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로사 창업주 김용덕은 ‘강릉을 커피 도시로 만든 은행원 출신 로스터’로, 한국 스페셜티 커피 1세대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는 IMF 외환위기 이후 은행을 그만두고 마흔 무렵에 전혀 다른 길인 커피와 건축, 공간 기획을 결합한 브랜드 테라로사를 만들어 전국적 커피 문화를 이끈 인물로 평가받는다.
성장 배경과 은행원 시절
김용덕은 강원도 강릉 출신으로, 정규 대학 대신 강릉상고를 졸업한 뒤 곧바로 은행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조흥은행에 입사해 21년 동안 근무하며 말 그대로 “돈 세는 일”을 하던 직장인이었다고 회상한다. 당시만 해도 커피와는 직접적인 인연이 없었고, 건축 역시 전공이 아닌 취미 수준의 관심에 머물러 있었지만, 은행에서의 긴 경력은 숫자와 리스크, 투자 감각을 몸으로 익히는 시간이 됐다.
1997~1998년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그는 30대 후반에 명예퇴직을 선택한다. 퇴직 당시 나이는 39세였고, 예고 없이 퇴직을 선택한 뒤 오랫동안 품어왔던 미술에 대한 꿈을 위해 아내에게 알리지 않은 채 한 달 정도 미술학원에 다니기도 했다. 이 짧은 미술 공부 경험은 이후 그의 삶에서 공간, 건축, 예술을 커피와 결합하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된다.
외환위기 이후, 커피와의 인연
은행을 나온 뒤 처음부터 커피를 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강원도 속초에서 돈가스 레스토랑을 운영하며 자영업자의 길을 걸었다. 이 과정에서 고객에게 내놓는 ‘맛있는 후식 커피’를 찾기 위해 여러 방식의 커피를 연구했고, 그 과정에서 커피의 풍미와 원두, 로스팅에 대한 호기심이 본격적으로 커졌다. 당시 한국에는 아직 스페셜티 커피 개념이 제대로 자리잡지 못했고, 자판기 커피가 일상적인 대중 커피로 통하던 시기였다.
그는 국내 커피 산업이 선진국에 비해 너무 뒤처져 있다는 사실에 분노를 느꼈다고 회상한다. “무지에 대한 분노”에서 출발해, 남들이 아직 주목하지 못한 가치를 먼저 발견하고 전파해 온 선각자들에 감명을 받았다고 말한다. 커피를 단순한 음료가 아닌 산업과 문화, 국가 경쟁력 차원의 문제로 보기 시작하면서 그는 한국 커피 산업의 수준을 끌어올려야겠다는 책임감까지 느끼게 되고, 이를 계기로 커피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결심을 하게 된다.
테라로사의 탄생과 강릉 본점
2002년, 그는 고향 강릉시 구정면의 내륙 외곽 지역에 커피 공장 겸 카페 ‘테라로사’를 연다. 당시만 해도 카페 입지로는 불리한 시골 농로 한가운데였지만, 그는 붉은 벽돌 공장의 느낌을 살려 직접 건축을 기획하고 공간을 설계했다. 상고 출신에 은행에서 돈을 세던 사람이었지만, 그는 건축서적과 예술, 디자인에 파고들며 독학으로 공간을 구상했고, 붉은 벽돌과 목재를 활용한 특유의 따뜻한 공장형 로스터리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테라로사(Terarosa)’라는 이름에는 두 겹의 뜻이 있다. 하나는 브라질에서 커피가 잘 자라는 붉은 땅을 가리키는 말로, 커피 산지의 좋은 토양을 상징한다. 다른 하나는 “희망이 있는 땅”이라는 의미로 해석되며, 외환위기를 거쳐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그의 개인적 서사와 강릉 지역의 새로운 가능성을 함께 담고 있다.
그가 처음 연 테라로사는 약 100평 규모의 ‘저택 같은’ 카페였다. 자판기 커피가 여전히 익숙하던 시절, 그는 최상급 원두를 직접 수입해 로스팅하고, 핸드드립 중심의 메뉴를 내놓았다. 매장 안에는 커피 관련 서적뿐 아니라 사진, 건축, 디자인, 예술 관련 서적이 가득했고, 사람들은 그 공간에서 책을 읽고, 노트북을 펴고, 조용히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보냈다. 작은 음악회와 문화 행사가 열리는 이곳은 그가 추구한 ‘문화가 있는 로스터리 카페’의 초기 모델이 되었다.
적자와 빚, 그리고 집념의 투자
테라로사의 출발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그는 은행원 출신이었지만, 새로운 업종에서의 사업 경험은 부족했고, 초창기 5년간은 내리 적자를 기록했다고 밝힌 바 있다. 운영자금 마련을 위해 대출은 물론 사채까지 동원해야 했고, 사업을 접어야 할 상황이 반복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는 “그저 그런 가게로 남기 싫다”는 생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투자와 혁신을 멈추지 않았다.
보통의 자영업자였다면 인테리어나 설비 투자보다 당장 눈앞의 수익을 택했겠지만, 그는 매장용 커피 머신이나 소품보다 먼저 30kg급 대형 로스터를 들여올 정도로 원두 품질과 로스팅 역량에 과감히 돈을 쏟아부었다. 또한 해외 산지에서 직접 고급 생두를 발굴·수입하면서, 국내 시장에서는 낯설던 브라질, 과테말라, 코스타리카 등의 스페셜티급 원두를 적극적으로 소개했다. 이 같은 행보는 단기 수익보다 장기적으로 커피 산업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데 방점을 찍은 선택이었다.
그는 스스로를 “돈을 벌기 위해 사업을 시작한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테라로사를 열 때부터 지금까지 목표는 변함없이 “한국 커피 산업의 수준을 올리는 것”이며, 돈을 벌기 위한 일은 어느 지점에서 멈출 수 있지만 업계를 키우는 일은 끝이 있을 수 없다고 강조해 왔다. 이 철학은 이후 테라로사가 전국으로 확장하는 과정에서도 일관된 기준으로 작동했다.
강릉을 ‘커피 도시’로 만든 영향력
강릉에는 우리나라 핸드드립 1세대로 꼽히는 박이추(보헤미안 대표)를 비롯해 개성이 강한 커피 장인들이 자리잡고 있는데, 테라로사의 김용덕은 그 가운데서도 ‘커피 팩토리’로서 독보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강릉 내륙의 구정면에 로스터리 공장을 세우고, 직접 로스팅한 원두를 카페에 공급하는 한편, 바리스타 교육을 병행했다. 그에게서 배운 문하생들이 잇달아 강릉 곳곳에 카페를 열면서, 강릉은 커피를 중심으로 한 독특한 관광·문화 도시로 변신하기 시작했다.
강릉의 해안 풍경과 어우러진 카페 투어 문화는 2010년대 이후 전국적 인기를 얻었고, 이른바 ‘강릉 커피 신’이 형성됐다. 스페셜티 커피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카페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피서객들은 바다와 커피를 함께 즐기는 여행 코스를 찾게 되었고, 강릉 커피 축제 등 지역 행사도 활발해졌다. 이러한 흐름의 시작과 중심에 테라로사가 있었고, 그래서 언론은 그를 “강릉을 카페로 만든 남자”로 부르기도 한다.
전국 브랜드로의 성장
테라로사는 처음 강릉 외곽의 카페 겸 공장으로 출발했지만, 입소문을 타면서 서울과 경기, 제주, 부산 등으로 직영 매장을 확장해 나갔다. 2018년 기준으로 연 매출 243억 원을 기록할 만큼 성장했고, 국내 고급 커피 시장의 개척자로 자리매김했다. 이후에는 전국 직영점이 20여 개로 늘어나며, 한국을 대표하는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로 꼽히게 된다.
매장들은 단순한 카페를 넘어, 각 지역의 건축적 특징과 장소의 역사성을 살린 복합 문화공간으로 기획된다. 부산에서는 고려제강의 폐공장을 리모델링해 독특한 감성의 카페를 만들었고, 포스코 본사로부터 실내 건축을 의뢰받는 등, 커피 브랜드를 넘어 공간과 건축 영역에서도 영향력을 발휘했다. 서울 광화문과 삼성동 포스코센터 등에 자리한 매장은 도심 한복판에서 강릉 본점의 감성과 철학을 확장한 사례로 평가된다.
테라로사는 호텔, 레스토랑 등 B2B 영역에서도 신뢰받는 원두 공급처가 되었다. 그가 해외에서 공수해 직접 볶은 커피는 전국의 고급 외식업체로 납품되었고, 동시에 직영 카페에는 커피 애호가들이 줄을 서는 구조를 만들었다. 이처럼 그는 원두 로스팅, 유통, 매장 운영, 교육을 아우르는 수직 계열화에 가까운 모델을 구축해 스페셜티 커피 생태계의 허브 역할을 수행했다.
철학: 커피는 문화이자 산업 인프라
김용덕의 커피 철학은 “커피는 문화다”라는 한 문장으로 요약되곤 한다. 그는 커피를 단순한 기호품이나 카페 장사 수단이 아니라, 한 도시와 국가의 문화 수준, 디자인 감각, 건축, 예술이 응축된 매개체로 본다. 그래서 테라로사 매장 안에는 항상 커피 책보다 사진, 건축, 디자인, 예술 서적이 더 많고, 그는 이들 영역의 책을 탐독하며 공간과 브랜드를 기획해 왔다.
또한 그는 커피를 통해 “대가를 더 대가답게 만들어주는 것”을 자신의 역할이라고 표현한다. 좋은 산지의 농부, 훌륭한 로스터, 실력 있는 바리스타, 그리고 감각 있는 건축가와 디자이너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제 몫을 다해야 커피 한 잔이 완성되는데, 자신은 이 연결 구조를 설계하고 지원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다. 이 관점은 테라로사가 단순히 맛있는 커피를 파는 곳을 넘어, 사람과 지식을 키우는 플랫폼으로 성장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과도 맞닿아 있다.
그는 공개 인터뷰에서 “테라로사의 목표는 돈이 아니라 한국 커피 산업의 수준을 올리는 것”이라고 여러 번 밝힌다. 커피 가격을 둘러싼 고가·저가 논쟁 속에서도 그는 고급 커피의 가치를 지키는 것이 산업 전반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데 중요하다고 보고, 스페셜티 커피의 적정 가격과 품질을 굳건히 유지하는 전략을 고수해 왔다.
건축가이자 컬렉터로서의 면모
비록 정규 건축 교육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그는 스스로를 ‘건축가적 감각을 가진 사업가’로 증명해 왔다. 테라로사 강릉 본점의 붉은 벽돌 구조와 목재 인테리어는 그가 직접 설계와 디테일을 결정한 대표적인 결과물이다. 이후에도 폐공장을 개조하거나 기업 본사 공간을 리모델링하는 등, 커피와 건축을 결합한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공간 기획자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그는 세계 여러 도시의 미술관과 건축 공간을 찾아다니며 영감을 얻는 컬렉터이기도 하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구겐하임 미술관을 즐겨 찾으며, 설립자 페기 구겐하임과 예술가들의 관계에서 ‘좋은 후원자’의 역할을 생각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이러한 경험은 그가 커피 브랜드를 운영하면서도 예술과 디자인, 건축을 적극적으로 후원하고 큐레이션하는 방식으로 이어졌다.
인재 육성과 조직 문화
김용덕은 테라로사를 단순한 가족 경영 카페가 아닌, 전문 인력을 체계적으로 양성하는 회사로 키우려 했다. 그는 “사람을 길러야 회사가 성장한다”는 신념 아래, 직원 교육에 과감한 투자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5년 차 직원에게도 MBA 학비를 전액 지원할 정도로 인력 육성을 중시하며, 바리스타를 포함한 구성원들이 커피뿐 아니라 경영, 문화, 예술을 폭넓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장려한다.
또한 ‘테라로사 커피 아카데미’를 운영하며, 내부 직원뿐 아니라 외부 수강생들을 대상으로 커피 이론과 실무 교육을 제공해 왔다. 이 과정에서 배출된 인력들이 전국 각지에서 스페셜티 커피 문화를 이끌면서, 테라로사는 ‘토종 스페셜티 커피 생태계’의 핵심 허브 역할을 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재의 위상과 평가
2020년대에 들어서도 테라로사는 강릉을 넘어 한국을 대표하는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2002년 강릉 내륙의 시골 마을에서 시작해 20여 년 만에 전국 20개가 넘는 지점을 운영하는 브랜드로 성장했으며, 여전히 직영 체제를 고수하며 품질 관리를 이어가고 있다. 언론은 그를 “커피 에르메스를 꿈꾸는 브랜드의 창업자”로 부르며, 파리 등 해외 진출 가능성을 조명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하루에 여러 잔의 커피를 직접 맛보며 품질을 확인하고, 인터뷰 자리에서는 커피 대신 물을 마실 정도로 자신이 마시는 양을 스스로 절제하는 실용적인 태도를 유지한다. 커피를 삶의 전부로 삼되, 자만하지 않고 꾸준히 공부하는 장인형 사업가의 면모가 드러나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