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동안 아이의 성장과 함께 보냈던 시간은 긴 여정이었다. 서나비 씨(41)는 결혼과 동시에 맞닥뜨린 낯선 도시 생활 속에서 타지로 이사 온 외로움을 꾹 눌러가며 아이의 일상에 모든 에너지를 쏟았다. 낮과 밤의 경계가 흐려지는 육아의 시간, 반복되는 집안일과 아이 울음소리에 가려진 자신의 목소리를 잃어버리는 건 순식간이었다. 그러다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고, 하루의 공백이 조금 생기자 그동안 묵혀 있던 감정들이 서서히 떠올랐다.
“내가 좋아했던 게 뭐였더라?”
그 질문 하나가 마음속에 깊이 박혔다.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로 살아오며 자신을 정의해왔던 삶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그 마음은 쉽사리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산후우울증은 생각보다 오래, 깊게 잔상을 남겼다. 불안과 무력감이 교차하던 어느 날, 잠시 바람을 쐬기 위해 나선 거리에서 눈에 들어온 건 길가에 주차된 오토바이 한 대였다. 매끄럽게 빛나는 금속성 광택, 차가운 기계임에도 왠지 모르게 자유의 냄새를 풍기던 그것이 이상하게도 마음을 붙잡았다. 그날 이후, 그는 매일 그 바이크가 있던 골목을 일부러 지나쳤다. 그리고 어느 순간 결심이 섰다. ‘한번 배워보자. 내 인생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어보자.’
바이크를 타본 적조차 없던 그는 생전 처음으로 운전면허 학원에 등록했다. 낯선 장비와 균형 잡기 어려운 두 바퀴 앞에서 좌절하기도 했지만, 서나비 씨는 매일 하루 두 시간씩 연습을 멈추지 않았다. 연습을 거듭하며 두려움이 자신감으로 바뀌던 어느 날, 처음으로 바이크를 완전히 제어해 코너를 돌아 나가던 순간, 가슴속에서 묘한 해방감이 터져 나왔다. 두 달 뒤, 드디어 자신의 바이크를 손에 넣었다. 그리고 평생 처음으로 ‘나를 위한 취미’를 시작했다.
새 바이크는 그녀의 취향을 그대로 닮았다. 자신이 직접 색을 고르고, 분해 후 재도색까지 손수 진행했다. 핑크색의 바이크는 남편이나 친구의 도움 없이 오직 그녀의 손끝에서 완성된 작품이었다. 엔진을 켤 때마다 진동이 손끝을 타고 전해지고, 헬멧 속으로 스며드는 바람은 ‘살아있다’는 실감을 주었다.
이제 서나비 씨의 하루는 이전과 다르다. 집앞 부산 남구의 골목길에서 출발해 광안리 해변을 지나 달맞이고개를 오른다. 차로는 아무렇지 않게 스쳐 갔던 길도, 바이크로 달릴 때는 전혀 새로운 표정을 보여준다. 커브를 돌 때 마주치는 낯선 시선, 바다 냄새 섞인 바람, 손을 들어 인사하는 동네 주민들—그것들은 그녀가 오래 잊고 지냈던 ‘세상과의 교류’였다.
라이딩 중 찍은 사진과 영상을 SNS에 올리기 시작하면서 변화는 더 활발해졌다. 팔로워들과 함께 부산 곳곳의 로컬 코스를 공유하며, ‘엄마 라이더’, ‘핑크 바이크 언니’로 불리게 되었다. 그녀가 소개하는 코스는 단순한 도로 안내가 아니다. 시장 골목의 오뎅집, 언덕 끝의 작은 커피숍, 일몰이 가장 예쁜 포인트 같은 생활 속 공간들이 담긴다. 자동차로는 느낄 수 없는, 느리지만 섬세한 시선의 부산이다.
“바이크를 타면 제 자신에게 집중하게 돼요. 그동안은 늘 누군가를 챙기고, 맞춰주고, 기다렸는데 이제는 오롯이 ‘나’의 시간이에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미소 지었다.
물론 가족의 시선이 처음부터 따뜻했던 건 아니다. 남편은 안전 걱정이 앞섰고, 아이는 처음엔 엄마의 헬멧 착용 모습이 낯설다고 했다. 하지만 엄마가 점점 활기를 되찾는 모습을 보며 가족들도 서서히 이해하게 됐다. 주말이면 아이가 먼저 “오늘은 어디까지 가볼 거야?”라며 SNS 피드를 함께 본다. 가족이 함께 바이크를 닦고 도색을 수정하는 일이 이제는 하나의 놀이가 되었다.
서나비 씨는 자신이 바이크를 시작하며 찾은 건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자존감’이라고 말한다. 바이크는 그녀에게 외로움을 잊게 한 도구이자, 세상을 다시 바라보게 한 창이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이 더 이상 ‘누군가의 그림자’가 아니라 스스로의 주체로 서 있다는 사실이 그녀를 흔들림 없이 지탱한다.
“바람을 맞으며 달릴 때마다 조금씩 가벼워지는 느낌이에요. 과거의 무거운 기억들이 바람에 날아가 버리는 것 같죠.”
봄의 부산을 달리는 핑크 바이크 뒤로 머리카락이 흩날린다. 그 안에는 과거의 상처도, 망설임도, 그리고 새출발의 설렘도 함께 섞여 있다. 길 위에서 서나비 씨는 더 이상 남의 이야기 속 인물이 아니다. 그녀는 자신이 선택한 인생의 주행로 위를 당당히 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