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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부대찌개 골목 마지막 남은 1세대 할머니

의정부 부대찌개 골목의 ‘마지막 1세대’로 불리는 89세 박용복 할머니의 삶과 식당 역사는 한국 현대사, 특히 전후 빈곤과 미군 주둔, 그리고 서민 먹거리의 변천사가 한 그릇 안에 응축된 이야기입니다. 아래에서는 부대찌개의 기원, 의정부 골목의 형성, 그리고 1972년부터 한 자리를 지켜 온 박용복 할머니와 ‘형네식당’의 세월을 중심으로 2000자 이상으로 풀어 보겠습니다.

전후 도시 변두리에서 태어난 한 그릇

의정부가 부대찌개의 도시가 된 배경에는 1950~60년대 미군 부대의 밀집과 전쟁 직후의 참담한 빈곤이 자리합니다. 전쟁으로 삶의 기반을 잃은 피란민과 서민들은 서울 북쪽 관문인 의정부로 몰려들었고, 이곳에 주둔한 미군 부대에서 나오는 햄·소시지·베이컨 같은 가공육은 말 그대로 ‘하늘이 내려준 단백질’이었습니다. 당시 한국인의 입맛에는 다소 느끼한 이 서양식 가공육을 그냥 먹기엔 부담스러웠고, 사람들은 여기에 김치, 고추장, 각종 채소, 떡을 넣어 팔팔 끓여낸 뒤 얼큰한 국물에 밥을 말아 먹기 시작했습니다. ‘부대에서 나온 햄으로 끓인 찌개’라는 뜻에서 붙은 이름이 바로 부대찌개였고, 이것이 훗날 의정부를 대표하는 음식이 됩니다.

의정부에서 부대찌개가 한 골목을 이룰 정도로 자리를 잡기까지는 몇몇 선구적인 여성 상인들의 역할이 결정적이었습니다. 1960년대 의정부 미군부대 근처에서 포장마차를 하던 허기숙 할머니는 미군부대에서 나오는 햄과 소시지, 베이컨을 활용해 지금의 부대찌개 형태에 가까운 음식을 내놓았고, 1968년 ‘오뎅식당’이라는 상호로 등록하면서 원조 부대찌개 맛집으로 이름을 알렸습니다. 이 집과 주변 몇 곳의 식당이 인기를 끌자 인근에 비슷한 가게들이 하나둘 생겨났고, 중앙역 일대에는 자연스럽게 ‘의정부 부대찌개 거리’가 형성됩니다.

의정부 부대찌개 거리의 형성과 성장

오늘날 ‘의정부 부대찌개 거리’라고 부르는 곳은 의정부 로데오거리 북쪽, 호국로1309번길 일대에 자리한 짧지만 밀도 높은 식당 거리입니다. 이 골목에는 현재 12개 식당이 영업 중이며, 시는 이 일대를 ‘의정부 명물찌개 거리’이자 음식문화 특화거리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습니다. 1998년경 ‘의정부 명물찌개 거리’라는 공식 명칭이 부여되면서 골목의 위상은 단순한 동네 밥집 밀집 구역을 넘어 지역 관광 자원으로 격상되었고, 매년 10월 ‘의정부 명물찌개 음식축제’가 열리면서 전국적인 인지도도 얻게 됩니다.

거리의 현재 상호를 보면 ‘의정부명물찌개본점’, ‘양주식당’, ‘오뎅식당’, ‘허기숙할머니원조오뎅식당별관’, ‘형네식당’, ‘명성부대찌개’, ‘정순옥 원조 오뎅 의정부 부대찌개 오뎅식당’, ‘보영식당’, ‘경원식당’, ‘한양식당’, ‘진미식당’, ‘장흥식당’ 등, 1960~70년대를 관통해온 이름들이 대거 포진해 있습니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2, 3세대로 대가 끊기지 않고 내려오며 골목의 역사를 증명하고 있고, 일부는 주인과 상호가 바뀌면서도 ‘부대찌개 골목’이라는 브랜드 안에 포함되어 새로운 손님을 맞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1972년부터 한 자리를 지켜 온 ‘형네식당’은 골목에서 50년이 넘는 세월을 버틴 1세대 식당으로, 지금은 마지막 남은 원로급 주인장 박용복 할머니가 있는 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972년 문을 연 ‘형네식당’과 박용복 할머니

‘형네식당’은 1972년, 의정부1동 부대찌개 골목에서 박용복 할머니가 문을 열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전쟁 직후의 극빈 시기를 온몸으로 겪은 세대답게, 할머니의 장사는 생존과 밀접하게 엮여 있습니다. 당시 의정부 일대는 여전히 가난했고, 미군부대에서 나오는 군납 식자재와 농촌에서 올라오는 배추, 고추, 마늘이 한데 뒤섞인 곳이었습니다. 그 속에서 할머니는 남들은 ‘꿀꿀이죽’이라 불렀던, 남은 재료를 한데 넣고 끓여 파는 서민 음식에 자신의 손맛을 더해 지금의 부대찌개 스타일을 잡아갔습니다. 서울신문이 2005년 ‘형네식당’을 취재했을 당시만 해도, 이 집은 “화학조미료를 거의 쓰지 않아 국물이 덜 느끼하고 걸쭉하지 않다”는 평가를 받으며 오래된 단골과 새로운 손님을 동시에 끌어모으는 집이었습니다.

현재 박용복 할머니의 나이는 89세로, 의정부 부대찌개 거리에서 장사를 시작한 1세대 주인들 중 실제로 가게 현장을 지키는 마지막 세대로 소개됩니다. 54년 가까운 세월을 한 골목, 한 간판과 함께 보낸 셈입니다. 할머니가 운영하는 ‘형네식당’은 의정부시 공식 안내에도 등재된 부대찌개 거리 12개 식당 중 하나로, 주소는 경기 의정부시 호국로1309번길 9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골목을 찾는 이들은 대부분 “부대찌개 골목의 마지막 1세대 할머니가 있는 집”을 찾아 이곳으로 발길을 옮기고, 그 자체가 하나의 역사 체험이자 음식 여행 코스가 되었습니다.

‘꿀꿀이죽’에서 ‘명물찌개’까지, 이름이 바뀐 시간

부대찌개는 처음부터 지금처럼 세련된 이름을 가진 음식이 아니었습니다. 박용복 할머니는 방송 인터뷰에서 “처음에는 꿀꿀이죽이라고 했다가 존슨탕이라 했다가, 외국사람들이 보기에 나쁘다고 해서 ‘명물찌개’라고 불렀다”고 회상합니다. ‘꿀꿀이죽’은 남은 재료를 한데 모아 돼지처럼 먹는다는 조롱 섞인 표현에 가깝고, ‘존슨탕’은 미군부대와 연관된 영어식 별칭으로, 한때는 부대찌개를 상징하는 이름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이름들은 음식의 가치를 낮추거나 왜곡한다는 인식이 강해졌고, 결국 의정부시는 ‘명물찌개’라는 명칭을 앞세워 부대찌개 거리를 도시 브랜드와 관광 상품으로 끌어올렸습니다.

이 변화는 단순한 이름 바꾸기가 아니라, ‘부끄러운 음식’에서 ‘당당한 지역 명물’로의 지위 상승을 의미합니다. 전후 미군 잔반이라는 낙인이 찍혀 있던 재료들이 이제는 ‘동서양의 맛이 어우러진 최고의 퓨전 음식’으로 설명되고, 내·외국인 모두가 즐겨 찾는 관광 콘텐츠로 홍보되는 모습은 한국 사회의 경제성장과 자존감 회복의 흐름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그 중심에 50년 넘게 같은 자리를 지켜 온 박용복 할머니 같은 1세대 장인들이 있다는 점에서, 이 골목과 식당들은 단순한 맛집을 넘어 생활사 박물관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박용복 할머니 손맛의 원칙과 골목의 내일

형네식당의 부대찌개가 사랑받는 이유로 흔히 꼽히는 건 ‘과하지 않은 국물’과 ‘묵직한 김치의 힘’입니다. 여러 방송과 기사에서 이 집의 비법으로 오래 숙성시킨 김치, 직접 고른 재료, 그리고 화학조미료를 거의 쓰지 않는 담백한 양념이 강조됩니다. 1년 가까이 숙성한 김치는 깊은 산지에서 직접 재배한 배추로 담그고, 이 김치가 햄과 소시지의 느끼함을 잡아주면서 국물에 깊이와 산뜻함을 동시에 부여한다고 합니다. 이는 값싸고 자극적인 맛으로 승부하는 곳이 많은 오늘날 외식 시장에서 오히려 차별점으로 작용하며, 세월이 갈수록 “옛날 맛”을 찾는 손님들을 다시 불러들이는 요소가 되고 있습니다.

89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가게와 골목을 지키는 박용복 할머니를 두고, 방송과 블로그들은 “부대찌개 골목의 산증인”, “마지막 남은 1세대”라는 표현을 씁니다. 허기숙 할머니 등 다른 1세대 원조들은 이미 가게를 후대로 넘기거나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난 상태이고, 이제는 자녀 세대가 간판과 레시피를 이어받아 또 다른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형네식당의 간판 아래 서 있는 박용복 할머니의 존재는, 의정부 부대찌개가 전쟁과 가난의 시간을 통과해 오늘의 ‘명물’이 되기까지의 세월을 몸소 증언하는 상징이자, 골목 자체를 하나의 이야기로 묶어주는 중심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의정부 부대찌개 골목은 앞으로도 축제, 관광 홍보, 젊은 세대의 창업과 리모델링을 통해 계속 변해갈 것입니다. 그러나 그 변화의 한가운데에는 언제나 1950~60년대의 기억과 1세대 장인들의 손맛이 바탕으로 깔려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1972년 작은 식당 하나로 시작해, 이제는 부대찌개 골목의 마지막 남은 1세대로 불리는 89세 박용복 할머니의 이야기는, 단지 한 노포의 역사가 아니라 한국 현대사의 아픈 시절과 극복의 시간을 담아낸 음식사이자 생활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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