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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현동 500년 은행나무

회현동 500년 은행나무는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반세기를 아니라 반천 년을 버텨온, 도시와 역사가 그대로 겹쳐 보이는 살아 있는 지표 같은 존재다. 남대문과 명동, 우리은행 본점, 남산 자락의 고층빌딩 사이에서 이 나무를 마주하면 ‘도심 대로변 노거수’가 아니라 조선 초기에 뿌리내린 한 시대의 풍경과 맞닥뜨린 느낌에 더 가깝다.

위치와 외형, 기본 정보

회현동 은행나무는 주소로는 서울 중구 소공로 31, 회현동1가 203 일대, 정확히 말하면 우리은행 본점과 남산 SK리더스뷰 빌딩 사이의 작은 녹지 공간에 서 있다. 행정적으로는 서울 중구 회현동 사거리 서남쪽이자, 남대문시장·명동 번화가와 남산으로 연결되는 관문 자리에 해당해 ‘회현동 입구를 지키는 나무’라는 표현이 자연스럽게 따라붙는다.

1972년 10월 12일 서울시 보호수로 지정될 당시 추정 수령은 약 475년이었고, 이 기준으로 계산하면 지금은 520년을 훌쩍 넘겨 530년 안팎의 나이로 본다. 수고는 약 24m, 둘레는 7.2~8m 정도로, 서울 도심에 남아 있는 노거수 가운데서도 나이와 체격 모두 상위권에 드는 거목이다. 굵은 줄기에서 갈라져 나온 굽은 큰 가지들이 사방으로 뻗어 있어, 주변의 고층 빌딩들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시선이 닿는 순간 존재감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구조라고 할 수 있다.

동래정씨 집터, 정광필과 ‘12정승’의 전설

이 나무가 서 있는 땅은 단순한 도심 자투리 공원이 아니라, 조선 전기의 명문가 동래정씨 집안이 터를 잡고 살던 곳이다. 특히 중종 때 영의정을 지낸 문익공 정광필의 집터로 알려져 있어, 나무 근처 서쪽에는 ‘정광필 집터’ 표석이 현재까지 남아 있다. 이 일대는 예부터 인재가 모이는 명당으로 여겨졌고, 그 중심에 바로 이 은행나무가 있었다는 인식이 전승돼 왔다.

회현동 은행나무에는 ‘12정승’ 전설이 겹쳐 붙어 있다. 전설에 따르면 어느 날 정광필의 꿈에 신이 나타나 “이 자리에 은행나무를 심으면 정승이 연이어 배출될 것”이라고 알려주었고, 실제로 그 말을 따른 뒤 이 터에서 12명의 정승이 배출됐다는 이야기가 지역에 퍼져 있다. 실제 인물·숫자를 일일이 검증하기는 어렵지만, “명당터에서 정승 열둘이 났다”는 말은 회현동 은행나무를 상징하는 핵심 스토리로 자주 인용된다.

이 전설은 회현동이라는 지명의 어원과도 자연스레 연결된다. ‘회현(會賢)’은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어진 이들이 모이는 동네’라는 뜻인데, 동래정씨 문중의 고위 관료 배출과 정승 전설, 그리고 이를 상징하는 은행나무가 합쳐져 “어진 이들이 모여 살던 동네의 수호목”이라는 이미지가 만들어졌다. 오늘날에도 회현동을 소개하는 각종 안내문과 기사에서 이 나무와 정광필, 12정승 전설은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두 그루의 나무, 연리근과 사라진 동료들

회현동 은행나무를 이야기할 때 눈여겨볼 점은, 주민과 답사자 기록에 따르면 원래 이 자리에 은행나무가 네 그루가 있었고 지금은 두 그루만 남았다는 기억이 공유된다는 사실이다. 현재 보이는 두 그루 역시 밑동의 형상을 보면 각각이 여러 줄기가 얽혀 자란 것처럼 보이며, 일부에서는 연리근 형태에 가깝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도심 개발과 도로 정비, 주변 건물 신축 과정에서 일부 나무는 없어졌으나, 핵심 노거수는 보호수로 지정되면서 근근이 자리를 지켜 온 셈이다.

이 ‘두 그루’의 관계는 지역 주민과 글쓴이들 사이에서 ‘암나무 두 그루가 등을 돌린 모습’, 혹은 서로 다른 방향을 보며 동네를 지키는 ‘쌍목’으로 비유되곤 한다. 실제 현장에 서 보면, 각기 다른 방향으로 뻗어 올라간 수형 덕분에 나무들이 마을 입구와 남산 쪽, 시장 쪽을 동시에 바라보며 지키는 듯한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이런 시각적 인상 때문에 회현동 은행나무는 단일 거목이라기보다는 마을을 둘러싼 ‘문지기’ 역할을 하는 두 존재처럼 기억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도심 개발 속에서 남은 정자나무의 역할

회현동 일대는 한국 근현대 도시 개발의 축소판이라 할 만큼 빠르게 변해 왔다. 남대문시장과 명동 상권이 커지고, 남산 자락 재개발과 초고층 주상복합이 들어서는 동안, 이 은행나무 주변 환경도 크게 달라졌다. 지금 나무를 둘러보면 사방은 유리 커튼월 고층빌딩과 차량으로 가득 찬 대로, 뒤로는 남산으로 오르는 길이 이어져 있어, 오래된 정자나무가 서 있을 만한 전통적 마을 풍경을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나무 바로 주변에는 작은 공원과 녹지가 조성돼 있어, 인근 직장인과 주민들이 잠시 숨을 고르는 쉼터 역할을 수행한다. 나무 아래엔 간단한 안내판과 보호시설이 설치되어 있어, 지나가는 행인들이 이 나무의 유래와 나이를 확인하며 잠시 발길을 멈추기도 한다. 개발 과정에서 앞쪽에 새로 심었던 은행나무를 옮겨 심고, 기존 노거수를 중심으로 녹지 공사를 다시 하며 ‘도심 속 수호목’의 상징성을 살리려 한 시도도 있었다.

도심 빌딩 숲 사이 그늘 때문에 햇볕·바람 조건이 예전과 달라지고, 기후 변화까지 겹치면서 단풍 시기도 점차 늦춰지는 모습이 관찰된다. 예전에는 10월 중순만 돼도 노란 기운이 돌기 시작했지만, 2024·2025년에는 11월이 돼서야 본격적인 황금빛으로 물들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다. 2020년대 들어서는 서울시가 이 나무를 중심으로 야외 미술 작품을 설치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해, 생태·경관뿐 아니라 문화·예술적 상징 공간으로 활용하려는 변화도 나타났다.

회현동 은행나무 축제와 신목제

이 은행나무는 단순한 보호수를 넘어 회현동 주민 공동체가 스스로를 확인하는 매개로 기능하고 있다. 2012년부터 중구청과 회현동 주민들은 매년 10월 ‘회현동 은행나무 축제’를 열어, 나무를 중심으로 마을의 안녕과 인재 배출을 기원하는 행사를 이어오고 있다. 축제의 핵심 의식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은행나무를 신목(神木)처럼 모시며 지내는 ‘은행나무 신목제’로, 주민들의 무병장수와 평온무사를 비는 제례 형식의 프로그램이다.

최근 축제는 단순한 동네잔치를 넘어 남산까지 이어지는 ‘역사·문화 투어’의 기점이 되고 있다. 중구청은 회현동 은행나무에서 출발해, 도시재생으로 재탄생한 적산가옥 카페 ‘계단집’, 1954년 지어진 일신교회, 드라마·영화 ‘친절한 금자씨’와 ‘스위트홈’ 촬영지인 회현시민아파트, 백범 김구 동상과 백범김구광장 등을 잇는 스탬프 투어를 운영하고 있다. 축제 당일 저녁에는 영화음악을 편곡해 들려주는 음악회도 열려, 500년 된 나무 아래에서 라라랜드·맘마미아·레미제라블 OST를 듣는 색다른 경험이 가능해졌다.

이처럼 축제는 오래된 은행나무, 조선시대 인물과 근현대 건축, 영화·드라마 촬영지, 도심 재생 공간을 하나의 동선으로 엮어 “과거와 현재, 도시와 자연이 공존하는 회현동의 매력”을 체험하는 장으로 자리잡고 있다. 500년 넘게 한 자리에서 마을을 지켜온 나무가, 오늘날엔 도시 관광과 문화 콘텐츠의 출발점이 된다는 점이 흥미롭다.

상징성과 오늘의 의미

회현동 은행나무가 특별한 이유는 단지 오래 살아남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조선 초기 양반가의 정자나무이자 명당을 상징하는 존재였다가, 일제강점기·한국전쟁·압축성장기를 거쳐, 지금은 글로벌 금융·상업 중심지 빌딩 숲 한가운데 서 있는 모습 자체가 서울이라는 도시의 변화를 응축해 보여준다. 중구청과 언론은 이 나무를 “도심에서 느끼는 500년 역사의 숨결”, “은행나무 어르신” 같은 표현으로 부르며, 한 도시가 자기 역사를 기억하는 방식의 한 예로 제시하고 있다.

또한 이 나무는 ‘회현동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이자 상징 나무’라는 점에서, 주민들의 정체성과 연대감을 부여하는 일종의 상징기호로 기능한다. 매년 열리는 축제와 신목제, 다양한 스토리텔링은 “이 동네는 예전부터 어진 사람들이 모이던 곳이고, 지금도 그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는 서사를 현재형으로 재구성하는 작업이라고 볼 수 있다. 동시에 서울시 시목(市木)이 은행나무라는 점과도 자연스럽게 겹쳐지면서, 도시 전체를 상징하는 나무와 한 동네를 상징하는 나무가 한 지점에서 만난다.

기후 위기와 도시 열섬, 도심 재개발이 계속되는 시대에, 500년 넘은 한 그루(혹은 두 그루)의 나무가 꾸준히 관리와 관심을 받으며 살아간다는 사실은 도시 환경·생태 측면에서도 의미가 크다. 서울시는 이 나무에 작품을 설치하는 야외 미술관 프로젝트를 통해, 보호수의 가치가 단순한 ‘옛 나무’에서 ‘역사와 문화, 예술이 교차하는 플랫폼’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주려 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회현동 은행나무는 과거의 유물이라기보다, 지금도 계속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는 살아 있는 도시 자산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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