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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형 퍼포먼스 리모트 서울

참여형 퍼포먼스 ‘리모트 서울(Remote Seoul)’은 관객 30명이 헤드폰을 쓰고 서울 도심을 120분간 함께 걸으며, 인공지능(AI) 음성 안내에 따라 행동하고 선택하면서 스스로 배우이자 관객이 되는 오디오 워킹 투어 형식의 거리 공연이다. 독일 창작 집단 리미니 프로토콜(Rimini Protokoll)의 대표 연작 ‘리모트 X’ 시리즈의 서울 버전으로, 강남 일대와 국립서울현충원 등을 거대한 무대로 삼아 일상과 예술, 개인과 집단, 인간과 알고리즘의 관계를 실험하도록 설계된 참여형 퍼포먼스다.

작품 개요와 콘셉트

‘리모트 서울’은 전통적인 극장 무대에서 벗어나 실제 도시 공간 전체를 공연장으로 확장시키는 도시형다큐멘터리 연극 프로젝트다. 관객은 극장 객석에 앉아 있는 대신, 출발 지점에서 헤드폰을 착용한 채 지하철역, 횡단보도, 쇼핑몰, 공원 등 서울 시민의 일상 동선을 그대로 따라 걸으며 공연에 참여한다. GS아트센터의 2026년 기획 시즌 일환으로 한국에 초연되는 이 작품은, 베를린·뉴욕·런던·파리 등 전 세계 65개 도시에서 진행된 ‘리모트 X’ 프로젝트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서울의 지형과 문화, 시민의 행동 패턴을 반영해 새로 구성되었다.

작품의 핵심은 ‘알고리즘이 안내하는 도시에서 개인의 자유 의지는 어떻게 작동하는가’라는 질문이다. 인공지능 음성은 관객에게 걷기, 멈추기, 바라보기, 모여 서기, 흩어지기, 때로는 뛰기 같은 구체적인 행동을 지시하며, 관객은 이를 따르거나 거부하는 선택의 순간을 반복해서 맞닥뜨린다. 이 과정에서 참가자들은 자신이 얼마나 자율적으로 선택하고 있다고 느끼는지, 다수의 흐름에 편승하고 있지는 않은지,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일상을 조정하는 현실과 겹쳐 생각하게 된다.

동선, 공간, 그리고 ‘도시라는 무대’

서울 버전의 가장 상징적인 지점은 출발 장소가 국립서울현충원으로 설정됐다는 점이다. 현지 연출을 맡은 외르크 카렌바워는 약 3주 동안 서울에 머물며 지형과 시민들의 움직임을 리서치한 뒤, 현충원의 엄숙함과 자연, 그리고 강남 도심의 속도감과 상업성이 극명하게 대비되도록 동선을 짰다. 제작진은 국립현충원이 인간의 유한성과 기억, 통제된 공간을 상징하고, 이어지는 강남 구간이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자본과 소비가 지배하는 무한한 흐름을 상징하는 구조를 의도했다고 설명한다.

관객은 현충원의 조용한 묘역과 숲길에서 시작해 지하철역 플랫폼, 환승통로, 번화한 강남 거리, 상업 시설 등을 차례로 통과하며 점점 더 복잡한 도시 시스템 속으로 스며든다. 지하철역과 에스컬레이터, 횡단보도는 그 자체로 ‘무대 장치’가 되고, 출근길 인파나 쇼핑객, 차량 행렬은 사전에 섭외되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공연의 ‘엑스트라’ 역할을 하게 된다. 익숙한 공간이 낯선 연극적 맥락으로 재구성되면서, 관객은 서울이라는 도시를 처음 보는 관광객처럼 새롭게 인식하게 되는 경험을 한다는 후기가 이어지고 있다.

관객의 역할과 AI의 지시

이 공연에서 관객은 ‘관찰자’와 ‘출연자’의 경계를 동시에 점유한다. 30명의 참가자는 모두 동일한 헤드폰을 착용하지만, AI 음성은 때때로 집단을 소그룹 혹은 개인 단위로 나누어 서로 다른 지시를 내리며, 이로 인해 집단 내에서 역할과 시선이 끊임없이 바뀐다. 예를 들어 일부에게는 에스컬레이터에서 무용수의 동작을 흉내 내도록 시키고, 다른 일부에게는 그 장면을 몰래 관찰하도록 지시하는 식으로, 같은 장소에서 완전히 다른 경험이 동시에 발생한다.

AI 음성의 톤은 다큐멘터리 내레이션과 실험적인 심리 테스트 사이 어딘가에 위치해 있으며, 때로는 질문을 던지고, 때로는 참여자의 선택을 유도하거나 갈등을 조성한다. 관객은 “당신은 이 상황에서 다수의 선택을 따르겠습니까, 아니면 혼자 다른 길을 가겠습니까?”와 같은 질문을 듣고 실제로 발걸음을 옮겨야 하며, 그 선택의 결과로 집단의 구성과 장면의 구도가 즉각적으로 바뀐다. 이렇듯 공연은 완성된 서사를 보여주는 대신, 미리 설정된 규칙과 상황 속에서 관객의 반응, 우발적인 사건, 주변 시민들의 움직임에 따라 매번 다른 형태로 생성된다.

다큐멘터리 연극으로서의 성격

리미니 프로토콜은 다큐멘터리 연극의 선구자로 불리며, 전문 배우 대신 ‘일상의 전문가’인 시민들을 무대에 올려 현실의 담론을 예술적으로 조직해 온 집단이다. ‘리모트 서울’ 또한 처음부터 끝까지 고정된 극본을 따라가기보다는, 사회적 실험에 가까운 상황과 느슨한 규칙, 그리고 도시라는 살아 있는 환경을 재료로 삼는다. 참가자들은 도시 인프라와 군중, 안내 방송, CCTV, 교통 신호 등 기존에 ‘배경’으로만 인식했던 요소들과 새롭게 관계 맺으면서, 자신이 거대한 도시 시스템의 일부라는 사실을 감각적으로 체험한다.

이러한 방식은 오늘날 우리가 스마트폰 내비게이션과 알고리즘 추천, 위치 기반 서비스에 의존해 이동하고 소비하는 일상과도 직결된다. 관객은 공연이 진행되는 120분 동안, 알고리즘의 안내에 따라 ‘효율적인 이동’을 하는 대신, 비효율적이고 낯선 우회, 의미 없는 동작, 예측 불가능한 집단 행동을 수행하면서, 평소 자신의 행동을 조정해 온 보이지 않는 규칙들을 의식하게 된다. 이 점에서 ‘리모트 서울’은 단순한 체험형 투어나 놀이가 아니라, 동시대 도시 생활과 기술 환경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게 만드는 다큐멘터리 퍼포먼스로 자리매김한다.

국내 반응과 향후 의미

2026년 4월 3일부터 5월 10일까지 서울 강남 일대에서 진행되는 이번 초연은 티켓 오픈과 동시에 전 회차 매진을 기록하며 관객과 공연계의 높은 관심을 입증했다. ‘관객이 곧 배우’라는 캐치프레이즈처럼,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흐리는 새로운 형식의 공연을 직접 체험하려는 수요가 커진 덕분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지하철역과 에스컬레이터, 횡단보도 등 누구에게나 익숙한 공간이 공연의 중심 무대로 전환되는 방식은, 최근 국내에서 부상하는 ‘이색 체험형 공연’ 흐름과 맞물려 하나의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예술적 측면에서는 AI와 도시를 결합한 참여형 퍼포먼스를 통해, 기술과 인간, 개인과 집단, 일상과 예술의 경계에 대한 철학적 논의를 촉발시키는 효과가 기대된다. 동시에 관광·지역브랜딩 관점에서는, 강남이라는 이미 친숙한 상업 지구를 새로운 서사와 체험으로 재해석함으로써, 도시 경험을 ‘소비’가 아닌 ‘참여’의 차원으로 확장하는 모델로도 주목받고 있다. 이처럼 ‘리모트 서울’은 공연 양식의 실험을 넘어, 서울이라는 도시 자체를 재구성하고 재인식하게 만드는, 복합적인 의미를 지닌 참여형 퍼포먼스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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