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고성군 죽왕면에 자리한 왕곡마을은 조선 후기 북방식 전통한옥이 집단으로 남아 있는 국내 유일에 가까운 민속마을로, 현재 국가민속문화유산(옛 국가민속문화재) 제235호로 지정되어 보존·관리되고 있습니다. 동해안의 바다와 송지호, 그리고 해발 200m 안팎의 다섯 개 산봉우리가 둘러싼 분지형 지형 위에 형성된 마을로, 자연환경·풍수·가옥구조가 하나의 생활 시스템처럼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건축사와 민속학 양쪽 모두에서 중요한 사례로 평가받습니다.
위치와 지형, 풍수적 의미
왕곡마을은 강원특별자치도 고성군 죽왕면 오봉리, 속초에서 7번 국도를 타고 북상하다가 내륙 쪽으로 약 1.5km 가량 들어간 곳에 자리합니다. 마을 이름 ‘왕곡(旺谷)’은 문자 그대로 ‘왕성한 골짜기, 번성하는 골짜기’라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실제로는 다섯 개의 산봉우리가 둘러싸 계곡처럼 파인 지형 속에 마을이 들어앉아 있는 형태입니다. 오봉리는 오음산을 주산으로 두백산, 공모산, 순방산, 제공산, 호근산 등 주변 산세에서 비롯된 이름으로, 마을은 이 산들 사이의 완만한 구릉과 낮은 들판, 그리고 송지호까지 이어지는 공간의 중심부에 놓여 있습니다. 풍수지리에서는 이 자리를 ‘병화하입지(兵火下入地)’라 부르며, 전쟁과 화마를 피할 수 있는 길지로 설명해 왔는데, 실제로 산으로 감싸고 바다와 약간 거리를 둔 분지형 입지는 외부 침입을 피하고 눈·바람을 완충하는 자연 요새 역할을 했습니다.
마을 내부 공간 구조를 보면 중앙에 작은 개울이 흐르고, 이 개울을 따라 마을 안길이 형성되어 있으며, 길을 중심으로 좌우에 가옥들이 자연스럽게 흩어져 배치되어 있습니다. 집과 집 사이에는 비교적 넓은 텃밭이 끼어 있어 엄격한 담장 대신 밭과 경작지가 경계이자 완충지대 역할을 하는데, 이 텃밭들은 자급적 식량 생산지이면서 동시에 화재 확산을 막는 방화선 역할도 수행해 왔습니다.
형성과 역사, 집성촌의 성격
왕곡마을의 역사는 고려 말·조선 초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기록과 구전에서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고려 말 조선 건국에 반대한 두문동 72현 가운데 한 사람인 양근 함씨 함부열이 간성 지역으로 낙향한 뒤, 그의 손자 함영근이 지금의 왕곡마을 일대에 정착하면서 마을의 기원이 열렸다고 전해집니다. 이후 강릉 함씨와 강릉 최씨, 그리고 용궁 김씨 등이 차례로 입촌해 집성촌을 이루었고, 14세기경부터 이 세 성씨 중심으로 600년 넘게 세거해 온 전통 마을이 형성되었습니다.
임진왜란을 거치며 마을이 크게 훼손되었다가 일부 폐허가 되기도 했지만, 전쟁 이후 다시 재건되면서 현재 우리가 보는 왕곡마을의 공간 구조와 가옥들이 18~19세기 전후에 집중적으로 세워졌습니다. 19세기 전후에 건립된 북방식 전통한옥과 초가집이 원형에 가깝게 남아 있다는 점이 높게 평가되어, 1983년 전통건조물 보존지구로 지정되었고, 이어 2000년 1월 7일 국가민속문화재(현 국가민속문화유산) 제235호로 승격 지정되었습니다.
600년 동안 이어진 집성촌이라는 점은 단순한 혈연 공동체를 넘어 생활양식과 의례, 관습이 한 울타리 안에서 축적되었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제사, 혼례, 장례와 같은 통과의례와 세시풍속, 농경 의례 등이 동일한 성씨 집단을 중심으로 재생산되면서 마을 단위의 문화적 규범과 공동체 의식이 강하게 유지될 수 있었고, 이는 자연스럽게 ‘마을 공동체가 곧 문화재’라는 현재의 정체성으로 이어졌습니다.
북방식 전통한옥과 가옥 구조의 특징
왕곡마을의 가장 큰 특징은 국내에서 보기 드문 ‘북방식 전통한옥’이 밀집해 있다는 점입니다. 함경도·강원 북부·경북 북부 등 한랭한 기후대에서 발달한 주거양식을 반영하고 있는데, 혹독한 겨울을 견디기 위해 방과 부엌, 외양간 등을 한 건물 안으로 통합한 구조가 대표적입니다.
가옥 구조는 대체로 안방, 도장방(부엌과 연계된 작업·살림 공간), 사랑방, 마루, 부엌이 한 동 안에 수용된 ‘양통집’ 구조를 보입니다. 부엌 옆에는 외양간이 붙어 있어 가축의 체온이 집 내부 온도 유지에 도움을 주고, 한 겨울에도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 가축을 돌볼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방들은 대부분 남향 또는 남서향을 취해 겨울철 낮은 일사량을 최대한 흡수하게 했고, 마당 역시 햇빛을 잘 받을 수 있도록 개방해 난방 효율을 높였습니다.
왕곡마을에는 북방식 기와집 21동과 초가집 1동이 대표적인 전통가옥으로 소개되지만, 민속자료 지정 당시 조사 기준으로는 초가와 기와를 포함해 약 50여 채의 가옥이 19세기 원형을 유지한 채 남아 있는 것으로 평가되었습니다. 이 집들은 기단을 낮게 올리고, 처마를 과도하게 길게 내리지 않으며, 지붕의 무게 중심을 낮추어 강풍과 대설에 대비한 구조를 채택했습니다. 굴뚝은 진흙과 기와 조각을 한 켜씩 쌓아 올린 뒤 위에 항아리를 엎어놓는 독특한 형태인데, 이는 불길이 초가 지붕에 옮겨붙는 것을 방지하면서도 연기가 잘 빠져나가도록 만든 북방형 굴뚝의 전형입니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마을 대부분의 집들이 대문이 없거나, 낮은 담장만을 두고 앞마당을 마을길과 거의 맞닿게 열어두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외부와의 소통을 중시한 공동체 문화의 표현이자, 겨울철 바람과 눈을 집 앞에서 막기 위해 담장을 높이 쌓기보다는 최대한 일사량과 출입 편의를 확보하려는 기후 대응 전략의 결과로 해석됩니다. 반면 뒤쪽 마당은 비교적 높은 담으로 둘러 개방된 앞마당과 달리 여성과 가족만의 사적 공간으로 쓰였고, 이는 전통사회에서의 성 역할 분담과 공간 분할 방식을 잘 보여줍니다.
생활 풍경과 문화, 계절의 표정
왕곡마을은 형태가 잘 보존된 전통가옥들뿐 아니라 그 속에서 이어져 온 생활 방식과 계절 풍경이 어우러져 하나의 거대한 야외 박물관 같은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가을이면 집집마다 마당과 마을길 담벼락에 고추와 곡식이 널려 말라가는 풍경이 펼쳐지는데, 붉은 고추와 누렇게 익은 곡식단이 낮은 초가·기와지붕과 어우러져 이른바 ‘한국 농촌 가을 엽서’ 같은 장면을 연출합니다. 이 시기는 특히 사진가와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시기로, 마을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세트장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겨울에는 동해안 특유의 많은 눈이 마을을 뒤덮으며, 눈에 파묻힌 낮은 초가와 기와지붕, 그리고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북방 농촌마을의 계절감을 극대화합니다. 흰 눈과 어두운 기와의 대비, 안길을 따라 난 발자국과 마당의 장작더미, 외양간을 드나드는 흔적 등은 오늘날 도시에서는 보기 어려운 느림의 리듬과 생활의 농도를 느끼게 합니다. 이와 같은 계절 풍경 덕분에 왕곡마을은 오래전부터 드라마·영화 촬영지로도 자주 활용되어 왔고, ‘시간이 멈춘 듯한 마을’이라는 인상이 여행 기사와 홍보 글에서 반복적으로 소환됩니다.
생활문화 측면에서 보면, 왕곡마을은 강원 북부의 농경·어업 복합 생계 구조가 투영된 공간입니다. 마을 자체는 내륙 분지에 있지만, 차로 조금만 나가면 동해와 송지호가 있어 고기잡이와 해산물 채취가 가능했고, 마을 안과 주변에서는 밭농사와 논농사, 산나물 채취 등이 이루어졌습니다. 집과 텃밭, 산과 바다를 연결하는 이 생활 반경은 곡식·채소·해산물이 한 상에서 만나는 ‘동해안 농·어·산촌 식문화’를 만들어냈고, 이는 제사와 세시음식, 일상식에 반영되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보존, 관광, 그리고 오늘의 의미
왕곡마을이 오늘날까지 원형에 가깝게 유지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1980년대 이후 전통건조물 보존지구 지정과 2000년대 국가민속문화유산 지정이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지정 이후 마을 내 전통가옥의 신축·개축은 엄격한 심사를 거쳐야 하고, 외관과 재료, 지붕 형태 등은 가능하면 원형을 유지하도록 규제·지원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주민들이 실제로 거주하며 생활하는 ‘살아 있는 마을’이라는 점을 감안해, 보존과 생활 편의 사이의 균형을 모색하는 시도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관광지로서의 왕곡마을은 전통 한옥 체험과 역사·건축 답사를 동시에 할 수 있는 장소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일부 고택은 한옥 체험 숙소나 문화체험 공간으로 활용되며, 방문객들은 방과 마루, 온돌과 부엌, 마당과 텃밭 등을 직접 체험하며 과거 북방 농촌의 일상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인근에는 라벤더 농장(예: 하늬라벤더팜)과 송지호, 동해 해변 등이 있어 왕곡마을을 중심으로 한 하루 코스 또는 1박 2일 코스가 강원도 대표 여행 루트 중 하나로 소개되곤 합니다.
한편, 외지 관광객 증가와 상업화 압력은 마을의 ‘생활 문화재’로서의 성격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라는 과제를 던지고 있습니다. 전통은 지키되, 주민들의 삶을 너무 억압하지 않는 방식의 보존 정책, 너무 자극적이지 않은 관광 마케팅, 그리고 지역 주민 주도의 프로그램 기획 등이 앞으로 왕곡마을의 지속 가능성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단지 옛집이 잘 남아 있는 박제된 공간이 아니라, 지금도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천천히 시간의 층위를 더해가는 마을이라는 점이 왕곡마을이 지닌 가장 큰 가치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