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고성 밥상은 동해의 해산물과 산나물, 메밀과 같은 강원도답게 투박하지만 담백한 식재료가 어우러진, “바다와 산이 한 상에 올라오는” 형태의 집밥에 가깝습니다.
고성 밥상의 기본 정서와 식재료
강원도 고성은 동쪽으로는 동해, 서쪽으로는 설악산·금강산 자락을 끼고 있어 어업과 산촌 문화가 동시에 발달한 지역입니다. 그래서 밥상을 구성하는 주재료도 자연스럽게 바다에서 나는 생선과 해산물, 그리고 산에서 나는 나물과 약초, 고랭지 채소가 중심이 됩니다. 밥상 차림은 대개 하얀 쌀밥에 곤드레·취나물 등 나물을 섞어 지은 밥이나 보리·옥수수 등을 일부 섞은 잡곡밥이 올라오고, 거기에 국·찌개와 수십 가지의 반찬이 곁들여지는 전형적인 강원도식 백반 구조를 띱니다. 간은 서울이나 영남에 비해 짠 편이지만, 과도하게 자극적이기보다는 멸치·다시마·명태 머리·생선 뼈 등을 푹 고아낸 육수 맛이 중심을 잡아주는 스타일입니다. 김치 역시 서울식보다 염도가 조금 높고 마늘·고춧가루가 넉넉하게 들어가며, 해안가 마을로 내려갈수록 젓갈과 액젓의 비중이 커져 밥도둑에 가까운 짭짤·칼칼한 맛이 특징입니다.
해산물 중심의 밥상: 회, 물회, 생선요리
바닷가 마을에서 만나는 고성 밥상은 무엇보다 해산물이 중심입니다. 거진·대진·아야진·봉수대 인근 횟집에 들어가면 모둠회와 함께 생선매운탕, 조림, 구이, 튀김까지 한 번에 쏟아져 나와, 기본 상차림만으로도 열두 가지 안팎의 반찬이 밥상을 가득 채웁니다. 홍게·대게, 오징어, 문어, 성게, 멍게, 소라 등 동해 특유의 재료가 계절에 맞춰 올라오는데, 탕이나 조림으로 쓰고 남은 뼈·머리·껍질까지 국물·장국에 최대한 활용해 허투루 버리는 식재료가 거의 없다는 점이 이 지역 밥상의 중요한 미덕입니다. 여름철에는 시원한 물회가 빠지지 않습니다. 싱싱한 생선을 얇게 썰어 채소와 함께 담고 살얼음이 언 육수나 동치미 국물을 부어내는데, 매콤한 초장 계열과 담백한 동치미·사과식 초장 계열이 공존하며, 밥을 말아 한 그릇 식사로 끝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게알비빔밥이나 문어국밥처럼 “밥 한 그릇에 바다를 통째로 올린” 메뉴도 고성 밥상의 또 다른 얼굴입니다. 성게알비빔밥은 하얀 쌀밥 위에 노란 성게알을 넉넉히 올리고 김가루·참기름만 더해 비벼 먹는 단출한 구성인데, 재료 자체의 바다향이 강해 다른 양념은 최소화하는 편이고, 문어국밥은 뽀얗게 우러난 문어 육수에 콩나물·파를 더해 개운하면서도 깊은 맛을 냅니다.
강원도식 국·탕·찌개가 만든 집밥의 뼈대
고성의 밥상에서 국과 탕은 단순한 곁다리가 아니라 밥상의 뼈대에 가깝습니다. 지역 향토음식 전문점에서는 물곰탕, 대구탕, 도치알탕, 도루묵찌개 등 동해 연안에서 흔히 잡히는 겨울 생선으로 끓여낸 탕과 찌개가 대표 메뉴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물곰탕은 기름기가 많고 담백한 물곰(곰치)을 통째로 넣어 끓인 하얀 탕으로, 속을 풀어주는 보양식에 가까운 이미지가 강하며, 대구탕과 도치알탕은 얼큰한 양념·무·콩나물 등을 넣어 추운 겨울날 해장과 보온을 동시에 책임지는 메뉴로 사랑받습니다. 도루묵찌개는 알이 꽉 찬 도루묵을 통째로 넣고 고추장·고춧가루 양념에 푹 끓여내는데, 알의 톡톡한 식감과 깊은 감칠맛 덕분에 밥을 계속 부르는 반찬 겸 메인 요리 역할을 합니다. 이들 국·탕·찌개에는 종종 두부나 순두부, 콩나물, 시래기, 무 등 강원도에서 자주 키우는 농산물이 함께 들어가고, 보통 큰 뚝배기에 끓여 여러 사람이 나눠 먹는 구조라, 반찬이 조금 부실하더라도 국 한 가지로 상이 든든해지는 밥상이 완성됩니다.
메밀과 나물, 토종 곡물이 만든 산촌 밥상
바닷가를 조금 벗어나면 고성의 밥상은 메밀과 산나물, 옥수수·감자·보리 같은 토종 곡물이 더 두드러집니다. 고성에는 백촌막국수를 비롯해 줄 서서 먹는 메밀국수 집들이 여럿 있는데, 진한 메밀 향이 나는 면에 동치미 육수를 부어 내거나, 비빔 양념을 더해 먹는 형태가 일반적입니다. 동치미국수는 동치미 국물 자체가 시원한 육수 역할을 해 속이 싸하게 내려가며, 편육 한 접시를 곁들이면 막걸리 안주이자 한 끼 식사가 동시에 되는 구조입니다. 왕곡마을 향토식당에서는 메밀전병과 추어탕, 계절 메뉴로 콩국수 등이 올라오는 건강한 밥상을 선보이는데, 메밀전병 속에 곤드레나물이나 김치를 넣어 각각 담백·매콤한 두 가지 맛으로 내는 것이 특징입니다. 강원도식 추어탕은 국내산 미꾸라지를 잘게 갈아 걸쭉하게 끓여낸 뒤 밥을 말아 먹는 스타일이라, 서울·전라도식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자극적이지만 몸이 따뜻해지는 느낌이 강해, ‘보양 밥상’이라는 인상을 줍니다. 여름철에는 고소한 콩국수를 계절 한정 메뉴로 내기도 하는데, 두툼한 면발과 진한 콩국이 어우러져 “시원하면서도 포만감 있는 한 끼”를 만든다는 점에서 휴가철 피서객들에게 특히 인기입니다.
향토식당과 기사식당이 보여주는 ‘백반 한 상’
고성의 일상적인 밥상 풍경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은 향토식당과 기사식당, 그리고 오래된 백반집입니다. 진등마을 향토음식점에서는 자연산 능이버섯을 듬뿍 넣은 오리백숙을 대표 메뉴로 내는데, 큼직한 오리 한 마리를 푹 삶아 능이 향이 배어든 국물과 함께 내고, 식사 막바지에는 남은 육수에 죽을 끓여 마무리하는 방식이 일반적입니다. 직접 산에서 채취한 재료를 쓰는 경우가 많아, 단순한 고기 요리라기보다 산촌의 기운을 그대로 담은 보양 밥상에 가깝고, 상에는 기본 김치와 나물, 장아찌 등 밑반찬이 촘촘히 채워집니다. 삼거리기사식당처럼 새벽부터 문을 여는 기사식당에서는 생선조림·생선구이를 중심으로 한 백반 정식이 유명합니다. 20년 가까운 내공으로 끓여낸 양념 생선조림에 국·나물·김치·젓갈·전·조개류 무침 등이 소박하지만 푸짐하게 깔려, 아침부터 ‘강원도 밥상’의 기본 구성을 한 번에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현지인과 여행자 모두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또 지역 향토음식 전문점인 쌍둥이네식당 등에서는 물곰탕, 대구탕, 도치알탕, 도루묵찌개, 생선찜·생선구이, 콩나물해장국, 순두부찌개 등 다양한 국·찌개류를 한 상에 조합해 내는 한정식에 가까운 밥상을 선보이며, 계절·어획 상황에 따라 반찬 구성과 메인 메뉴가 유동적으로 바뀌는 점이 특징입니다. 이런 집들의 공통점은 조미료 사용을 줄이고 매일 엄선한 식재료로 ‘집에서 먹는 것 같은’ 밥상을 지향한다는 점이며, 실제로 지역 주민에게 먼저 인정받은 뒤 여행객 사이로 알려진 경우가 많아 로컬리티가 선명합니다.
현대적 변주: 양식과 철판, ‘맛캉스’ 밥상
전통적인 향토 밥상과 더불어, 최근 고성에서는 ‘맛캉스(맛집+바캉스)’ 트렌드에 맞춘 현대적 식당들도 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장미경양식 같은 돈가스 전문점은 우유·양파·소주 등으로 숙성한 두툼한 돼지고기를 노릇하게 튀겨내 일본식 돈카츠와 한국식 경양식 돈가스의 중간 지점에 있는 메뉴를 선보이는데, 관광객뿐 아니라 현지인 가족 단위 손님에게도 인기가 높습니다. 고성의 일부 일식·양식 계열 식당에서는 치즈를 듬뿍 올린 돈가스, 새우·문어를 곁들인 파스타, 한국식으로 변형된 해산물 스테이크 등을 내며, 바다를 바라보는 전망과 함께 ‘휴양지 식탁’을 연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편, 고성의 해산물 철판요리 전문점에서는 전복·관자·타이거 새우·낙지와 각종 채소를 한 번에 철판 위에 올려 볶아내는 모둠 요리를 메인으로 내는데, 버터와 간장, 마늘을 기본으로 한 양념이 바다 향과 어우러져, “밥 반찬과 술안주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현대식 밥상이 됩니다. 이처럼 고성 밥상은 단순히 향토음식에 머무르지 않고, 로컬 재료를 활용한 다양한 양식·퓨전 메뉴로 확장되며,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식탁 풍경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