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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어 어란 제조 8대 전승 최태근

숭어 어란 8대 전승 장인 최태근은 전남 영암에서 250년에 걸쳐 내려온 가업을 잇고 있는 ‘영암어란’의 계승자이자 대한민국 수산식품명인 제16호로 공식 인정받은 인물이다. 조선시대 임금과 고위 관료에게 진상되던 영암 어란의 제조법을 집안 대대로 지키며, 오늘날에는 전통과 현대 유통시장을 잇는 상징적 존재로 평가된다.

가문과 지역, 8대 250년의 계보

최태근이 이어가는 영암 어란의 뿌리는 전남 영암군 군서면 일대, 영산강 하구와 바다가 만나는 지역에 자리 잡은 낭주최씨 문중에서 시작된다. 이 가문은 영산강과 남해가 만나는 풍부한 어장 덕분에 숭어가 많이 잡히던 환경을 바탕으로, 조선 후기부터 숭어 알로 어란을 만들어 궁중과 지역 사대부 집안에 진상해 온 것으로 전해진다.

문헌으로 남은 족보와 구전 기록을 종합하면, 선대에서부터 약 250년 동안 한 마을에서 세거(世居)하며 어란 제조를 가업으로 삼았고, 현재 최태근은 그 8대째를 잇는 후손이다. 선조들은 “임금님 밥상에 올리던 진상품”이라는 자부심으로 어란 제조법을 집안 밖으로 쉽게 내보내지 않았고, 가족과 직계 제자에게만 제조 비법을 전수하는 폐쇄적 방식으로 기술을 지켜왔다.

8대째까지 이어졌다는 사실은 단순한 가업 계승을 넘어, 영암 어란이 특정 개인이 아니라 한 집안과 마을 공동체가 공유해 온 전통 지식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최태근은 선대의 장남으로서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작업장을 드나들며 말린 숭어 알의 색과 냄새, 손으로 눌러보는 촉감까지 몸으로 익혀 왔다고 증언해 왔고, 나이 들어서는 이를 자신의 ‘숙명’으로 받아들였다고 말한다.

숭어 선택과 원재료에 대한 철학

영암 어란의 핵심은 ‘참숭어’ 알을 고르는 일에서 시작된다. 숭어는 눈 색으로 구분되는 경우가 많은데, 영암에서는 노란 눈을 가진 참숭어와 검은 눈의 보리숭어가 대표적이다. 최태근은 어란용으로 노란 눈의 참숭어를 선호하며, 이 알이 지방과 단백질의 균형이 좋아 건조와 숙성을 거쳤을 때 고소함과 감칠맛, 탄력 있는 식감을 가장 잘 구현한다고 강조해 왔다.

어란 제조용 숭어는 영산강 하구와 남해가 만나는 수역에서 직접 낚시로 잡는 방식을 고수한다. 그는 밤샘 낚시를 해도 열 마리 중 알이 꽉 찬 암컷은 1~2마리에 불과할 때가 많다고 말할 정도로, 알집 상태가 좋은 암컷 숭어를 구하는 과정 자체가 이미 ‘선별 작업’의 첫 단계다. 이처럼 원재료 확보가 어려운 탓에 영암 어란은 대량 생산이 불가능하고, 자연스럽게 ‘귀한 진미’라는 이미지가 유지되어 왔다.

숭어 알 외에도 최태근은 재료 전반을 직접 관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집안에서 대대로 내려온 씨간장, 간수를 뺀 뒤 5년 이상 숙성한 천일염, 자신이 농사지어 짠 유기농 참기름과 장류를 사용한다. 이는 단순한 식재료 취향을 넘어, 제조의 전 과정에서 외부 공장 제품을 최대한 배제하고 가문의 미각과 발효균을 유지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씨간장과 청주, 보이지 않는 맛의 기반

영암 어란의 독특한 풍미는 8대째 이어온 씨간장에서 비롯된다는 평가가 많다. 이 씨간장은 수십, 수백 년 동안 장독대에서 덧붓고 덧뺀 간장이 농축되며 장석이라 불리는 검은 돌 모양의 결정체가 독 안에 생겨날 정도로 농도가 진한 것이 특징이다. 이렇게 장석이 박힌 씨간장은 짠맛 뒤에 은은한 단맛과 깊은 감칠맛이 남아, 소량만 사용해도 알 속까지 맛이 배어드는 효과를 낸다.

최태근은 숭어 알의 비린내를 잡기 위해 먼저 청주에 일정 시간 담갔다가 꺼내는 과정을 거친다. 이 청주 역시 시판 제품이 아닌, 직접 빚은 술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술의 향과 알의 지방이 결합해 숙성 중 발생할 수 있는 잡내를 줄이고 전체적인 풍미를 부드럽게 하기 위한 선택이다. 이후 적절히 소금과 씨간장으로 간을 맞추고 염장하는 단계가 이어지는데, 가문에서는 이 비율과 시간을 구체적인 숫자가 아니라 기온, 습도, 알의 상태에 따른 감각으로 판단하는 ‘체화된 노하우’로 관리한다.

이러한 씨간장과 청주의 결합은 과학적으로 보면 발효된 아미노산과 알코올, 유기산이 어우러져 복합적인 향미를 형성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최태근은 이를 “선조들이 몸으로 익힌 맛을 따라가는 일”로 표현하며, 실험실 수치보다 손맛과 경험을 중시하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4~6개월 걸리는 전통 어란 제조 공정

최태근의 영암 어란 제조는 빠르면 4개월, 길게는 6개월까지 걸리는 장기 프로젝트이다. 우선 살아 있는 숭어에서 알집을 꺼낼 때 알이 터지지 않도록 칼 대신 손을 많이 쓰며, 꺼낸 알집은 깨끗이 씻어 핏줄과 이물질을 제거한다. 이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상처가 나면 건조 중 갈라지거나 냄새가 변하기 때문에, 초반 손질이 곧 최종 품질을 좌우한다.

손질된 알집은 청주와 간장, 소금을 이용해 염장되는데, 강한 염도로 단기간 절이는 방식이 아니라, 비교적 온화한 염도에서 천천히 배게 하는 전통 방식을 유지한다. 염장 후에는 어란 표면의 물기를 말린 뒤, 영암의 바람과 햇볕을 이용한 자연 건조와 차양 아래 그늘 건조를 번갈아 가며 진행한다. 이때 일정 시간마다 참기름을 여러 차례 발라주는 작업을 반복하는데, 이는 표면이 갈라지는 것을 막고, 고소한 향을 입히며, 산화를 줄이는 역할을 겸한다.

영암 어란의 특징적인 공정 가운데 하나가 바로 ‘누르기’ 작업이다. 일정 수준까지 마른 어란은 무거운 돌이나 누름판으로 10분 단위로 여러 차례 눌러 모양을 잡고 내부 수분을 서서히 빼낸다. 이 과정을 수십 차례 반복함으로써, 최종 제품이 얇고 단단하면서도 속은 유연한, 일종의 반건조·반숙성 상태에 이르게 된다. 전체 과정에서 어란 하나를 완성하는 데 수백 번의 손이 간다고 표현될 정도로, 한 단계도 기계화하기 어려운 수작업 중심의 체계다.

최태근은 자연 건조 시 일조량과 습도를 수시로 확인하며, 갑작스러운 비나 황사, 고온다습한 날씨에는 건조장 개폐와 위치 조정을 반복한다. 이는 어란이 기온과 습도에 민감해 조금만 환경이 바뀌어도 표면이 갈라지거나 안쪽이 충분히 숙성되지 못하는 탓이며, 그가 “어란은 결국 날씨와 싸우는 일”이라고 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명인의 지위와 공적, 수산식품명인 지정

최태근은 오랜 기간 영암에서 어란 제조에 전념해 오다가, 2016년 사단법인 대한민국전통명장협회로부터 ‘대한민국 어란 전통명장’으로 선정되며 전국적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어 해양수산부는 그를 숭어 어란 분야의 대한민국 수산식품명인 제16호로 지정했고, 2008년경 지정 사실이 알려지며 영암 어란 가문의 기술과 역사성에 공식적인 국가 인증이 부여됐다.

수산식품명인은 수산식품 제조·가공·조리 분야에서 20년 이상 종사하고, 전통식품의 제조법을 원형대로 보전·실현할 수 있으며, 기존 명인으로부터 5년 이상 전수교육을 받고 10년 이상 실무 종사한 이들에게 주어지는 국가 차원의 기술 장인 제도다. 최태근은 8대에 걸친 가업 계승, 전통 제조법 유지, 영암 어란의 브랜드 가치 제고와 지역 특산품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이 명예를 얻었다.

또한 그는 2018년 ‘올해의 신한국인 대상’을 수상하며 전통 어란 제조뿐 아니라 유기농 식품 생산, 안전한 먹거리 제공, K-푸드로서의 어란 세계화 노력까지 폭넓은 공로를 인정받았다. 이러한 외부 평가를 통해 영암 어란은 단순 지방 특산품이 아니라, 한국 전통 수산 발효식품의 상징 가운데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현대 시장에서의 영암 어란과 계승 문제

최태근이 만든 영암 어란은 고급 선물용, 효도상품, 명절 선물세트 등으로 인기가 높으며, 유명 호텔·백화점·고급 음식점과 레스토랑에도 공급되고 있다. 소비자들은 풍부한 맛과 높은 영양, 건강 기능성을 이유로 호평을 보내고 있고, 어란이 한식 다이닝과 와인·위스키 페어링 메뉴로도 활용되면서 새로운 수요가 형성되고 있다.

그는 전통 제조방식을 유지하면서도 현대 소비자의 입맛과 라이프스타일에 맞게 다양한 포장과 레시피를 개발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예를 들어 얇게 썬 어란을 올리브유와 함께 제공하는 서양식 안주 스타일, 파스타·리조또에 곁들이는 메뉴 등 새로운 메뉴 제안을 통해 ‘어란은 전통주 안주’라는 고정관념을 넓혀가고 있다. 다만 대량생산이 불가능하고, 수작업과 원재료의 희소성이 가격에 반영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는 “양이 아니라 품질과 전통성을 중심에 두겠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계승 측면에서 최태근은 이미 아들에게 제조 기술을 전수해 9대째로 이어가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이는 고령화와 지방 소멸 위기 속에서 전통 식품 가업의 단절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의미 있는 사례로, 지역 사회와 지자체에서도 영암 어란을 지역 문화자원이자 관광 콘텐츠로 육성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전통과 기술, 그리고 상징성

숭어 어란은 본래 숭어·민어 등 어류의 알을 소금에 절여 말리고 숙성시킨 전통식품으로, 조선시대 궁중 진상품이자 국빈 접대 음식이었다. 이 가운데 영암 어란은 영산강과 바다가 만나는 지역적 특성과, 8대 250년에 걸친 한 가문의 축적된 노하우가 결합된, 한국 어란 문화의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최태근의 8대 전승 이야기는 단지 한 장인의 성공담이 아니라, 지역 어업, 전통 발효기술, 가업 승계, 국가 명인 제도가 맞물린 복합적인 문화 현상이다. 그는 씨간장, 자연건조, 수작업이라는 옛 방식을 고수하면서도 현대 유통망과 미디어를 통해 어란의 가치를 알리고, K-푸드로서 세계 시장에 도전하는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다.

결국 숭어 어란 8대 전승 장인 최태근은 ‘맛있는 특산품’ 생산자를 넘어, 한국 전통 수산 발효문화와 지역 정체성을 지키는 수호자이자, 이를 21세기 식문화 속으로 번역해 내는 중개자로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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