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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N 강릉 서지마을 산야초 커피 수제차 백련차 카페 (커피 한잔 할래요)

강릉 시내를 벗어나 남쪽으로 얼마쯤 달리면, 옛 정취를 고스란히 품은 산촌마을 하나가 나온다. 나지막한 담장과 기와지붕이 이어진 골목길, 그 끝에 ‘서지마을’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200년의 역사를 가진 이 마을은 예부터 ‘강릉의 종갓집 마을’로 유명했다.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은 것이 있다면, 바로 사람의 정과 맛의 전통일 것이다. 오늘 우리가 찾아온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이 마을에는 유난히 정갈한 음식 솜씨로 소문이 난 이가 있다. 바로 최씨 종가의 맏며느리 김영(72) 씨다. 그녀의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음식은 단순히 먹거리의 차원을 넘어, 한 가족의 역사와 마을의 정체성을 지켜내는 문화유산과도 같다.

시간의 향기를 품은 종갓집

마당을 가로지르면 오래된 감나무가 가지를 뻗고 있다. 햇살이 기와를 비추며 반짝이고, 마루 위에는 봄맞이 단장 중인 남편 최민영(74) 씨가 땀을 훔치고 있다. 한옥의 마루는 오래된 세월만큼이나 반질반질하고, 문틈새로는 구수한 볕 냄새가 풍긴다. 흙담으로 둘러싸인 이 집은 마치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들어온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김영 씨는 시원한 보리차 한 잔을 남편에게 건네며 웃는다. “이런 날엔 커피보다 이게 더 시원해요.” 하지만 요즘 이 집을 찾는 손님들은 모두 그녀의 손으로 내리는 ‘산야초 커피’를 찾는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시절, 손님이 끊기며 운영하던 한정식집을 문 닫을 수밖에 없었던 그녀는, 집 안의 사랑방을 개조해 작은 카페로 새 출발을 했다. 이름은 단순하게 ‘서지한옥카페’. 하지만 그 안에는 그녀의 손맛과 마음, 그리고 종가의 전통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손맛의 전통, 카페로 이어지다

김영 씨의 원래 꿈은 종갓집의 음식문화를 현대적으로 계승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종부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면서, 손님들에게 정성스러운 한상차림을 내놓는 한정식집을 열었다. 그 가운데 가장 인기 있던 메뉴가 바로 ‘씨종지떡’. 이름이 다소 생소하지만, 그 유래는 깊다.
옛날 농번기, 일꾼들이 힘을 낼 수 있도록 종부가 직접 찹쌀 반죽 사이에 콩과 팥, 기장, 수수 같은 곡물을 듬뿍 집어넣어 구워낸 떡이 바로 씨종지떡이다. 한입 베어 물면 곡물의 고소함이 오도독 씹히고, 씹을수록 은은한 단맛이 입안 가득 번진다. 김영 씨는 이 떡을 “손님들에게 정성과 따뜻함을 나누는 매개체”라고 말한다.

하지만 세상은 변했고, 팬데믹은 그 변화를 더욱 가속화했다. 식사를 하러 오는 단체 손님은 줄었지만, 한옥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즐기며 차 한잔하려는 젊은 층이 눈에 띄게 늘었다. 결국 그녀는 결단을 내렸다. “밥상에서 찻상으로 무대를 옮겨보자.”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한옥카페’였다.

산야초 커피의 향

카페의 대표 메뉴는 단연 ‘산야초 커피’다. 서지마을 뒷산에는 자연 그대로의 풀과 나물이 자란다. 봄에는 쑥과 냉이가, 여름에는 청미래덩굴과 산초잎이 얼굴을 내민다. 김영 씨는 이들을 단순한 식재료로 보지 않았다. “산야초에는 계절의 향이 담겨 있어요. 커피에도 그 향을 심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죠.”

그녀는 직접 채취한 산야초를 깨끗이 말려 특유의 향을 살려내는 방식으로 로스팅에 응용했다. 일반 커피에 몇 방울의 산야초 추출액을 더하거나, 볶는 과정에서 함께 덖어내면 커피의 쓴맛이 부드러워지고 자연의 향이 스며든다. 첫 모금에는 진하고 구수한 풍미가, 끝맛에는 살짝 쑥향 같은 산뜻함이 남는다. 강렬하지 않지만 오래도록 여운이 남는 맛이다.

놀라운 점은 이 커피가 단순히 마을 홍보용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매주 외지에서 일부러 이 커피를 맛보러 오는 손님들이 있을 정도다. 특히 강릉이 커피의 도시로 유명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서지마을의 이 커피는 그 중에서도 ‘가장 토속적인 커피’라 부를 만하다.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디저트

한옥 마루 위에서 커피를 마시다 보면 자연스레 식탁 위의 디저트에도 눈이 간다. 특히 쑥향이 은은하게 퍼진 인절미는 이 집의 또 다른 인기 메뉴다. 방앗간에서 직접 빻은 쌀가루로 만들어 쫀득하면서도 묵직한 찰기를 자랑한다. 그 위에 바닐라 아이스크림 한 덩이를 툭 올리고, 고소한 튀밥을 솔솔 뿌려내면 전통과 현대의 달콤한 조화가 완성된다. “이건 손님들이 먼저 만든 메뉴예요. 인절미 위에 아이스크림을 올려서 먹길래, 그걸 메뉴로 정했죠.” 김영 씨가 웃으며 말한다.

이 조합은 SNS에서도 화제가 됐다. 젊은 손님들은 전통 먹거리의 새로운 변신을 신선하게 받아들이고, 어르신들은 옛날의 쑥향과 콩고물이 그리워 찾아온다. 덕분에 카페는 세대를 아우르는 공간이 되었다.

계절을 담은 수제차

커피만큼이나 인기 있는 메뉴는 ‘수제 차’다. 서지마을에는 지천에 자라는 제철 재료가 많다. 연잎차, 백련차, 청미래덩굴차, 동박차, 산초차 등 이름만 들어도 달콤한 흙냄새가 느껴지는 차들이 잔에 담겨 나온다. 김영 씨는 봄이면 연잎을 따서 말리고, 여름엔 도라지와 산수유, 가을엔 밤껍질과 대추를 이용한 차를 만든다. 사계절이 카페의 찻상 위를 따라 흘러가는 셈이다.

특히 백련차는 이곳의 또 다른 자랑이다. 꽃잎을 우릴 때 퍼지는 향이 은은하고, 단맛보다 향긋한 끝맛이 오래 남는다. 손님들은 커피보다 이 차 한 잔에 더 오래 머문다고 한다.

마을과 함께 흐르는 시간

카페를 찾는 사람들은 단순히 음료를 마시러 오는 것이 아니다. 누구는 “한옥의 마루에서 마시는 커피 맛이 다른 데서는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하고, 또 다른 이들은 “도시에서는 잊고 지냈던 옛 감정이 되살아난다”고 한다. 이곳은 단순한 카페가 아닌, 사람과 기억이 머무는 쉼터가 된 셈이다.

김영 씨는 “이 집은 종가의 이름으로 지켜온 것이지만, 지금은 마을과 함께 커가는 공간이에요.”라고 말한다. 실제로 그녀는 인근 농가와 협력해 지역에서 채취한 산야초를 공정거래식으로 구매하고, 커피찌꺼기는 다시 비료로 되돌려 쓴다. 전통과 환경, 지역공동체가 하나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든 것이다.

커피 한 잔 속에 담긴 100년의 향기

햇살이 기와 위에 부서지고, 산새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는 오후. 한옥 창가에 앉아 산야초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깊은 향 속에 묘하게 풀내음과 구운 곡물의 고소함이 섞여 있다. 마치 옛 시절, 종갓집 마루에서 먹던 식혜의 따스함이 되살아나는 듯했다.

그 한잔에는 단순한 커피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다. 어머니의 손맛, 마을의 시간, 그리고 계절의 변주가 한데 녹아 있다. 김영 씨와 최민영 씨 부부는 말없이 마당을 걸어 나가며 서로를 향해 웃었다. “커피는 결국 사람을 담는 거예요.” 그녀의 말처럼, 이곳의 커피는 한 세대를 이어주는 다리가 되어 사람들을 연결하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서지마을의 이 한옥카페는 단지 ‘커피 한 잔 마시는 곳’이 아니라, 잊혀 가던 전통의 향기를 되살리는 살아 있는 문화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커피잔 위로 피어오르는 산야초의 향이 그 증거다. 오늘 이곳에서 마신 한잔의 커피는, 긴 여운을 남기며 우리의 기억 속에 조용히 새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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