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계는 1980년대 초 대구에서 세계 최초 수준의 ‘양념치킨’과 ‘치킨무’를 고안해 한국 치킨 문화의 판을 바꾼 인물로, 맥시칸치킨 창업주이자 국내 프랜차이즈 치킨 산업의 초석을 놓은 음식업자입니다. 치킨이 ‘프라이드 통닭’ 중심이던 시절, 붉은 양념 소스와 치킨무라는 조합을 만들어 오늘날 배달 치킨의 전형이 된 포맷을 만든 사람이라는 점에서 그를 ‘양념치킨의 창시자’라 부릅니다.
성장과 초기 경력
윤종계는 1952년 4월 대구에서 태어났으며, 젊은 시절에는 외식업이 아닌 인쇄업에 종사했습니다. 그는 대구에서 인쇄소를 운영하다가 사업 실패로 큰 좌절을 겪었고, 이 부도 경험이 계기가 되어 완전히 다른 업종이었던 치킨 장사에 뛰어들게 됩니다. 당시만 해도 치킨이라고 하면 전기구이 통닭이나 통째로 튀긴 ‘통닭’이 대세였고, 양념을 입힌 조각 치킨은 개념조차 없던 때였습니다. 경제적으로 벼랑 끝에 내몰린 상황에서, 그는 자본도 기술도 부족한 상태로 대구 변두리의 작은 점포에서 다시 시작해야 했습니다.
1970년대 후반, 그는 대구 동구 효목동에 2평 남짓한 작은 통닭집 ‘계성통닭’을 열며 외식업에 발을 들였습니다. 이 가게는 훗날 양념치킨이 탄생하는 실험실이자, 대한민국 치킨 산업을 뒤바꾸는 전환점이 되는 공간이었습니다.
양념치킨과 치킨무의 탄생
계성통닭을 운영하면서 윤종계는 당시 프라이드치킨의 가장 큰 약점이었던 ‘퍽퍽한 살’을 어떻게 보완할 것인가에 집착했습니다. 그는 닭 자체의 육질을 부드럽게 만드는 염지법과 더불어, 튀김 위에 입히는 새로운 소스를 고민했고, 여기서 지금의 양념치킨으로 이어지는 붉은 양념 소스가 탄생합니다. 경향신문과 유족 증언에 따르면 그는 물엿과 고춧가루를 중심으로 한 최초의 붉은 양념소스를 고안했고, 이를 위해 수없이 배합을 바꾸며 실험을 반복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는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 출연 당시, 초창기에는 김치 양념을 응용해 소스를 만들려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고 회상했습니다. 어떤 날에는 지나가던 동네 할머니가 “물엿을 좀 넣어보라”고 조언했고, 그 힌트를 바탕으로 소스의 농도와 단맛, 끈기를 조정하면서 비로소 맛의 균형이 잡혔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이처럼 양념치킨 소스는 특정 레시피가 수입되거나 베낀 것이 아니라, 대구 변두리 치킨집 주방에서 시행착오 끝에 만들어진 토종 발명에 가까웠습니다.
양념치킨과 함께 탄생한 또 하나의 혁신은 바로 ‘치킨무’였습니다. 당시 통닭집들은 주로 양배추 샐러드나 단순한 절임 채소를 곁들였지만, 윤종계는 기름지고 달콤매콤한 양념치킨 맛을 잡아줄 깔끔한 곁들이를 고민하다가, 한 입 크기로 썬 깍두기 모양의 무를 달콤·새콤하게 절인 ‘치킨무’를 개발했습니다. 지금은 너무 당연한 세트로 여겨지는 ‘양념치킨+치킨무’ 조합이 바로 이때 처음 등장한 것입니다.
맥시칸치킨의 성장과 프랜차이즈 모델
윤종계가 만든 양념치킨은 1980년대 초 대구 효목동 작은 가게에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곧 대구 전역, 영남권, 나아가 전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그는 이 성공을 기반으로 ‘맥시칸치킨’ 브랜드를 설립하여 체계적인 프랜차이즈 사업을 전개했습니다. 대구MBC 보도 등에 따르면, 효목동 2평짜리 가게에서 시작한 그의 치킨 사업은 수년 만에 전국 1000개가 넘는 가맹점을 보유할 정도로 급격히 성장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윤종계는 가맹점에 양념 소스와 염지용 시즈닝을 공급하고, 조리법과 운영 매뉴얼을 표준화하는 방식으로 오늘날 치킨 프랜차이즈의 기본 모델을 정립한 인물로 평가됩니다. 프라이드치킨 일색이던 시장에 양념치킨이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제시했고, 이를 체계적인 브랜드와 가맹 시스템으로 묶어 전국적 확산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그를 ‘한국 치킨 프랜차이즈의 개척자’로 부르는 기사도 적지 않습니다.
특히 그는 “대부분의 사람이 양념은 아니다, 먹히기 어렵다”고 말하던 시기에 과감히 TV 광고까지 집행하며 대중 시장을 뚫었고, 이 모험적 마케팅이 양념치킨을 ‘국민 간식’으로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회고했습니다. 한 언론은 그의 공격적인 투자와 확장을 두고 “불도저로 돈을 밀어 넣었다”는 표현을 쓰기도 했는데, 이는 그가 한 번 승부를 걸면 끝까지 밀어붙이는 스타일의 사업가였음을 보여줍니다.
‘양념치킨의 아버지’라는 상징성
여러 언론은 윤종계를 “양념치킨의 아버지이자 치킨무 창시자”, “한국의 할랜드 샌더스”로 부르며 그의 상징성을 강조합니다. 이는 그가 단순히 한 브랜드를 성공시킨 창업주를 넘어, 한국 치킨 문화의 소비 방식 자체를 설계한 인물이라는 의미입니다. 배달·야식·치맥 문화로 대표되는 오늘날 한국 치킨은 대부분 양념치킨과 치킨무를 기본값으로 하고 있는데, 이 구조가 윤종계의 실험에서 출발했다는 점이 그의 역사적 위치를 뚜렷하게 만듭니다.
또한 그는 양념치킨을 만들면서 단순한 맛뿐 아니라 ‘식감’과 ‘편의성’도 함께 고민했습니다. 염지법을 도입해 튀김 전 단계에서 닭에 간을 미리 배게 함으로써 육질을 부드럽게 하고, 조각 단위로 자른 닭을 사용해 나눠 먹기 편하게 만든 것 역시 그가 선도한 방식이었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한국 치킨 브랜드가 당연하게 사용하는 염지·조각·붉은 양념·치킨무의 구성은, 사실상 그의 실험이 만들어낸 하나의 체계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말년과 별세, 남겨진 유산
윤종계는 이후에도 맥시칸치킨과 치킨 프랜차이즈 업계에 관여하며 활동을 이어갔고, 방송 인터뷰나 지역 언론을 통해 자신의 창업 스토리와 양념치킨 개발 과정에 대해 여러 차례 증언해 왔습니다. 특히 2020년대 들어서는 ‘양념치킨의 원조’를 다시 조명하는 기사와 방송이 늘면서, 그는 대중에게도 이름과 얼굴을 알리게 되었습니다.
2025년 12월 30일 새벽 5시경, 그는 경북 청도 자택에서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향년 74세였습니다. 발인은 이듬해 1월 1일 낮에 치러졌으며, 경북 청도대성교회에 안장되었습니다. 유족으로는 부인 황주영 씨와 아들 윤준식 씨 등이 있으며, 유족과 업계 관계자들은 그를 “한국 치킨 문화를 만든 사람”이라고 기억했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양념치킨과 치킨무는 여전히 한국인의 일상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국내 치킨 시장은 수많은 브랜드와 레시피가 경쟁하는 포화 시장이 되었지만, ‘달콤매콤한 붉은 양념이 발라진 치킨과 하얀 치킨무’라는 기본 구조는 변하지 않았고, 이는 곧 윤종계가 만들어 놓은 틀 위에서 진행되는 무한 변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윤종계는 한 메뉴를 만든 요리사이자, 한 시대의 식문화를 디자인한 창업자였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