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경훈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한국 의료계에서 보기 드문 타입의 의사이자 작가로, 응급실 현장을 기록하는 글쓰기를 통해 한국 의료 시스템의 모순과 ‘현대 한국 사회의 밑바닥’을 집요하게 드러내 온 인물이다. 그는 분당제생병원 응급의학과에서 중환자 의학과 응급 영상학을 전문분야로 진료하며, 동시에 여러 권의 메디컬 에세이와 논픽션을 발표한 다작의 에세이스트로도 활동하고 있다.
성장 배경과 진로 선택
곽경훈은 1978년 겨울 대구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책과 여행을 좋아했고, 스스로를 소개할 때도 의사 이전에 독서가이자 방랑 성향의 청년으로 기억한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그가 처음부터 의사를 꿈꾼 것은 아니었고, 인류학자, 종군기자, 연극배우, 심지어 정신과 의사까지 전혀 다른 진로를 상상하며 성장했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모범생→의대’ 코스를 밟은 의사들과는 뚜렷이 결이 다르다.
그는 소설가와 종군기자를 꿈꾸며 전쟁과 재난의 현장을 기록하는 삶을 동경했지만, 결국 한국 사회의 현실적인 진로 선택의 압박 속에서 의과대학 입학을 택했다고 여러 인터뷰와 책 소개에서 밝힌 바 있다. 다만 ‘현장을 기록하고 싶다’는 그의 원초적인 욕망은 사라지지 않았고, 훗날 응급실이라는 가장 극단적인 의료 현장을 선택해 그곳을 글로 남기는 작업으로 이어졌다.
의과대학을 졸업한 이후 그는 시골 보건지소에서 공중보건의로 복무하며 군 복무를 대체했다. 이 시기에도 인류학과 의사학(medical history)에 대한 관심은 계속되었고, 인간과 질병, 사회 제도와 의료가 어떻게 얽혀 있는지를 관찰하는 시선을 키웠다고 스스로 회상한다.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되기까지
군 복무를 마친 후에도 그는 정신과나 인류학 관련 진로를 고민했지만, 결국 응급의학을 전공으로 선택해 응급의학과 전문의의 길에 들어섰다. 스스로도 고백하듯, 의과대학 성적은 “끄트머리 3등” 수준이었다는 표현이 책 소개에 등장하는데, 이는 그가 일종의 ‘변두리 레지던트’로 응급의학과 수련을 시작하게 된 배경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그는 대형병원 응급실에서 레지던트로 일하며, 수직적 위계와 강한 군대식 문화 속에서 조직의 부속품처럼 살아가는 삶을 거부하는 태도를 보여 왔다고 자신의 책에서 묘사한다. 선배와 상급자에게 무조건 복종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구조에서, 환자 안전과 의학적 타당성을 이유로 이의를 제기하거나 반기를 드는 모습이 반복되면서 ‘문제아’로 불리기도 했다.
이 시기 경험은 그의 대표작인 『응급의학과 곽경훈입니다』의 핵심 배경이 된다. 그는 레지던트 1년차 시절 중환 환자의 패혈증 가능성을 강조하며 신속한 조치를 요청했으나, 내과 2년차 레지던트가 이를 무시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상황에서 격한 언쟁 끝에 ‘주먹이 먼저 나간’ 일화도 책의 홍보 글에 등장한다. 그 사건 이후 징계위원회에 회부되는 굴욕을 겪으면서도, 그는 “자존심마저 버리고 대형병원의 부속품처럼 살 순 없다”는 태도를 굽히지 않았다고 소개된다.
분당제생병원에서의 임상 활동
현재 곽경훈은 경기도 성남 분당구에 위치한 분당제생병원 응급의학과에서 전문의로 근무하고 있다. 그의 진료과는 응급의학과이며, 전문 분야는 중환자 의학과 응급 영상학으로 명시되어 있다. 응급 영상학은 응급실에서 이뤄지는 CT, 초음파, X-ray 등을 포함한 영상 검사를 빠르게 판독하고, 이를 바탕으로 중환·중증 환자의 진단과 처치를 결정하는 영역이다.
분당제생병원 응급의학과는 각종 중독, 외상, 심뇌혈관 응급을 포함한 다양한 응급 상황을 24시간 담당하는 부서이며, 이 안에서 곽경훈은 응급실을 찾는 중환자들을 폭넓게 진료한다. 병원 공식 소개 페이지에 따르면, 그의 진료 스케줄은 평일과 토요일에 걸쳐 배치되어 있으며, 응급실 특성상 예약 외래보다는 응급실 현장 진료 중심으로 활동하는 형태를 취한다. 실제 언론 인터뷰에서도 그는 “수도권의 한 병원에서 레지던트 8명과 함께 근무한다”고 밝힌 바 있는데, 이는 그가 교육병원급 응급실에서 후배 의사들의 수련과 교육도 도맡고 있음을 시사한다.
작가로서의 얼굴과 저서들
곽경훈을 단순히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아니라 ‘이야기꾼’으로 널리 알린 것은 여러 권의 메디컬 에세이들이다. 그는 응급실 현장을 정면으로 응시하면서도, 의사의 자기 연민이나 미화에 빠지지 않는 건조한 문체와 검은 유머, 그리고 구조적 문제에 대한 정치·사회적 감각을 결합해 독특한 서사를 만들어낸다.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책은 2020년 3월 출간된 『응급의학과 곽경훈입니다』로, 레지던트 시절인 2007년부터 2011년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에세이다. 이 책은 “쪽팔린 게 죽기보다 싫은 어느 응급실 레지던트의 삐딱한 생존 설명서”라는 부제를 달고 있으며, 수직적인 의사 사회에서 괴물 같은 조직의 일부가 되기를 거부한 한 젊은 의사의 처절한 싸움을 담았다는 소개가 붙어 있다.
그 외에도 그는 『의사가 뭐라고』, 『반항하는 의사들』, 그리고 『날마다, 응급실』 등의 저서를 발표했다. 『날마다, 응급실』은 응급실을 드나드는 다양한 환자들과 그들을 둘러싼 가족, 그리고 의료진의 모습을 통해 한국 사회의 소외와 불평등, 혐오와 차별의 구조를 드러내는 에세이로 소개된다. 인터뷰에서는 이 책을 계기로 “응급실을 통해 우리 사회의 소외된 부분을 말하고 싶었다”고 밝히며, 자신이 목격한 장면들이 단순한 의료 기록이 아니라 사회학적·인류학적 단서라고 강조한다.
저작 목록을 통틀어 보면, 그는 의료 에세이를 넘어서 ‘직업 윤리’와 ‘전문직의 자존심’이라는 주제를 일관되게 탐구한다. 책 제목 『의사가 뭐라고』에서 드러나듯, 그는 의사라는 직업에 과도하게 부여된 권위와 특권을 비판하면서도, 동시에 생명을 다루는 전문직으로서 포기할 수 없는 최소한의 자존심, 즉 환자의 권리를 지키고 과학적 판단을 고수하려는 자세를 끝까지 놓지 않겠다는 태도를 견지해 왔다.
응급실과 한국 의료 시스템에 대한 시각
곽경훈의 인터뷰와 글에서 반복해서 등장하는 주제는 ‘응급실의 이중성’이다. 그는 응급실을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공간이자, 사회의 가장 취약한 부분이 드러나는 현장으로 묘사한다. 급성 심근경색, 급성 뇌혈관 질환, 심정지 같은 극단적 응급 상황뿐 아니라, 만성 질환 관리 실패의 끝, 돌봄 공백, 노인 빈곤, 가족 해체가 모두 응급실로 쏟아져 들어온다고 지적한다.
코로나19 시기 그는 응급실 시스템에 생긴 변화에 대해서도 냉정하게 진단했다. 감염 관리 측면에서는 과거보다 확실한 진전이 있었지만, 방역과 격리 중심의 운영이 환자와 보호자의 불만, 의료진의 피로 누적과 맞물리며 새로운 갈등을 낳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럼에도 수도권 대형병원과 지방의 시스템이 잘 갖추어진 병원들을 중심으로 응급실에서 ‘신뢰할 수 있는 의료 서비스’가 어느 정도 구현되고 있다고 평가하는 등,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균형 잡힌 시각을 유지하려 한다.
그는 응급실에서 벌어지는 폭력과 폭언, 비합리적인 요구에 대해서도 단호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 의료진에 대한 폭력은 결국 다른 환자들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이며, 공공재로서의 응급실을 무너뜨리는 행동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한다. 동시에, 이러한 폭력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배경에는 의료 시스템에 대한 불신, 의료 접근성의 불평등, 그리고 한국 사회 특유의 갑을 문화가 복합적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분석한다.
‘반항하는 의사’로서의 정체성과 글쓰기
곽경훈은 스스로를 “존경받는 인물은 아닐지라도, 전문직에 수반하는 최소한의 자존심은 포기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이 말은 그의 직업적 정체성을 잘 요약한다. 그는 조직 내에서의 불이익과 갈등을 감수하더라도, 환자의 안전과 의학적 원칙을 해치는 지시에는 반대하고, 권위에 맹목적으로 복종하는 분위기를 비판해 왔다.
그의 글쓰기는 이 같은 태도의 연장선에 있다. 그는 응급실에서 만난 인물들을 단순한 ‘케이스’가 아니라 하나의 인격과 서사를 가진 존재로 기록하면서, 동시에 그들을 이렇게 만들 수밖에 없었던 사회 구조를 추적한다. 또한 의사 사회 내부의 위계와 폭력, ‘빽’과 학연, 병원 경영진의 숫자 중심 사고, 환자와 보호자가 의료진을 소비자 서비스의 연장으로만 보는 시각 등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재미있는 점은, 그는 근무가 없는 날 체육관에서 이종격투기의 일종인 주짓수를 배우며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합간에 글을 쓰는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언뜻 보면 권투선수를 연상시키는 외모라는 KBS 인터뷰의 표현처럼, 그는 육체적 훈련과 정신적 노동을 동시에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유지하고 있다. 이처럼 몸과 글쓰기를 함께 단련하는 태도 역시, 응급실의 극한 스트레스 속에서 자기 무너짐을 막기 위한 일종의 생존 전략으로 읽힌다.
미디어와 독자에게 던지는 메시지
언론 인터뷰에서 곽경훈은 “응급실을 통해 우리 사회의 소외된 부분을 말하고 싶었다”고 여러 차례 강조한다. 그의 책과 인터뷰는 응급실을 배경으로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한국 사회의 불평등, 노동, 복지, 가족, 고령화, 그리고 공공의료의 문제를 다루는 사회비평에 가깝다. 의료계 내부에서는 그의 글쓰기가 ‘내부 고발’ 성격을 띤다는 이유로 불편해하는 시선도 있지만, 동시에 많은 젊은 의사와 의료계 종사자들이 그의 글에 공감과 위로를 느꼈다는 반응도 적지 않다.
일반 독자들에게 그의 책은 응급실이라는 낯선 공간을 이해하는 창이자, “의사가 뭐라고”라는 질문을 던지며 의사를 신격화하거나 악마화하는 이분법을 넘어서는 계기를 제공한다. 그는 의사가 완벽한 영웅도, 전부 악한 가해자도 아니며, 환자와 마찬가지로 시스템 속에서 한계와 모순에 부딪히는 노동자이자 시민이라는 점을 집요하게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