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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N 오늘도 바다로 울진 기성항 문어 맛집 식당


[오늘도 바다로]

아버지 배를 물려받은 문어잡이 선장, 이재환 씨

파도는 오늘도 쉼 없이 기성항의 포구를 두드린다. 이른 새벽, 햇살이 수평선 위로 살짝 고개를 내밀 때쯤, 붉은 등대 옆으로 작은 어선 한 척이 천천히 미끄러지듯 나간다. 선박의 이름은 ‘창운호’ — 고(故) 이창수 선장의 이름 한 글자를 딴 것이다. 그 배의 키를 잡고 있는 사람은 이재환(42) 선장. 10년 전까지만 해도 서울 하늘 아래에서 드론을 날리던 그는 지금, 파도와 바람을 벗 삼아 하루를 여는 문어잡이 어부가 되었다.

육지의 하늘에서 바다의 하늘로

서울 시절의 재환 씨는 첨단 기술의 최전선에 있었다. 드론 영상 촬영과 공공 분야 점검 업무를 하며, 매일 컴퓨터 앞에서 데이터를 분석하던 삶이었다. 도시의 불빛 속에서 일만큼은 누구보다 성실했지만, 마음 한구석은 늘 허전했다. 그 허전함의 근원은 고향, 그리고 바다였다.

그의 아버지는 평생을 바다에서 보낸 어부였다. 문어와 꽃게, 도다리를 잡으며 가족을 먹여 살렸다. 소년 재환은 방학이면 기성항으로 내려와 새벽에 아버지 배에 올랐다. 바닷바람에 얼굴이 얼얼할 정도로 차가웠지만, 노을 속에서 그물이 오르는 순간의 설렘은 잊히지 않았다.

“아버지가 배 위에서 문어를 건져 올리실 때의 표정이 아직도 선명해요. 그건 돈을 벌었다는 기쁨이 아니라, 바다와 대화가 통했다는 확신 같은 거였죠.”

그는 직장생활 10년 차가 되던 해, 결국 마음의 끌림을 더 이상 무시할 수 없었다. 결혼한 지 2년 차였던 아내에게 ‘귀어(歸漁)’를 제안했다. 처음엔 놀라고 반대도 있었다. 하지만 도시의 피로에 지친 두 사람은 어느새 같은 선택지 앞에 서 있었다. “한 번뿐인 인생, 진짜 우리가 주인인 삶을 살아보자.” 그렇게 그들은 배낭 두 개 들고 울진으로 향했다.

아버지의 배, 아버지의 마음

귀어 초기의 삶은 녹록치 않았다. 바다는 생각보다 냉정했고, 조업 기술은 머리로 익힐 수 없는 노하우였다. 문어는 예민하고, 잠수와 조류의 성격을 다 알아야 했다. 처음 3년은 거의 손해만 봤다. 그때마다 재환 씨를 붙잡아준 것은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자신이 평생 몰던 배, 창운호를 아들에게 물려주며 단 한 마디를 남겼다.
“바다는 늘 공평하다. 욕심내면 한순간에 등을 돌려버리지.”

그 말은 곧 재환 씨의 조업 철학이 되었다. 지금도 그는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하루 목표량을 정해 잡으면 그 이상은 건드리지 않는다. 자연의 품에서 얻은 만큼만의 수확, 그것이 ‘선장 이재환’의 신념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들의 성취를 끝까지 보지 못했다. 귀어 4년 차 되던 해,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 이후 배 위의 조타 손잡이를 잡을 때마다 재환 씨는 마치 아버지가 옆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고 말한다. “지금도 새벽에 출항할 때면, 아버지가 무전기로 ‘오늘 물살 괜찮다’ 하고 말씀하실 것 같아요.”

문어와의 싸움, 자연과의 대화

문어 조업은 쉬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어업이 여러 명의 선원이 함께 하는 반면, 재환 씨는 혼자 배를 모은다. 통발 300개를 바다에 던지고, 수면 아래 50~60미터 깊이에서 문어가 통발에 들어가길 기다린다. 이 작업은 단순해 보이지만, 기상과 조류, 해저 지형을 동시에 계산해야 한다.

그는 조업을 마친 뒤 항상 조용히 수심 데이터와 수온 기록을 노트에 적는다. 물살이 강한 날은 문어가 굴 속을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고기보다 한참 깊은 해역을 노려야 한다. 그가 이런 감각을 체득하는 데 꼬박 5년이 걸렸다.

문어를 끌어올리는 순간은 항상 긴장감으로 가득하다. 통발을 들어올릴 때, 밧줄 끝에서 묵직한 손맛이 전해진다. “그 느낌이 옵니다. 아, 있다— 하는 순간 말 그대로 심장이 쿵 내려앉죠.” 배 위로 올라온 문어는 팔을 촉촉하게 늘어뜨린 채 꿈틀대고, 햇살에 비친 흡반이 은빛으로 반짝인다. 그는 그 생명력에 매번 놀란다고 한다. “10킬로 넘는 놈들이 걸릴 때면, 진짜 이놈도 싸움 잘했겠구나 싶어요. 그 녀석들 덕에 제가 삽니다.”

바다의 일상과 가족의 시간

조업을 마치고 항구로 돌아오면, 재환 씨의 하루는 여전히 끝나지 않는다. 지난해 9월부터는 아내와 함께 작은 식당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간판에는 ‘기성문어집’이라는 단순한 이름이 걸려 있다. 식당의 메인 메뉴는 ‘문어숙회정식’과 ‘문어파스타’. 들릴 때마다 손님들로 가득하다.

그는 손님들이 문어를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는 순간, 피로가 모두 풀린다고 말한다. “제가 잡은 걸 제가 요리해드린다는 게, 말로 다 못 할 뿌듯함이에요. 도시 사무실에서 보던 숫자 대신, 사람 표정으로 결과를 보는 거죠.”

식당 안쪽에서는 어머니가 반찬을 만들고, 아내는 주문을 받으며 환하게 웃는다. 가족 셋이 만들어가는 풍경 속에는 소박하지만 단단한 온기가 있다. 아버지의 배, 아들의 바다, 어머니의 손맛이 이어지는 셈이다.

식당에는 항구의 낡은 부표와 조타기, 아버지의 사진이 걸려 있다. 초라한 인테리어지만, 그 사진 앞에 서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인다. “아, 이게 진짜 바다사람의 집이구나.”

바다가 준 두 번째 인생

귀어 10년 차에 접어든 지금, 재환 씨는 스스로를 “이제야 바다와 조금은 통하는 사람”이라 말한다. 여전히 폭풍이 몰아치는 날에는 공포가 밀려오고, 태풍 경보 때면 긴장이 온몸을 감싼다. 그럼에도 그는 매일 새벽, 기성항 등대 앞에서 출항 준비를 한다. “바다가 절 길러왔으니, 저는 그 품을 믿고 있는 거죠.”

그에게 바다는 생업의 공간이자, 아버지의 또 다른 얼굴이다. 문어잡이라는 일이 체력적으로 힘들고 경제적으로 불안정할 때도 많지만, 그는 멈추지 않는다. “아버지가 그랬듯, 저도 제 아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일을 하고 싶어요.”

요즘 재환 씨의 꿈은 더 크지 않다. 배 한 척, 성실한 하루, 그리고 가족의 웃음. 그는 언젠가 자신이 떠나도, 아버지처럼 또 그의 아들 누군가가 이 바다와 대화를 이어가길 바란다. 울진의 바다는 그렇게 세대를 거슬러 사람과 사람을 잇는다.

저녁 무렵, 붉은 해가 바다 위에 내려앉는다. 갓 잡은 문어의 발끝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석양빛을 받아 반짝인다. 재환 씨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미소 짓는다.
“이 바다가 저한테는 회사이자 학교고, 또 집이에요. 내일도 나가야죠. 바다가 아직 부르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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