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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의 열정, 아사도를 굽는 백발의 청춘 (동네 한 바퀴)

남미의 열정, 아사도를 굽는 백발의 청춘

의정부동의 한적한 골목 끝, 문을 열면 순간 남미의 뜨거운 바람이 훅 끼쳐오는 듯한 곳이 있다. 이름은 낯설지만 향은 강렬한 곳, 바로 아르헨티나식 바비큐 ‘아사도(Asado)’ 전문점이다. 이곳의 주인은 일흔의 나이에 새로운 인생을 굽고 있는 백발의 셰프, 김성호 씨다. 은퇴를 앞둔 평범한 사업가였던 그가 어떻게 의정부 한복판에서 남미의 열정을 태우게 되었을까.

김 씨는 오랫동안 중국 의류매장 집기를 제조·수출하는 공장을 운영했다. 젊은 시절엔 돈과 거래처, 그리고 마감의 압박 속에서 무겁게 하루를 살아냈다. 하지만 50대 중반이 되던 어느 날, 우연한 모임에서 아르헨티나식 바비큐를 접한 순간 모든 것이 뒤바뀌었다. “고기의 향이 달랐어요. 단순히 굽는 게 아니라, 시간이 고기에 스며드는 맛이랄까.” 그는 그날 이후로 아사도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사업보다 불판 앞에서 고기를 뒤집는 시간이 더 행복하게 느껴졌다.

불 위에서 다시 찾은 인생

‘아사도’는 단순한 바비큐가 아니다. 아르헨티나의 카우보이 ‘가우초(Gaucho)’들이 광활한 초원에서 저녁마다 불을 피워 고기를 구워 먹던 전통에서 비롯된 문화다. 숯이나 장작의 은근한 열로 고기를 천천히 익혀 육즙을 가두고, 불과 고기가 나누는 대화 속에서 맛이 완성된다. 김 씨는 그 느림에서 인생의 지혜를 배웠다고 말한다.
“우리 인생도 그래요. 바쁠 땐 다 태워버리지만, 온도를 조절하면 고기도 사람도 부드러워지죠.”

아사도에 매료된 그는 몇 차례 아르헨티나를 오가며 직접 아사도 장인에게 요리를 배웠다. 스페인어 한 마디 못하던 그는 몸짓과 냄새로 배웠다고 웃는다. 그곳에서 본 대형 철제 오븐이 마음에 들어, 귀국 후 황학동 시장을 뒤져가며 똑같은 형태의 오븐을 주문 제작했다. 아르헨티나산 참숯의 특성을 재현하기 위해 숯의 크기와 탄소 함량까지 연구했다. 결국 그의 주방에는 남미의 향을 그대로 담은 거대한 ‘파리야(Parrilla)’—아사도용 그릴이 설치됐다.

가족의 응원, 불 앞의 동반자

김 씨의 아내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교수였다. 남편의 돌연한 전직 선언에 처음엔 놀랐지만, 이내 그 열정에 매료됐다. “처음엔 불 냄새 때문에 싫었어요. 그런데 남편이 고기 한 점 구워서 내밀 때마다 따뜻한 마음이 느껴졌어요.” 그녀는 요즘엔 주방 한켠에서 설거지를 도우며 손님들과 담소를 나눈다. 음식점이라는 공간이 둘의 인생을 다시 이어놓은 셈이다.

가게는 크지 않지만, 좁은 공간을 가득 채운 고소한 향과 남미 음악이 손님들을 맞는다. 김 씨의 머리는 백발이지만, 손끝은 젊은 셰프 못지않다. 두꺼운 갈비살을 집게로 뒤집을 때마다 불꽃이 춤추고, 표정에는 활력이 돈다. 그가 숯불 앞에 서면 마치 ‘인생의 연료’를 새로 채우는 듯 보인다.

남미와 한국을 잇는 불의 문화

아사도의 본질은 ‘함께 굽는’ 문화다. 가우초들은 가족과 친구들이 둘러앉아 웃고 떠들며 고기를 나눠 먹었다. 김 씨도 이 문화를 그대로 가져왔다. 주말이면 손님들이 자연스레 이웃처럼 합석하고, 그는 맥주 한 잔을 따라주며 “아르헨티나에서는 이게 인생이에요”라며 웃는다. 그런 그의 모습에 손님들도 어느새 남미의 자유로운 공기에 젖는다.

“한국 사람들은 빠르게 먹잖아요. 저는 느리게 굽고, 기다리게 해요. 기다림 끝에 맛이 완성되니까요.” 그의 대답에는 철학이 담겨 있다. 아사도는 단순한 조리법이 아니라, 인생의 속도에 대한 반성이다.

백발의 청춘이 던지는 메시지

김 씨의 흰 머리는 세월의 흔적이지만, 그의 눈빛은 마치 스물다섯 청춘처럼 빛난다. “불은 나이를 먹지 않아요. 제가 매일 불을 피우는 건 제 마음을 데우기 위해서예요.” 그는 자신이 단순히 고기를 굽는 사람이 아니라, ‘시간을 굽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의정부동의 작은 식당에서 태어나는 그 맛은 단순히 남미의 풍미가 아니라, 스스로 삶을 다시 불태운 한 인간의 냄새다. 손님들은 고기를 씹으며 그 열정을 느끼고, 고기의 육즙 속에서도 삶의 끈기를 맛본다.

이제 김 씨는 아사도가 한국에서도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 “남미 사람들은 인생을 맛으로 표현해요. 한국에서도 그런 불맛 인생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그는 그렇게 말하며 불을 다시 붙였다.

의정부의 거리를 물들이는 불빛 하나가, 남미의 태양처럼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백발의 청춘이 구워내는 것은 고기보다 더 뜨거운 ‘삶의 불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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