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편♥프랑스 아내가 차린 ‘의정부의 작은 프랑스’
가능동 골목에서 피어난 사랑과 음식의 이야기
의정부 가능동의 한적한 골목길을 걷다 보면, 어딘가 이국적인 풍경이 눈길을 붙잡는다. 오래된 주택을 개조한 듯한 건물 앞, 바람에 살짝 나부끼는 프랑스 삼색기가 방문객을 맞이한다. 간판에는 프랑스어로 적힌 글씨 — ‘Chez Mariam(셰 마리암)’. 그 아래에는 작게 한글로 “프랑스 가정식 카페”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 평범한 한국 골목 안에 자리 잡은 ‘작은 프랑스’는 바로 한국 남편 홍한석 씨(39)와 프랑스 아내 마리암 르누아르 씨(35)가 함께 꾸린 공간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따뜻한 조명 아래 구수한 버터 향이 퍼지고, 빵 굽는 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프랑스 샹송이 공간을 감싼다. 외국의 어느 마을 작은 식당에 들어온 듯한 착각이 들지만,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분명 의정부 가능동이다.
함께 보내기 위한 선택, ‘카페 창업’
“처음엔 둘 다 이렇게 카페를 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홍한석 씨는 웃으며 기억을 더듬는다. 그는 영화와 드라마 현장에서 미술팀으로 일했다. 세트 디자인, 소품, 배경 연출까지 맡는 일이었기에 하루 16시간을 넘기는 일정도 많았다. 처음엔 열정 하나로 버텼지만, 결혼 후 상황이 달라졌다. 함께 아침을 먹는 일조차 드물어졌고, 밤늦게 귀가할 때마다 마리암 씨는 혼자 TV를 보며 남편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리암이 ‘같이 있는 시간만 많아도 행복할 것 같다’고 했죠. 그 한마디가 카페를 열게 된 계기였던 것 같아요.”
홍 씨는 어느 날 퇴근길에 문득 결심했다. 아내와 함께할 수 있는 일, 아내의 고향 음식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일. 그 길 끝에서 떠오른 것이 바로 ‘프랑스 가정식 카페’였다. 마리암 씨는 처음엔 망설였다고 한다. 프랑스에서 디자인 전공을 했지만, 요리업은 전혀 다른 분야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편과 함께 뭔가를 만들어가고 싶었다”는 마음에 용기를 냈다.
‘그리움’이 담긴 프랑스식 한상차림
메뉴 구성은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마리암 씨가 제안한 음식은 프랑스 가정에서 흔히 먹는 ‘데일리 플레이트’, 그러니까 ‘집밥’에 가까운 메뉴였다. 화려한 코스 요리가 아니라, 집에서 가족과 나누는 따뜻한 식사.
대표 메뉴는 프랑스식 오븐 요리 ‘그라탱 도피누아즈’(Gratin Dauphinois). 얇게 썬 감자와 크림, 치즈를 겹겹이 쌓아 구운 요리다. 또 다른 인기 메뉴는 부르고뉴식 달팽이 요리 ‘에스카르고’. 달팽이를 버터와 마늘, 파슬리로 오븐에 구워낸 전통 메뉴다. 하지만 재료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국내에서는 신선한 달팽이를 구하기 어렵기 때문에, 프랑스에서 직접 수입했다.
“마리암의 입맛에 맞추느라 처음엔 매일 테스트였어요. 조금만 짜도 ‘음… 프랑스에서는 이런 맛이 아니야’라고 하더라고요.”
홍 씨는 웃으며 말했다. “덕분에 매일 시식하다가 제가 먼저 살이 쪘죠.”
그러자 곁에 있던 마리암 씨가 장난스럽게 덧붙였다. “아니에요! 저도 4개월 동안 10kg이나 쪘어요. 남편이 너무 잘 만들어서 멈출 수가 없었거든요.”
그녀는 “그 맛을 그리워했던 것 같아요”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프랑스의 향기, 엄마가 만들어주던 음식의 기억들… 그 모든 게 여기에 녹아 있어요.”
‘가능동’이라는 무대, 그리고 새로운 시작
왜 하필이면 서울도 아닌 의정부의 조용한 골목을 선택했을까?
홍 씨는 “서울은 경쟁이 너무 치열했어요. 저희는 돈보다는 ‘우리만의 공간’을 원했죠”라고 말했다. 가능동은 의정부에서도 소박하고 정겨운 동네다. 카페 앞에는 이웃 주민들이 가꾸는 작은 텃밭이 있고, 소풍 나온 가족이 종종 들른다. 손님 대부분은 단골이다.
한 번은 프랑스어를 배우고 싶어 하는 대학생이 찾아와 종일 대화하며 식사를 한 적도 있다. 또 어르신 손님들은 낯선 음식이지만 ‘이국적인 향이 좋다’며 매번 찾아왔다. 이제는 ‘가능동의 프랑스 카페’로 입소문이 났다.
“프랑스 음식이라고 하면 어렵다고 느끼는 분들이 많아요. 하지만 저희는 그냥 ‘프랑스식 집밥’을 소개하고 싶어요.” 마리암 씨는 밝게 웃었다. “음식이 다리를 놓을 수 있잖아요. 언어는 달라도, 식탁에서 마음을 나눌 수 있으니까요.”
사랑이 만든 공간, 그리고 앞으로의 꿈
두 사람은 이곳을 단순한 식당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프로젝트’라고 표현한다. 홍 씨는 여전히 카페 인테리어를 직접 손본다. 테이블의 색감, 조명 하나까지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마리암 씨는 매일 새벽 반죽을 준비하고, 바게트를 구우며 손님들에게 “봉쥬르!”라고 인사한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홍 씨는 “작은 프렌치 쿠킹 클래스를 열어보고 싶어요. 한국식 재료로도 프랑스 가정식을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마리암 씨는 “사람들이 음식을 통해 행복했으면 해요. 그것이 제가 프랑스에서 배운 인생의 맛이에요”라며 미소를 지었다.
의정부 가능동의 한적한 골목길 끝,
바게트 굽는 냄새가 코끝을 간질이고, 작은 창문 너머로 한국 남편과 프랑스 아내가 나란히 서 있다. 두 사람의 하루는 여전히 바쁘지만, 이제 그 속엔 ‘함께’라는 단어가 있다.
그들의 사랑이 구워내는 한 끼의 식사, 그리고 그 음식에 스며든 시간의 향기가 오늘도 가능동 골목을 따뜻하게 물들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