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죽염 명인은 크게 국가가 공식 지정한 수산식품명인·식품명인 체계와 민간 단체의 ‘대한명인(죽염 부문)’ 등으로 나뉘며, 전통 제조법을 현대적으로 계승·산업화한 장인들이 포진해 있습니다. 여기서는 제도적 명인 체계, 대표 명인들의 인물·제조 철학, 죽염 명인의 역사적 배경까지 정리하겠습니다.
죽염과 ‘명인’ 제도의 기본 구조
우리나라에서 ‘죽염 명인’이라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은 먼저 국가 제도 안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해양수산부는 수산물을 원료로 하는 가공식품 분야 장인을 ‘대한민국 수산식품명인’으로 지정하고, 농림축산식품부는 장류·식초·떡·전통주 등 다양한 전통 식품 장인을 ‘대한민국 식품명인’으로 지정합니다. 죽염은 소금(수산물 가공품)이라는 특성 때문에 수산식품명인 체계에서 처음 공식적인 죽염 명인이 나왔고, 동시에 농식품부 식품명인 목록에도 죽염·죽염된장 등 관련 항목이 일부 포함되며 교차 영역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이와 별도로 (사)대한명인문화예술교류회 등 민간단체가 죽염 부문 ‘대한명인’을 선정해, 제도권 명인 외에 오랜 세월 한 분야를 파온 장인들을 발굴·예우하기도 합니다.
죽염 자체는 서해안 천일염을 대나무 통에 넣고 황토로 밀봉한 뒤, 소나무 장작 불 혹은 고온 용융로에서 여러 차례 반복해 굽는 방식으로 만들어집니다. 이 과정에서 천일염 속 불순물과 수분을 날려 보내고, 대나무·황토·송진 등에서 나온 성분이 염과 함께 법제(法製)된다는 것이 한의학적 설명입니다. 특히 9회 소성(구움)을 거친 죽염은 ‘9회 죽염’ 혹은 ‘자죽염’으로 불리며, 가장 공력이 많이 들어가는 제품군으로 명인들이 자신의 기술력을 집약해 내놓는 대표작으로 활용합니다.
개암죽염 정락현 명인의 죽염 산업화
전북 부안 곰소염전·개암사 일대에서 활동하는 정락현 명인은 죽염의 산업화와 제도권 안착을 이룬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그는 곰소염전에서 생산한 천일염을 원료로, 대나무 속에 소금을 담아 황토로 막고 고온에서 8번 굽고 태운 뒤 9번째에는 녹여서 완성하는 전통 방식을 기반으로 현대식 용융로 시스템을 도입해 대량 생산 체계를 구축했습니다. 이 공정은 1 800~2 000도에 이르는 고온에서 장기간 소성하여 색이 오색을 띠는 ‘오색식염’으로 완성되는 것이 특징입니다.
정락현은 1988년 정부로부터 죽염 제조 허가를 받으며 본격적인 기업형 죽염 생산에 뛰어들었고, 전북 부안 상서면 개암사 입구에 ‘개암죽염’을 세워 수십 년 동안 죽염을 전문 생산해 왔습니다. 이 과정에서 한국죽염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을 9년째 맡는 등 업계의 조직화와 품질 관리 기준 수립에도 기여했으며, 죽염 업계 최초로 대통령 표창을 두 차례 수상했습니다. 2015년에는 해양수산부로부터 대한민국 수산식품명인(수산3호, 죽염1호)으로 지정되어 국가 공인 죽염 명인 1호라는 상징성을 갖게 되었고, 곰소염전 천일염·왕대나무·황토·고온 용융로를 활용한 죽염 제조 기능 보유자로 공식 인정받았습니다.
그가 운영하는 개암죽염은 2회·3회 구운 죽염부터 9회 자죽염까지 다양한 제품군을 갖추고 있으며, 국내외 인증(ISO, FSSC22000, 할랄 등)을 통해 전통 식품을 글로벌 시장에서도 경쟁 가능한 상품으로 끌어올리고자 했습니다. 대표적인 FMCG 사례로는 LG생활건강의 죽염 치약 원료 공급처가 개암죽염이라는 사실이 알려져, 죽염을 치약·구강용품까지 확장한 대표적 협업 사례로 회자됩니다.
인산 김일훈과 인산가 계보
현대 죽염 담론에서 빠지지 않는 인물이 한의학자 인산 김일훈입니다. 김일훈은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 건국 초기 활동한 한의사이자 약초 연구가로, 대체의학가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우리가 오늘날 알고 있는 방식의 ‘인산식 죽염’과 유황오리를 처음 발명한 인물로 평가되며, 다슬기·유황·홍화씨 등 다양한 재료의 효능을 연구해 암 치료제 오핵단, 사리장 등 독특한 처방과 제제를 개발했습니다. 특히 서해안 천일염을 지리산 왕대나무 속에 담고 소나무 송진 불로 아홉 번 굽는 죽염 제조법을 체계화하여 민간에 확신을 주었고, 만년에는 죽염 보급을 위해 1987년 ‘인산가’를 설립했습니다.
현재 인산가를 이끄는 김윤세 회장은 김일훈의 철학과 제조법을 이어받아 50년 이상 죽염 한길을 걸어온 수산식품명인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는 대한민국 수산식품명인 제4호(죽염 부문)로 지정되었으며, 자연 재료와 수백 번의 손길, 긴 숙성 기간이 어우러져 완성되는 ‘인산가 9회 죽염’을 통해 인산식 죽염의 계보를 잇고 있습니다. 인산가 죽염 역시 서해안 천일염·왕대나무·소나무 송진을 기본 재료로 삼고 9회 소성을 고집하며, 이를 한방적 법제 개념과 결합해 다양한 건강 보조 식품·생활용품 라인업으로 확장해 나가고 있습니다.
다만 죽염의 기원을 인산 김일훈에게만 두는 주장에 대해서는 학계와 업계의 논쟁도 존재합니다. 약학·본초서 기록을 보면 이미 1765년 편찬된 ‘본초강목습유’에 죽염 제조법이 등장하고, 백제 무왕 시기인 7세기경부터 전북 부안 개암사에서 주지 스님들에게 비전되었다는 전승이 있어, 인산은 전통 죽염을 현대적으로 재구성·대중화한 인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반론이 제기됩니다.
무형문화재·민간 ‘대한명인’으로서의 죽염 장인들
죽염 명인을 이야기할 때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죽염제조장’ 계보도 중요합니다. 부안 개암사 전 주지 효산(속명 허재근)은 개암사에 전해 내려오던 비전 죽염 제법을 수집·정리해 현대에도 적용 가능한 전통 제조법으로 안정시킨 인물로,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99년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23호 ‘죽염제조장’ 기능 보유자로 지정되었습니다. 이후 2005년에는 이 기능이 제자 김인석에게 전수되어, 사찰 전통에 뿌리를 둔 죽염 제조 기술이 문화재 제도를 통해 보호·계승되는 구조가 만들어졌습니다.
민간 차원의 ‘대한명인(죽염부문)’으로는 인산가 계열의 최은아 명인을 들 수 있습니다. 그는 인산에게서 정통 죽염 제조법을 전수받고, 2006년 (사)대한명인문화예술교류회로부터 죽염부문 ‘대한명인’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최은아 명인이 설명하는 죽염 제조는 한의학에서 말하는 법제에 해당하는데, 자연 상태의 식물·동물·광물을 약으로 쓰기 위해 가공하는 일련의 과정 전체를 의미합니다. 죽염의 경우 약 50일에 걸쳐 여러 차례 굽고 식히는 공정이 이어지며, 이 과정에서 염의 성분이 가장 안정되고 유효성분 구성이 완전해지는 지점을 경험적으로 9회 소성으로 도출했다는 설명을 덧붙입니다. 이러한 설명은 과학적 분석 결과와는 별개로, 죽염 명인들이 공정 숫자와 시간을 중요하게 여기는 전통적 인식을 잘 보여 줍니다.
한편, 무형문화재 지정을 받았다고 해서 자동으로 죽염의 역사성과 정통성이 모두 입증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짚힐 필요가 있습니다. 현행 ‘무형문화재 보전 및 진흥에 관한 법률’은 구술에 의한 기능 전승도 지정 요건으로 인정하기 때문에, 문헌·고고학적 고증이 완벽하지 않아도 기능 보유자로 지정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도권에서 기능 보유자를 지정하고 지원하는 체계는, 죽염처럼 설명하기 어려운 전통 제조법을 다음 세대로 계승하는 데 중요한 기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죽염 명인의 의미와 현재적 가치
정리하면 대한민국 죽염 명인은 국가의 수산식품명인·식품명인 제도, 지방 무형문화재 제도, 민간 명인 제도가 서로 겹치며 형성하는 다층적 구조 속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정락현 명인과 개암죽염은 곰소염전·개암사 계보를 바탕으로 죽염의 산업화를 이끌어 국가 지정 수산식품명인 1호가 되었고, 인산 김일훈과 그 후손·관련자는 인산식 죽염이라는 독자적 계보를 구축하여 대체의학적 죽염 서사를 만들어 왔습니다. 또 효산·김인석으로 이어지는 무형문화재 죽염제조장과 최은아 대한명인은 사찰 전통과 민간 한의학이 만나는 접점에서 장인의 길을 걷고 있으며, 이들의 공력은 지역 문화와 종교, 식품 산업을 잇는 중요한 축을 이루고 있습니다.
죽염 명인들의 활동은 단순히 소금을 특별하게 굽는 기술에 그치지 않고, 지역 염전과 대나무 산지, 황토 채취지와 연계된 농어촌 경제 생태계를 지탱하는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치약·화장품·가공식품 등 다양한 분야 기업과의 협업을 통해 전통 식품을 현대 소비재 시장으로 확장하는 사례를 보여주며, 한국형 웰니스·K-푸드 스토리텔링의 핵심 자산으로도 활용됩니다. 이런 점에서 죽염 명인은 과거 전승 기술의 보존자이면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혁신가라는 이중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