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는 데미안 허스트 전시는,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시도되는 대규모 회고전이자 1990년대 영국 현대미술을 대표해 온 작가의 궤적을 한 번에 조망할 수 있는 중요한 자리다. 전시 제목은 ‘Nothing Is True But Everything Is Possible(아무것도 진실이 아니지만 모든 것이 가능하다)’로, 허스트가 평생 집요하게 붙들어 온 삶과 죽음, 과학과 신앙, 예술과 시장이라는 상반된 개념들의 긴장을 그대로 드러내는 문장처럼 작동한다.
전시 개요와 구조
이번 전시는 2026년 3월 20일부터 6월 28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진행되며, 설치·조각·회화·프린트 등 50~80여 점 규모의 작품이 소개된다. 구성은 시간순이면서도 주제별 섹션을 병행하는 방식으로, 초기작부터 최근 작업까지를 ‘죽음과 영생’, ‘과학과 의학에 대한 믿음’, ‘욕망과 소비’, ‘이미지와 반복’ 같은 키워드로 묶어 보여주는 형식을 취한다. 영국과 유럽, 카타르 도하 등에서 이미 검증된 주요 시리즈를 서울 공간에 맞게 재배치하면서, 일부 작품은 아시아 최초 공개라는 점에서 ‘신작 전시’이자 ‘회고전’의 성격을 동시에 갖는다. 특히 포름알데히드 탱크, 해골과 보석, 약 상자와 알약, 점(dot) 페인팅, 나비와 곤충 시리즈 등 허스트를 상징해온 이미지들이 한 전시 안에서 총집합한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전시장 동선은 관람객이 먼저 허스트의 대표적 ‘충격 이미지’들을 마주한 뒤, 점차 회화와 드로잉, 보다 서정적이거나 장식적인 작업으로 이동하도록 설계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강렬한 죽음의 이미지에서 출발해 신앙, 위로, 치유, 혹은 시장 논리에 대한 복합적인 감정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일종의 심리적 곡선을 그리게 하는 구성이다.
삶과 죽음: 포름알데히드 탱크와 해골
데미안 허스트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포름알데히드에 담긴 동물 시리즈다. 그중에서도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이 1991년작 ‘The Physical Impossibility of Death in the Mind of Someone Living(살아 있는 자의 정신 속에서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으로, 거대한 상어를 포름알데히드 용액이 채워진 유리 탱크에 통째로 넣어 둔 설치 작업이다. 상어의 입은 벌어져 있고 몸은 움직이지 않지만, 관람객 앞에 갑작스러운 공포와 불안을 불러일으키며, 죽음이란 개념을 눈앞에서 직면하게 만든다. 허스트는 의학 실험실을 떠올리게 하는 유리 케이스와 화학 보존액을 통해, 죽음을 박제하는 과학의 태도와 인간이 죽음을 이해하려는 시도의 한계를 동시에 드러낸다.
해골 모티프 또한 허스트의 죽음 탐구에서 핵심적이다. 2007년작 ‘For the Love of God’은 18세기 인간 해골을 본떠 만든 플래티넘 주물 위에 8,601개의 다이아몬드를 촘촘히 박아 넣은 작품으로, 현대 미술에서 가장 논쟁적인 오브제 중 하나로 꼽힌다. 해골은 전통적으로 죽음을 상기시키는 상징인데, 허스트는 여기에 극단적인 사치와 번쩍이는 물질성을 덧입혀 죽음과 부, 허무와 과시욕의 모순을 한 덩어리의 이미지로 압축한다. 관람객은 그 화려함에 매혹되면서도, 결국 남는 것은 뼈뿐이라는 자명한 사실과 마주하게 된다. 이번 서울 전시에서는 이와 같은 해골·포름알데히드 작업들이 전면에 배치되어, ‘죽음을 보는 방법’에 대한 허스트 특유의 냉소적이면서도 집요한 시선이 집중적으로 소개될 예정이다.
과학·의학과 믿음: 약 상자, 알약, 유리 진열장
허스트는 의료와 과학을 단지 도구나 배경으로 쓰지 않고, 오늘날 종교에 버금가는 신앙의 대상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초기작 ‘Medicine Cabinets(약장)’ 시리즈에서 그는 실제 약품 박스들을 진열장에 정교하게 배열해, 마치 약국이나 병원 수납장을 그대로 떼어온 듯한 설치를 선보였다. 이 작업은 우리가 병원과 약, 의사를 향해 갖는 절대적인 신뢰를, 교회의 제단이나 성상의 위치에 병치시키며, 과학이 근대 사회에서 차지한 ‘새로운 신앙’의 자리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이후 ‘Lullaby Spring’ 같은 작업에서는 수천 개의 알약을 규칙적으로 배치한 금속 캐비닛이 등장한다. 색색의 알약은 멀리서 보면 추상적인 점묘화나 모자이크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하나하나가 모두 실제 약품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관람객은 이 다채로운 색채에 매료되는 동시에, 인간이 약과 화학 물질에 기대어 삶을 통제하고자 하는 욕망, 그리고 그 안에 잠재된 불안과 부작용의 그림자를 동시에 떠올리게 된다. 이번 MMCA 전시 역시 이런 약장·알약 설치가 중요한 축을 이룬다고 알려져 있으며, 한국 관람객에게는 병원·약국이라는 일상적 공간이 어떻게 미술관 안에서 새로운 의미를 획득하는지 체감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미지와 반복: 점 페인팅과 나비, 그리고 장식성
허스트의 점(Spot) 페인팅 시리즈는 1990년대 이후 지속된 가장 방대한 연작 중 하나다. 흰 캔버스 위에 규칙적인 간격으로 다양한 색의 원형 점들이 빼곡히 찍힌 이 작업들은 얼핏 단순한 패턴 회화처럼 보이지만, 허스트에게는 약의 캡슐, 세포, 미생물, 혹은 통계 데이터의 단위 등으로 읽힌다. 즉, 점 하나하나는 인간의 몸과 사회를 구성하는 최소 단위이자, 통제 가능한 정보의 픽셀처럼 기능하며, 무수한 반복 속에서 개인의 존재가 어떻게 익명화되는지를 보여준다.
또 다른 중요한 모티프는 나비다. 허스트는 실제 나비의 날개를 캔버스 위에 부착해 스테인드글라스처럼 구성하는 작품들을 선보여 왔다. 그 결과물은 매우 아름답고 장식적이지만, 동시에 실재했던 생명체의 흔적을 그대로 사용하는 만큼 윤리적 논쟁을 동반한다. 나비는 짧고 화려한 생애로 인해 서양 미술에서 종종 영혼과 부활의 상징으로 쓰여 왔는데, 허스트의 작업에서는 이 기독교적 상징성과 과학 실험실의 냉정함, 그리고 상업 갤러리의 ‘팔리는 이미지’가 한 화면에 겹쳐진다. 서울 전시에서는 이 점 페인팅과 나비 시리즈가 포름알데히드 탱크와 해골의 강렬한 이미지를 어느 정도 중화시키면서, 허스트가 단지 ‘충격 요법의 작가’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예술과 시장, 그리고 ‘YBA 아이콘’의 그림자
데미안 허스트는 1990년대 영국 ‘YBA(Young British Artists)’를 대표하는 인물로, 런던 사치 갤러리의 지원과 파격적인 경매 기록을 통해 전 세계 미술 시장의 ‘스타 시스템’을 상징하는 작가로 자리 잡았다. 그는 자신의 작업 안에서 예술과 상업, 순수성과 상품성의 경계를 일부러 흐리며, 스스로를 하나의 브랜드로 구축해 왔다. 다이아몬드 해골 작품이 수백억 원대의 가격을 기록하고, 상어 탱크가 미술 시장을 뒤흔든 사건은, 그의 작업이 예술 그 자체뿐 아니라 예술이 거래되는 방식과 가치 평가 체계까지 함께 드러내는 일종의 ‘실험’이었음을 보여준다.
이번 국립현대미술관 전시가 특히 흥미로운 이유는, 이런 ‘시장 아이콘’으로서의 허스트가 공공 미술관이라는 제도적 공간 안으로 들어온다는 점이다. 영국 테이트 모던이 2012년 대규모 회고전을 통해 허스트의 20여 년 작업을 정리했듯, MMCA는 아시아 첫 대규모 개인전을 통해 그의 작품을 단순한 가격과 스캔들 너머에서 평가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즉, 시장과 예술 제도, 관객이라는 세 축이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새롭게 만나는 장이 되는 셈이다. 한국 관람객 입장에서는 ‘가격이 화제였던 작가’에서 ‘동시대가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시각화한 예술가’로 허스트를 다시 읽어볼 기회가 된다.
서울이라는 맥락: 죽음, 신앙, 욕망을 어떻게 볼 것인가
국립현대미술관은 이번 전시를 통해 허스트가 평생 탐구해 온 죽음과 영생, 과학·의학에 대한 믿음, 예술의 가치와 시장 논리라는 주제가 한국 사회와 어떻게 공명하는지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고 밝히고 있다. 급속한 고령화, 팬데믹을 거치며 증폭된 의료 시스템에 대한 의존, 부동산과 자산 가격을 둘러싼 투기와 욕망의 문제 등은 한국에서도 가장 현실적인 논쟁거리들이다. 허스트의 해부학적 이미지와 약장, 다이아몬드 해골, 알약과 점의 반복은 이런 한국 사회의 불안을 ‘아름답게 포장된 공포’라는 형태로 시각화해 주는 하나의 거울처럼 작동할 수 있다.
또한 이번 전시는 도 호숙(Do Ho Suh) 등 한국 작가들의 대규모 개인전과 같은 해에 나란히 배치되면서, 글로벌 스타 작가와 한국 동시대 작가를 평행하게 보여주는 MMCA의 전략 속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 즉, ‘서구 거장 전시’가 아니라 동시대 미술의 여러 스펙트럼 중 하나로 허스트를 위치시키겠다는 의도이며, 관람객은 이를 통해 한국·영국, 개인·제도, 로컬·글로벌 사이의 긴장을 보다 입체적으로 느끼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