‘구수한 찌개 건더기’ 두 가지 역할을 모두 해내는 재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표 요리와 현대적 변주
오늘날 당진에서 꺼먹지를 맛보려면 ‘꺼먹지 비빔밥’, ‘꺼먹지 정식’ 같은 메뉴를 내는 향토 음식점이나 농가레스토랑, 농가맛집을 찾으면 됩니다. 꺼먹지 비빔밥은 삶아 짠기를 뺀 꺼먹지를 들기름과 다진 마늘에 가볍게 볶아 밥 위에 올리고, 고추장·참기름과 함께 비벼 먹는 방식이 일반적입니다. 교황 방문 당시도 이 꺼먹지 비빔밥이 메인 메뉴로 제공돼, 한 그릇 안에 당진의 무청·소금·발효 문화가 응축된 음식으로 주목받았습니다.
당진의 음식문화 관련 기사에서는 꺼먹지를 활용한 다양한 밥상 구성을 소개합니다. 꺼먹지를 넣어 밥을 함께 짓는 ‘꺼먹지 솥밥’, 된장과 깻묵을 넣고 끓인 국물에 꺼먹지를 더해 만드는 ‘꺼먹지 깻묵장’, 들기름과 마늘로 볶아낸 ‘꺼먹지 볶음’, 돼지고기 수육과 곁들이는 ‘꺼먹지 수육’ 등이 대표적입니다. 여기에 더해 전, 김밥, 보쌈, 나물무침 등으로도 활용 영역을 넓히고 있어, 하나의 재료로 여러 가지 반찬을 만들어내는 옛 농가식 밥상의 구조를 잘 보여줍니다.
현대에는 당진시가 ‘향토음식’으로 꺼먹지를 적극적으로 홍보하면서, ‘꺼먹지 농가레스토랑’, ‘꺼먹지 정식 전문점’, ‘안심식당’ 등의 형태로 관광과 연계된 로컬푸드 콘텐츠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방송 프로그램에서도 허영만의 백반기행 등에서 당진 편을 다루며 꺼먹지 밥상을 소개했고, 블로그·브런치 등 각종 온라인 매체에서도 ‘프란치스코 교황도 반한 당진 향토음식’이라는 수식어로 자주 언급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