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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걷는 이유

일본을 걷는 이유』는 일본의 과거사 현장을 2년 동안 발로 밟으며 한·일 관계와 일본 사회를 입체적으로 조망한 인문 르포·기행서입니다.

기본 정보와 기획 의도

『일본을 걷는 이유』의 저자는 언론인 출신 임병식으로, 정치 평론가·칼럼니스트로 활동해 온 뒤 국회 연설문과 대학 강의를 거치며 공적 글쓰기와 미디어를 다뤄 온 인물입니다. 그는 40여 년간 일본을 지켜보며 ‘보이는 일본’과 ‘보이지 않는 일본’을 함께 보려 했고, 과잉 민족주의를 넘어 일본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려 했다는 문제의식을 이 책에 집약합니다.

책의 출발점은 “우리는 일본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라는 질문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일본을 말할 때 식민 지배, 강제징용, 위안부, 독도, 역사 왜곡 등 과거사 갈등이 늘 중심에 있지만, 동시에 일본은 한국인이 가장 많이 찾는 여행지 가운데 하나라는 역설이 공존한다는 인식이 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저자는 “막연한 적대와 비판을 넘어, 일본을 다시 묻자”는 기조에서 출발해, 감정적 ‘반일’이나 무비판적 ‘친일’을 넘어서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구성과 여정의 구조

이 책은 일본 최남단 이부스키에서 최북단 왓카나이까지, 남에서 북으로 관통하는 대장정의 동선을 따라가지만, 단순 지리 순례가 아니라 ‘계절’이라는 상징적 틀로 재구성됩니다. 전체는 4부, 봄·여름·가을·겨울로 나뉘며, 저자는 이를 “기억이 생성되고 확장되고 심화된 뒤 다시 질문으로 돌아오는 순환 구조”로 설명합니다.

1부 ‘봄기억과 만남의 시작’은 후쿠오카 형무소 터와 히젠 나고야 성터 등에서 윤동주·송몽규의 죽음과 조선 침략의 출발점을 더듬으며, 일본 과거사의 기본 쟁점을 ‘기억의 씨앗’으로 던지는 역할을 합니다. 2부 ‘여름전쟁의 길, 평화의 길’은 가고시마, 이부스키, 치란, 나가사키, 시모노세키, 야마구치 하기 등으로 이어지며 메이지유신과 군국주의, 가미카제 특공대, 식민지 지배가 어떻게 결합해 ‘전쟁 체제’를 구성했는지를 집중적으로 다룹니다.

3부 ‘가을기억의 그늘, 시민의 빛’에서는 조선통신사 유적, 히로시마, 시마네, 마이즈루, 안중근을 추도하는 일본 사찰 등에서 국가 권력과는 다른 일본 시민의 양심과 연대의 흔적을 보여 줍니다. 4부 ‘겨울혐오 이후, 미래를 묻다’는 후세 다쓰지(조선인을 변호한 일본 변호사), 북송선과 니가타항, 사도 광산, 에치고 유자와, 도쿄 대공습의 흔적, 홋카이도의 개척·수탈의 역사 등을 따라가며 ‘과거를 직시한 채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마무리합니다.

이 계절 구조를 통해 저자는 일본을 한 번에 규정하지 않고, “기억이 쌓이면서 질문이 바뀌는 과정”을 독자가 함께 체험하게끔 설계합니다. 봄에서 싹 튼 문제의식이 여름의 전쟁 현장에서 극단으로 치닫고, 가을의 시민과 양심의 사례를 거쳐, 겨울에서는 혐오 이후의 관계 설정이라는 정치·도덕적 질문으로 수렴되는 흐름입니다.

핵심 내용과 주요 장면

이 책의 뼈대는 ‘현장’입니다. 저자는 2년에 걸쳐 직접 걸으며 본 풍경과 사람들의 목소리, 공간에 축적된 기억을 세밀하게 기록합니다. 그 과정에서 일본은 하나의 얼굴이 아니라, 서로 충돌하는 여러 얼굴로 등장합니다.

후쿠오카 형무소 터와 후쿠오카 형무소 야스하시 형장터 등에서는 윤동주·송몽규의 비극적 죽음을 마주하며, 식민지 지배가 개인의 삶과 언어를 어떻게 파괴했는지 상기합니다. 히젠 나고야 성터에서는 임진왜란 당시 조선 침략의 전진 기지였던 공간이 오늘날 어떻게 기억·전시되고 있는지, 또 무엇을 의도적으로 지우고 있는지를 살피면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라는 화려한 타이틀 뒤에 가려진 강제노동과 침략의 기억을 드러냅니다.

아리타·이마리·다케오에서는 일본 도자기 산업의 기반을 닦은 조선 도공들의 흔적이 핵심 장면입니다. 일본 산업 발전의 이면에 ‘포로’가 된 조선 도공들이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이를 기리는 방식이 한국과 일본에서 어떻게 서로 다른 서사로 소비되는지 비교하는 대목에서, 저자는 “포로가 되어 일본에 기여한 조선 도공”이라는 모순된 표현을 통해 가해·피해가 단순한 도식으로 설명될 수 없음을 강조합니다.

여름 편에서는 가고시마, 이부스키, 치란의 ‘가미카제 특공기지’와 ‘치란특공평화회관’이 핵심 에피소드입니다. 저자는 ‘전혀 평화롭지 않은데 평화라는 이름을 내건 기념관’이라는 아이러니를 지적하며, 일본이 전쟁을 추모·기억하는 방식이 피해자와 가해자의 위치를 어떻게 바꾸는지 비판적으로 분석합니다. 나가사키에서는 원폭 피해 도시이자 동시에 식민 지배와 전쟁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은 도시라는 이중성을 부각시키며,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일본”이라는 책 전체의 중요한 축을 형성합니다.

시모노세키·야마구치 하기의 쇼카손주쿠 학당에서는 요시다 쇼인과 메이지유신 세력이 구축한 근대화의 명암이 다뤄집니다. 한편으로는 근대 국가 건설과 산업화의 출발점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침략과 제국주의, 군국주의로 이어지는 사상적 기반이기도 했다는 점에서, 저자는 한국에서 흔히 소비되는 ‘메이지유신 찬가’를 경계하게 만듭니다.

가을과 겨울 부에서 특히 눈에 띄는 장면은 ‘일본 헌병, 안중근을 추도하다’, ‘조선을 사랑한 제국주의 변호사 후세 다쓰지’ 같은 사례입니다. 다이린지와 즈이간지에 전해 내려오는 ‘안중근을 추도한 일본 헌병 치바 토시치’의 이야기는, 군인으로서 안중근을 체포하고 사형을 지켜본 인물이 시간이 지나 그를 존경하며 추도했다는 역설적인 인간 드라마를 보여 줍니다. 후세 다쓰지의 경우, 제국주의 질서 안에 있으면서도 조선인의 인권을 옹호하고 재판에서 변론한 인물로, 저자는 이를 통해 “국가는 충돌하지만 시민은 각기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강조합니다.

또 다른 중요한 축은 ‘북송선과 니가타항’입니다. 저자는 니가타항에 내리는 겨울비를 배경으로, 전후 일본에서 재일조선인 북송사업이 어떻게 추진되었고, 그 과정에서 어떤 비극과 오판이 있었는지를 되짚습니다. 사도 광산 강제징용, 에치고 유자와에서 떠올리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 배경과 군국주의의 잔상, 도쿄 대공습과 간토 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의 기억, 홋카이도의 ‘개척’ 뒤에 숨은 원주민 아이누와 조선인의 수탈 역사까지 이어지며, 일본 북부와 수도권, 변방이 모두 하나의 거대한 식민·전쟁 서사로 연결됩니다.

주제 의식과 관점의 특징

『일본을 걷는 이유』의 가장 큰 특징은 ‘반일 vs 친일’이라는 이분법을 거부한다는 점입니다. 저자는 일본을 단순히 비난하거나 옹호하지 않고, “국가는 책임을 져야 하지만, 시민 개인을 향한 혐오로 흐르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고 반복해서 강조합니다. 이를 위해 군국주의 일본과 양심적인 일본인을 분리해 바라볼 것을 제안하면서, 일본 우익·전쟁 미화 세력과 일본 시민사회·지식인·변호사·종교인들의 자성적 움직임을 함께 조명합니다.

또 하나의 핵심은 ‘기억의 정치학’입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산업 유산(예: 미이케 탄광, 사도 광산 등)이 어떻게 화려한 “근대 산업의 성취”로만 포장되는지, 그 안에 강제징용과 조선인의 피와 땀이 어떻게 삭제되거나 최소화되는지를 다양한 사례로 보여 줍니다. 동시에, 일본 내 일부 박물관·위령비가 조선인의 희생을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는 점, 그리고 학살 현장에서 수백 명의 조선인을 구한 일본인 경찰서장 등, 기억을 왜곡하는 권력에 맞서려 했던 개인들의 사례를 함께 제시함으로써, “역사는 단일한 서사가 아니라 서로 다른 시선들이 교차하며 만들어진다”는 인문학적 메시지를 전합니다.

저자는 또한 “진정한 발견의 여행은 새로운 풍경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것”이라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말을 인용하며, 일본을 걷는다는 것이 곧 ‘관점의 전환’ 연습이라고 설명합니다. 관광지의 풍경을 소비하는 대신, 그 장소에 새겨진 식민·전쟁·차별·저항의 기억을 함께 읽어내야만 한·일 관계를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이때 걷기는 단순한 이동 방식이 아니라, 속도를 늦추고 타인의 시간을 몸으로 체험하게 하는 인식의 도구로 기능합니다.

한·일 관계에 관한 메시지도 분명합니다. 저자는 일본의 전쟁범죄와 반성하지 않는 태도에 대해 “국가의 책임을 끝까지 묻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하면서도, 그것이 일본 시민 전체에 대한 무차별 혐오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합니다. 혐오와 증오의 언어를 반복하면 결국 과거에 머무를 뿐이고, 일본을 이해하려는 노력 속에서만 미래로 향하는 길을 모색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결론에 가까운 문제의식입니다.

핵심 키워드 비교 표

아래 표는 책이 다루는 네 가지 핵심 축을 정리한 것입니다.

내용 요약대표 공간·사례
과거사식민 지배, 강제징용, 위안부, 독도, 전쟁 책임 등 일본 국가의 가해와 책임 문제를 직접 다룬다.후쿠오카 형무소, 히젠 나고야 성터, 미이케 탄광, 사도 광산, 시마네, 도쿄 대공습 흔적 등.
기억과 왜곡유네스코 세계유산과 박물관, 기념관에서 무엇이 기억되고 무엇이 지워지는지, 기억의 정치학을 분석한다.치란특공평화회관, 나가사키·히로시마 추모 공간, 각종 산업 유산 전시관.
시민의 양심국가의 폭력 속에서도 조선인을 보호·변호·추도했던 일본 개인들의 선택을 조명한다.안중근을 추도한 헌병 치바 토시치, 후세 다쓰지, 학살 현장에서 조선인을 구한 경찰서장 등.
혐오 이후반일·친일 이분법을 넘어서 한국 사회가 어떤 시각으로 일본을 바라봐야 하는지, 미래 지향적 관점을 모색한다.‘혐오 이후’를 질문하는 겨울 편 전반, 홋카이도 수탈사와 화해의 가능성 논의.

저자 스타일과 독서 포인트

임병식은 기자 출신답게 현장 묘사와 자료 조사를 촘촘하게 결합합니다. 풍경과 인물의 구체적 디테일을 살려 서술하면서도, 각 장의 끝에서는 반드시 한·일 관계·민족주의·기억과 책임이라는 더 큰 질문으로 확장하는 구조를 취해, 기행문과 시사 칼럼, 인문 에세이가 교차하는 독특한 톤을 만들어냅니다.

또한 정치·외교 담론에서 흔히 보이는 ‘진영 논리’를 의식적으로 경계하며, ‘상식과 균형 감각’이라는 키워드를 앞세웁니다. 일본 우익을 비판하면서도, 한국 내 과잉 민족주의와 무비판적 혐오 역시 성찰의 대상에 올리기 때문에, 독자는 “내가 일본을 어떻게 바라봐 왔는가”를 함께 돌아보게 됩니다. 이 점에서 『일본을 걷는 이유』는 일본에 대한 책이면서 동시에 한국 사회의 감정 구조와 정치 문법을 비추는 거울 역할을 합니다.

실용적인 독서 포인트도 분명합니다. 여행서처럼 구체적인 장소·지도·동선이 등장하기 때문에, 일본 과거사 답사나 인문 여행을 계획하는 독자에게는 하나의 ‘참고 코스’가 됩니다. 그러나 저자는 관광 정보를 제공하기보다는, 같은 장소를 밟더라도 어떤 질문과 맥락을 가지고 바라볼 것인지에 더 무게를 두고 있어서, 일본을 자주 찾는 한국인 여행자들에게는 “풍경을 소비하는 여행에서 기억을 읽는 여행으로”의 전환을 제안하는 책이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일본을 이해하는 것이 곧 우리가 더 성숙해지는 길”이라는 역설적 명제입니다. 일본에 대한 적대감이 클수록, 그 나라를 차분하게 이해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자기 사회에 대한 성찰과 민주주의의 깊이를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일본을 걷는 이유』는 그런 의미에서 한·일 관계의 외교적 이슈를 넘어서, 한국 사회의 시민의식과 역사 인식 수준을 함께 묻는 인문 교양서로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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