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시장의 슈퍼우먼 – 59년 가발 장인 박선풍 씨
의정부 제일시장은 의정부 시민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들러봤을 법한 곳이다. 1970년대 형성된 이후 지금까지, 600여 개 점포가 빼곡히 들어선 이곳은 한수이북(漢水以北) 지역 최대 규모의 전통시장으로 꼽힌다. 어묵 냄새가 골목을 채우고, 채소를 담은 손수레가 오가는 활기찬 풍경 속에서 유독 조용하면서도 단정한 한 점포가 눈길을 끈다. 유리문 너머에는 마치 병원처럼 깔끔하게 정돈된 책상 위에 빗, 가위, 바늘, 인모(人毛)가 줄지어 있다. 그곳이 바로 ‘새봄가발’, 그리고 그곳의 주인공이 59년째 바늘을 손에서 놓지 않은 장인 박선풍(72) 씨다.
박 씨는 “가발은 누군가의 두 번째 얼굴이자, 잃어버린 자신감을 되찾게 하는 친구”라고 말한다. 그에게 가발은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새봄’이라는 이름처럼 고객의 인생을 다시 피어나게 하는 도구다.
“6학년 때부터 가발 공장에 있었어요”
박선풍 씨의 인생은 어린 시절부터 이미 거친 세월의 물결 속에 던져졌다.
“부모님이 연달아 돌아가셔서 동생 셋을 제가 책임져야 했어요. 그때가 초등학교 6학년이었죠.” 따뜻한 봄날에도 교실 대신 공장에 있어야 했던 그는, 생계를 위해 서울의 작은 가발공장에 취직했다. 그 시절만 해도 가발 산업은 막 성장하던 시기였다. 수출 붐이 일며 ‘한국산 가발’이 외화를 벌어들이던 때, 어린 박선풍은 그 속에서 기술을 배웠다.
“처음에는 바늘을 잡는 것도 서툴렀죠. 인모를 한 올 한 올 엮어야 하는데, 조금만 틀려도 가발 모양이 전부 망가져요. 하루에도 손가락에 바늘이 수십 번 찔렸죠.”
그의 목소리에는 그 시절의 고단함과 함께 묘한 자부심이 묻어 있었다. 당시 작업장은 단순한 일터가 아니라 생존의 공간이자 인내의 학교였다. 시간이 흘러도 바느질 자국처럼 손끝에 남은 상처는 그가 걸어온 길을 증명해 준다.
인모 한 올에 깃든 진심
“요즘은 기계로 만드는 공장도 많지만, 저는 아직도 모두 손으로 해요. 기계는 속도는 빠르지만, 사람의 머리결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지지는 못하죠.”
그는 지금도 하루 여섯 시간 이상을 작업대 앞에 앉아 있다. 돋보기 안경이 그의 낮과 밤을 가른다. 인모를 한 올씩 바늘로 엮을 때마다 그는 마치 사람의 마음을 꿰매는 듯 집중한다. 10만 가닥에 가까운 머리카락이 완전히 한 사람의 형태를 갖추기까지는 꼬박 2주가 걸린다.
그의 손끝에서 완성된 가발을 받은 손님들은 대개 눈물이 먼저 난다. 항암 치료로 머리카락을 잃은 환자, 탈모로 자신감을 잃은 젊은 여성, 늦은 나이에 식을 올리는 신부 등 사연도, 이유도 제각각이다.
“가발을 썼다고 누가 알아보면 어떡하느냐는 분들이 많아요. 저는 최대한 자연스러워 보이게 만들려고 합니다. 고객 한 사람 한 사람의 두상, 피부색, 머리결에 맞춰 수십 번 색을 섞고, 밀도를 조절하죠.”
한 손님의 일화를 떠올리며 박 씨는 눈시울을 붉혔다.
“항암치료 중인 스무 살 대학생이었어요. ‘머리카락이 없으면 밖에 나가기 싫다’던 아이가 가발을 쓰고 나서 활짝 웃는 얼굴을 보여주었죠. 그 미소 하나면, 밤을 새워 일한 보람이 다 있어요.”
가발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다
박선풍 씨가 만든 가발에는 단지 머리카락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안에는 수십 년간의 숙련된 기술, 그리고 사람에 대한 깊은 empathy가 배어 있다. 그는 “가발은 제작자의 마음이 따라간다”고 말한다. 조금만 대충 엮으면, 머리의 흐름과 방향이 어색해지고, 착용감이 불편해진단다. “하나의 가발을 만들 때마다 내 머리처럼 생각해요. 내가 쓴다고 생각하니 대충할 수가 없지요.”
요즘은 젊은 세대 중에서도 미용사나 헤어디자이너를 꿈꾸며 그에게 배우러 오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손으로 만들 줄 아는 기술자는 많지 않다. “기계가 대체할 수 없는 게 손맛이에요. 인모를 잡는 힘, 결을 따라 가는 방향, 이건 오랜 시간 손끝으로 익혀야 알 수 있어요.”
그의 말처럼 전통 기술이 점점 사라지는 시대에 박 씨는 거의 마지막 세대를 대표하는 장인 중 한 명이다.
59년의 세월이 빚은 ‘장인의 삶’
세월이 흐르며 공장은 줄고, 시장은 재개발과 온라인의 파도 속에서도 꿋꿋이 제 자리를 지켜왔다. 박선풍 씨 역시 시장과 함께 나이를 먹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는 새벽에 문을 연다.
“새벽에 가게 문을 열면, 시장 골목이 고요하죠. 그때 들리는 가위 소리, 빗질 소리가 저한테는 하루의 시작이에요.”
그는 주말에도 종종 머리 손질을 하러 오는 단골을 받는다. 의정부 지역 어르신들 사이에서는 “박선풍 씨 가발 한 번 써보면 다른 데는 못 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세월의 풍파 속에서도 ‘새봄가발’의 문패는 한결같이 빛난다. 시장의 다른 상인들도 그를 ‘제일시장의 슈퍼우먼’이라고 부른다. 자신보다 손님을 먼저 챙기고, 어려운 이웃의 사연을 들으면 가끔은 제작비를 깎아주기도 한다.
“저도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어려운 시절 같이 밥 나눠 먹던 이웃들이 있었지요. 그래서 누가 힘들다고 하면 도와줘야 마음이 편해요.”
박 씨의 말에는 베풂이 일상처럼 녹아 있었다.
“이 손이 멈출 때까지는 계속할 거예요”
봄 햇살이 가게의 유리창을 비출 때, 박선풍 씨는 손끝에 힘을 모으며 인모를 엮고 있었다. 그는 고개를 들지도 않고 말했다.
“이 일이 제 인생이고, 제 가족이에요. 손님이 웃고 나가면 그게 제 가장 큰 행복이에요.”
의정부 제일시장의 작은 가게 안에서 들리는 바늘 소리는 한 세대의 근면함과 장인정신을 그대로 전하고 있다. 그는 여전히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는 사람들에게 ‘새봄’을 선물한다.
손끝에서 이어지는 한 올 한 올의 머리카락처럼, 그의 삶 또한 담담하지만 단단하게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