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의 한 조용한 골목, 낮에는 커피향이, 밤에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묘하게 뒤섞이는 그곳에 ‘비후카츠 달인’이라 불리는 식당이 있다. 가게 외관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손님들은 곧바로 일본 어느 소도시의 작은 식당에 들어온 듯한 착각에 빠진다. 나무로 된 인테리어, 은은하게 퍼지는 튀김과 버터 냄새, 정갈하게 놓인 식기들—이 모든 디테일이 하나의 공간 미학을 완성한다. 바로 ‘요쇼쿠(洋食)’, 즉 일본식 서양요리의 정수를 제대로 구현하려는 주인의 철학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순간이다.
오래된 맛을 되살린 ‘비후카츠’의 철학
한때 비후카츠는 한국 경양식 돈가스집의 단골 메뉴였다. 하지만 국내 경양식 문화가 점차 ‘두꺼운 돼지등심 돈가스’ 중심으로 변하고, 일본 정통 스타일이 희미해지면서 비후카츠는 어느새 ‘추억의 메뉴’로 자리잡았다. 비후카츠 달인은 이 사라져가는 메뉴를 다시 세상으로 불러내기 위해 수년간 연구를 거듭했다. 그가 선택한 핵심 재료는 ‘살치살’. 지방층이 균일하고 결이 고운 이 부위는 튀김 과정에서 적절한 육즙을 유지하면서도 씹을 때 부드러움이 살아나는 특징이 있다.
고기에 간을 할 때도 극도로 절제된 접근을 한다. 소금과 후추로만 마무리하는데, 그 이유를 달인은 “고기 본연의 맛을 해치지 않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빵가루는 일본산 생빵가루를 받아 사용하며, 표면이 거칠지 않도록 직접 체에 내려 고운 질감을 만든다. 이렇게 준비된 살치살에 얇게 빵가루를 입히고, 일정한 온도로 조절된 기름에 순간적으로 튀긴다. 독특한 점은 조리 시 거의 ‘레어’ 상태로 튀겨낸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돈가스처럼 속까지 익히지 않고, 겉면은 바삭하지만 속은 붉은빛이 감도는 촉촉한 레어. 이는 소고기 본연의 풍미와 육즙을 최대한 보존하기 위한 달인만의 방식이다.
튀김옷이 눅눅해지지 않도록 고안된 ‘비밀 액체’도 이 집의 핵심 기술이다. 달인은 정확한 레시피를 공개하지 않지만, 고기 표면에 일정한 산성도가 유지되도록 하는 조합 덕분에 수분이 겉으로 스며들지 않고, 튀김옷이 오랜 시간 바삭함을 유지한다고 한다. 이 혁신적인 접근 덕분에 이곳의 비후카츠는 한입 베어 물었을 때 ‘바삭’과 ‘촉촉함’이 동시에 터지며, 일반적인 돈가스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식감 경험을 제공한다.
‘요쇼쿠’ 세계의 완성도
비후카츠만으로도 충분히 주목받는 집이지만, 이곳의 진짜 매력은 ‘요쇼쿠’를 폭넓게 재해석했다는 점이다. 일본에서 ‘요쇼쿠’는 단순한 서양식 요리를 의미하지 않는다. 서양의 조리법을 일본식으로 섬세하게 변형하여 현지화한 문화를 말한다. 달인 역시 이 전통을 그대로 이어받아 다양한 요리들을 선보인다.
대표적인 것이 함바그다. 흔히 ‘일본식 햄버거 스테이크’라 불리는 요리지만, 이곳의 함바그는 남다르다. 국내산 돼지고기와 한우를 7:3 비율로 섞어 풍미와 육즙을 동시에 살렸으며, 소스 역시 직접 만든 데미글라스 기반이다. 소스의 깊은 맛은 3일간 졸여낸 육수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또한 톤테키(돼지고기 스테이크)는 오랜 시간 수비드 조리법으로 준비된다. 일정한 저온에서 천천히 익혀내는 방식이라 고기의 결이 부드럽게 풀리고, 표면을 팬에서 마지막 순간에 노릇하게 굽는다. 이렇게 완성된 톤테키는 일반적인 돼지고기 스테이크보다 훨씬 풍미가 깊고, 입속에서 사르르 녹는 듯한 식감으로 미식가들을 매료시킨다.
오므라이스와 하야시 라이스 역시 이 집의 숨은 인기 메뉴다. 오므라이스의 경우 달걀은 아주 얇게 구워 속의 밥을 감싸는데, 달걀 표면에 윤기가 떠서 ‘황금빛 실크 천’을 보는 듯한 비주얼이 완성된다. 밥에는 버터와 양파, 돼지고기 다짐육이 들어가는데, 식감의 균형이 완벽하다. 하야시 라이스는 진한 브라운소스를 얹은 메뉴로, 와인과 토마토 페이스트, 양파를 오랜 시간 졸여 감칠맛을 극대화했다. 일본식 서양요리의 정수를 보여주는 이 두 메뉴는 달인이 “비후카츠를 완성한 뒤, 다시 요쇼쿠의 근본으로 돌아간 작품들”이라고 설명한다.
‘달인’이라는 이름의 무게
이 식당의 주인은 일본에서 오랜 시간 요쇼쿠 요리 경험을 쌓은 인물이다. 일본 오사카와 나고야에서 경양식 전문점을 거치며, 비후카츠의 다양한 조리법을 실제로 체득했다고 한다. 그가 귀국 후 홍대에 식당을 열며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한국에서도 진짜 요쇼쿠를 대접하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단순히 맛있게 만드는 것을 넘어, ‘시간과 정성으로 완성되는 맛’을 구현하기 위해 매일 새벽 첫 재료 손질부터 시작한다.
달인은 고기를 자르고 빵가루를 입히는 과정의 ‘소리’에도 세심하게 귀를 기울인다. “빵가루가 손끝에서 일정하게 떨어지는 그 소리로 오늘의 튀김 상태를 판단할 수 있어요.” 이 말에서 그의 철학이 드러난다. 음식은 오감의 예술이며, 기술은 감성을 통해 완성된다는 믿음이다.
홍대에서 다시 피어난 비후카츠의 자존심
요즘 홍대는 젊은 세대 중심의 트렌드 지역으로, 퓨전 음식이나 스트리트푸드가 범람하고 있다. 그런 공간 속에서 이 식당은 오히려 ‘정통’을 내세우며, 조용하지만 강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손님들 대부분은 미식에 깊은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다. 처음 방문한 사람들은 “비후카츠의 겉과 속이 이렇게 다를 수 있구나”라는 반응을 보이고, 단골들은 메뉴 하나하나의 완성도를 두고 경외심마저 표현한다.
가게는 저녁 식사 시간대에 가장 붐빈다. 기본 세트는 비후카츠, 샐러드, 밥, 장국, 그리고 직접 담근 피클로 구성되어 있다. 고기가 레어로 나오는 만큼 식사 전 직원은 반드시 조리 상태를 설명하고, 레어가 부담스러운 손님에게는 웰던으로 조리해주는 세심함도 갖추었다. 이렇게 고객과의 소통까지 고려한 운영 방식은 달인이 단순히 ‘요리사’가 아닌 ‘경험 관리자’임을 증명한다.
마무리의 순간
식사를 마친 후에도 입안에 남는 것은 육즙의 여운과 고소한 튀김 향뿐만이 아니다. 오랜 세월 뒤편으로 밀려났던 ‘비후카츠’라는 이름을 다시 세상으로 끌어올린 달인의 손맛과 철학의 무게가 느껴진다. ‘진짜 맛’은 화려한 기술보다도, 본질을 끝까지 탐구하려는 꾸준함에서 나온다는 것을 이 작은 식당은 보여준다.
홍대의 ‘ㅇ’ 식당은 단순히 일본식 경양식집이 아니다. 사라져가던 요리의 역사와 그 맛을 복원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감동을 전하는 한 ‘달인’의 무대이다. 결국 이곳에서 맛보게 되는 비후카츠 한 조각은, 한 요리인이 세대를 건너 이어온 장인정신의 결정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