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은 23년간의 언론인 경력을 접고 고향 제주로 돌아와 ‘제주 올레길’이라는 새로운 걷기 문화를 연 인물로, 한국의 1세대 여성 정치부 기자이자 시사주간지 첫 여성 편집장이라는 이력까지 함께 가진 독특한 경력의 소유자입니다. 언론과 여행, 지역 공동체를 관통하는 그의 삶은 ‘길 위에서 자기 삶을 다시 설계한 사람’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성장 배경과 학력
서명숙 이사장은 제주도 서귀포시에서 태어나 자라고, 초·중·고를 모두 제주에서 나온 제주 토박이입니다. 어린 시절 마을 풍경은 검은 현무암 돌담과 바람, 바다로 상징되는 전형적인 제주 시골 마을이었고, 이 환경은 훗날 그가 ‘길을 내는 일’을 할 때 제주의 자연과 삶의 결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는 밑바탕이 됩니다. 이후 서울로 올라와 고려대학교 교육학과에 진학해 교육학을 전공했는데, 훗날 사람과 사회, 제도, 공동체를 구조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에 이 교육학적 훈련이 영향을 주었다고 평가됩니다. 2023년에는 제주대학교로부터 명예문학박사를 받으며, 언론과 글쓰기, 그리고 제주를 알리는 활동 전체가 공로를 인정받았습니다.
언론인으로서의 경력
그의 직업적 출발점은 기자였습니다. 1980년대 초반 월간지 ‘마당’과 ‘한국인’에서 기자로 일하며 사회 현장을 취재했고, 군부독재에서 민주화로 넘어가는 격동의 시기를 잡지 저널리즘의 현장에서 통과했습니다. 1989년에는 시사주간지 ‘시사저널’ 창간 멤버로 합류해 정치부 기자로 뛰었고, 이후 정치팀장, 취재1부장, 취재2부 부장 직무대행 등을 거치며 정치 뉴스의 한복판에 서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대한민국의 ‘여성 정치부 기자 1세대’로 불렸고, 한국 시사주간지 역사상 첫 여성 편집장 자리에 오르며 유리천장을 깬 상징적 인물이 되었습니다.
2001~2003년에는 시사저널 편집장으로 지면 전반을 책임졌고, 이후 인터넷 언론이 급부상하던 2000년대 중반에는 오마이뉴스 편집국장을 맡아 온라인 저널리즘의 현장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편집국장을 끝으로 23년에 걸친 언론인 생활을 마무리한 뒤, 그는 “뉴스를 만드는 삶”에서 “길을 만드는 삶”으로 방향을 틉니다. 언론계를 떠난 뒤에도 시사주간지 시사IN의 편집위원으로 참여하며 사회 이슈에 대한 글쓰기와 논평을 이어갔고, 언론인이라는 정체성은 여전히 그의 중요한 축으로 남아 있습니다.
산티아고 순례길과 ‘제주 올레’의 탄생
제주올레의 출발점은 먼 유럽의 길,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이었습니다. 기자 생활을 정리한 뒤 그는 산티아고 길을 걸으며 자신이 ‘몸과 마음이 회복되는 경험’을 했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고향 제주를 떠올리게 됩니다. 그가 느낀 감정은 “산티아고보다 더 아름답고 평화로운 길이 제주에 있을 수 있다”는 확신이었고, 그 확신은 ‘나만의 길을 만들겠다’는 결심으로 구체화되었습니다.
귀국 후 그는 사단법인 ‘제주올레’를 발족하고, 실제 현장에서 발로 뛰며 길을 내기 시작합니다. 이때 선택한 전략은 관광지 중심이 아니라 ‘관광지가 아닌 곳일수록 더 아름답다’는 믿음에 기반해, 마을과 들, 해안, 밭, 숲 사이의 생활길을 걷기 길로 엮는 방식이었습니다. 5년 4개월 동안 그는 동생과 함께 제주의 해안선을 따라 걸으며 약 425km에 이르는 제주 올레길을 개척했고, 이 길은 결국 제주를 한 바퀴 도는 코스로 완성됩니다. 현재 알려진 제주올레 코스는 20여 개가 넘으며, 성산읍 시흥초등학교 앞에서 시작해 시계 방향으로 섬을 돌아 구좌읍 종달포구에서 끝나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그에게 길은 단순한 관광 인프라가 아니라 치유와 회복의 공간입니다. 그는 인터뷰에서 길을 “의사도 약사도, 수술도 처방전도 필요 없이 스스로를 치유하는 예방약이자 종합병원”이라고 표현하며, 걷기를 통해 사람들이 번아웃과 우울, 피로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고 이야기합니다. “걷는 것이 쉬는 것이다”라는 그의 말은, 빨리 가기보다 천천히 걷는 삶을 제안하는 제주올레 철학의 핵심 문장으로 자주 인용됩니다.
제주올레 이사장으로서의 활동과 철학
2007년 9월 공식적으로 출범한 제주올레에서 서명숙은 초대 이사장을 맡았고, 이후 계속 이사장으로서 조직을 이끌고 있습니다. 그의 역할은 단순히 길을 ‘만드는 사람’을 넘어, 길을 ‘관리하고, 홍보하고, 지역사회와 연결하는 사람’까지 포괄합니다. 제주올레는 비영리 단체 형태로 운영되며, 그는 민간인으로서 후원과 자원봉사, 지역 협력을 이끌어 길을 유지·보수하고 걷기 문화를 확산시키는 데 헌신해 왔습니다.
특히 그는 올레길을 통해 지역 경제와 도시 기업을 연결하는 다양한 실험을 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1사 1올레’ 프로그램으로, 올레길이 지나가는 마을과 도시의 기업을 결연해 후원과 교류를 이루도록 했습니다. 이를 통해 길을 내준 마을 주민들이 경제적·사회적 이익을 함께 누릴 수 있도록 하고, 도보 여행이 단순한 소비가 아니라 지역과 상생하는 구조가 되도록 설계했습니다. 이런 공로로 그는 제23회 일가상 사회공익부문 수상자로 선정되었는데, 선정 사유에는 “제주 올레길을 개척하여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건강한 여행문화를 확산시키고, 전국 도보길의 모델이 되었다”는 평가가 담겼습니다.
그의 철학은 ‘슬로 라이프’와 ‘공존’에 가깝습니다. 그는 강연과 인터뷰에서 걷기를 통해 행복을 찾자는 메시지를 전하며, 속도를 늦추고 몸을 움직이며 생각을 정리하는 삶의 태도를 강조합니다. 또한 걷기 길이 자연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보호하고 함께 살아가는 방식이 되어야 한다고 보고, 과도한 상업화나 난개발을 경계해 왔습니다. 제주올레의 경험은 이후 한국 각지의 둘레길·탐방로 조성 사업에 영향을 주어, ‘걷기 관광’이라는 새로운 관광 패러다임을 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술 활동과 대중 강연
언론인 출신답게 서명숙 이사장은 활발한 저술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는 여행, 음식, 삶의 태도, 여성의 삶 등을 주제로 여러 권의 책을 냈는데, 이 책들은 단순한 정보 여행기가 아니라 ‘삶을 돌아보는 에세이’에 가깝습니다. 대표적으로 산티아고 순례 경험과 제주올레의 탄생,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생각을 담은 여행서, 일상과 위로, 음식을 소재로 한 에세이, 소설적 형식의 작품까지 여러 장르를 가로지릅니다. 이러한 책들은 그를 ‘길을 내는 사람’일 뿐 아니라 ‘길 위의 작가’로 자리매김하게 했습니다.
또한 그는 명사 특강과 강연 장에서도 활발히 활동합니다. 강연 주제는 ‘제주 올레가 그리는 지역의 미래’, ‘걷기를 통해 행복해지자’, ‘슬로 라이프’, ‘길 내는 여자’ 등으로, 자신의 인생 스토리와 길을 통해 배운 삶의 태도를 바탕으로 사람들에게 동기부여를 주는 내용이 중심입니다. 언론 현장 경험, 조직의 유리천장을 뚫은 이야기, 중년 이후 커리어 전환, 지역과 공동체에 기여하는 삶에 대한 고민 등이 강연 곳곳에 녹아 있어, 특히 직장인과 청년, 중년 세대 청중의 공감을 얻고 있습니다.
현재의 위치와 의미
현재 서명숙 이사장은 제주올레 이사장, 시사IN 편집위원, 여행가·강연자로 활동하며, 언론과 지역, 여행을 이어주는 교차점에 서 있습니다. 제주올레는 이제 제주를 대표하는 관광 브랜드이자 도보여행 문화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고, 일본 등 해외에도 모델로 수출되며 걷기 여행의 전형으로 인용됩니다. 그는 여전히 길을 점검하고, 주민들과 소통하며, 국내외에서 제주올레 사례를 나누는 일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서명숙 이사장의 삶이 주는 메시지는 ‘인생 2막의 가능성’과 ‘지역으로의 회귀’에 있습니다. 치열한 언론 현장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와 전혀 다른 분야에서 길을 개척한 그의 선택은, 경쟁과 속도 중심의 도시 삶에 지친 이들에게 하나의 대안적 서사를 보여줍니다. 여성 언론인 1세대, 시사저널 첫 여성 편집장, 온라인 저널리즘 편집국장, 그리고 제주올레 이사장에 이르는 굴곡진 이력은, 한국 사회에서 한 개인이 어떻게 시대 변화를 통과하며 자기 길을 만들어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로도 평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