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의 시골 마을, 숨겨진 집밥 고수를 찾아서
산뜻한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는 계절, 전국 방방곡곡 집밥의 고수를 찾아 어디든 달려가는 프로그램 **〈한상 잘 차렸습니다〉**의 제작진이 이번에 향한 곳은 바로 경상북도 경주였다. 천년 고도의 품격을 간직한 고즈넉한 도시 경주, 그중에서도 도심을 벗어난 한적한 시골 마을 한 편에 이 시대 진정한 집밥의 고수가 살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 주인공은 바로 올해로 일흔여덟을 맞이한 양경자(78) 씨다.
경자 씨를 처음 만나는 순간, 누구라도 그 넉넉하고 따뜻한 인상에 마음이 절로 편안해진다. 세월의 흔적이 새겨진 손이지만 그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음식은 여전히 생기 넘치고 향기롭다. 그 손이 걸어온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면, 무려 60년에 달하는 집밥 경력이 펼쳐진다. 열아홉 살 꽃다운 나이에 결혼과 동시에 부엌을 책임지기 시작한 경자 씨는 그 이후 하루도 빠짐없이 가족을 위한 밥상을 차려왔다. 단순한 살림꾼이 아니었다. 60년 경력 중 무려 40년은 식당을 직접 운영하며 불특정 다수의 손님들에게도 자신의 손맛을 선보였으니, 그 내공은 이미 프로 중의 프로라 할 수 있다.
인생의 전환점, 귀촌 그리고 새로운 시작
그러나 인생은 언제나 계획대로만 흘러가지 않는 법. 경자 씨에게도 예기치 못한 굴곡이 찾아왔다. 15년 전, 건강이 급격히 나빠지면서 어쩔 수 없이 40년 동안 정들었던 식당 문을 닫아야 했다. 평생을 바쁘게 달려온 사람에게 갑작스러운 멈춤이란 얼마나 낯설고 두려운 것인가. 하지만 경자 씨는 좌절하지 않았다. 오히려 고향을 떠나 경주의 시골 마을로 귀촌이라는 새로운 선택을 했다.
자연 속에서의 삶은 경자 씨에게 제2의 인생을 선물해 주었다. 도시의 번잡함 대신 사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며, 직접 땅을 일구고 씨를 뿌리고 수확하는 농사의 즐거움을 깨달아갔다. 그리고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건강이 안 좋아 식당을 닫을 수밖에 없었던 경자 씨가, 귀촌 이후 겨울에도 감기 한 번 걸리지 않을 만큼 건강을 되찾은 것이다. 제철 식재료로 차리는 정갈한 집밥이 그 어떤 보약보다 나은 치료제가 된 셈이다.
삼식이 아들과의 행복한 동행
경자 씨의 귀촌 생활에서 빠질 수 없는 인물이 있다. 바로 아들 정성종(58) 씨다. 어머니와 함께 시골 생활을 택한 성종 씨는 어느새 하루 세 끼를 어머니가 차려주는 밥으로 해결하는 이른바 **’삼식이’**가 되었다. 삼식이란, 하루 세 끼를 집에서 먹는 사람을 다소 익살스럽게 일컫는 말이지만, 경자 씨 모자에게 있어 이 삼시 세끼는 단순한 식사가 아니다. 그것은 모자가 함께 텃밭을 가꾸고, 함께 수확하고, 함께 부엌에 서고, 함께 밥상에 둘러앉는 하루의 리듬이자 삶의 방식 그 자체다.
성종 씨에게 어머니의 밥상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을 넘어선 의미를 지닌다. 어머니가 새벽부터 텃밭에 나가 손수 뜯어온 나물, 직접 담근 된장으로 끓여낸 국, 작년에 수확해 고이 말려둔 고사리로 만든 나물 반찬 — 이 모든 것이 성종 씨에게는 세상 어디서도 살 수 없는 값진 밥상이다. 덕분에 성종 씨 역시 건강하게 지내고 있음은 물론, 어머니 곁에서 함께하는 일상 자체가 인생 최고의 행복이라고 말한다.
봄의 정수, 쑥국 한 그릇
이날 경자 씨가 가장 먼저 선보인 요리는 쑥국이었다. 봄이 되면 텃밭 곳곳에서 푸릇푸릇하게 돋아나는 쑥은 경자 씨에게 봄을 알리는 가장 반가운 신호다. 쑥은 예로부터 봄철 대표적인 약초이자 식재료로, 특유의 향긋하고 쌉싸름한 향이 입안을 봄으로 물들인다.
경자 씨의 쑥국에는 특별한 비법이 숨어 있다. 바로 들깻가루를 쑥에 조물조물 무쳐서 넣는 것이다. 들깻가루는 고소한 풍미를 더해줄 뿐만 아니라 쑥의 거친 식감을 부드럽게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들기름 특유의 구수한 향이 쑥의 청아한 봄향기와 어우러지면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향의 잔치가 벌어진다. 여기에 5년 된 된장을 더해 함께 끓여내면 깊고 진한 발효의 맛이 국물 전체를 감싸 안는다. 오랜 세월을 기다려온 된장의 농익은 맛과 방금 봄땅을 박차고 올라온 쑥의 생기가 만나 빚어내는 조화는 그야말로 자연이 허락한 최고의 맛이라 할 만하다.
국물 한 숟갈을 떠 입에 넣는 순간, 코끝을 간질이는 들깨 향, 입안을 가득 채우는 쑥의 봄향기,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된장의 구수한 여운 — 이 세 가지가 차례로 감각을 두드리며 “아, 봄이 왔구나”를 온몸으로 느끼게 해준다.
텃밭이 마트다, 제철 나물 반찬들
경자 씨 모자에게 텃밭은 단순한 정원이 아니다. 마트 없이도 사시사철 찬거리를 해결해주는 살아있는 식료품 창고다. 봄이 오면 텃밭에서는 갖가지 나물들이 경쟁하듯 올라온다. 이날 경자 씨가 텃밭에서 직접 뜯어온 식재료는 유채잎과 부지깽이였다.
유채잎은 봄철 대표 나물 중 하나로 약간의 쌉싸름함 속에 달콤함이 배어있어 무침 반찬으로 안성맞춤이다. 부지깽이는 경상도 지방에서 즐겨 먹는 향긋한 봄나물로, 독특한 향과 아삭한 식감이 특징이다. 경자 씨는 이 두 가지 제철 나물을 각각 살짝 데쳐 양념에 조물조물 무쳐 접시에 올렸다.
여기에 작년에 수확해 말려둔 고사리나물과 무나물도 빠지지 않고 밥상에 올랐다. 고사리는 봄에 채취해 말려두면 일 년 내내 두고두고 먹을 수 있는 귀한 저장 나물이다. 경자 씨표 고사리나물은 들기름에 볶아 고소함을 살리고, 간장과 마늘로 양념해 깊은 맛을 낸다. 무나물 역시 달큰하게 볶아낸 것이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우게 만드는 중독적인 맛을 낸다.
직접 키운 체리로 완성하는 봄날의 샐러드
모든 나물 반찬이 갖춰진 밥상의 마지막을 장식한 것은 뜻밖에도 체리 샐러드였다. 경자 씨가 직접 키운 체리를 수확해 신선한 채소와 함께 버무린 샐러드는 봄날의 밥상에 화사한 색감과 상큼한 맛을 더해주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달콤하고 새콤한 체리의 풍미가 기름지지 않고 담백한 나물 반찬들 사이에서 산뜻한 청량감을 선사하며 밥상 전체의 균형을 잡아준다. 고기 반찬 하나 없는 순수한 채식 밥상이지만, 쑥국의 구수함, 나물들의 향긋함, 그리고 체리 샐러드의 상큼함이 삼위일체를 이루며 밥 두 공기도 모자랄 것 같은 풍요로운 봄나물 한 상이 완성된 것이다.
밥상이 전하는 삶의 철학
경자 씨의 밥상에는 단순한 레시피 이상의 것이 담겨 있다. 19살부터 한 번도 쉬지 않고 가족을 위해 부엌에 서온 60년의 세월, 식당을 운영하며 수많은 사람들의 허기를 채워준 40년의 기억, 건강이 무너졌음에도 자연 속에서 다시 일어선 귀촌의 용기, 그리고 아들과 함께 텃밭을 가꾸며 삼시 세끼를 나누는 지금 이 순간의 행복 — 이 모든 것이 한 그릇의 쑥국 안에, 한 접시의 나물 반찬 안에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제작진마저 한 숟갈 떠먹는 순간 삼식이가 될 수밖에 없었다는 경자 씨의 봄나물 밥상. 그것은 단지 맛있는 음식이 아니라, 한 사람이 평생을 살아온 방식과 사랑이 담긴 인생의 한 상이었다.
〈한상 잘 차렸습니다〉는 이처럼 전국 곳곳에 숨어있는 집밥의 고수들을 찾아가 그들의 손맛과 삶의 이야기를 함께 담아낸다. 양경자 씨의 봄나물 한 상이 궁금하다면, 방송을 통해 직접 확인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