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로이트 피자는 미국 피자 문화에서 비교적 늦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한 번 빠져들면 뉴욕 스타일이나 시카고 딥디시와는 또 다른 세계를 보여주는, 상당히 개성 강한 스타일입니다. 두툼하지만 가볍고 공기층이 많은 도우, 사각형 철판, 가장자리까지 꽉 채운 치즈와 ‘소스 온 탑(sauce on top)’ 방식이 결합해, 식감과 풍미에서 완전히 다른 경험을 제공합니다.
탄생 배경과 디트로이트라는 도시
디트로이트 피자의 역사는 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 자동차 산업의 도시였던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에서 시작됩니다. 1946년, 디트로이트 동쪽 지역 식스 마일 & 코넌트(Six Mile & Conant)에 위치한 동네 바 ‘버디스 랜데부(Buddy’s Rendezvous)’에서 구스 게라(Gus Guerra)가 처음으로 사각형 피자를 구워 내면서 이 스타일이 탄생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디트로이트는 빅3 자동차 회사와 수많은 부품 공장으로 대표되는 전형적인 공업 도시였고, 식당과 선술집에는 공장 노동자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값싸고 배부르면서도 빠르게 나올 수 있는 음식이 필요했고, 피자는 그런 요구를 충족시키기에 이상적이었는데, 여기서 디트로이트 특유의 공업 환경이 독특한 피자 스타일을 만들어냅니다.
핵심은 ‘팬’이었습니다. 당시 게라와 동료들은 기존의 원형 피자 판이 아니라 자동차 부품, 특히 작은 부품이나 나사를 담는 데 쓰이던 블루 스틸(blue steel) 직사각형 트레이를 구해 피자 팬으로 사용했습니다. 무겁고 가장자리가 높은 이 강철 팬은 열을 강하게, 고르게 전달해 바닥은 바삭하게, 내부는 폭신하게 만들어 주었고, 이것이 바로 오늘날 디트로이트 피자의 상징이 된 ‘두툼하면서도 공기가 가득한 크러스트’의 출발점이 됩니다. 즉, 도시의 주력 산업이 사용하던 공업용 도구가, 우연히도 새로운 피자 스타일의 탄생을 이끈 셈입니다.
버디스 피자는 이후 ‘디트로이트 스타일 피자의 원조’라는 타이틀로 지역 사회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다른 피자 가게들이 이를 모방하거나 변형하면서 하나의 지역 스타일로 굳어졌습니다. 이후 수십 년 동안은 거의 디트로이트와 미시간 인근에 국한된 로컬 음식에 가까웠지만, 2000년대 이후 다양한 피자 대회와 푸드 미디어, 피자 업계 컨설턴트들의 활동을 통해 미국 전역, 나아가 해외로까지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디트로이트 스타일 피자를 전국적으로 전파한 인물로는 디트로이트 스타일 피자 컴퍼니를 운영하며 각지의 피자 가게에 이 스타일을 컨설팅했던 션 랜다조(Shawn Randazzo)가 자주 언급됩니다.
디트로이트 피자의 핵심 특징

Detroit-style pizza slice with lacy cheese crust, sauce on top, pepperoni, and green elements.
디트로이트 피자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두껍지만 가볍고, 사각형이면서 치즈가 가장자리까지 흘러내린, 소스가 위에 얹힌 팬 피자” 정도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표현 안에는 도우, 팬, 치즈, 토핑, 소스, 굽는 방식에 이르기까지 여러 요소가 촘촘하게 맞물려 있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직사각형 형태입니다. 디트로이트 피자는 전통적으로 둥근 모양이 아니라 직사각형 혹은 정사각형에 가까운 형태로 구워집니다. 이는 애초에 사용했던 자동차 부품용 블루 스틸 팬의 형태에서 비롯된 것으로, 오늘날에도 전통적인 디트로이트 피자를 표방하는 곳은 이 직사각형 강철 팬을 핵심 요소로 유지합니다. 팬의 높은 가장자리 덕분에 도우가 옆으로 퍼지는 대신 위로 부풀어 오르게 되고, 가장 자리에는 치즈가 녹아 흘러내렸다가 철판과 맞닿으며 캐러멜화되어 특유의 ‘레이시 크러스트(lacy crust)’ 혹은 ‘프리코(frico) 엣지’를 형성합니다.
식감의 측면에서 디트로이트 피자는 ‘두껍지만 무겁지 않다’는 표현이 자주 쓰입니다. 도우는 통상적으로 68~72% 수준의 높은 수분율을 가지며, 충분한 발효와 프로핑(proofing)을 거쳐 구워졌을 때 내부가 빵처럼 다공성이고 공기층이 많은 구조를 형성합니다. 이렇게 만든 도우를 기름을 약간 두른 철판에 올려 구우면, 바닥과 측면은 튀기듯 바삭해지고 내부는 스폰지처럼 폭신한 대비를 이루게 됩니다. 이 때문에 디트로이트 스타일은 뉴욕 슬라이스처럼 접어서 먹는 피자와는 느낌이 전혀 다르고, 시카고 딥디시처럼 무거운 파이 형태와도 뚜렷이 구별됩니다.
토핑 구성도 특징적입니다. 디트로이트 피자는 대체로 치즈를 먼저 올리고, 그 위에 토핑을 얹은 뒤 마지막에 토마토 소스를 굵직하게 두 줄 혹은 세 줄로 ‘레이싱 스트라이프(racing stripes)’처럼 뿌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소스를 먼저 바닥에 깔고 치즈와 토핑을 올리는 전통적인 피자와 반대 순서인 셈인데, 이렇게 하면 치즈와 토핑이 직접 오븐 열에 노출되면서 더 강하게 구워지고, 소스는 상대적으로 수분을 유지해 상단에서 산뜻한 산미와 향을 제공합니다. 사진에서 흔히 보이는 두툼한 사각 피자 위, 붉은 소스 띠가 두세 줄 가로지르는 모습이 바로 디트로이트 스타일의 아이콘 같은 비주얼입니다.
이 스타일을 대표하는 치즈는 위스콘신 브릭(Wisconsin brick) 치즈입니다. 브릭 치즈는 녹는 점과 지방 함량이 디트로이트 스타일에 매우 잘 맞기 때문에, 팬 가장자리까지 넉넉히 채워 올렸을 때 녹은 치즈가 철판과 가에서 만나면서 특유의 캐러멜화된 바삭한 치즈 크러스트를 만들어 줍니다. 위스콘신 브릭이 구하기 어렵거나 가격이 부담되는 곳에서는 모차렐라와 브릭을 섞거나, 모차렐라 단독, 또는 지방 함량이 높은 다른 세미하드 치즈를 활용하기도 합니다. 어쨌든 ‘치즈를 가장자리까지, 아낌없이’ 올리는 것이 디트로이트 피자의 핵심 정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도우와 굽기: 빵과 튀김의 경계
디트로이트 피자의 도우는 보통 이탈리아식 나폴리 피자나 뉴욕 슬라이스 도우와 재료 구성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지만, 수분 비율과 발효, 팬 오일링 방식에서 차이가 납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수분율은 대체로 70% 안팎으로 상당히 높은 편이라, 믹싱 시 끈적끈적한 ‘웻 도우(wet dough)’에 가깝고, 반죽을 오래 치대기보다는 가볍게 접고 쉬게 하는 방식으로 글루텐 구조를 잡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반죽을 직사각형 팬에 옮겨 담은 뒤, 실온 혹은 저온에서 충분히 프로핑해 팬 전체에 고르게 퍼지도록 합니다.
팬에 기름을 두르는 방식도 중요합니다. 디트로이트 피자에서는 버터나 올리브 오일보다는 식물성 오일, 때로는 쇼트닝 등을 사용해 팬 바닥과 측면을 넉넉히 코팅하는데, 이것이 오븐 안에서 일종의 ‘팬 프라이’ 효과를 만들어 도우의 바닥과 옆면을 한층 더 바삭하게 만들어 줍니다. 덕분에 바닥을 보면 살짝 튀긴 듯한 갈색과 바삭바삭한 식감을 느낄 수 있고, 내부는 높은 수분과 발효 덕분에 빵과 포카치아 사이 어딘가에 해당하는 폭신함을 유지합니다.
굽는 온도와 방식은 가게마다 다르지만, 전통적으로는 비교적 높은 온도로 예열한 오븐에서 팬째로 구워 바닥과 측면의 바삭함, 치즈의 캐러멜화, 내부의 충분한 익음을 동시에 달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부 전문점에서는 먼저 치즈와 도우만 올린 상태로 한 번 굽고, 이후 소스를 위에 얹어 다시 한 번 짧게 굽는 방식으로 식감과 풍미를 조절하기도 합니다. 이 과정에서 치즈는 가장자리를 따라 얇고 바삭한 레이스 모양으로 굳어져,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치즈와 크러스트가 동시에 ‘바삭’하고 부서지는 특유의 경쾌한 소리를 만듭니다.
소스와 토핑: ‘소스 온 탑’의 미학

Detroit-style pizza with pepperoni, black olives, mushrooms, green peppers, onions, and racing stripe sauce.
디트로이트 피자를 한 번만 봐도 기억에 남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가 바로 ‘소스 온 탑’입니다. 일반적인 피자는 도우 위에 소스를 먼저 바르고 그 위에 치즈와 토핑을 얹지만, 디트로이트 스타일에서는 치즈와 토핑을 먼저 올린 뒤, 마지막에 토마토 기반 소스를 줄무늬처럼 위에 뿌립니다. 이 때문에 토마토 소스는 직접 팬과 맞닿지 않고, 상대적으로 부드럽고 신선한 산미를 유지하며, 치즈와 토핑은 보다 강하게 구워져 진한 풍미를 냅니다.
소스 자체는 이탈리아식 마리나라에 가까운 경우가 많지만, 조리 방식에서 차이를 보입니다. 여러 디트로이트 피자 전문점들은 소스를 따로 천천히 끓여 깊은 맛을 내고, 오레가노, 바질, 마늘 등을 사용해 향을 풍부하게 만듭니다. 다만 도우와 치즈, 팬 기름에서 상당한 풍미와 지방이 나오기 때문에, 소스는 상대적으로 산뜻한 방향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너무 무겁고 단맛이 강한 소스보다는, 약간의 산미와 허브 향을 강조해 전체 밸런스를 맞추는 식입니다.
토핑은 디트로이트 피자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필수 요소라기보다는, 스타일을 드러내는 연출에 가깝습니다. 전통적으로는 페퍼로니가 가장 대표적인 토핑으로, 사각형 팬에 촘촘하게 올려 구우면 페퍼로니의 지방이 치즈와 도우에 스며들면서 진한 고기 향을 더합니다. 현대에 와서는 버섯, 양파, 피망, 올리브 등 각종 토핑을 많이 올리는 경우도 흔하며, 미국 여러 도시의 디트로이트 피자 전문점들은 각 지역의 미식 트렌드를 반영해 치즈 블렌드나 특이한 토핑 조합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토핑의 종류보다는, 치즈가 팬 가장자리까지 깔리고, 소스가 위에서 줄무늬처럼 올라간 형태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이 구조 덕분에 한 조각 안에서 바삭한 가장자리, 폭신한 중앙, 기름지고 향이 강한 치즈, 산뜻한 소스, 그리고 취향에 따라 추가된 토핑이 층층이 어우러지는 복합적인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다른 피자 스타일과의 비교
디트로이트 피자를 이해하려면 뉴욕 스타일, 시카고 스타일, 시칠리아 스타일과 비교해 보는 것이 유용합니다. 뉴욕 피자는 얇고 접어서 먹는 슬라이스, 시카고 딥디시는 파이에 가까운 구조, 시칠리아 스타일은 직사각형 팬 피자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토핑 방식과 치즈 처리에서 디트로이트와 다릅니다.
디트로이트와 시카고는 모두 ‘두꺼운 피자’라는 인상을 주지만, 실제로 먹어 보면 식감과 구조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시카고 딥디시는 파이처럼 높고 치즈와 토핑, 소스가 층층이 쌓여 있어 한 조각만 먹어도 매우 묵직한 반면, 디트로이트는 두꺼운 편이지만 내부가 공기층으로 가득해 상대적으로 가볍게 느껴집니다. 또한 시카고는 소스를 위에 올린다는 점에서는 디트로이트와 비슷하지만, 디트로이트처럼 팬 가장자리에 치즈를 가득 채워 캐러멜화된 치즈 크러스트를 만드는 발상은 상대적으로 덜 강조됩니다.
뉴욕 스타일과 비교하면 거의 모든 면에서 ‘정반대’에 가깝습니다. 뉴욕 피자는 얇고 접어서 먹는 것이 전형으로, 데크 오븐 바닥에 직접 올려 구워 바삭하지만 유연한 크러스트를 추구합니다. 반대로 디트로이트는 팬을 활용해 기름과 열을 이용한 ‘튀기듯 구운’ 식감을 추구하고, 조각 하나에 상당한 부피를 가지고 있으며, 사각형이라는 점에서 슬라이스 문화와도 다소 결이 다릅니다.
시칠리아나 ‘그랜드마(grandma)’ 스타일과는 도우 레시피 측면에서 유사점이 있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일부 피자 교육기관에서는 디트로이트 스타일이 시칠리아/그랜드마 도우와 비슷한 레시피를 사용하지만, 팬 가장자리에 브릭 치즈를 뿌려 바삭한 치즈 엣지를 만드는 방식이 차별점이라고 설명합니다. 즉, 디트로이트는 기존의 직사각형 팬 피자 전통 위에, 공업 도시 특유의 팬과 치즈 활용법을 더해 독자적인 스타일로 진화한 사례라 볼 수 있습니다.
현대의 디트로이트 피자와 글로벌 확산
오늘날 디트로이트 피자는 더 이상 디트로이트 지역에만 머무는 음식이 아닙니다. 미국 각지의 피자 전문점, 수제 피자 바, 심지어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 일부에서도 디트로이트 스타일을 응용한 메뉴를 선보이고 있고, 영국, 한국 등 해외에서도 ‘디트로이트 스타일’을 전면에 내세운 가게들이 늘고 있습니다. 글래스고의 한 디트로이트 피자 전문점은 이 스타일을 “두껍지만 놀랄 만큼 가벼운 크러스트와 바삭한 바닥, 가장자리까지 이어지는 치즈, 그리고 위에 올린 소스가 만드는 완벽한 밸런스”로 정의하며, 기존의 뉴욕/나폴리 대비 차별화된 콘셉트로 시장을 공략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전통적 요소는 유지하되, 토핑 구성과 치즈 믹스, 도우 발효 방식 등에서는 다양한 실험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위스콘신 브릭 대신 각국에서 구하기 쉬운 치즈(고다, 체더, 국내산 반경성 치즈 등)를 혼합해 사용하는 경우가 많고, 토핑도 지역 특산물이나 로컬 미식 트렌드를 반영해 변주합니다. 한국에서도 양념치킨, 불고기, 김치 등을 토핑으로 올려 디트로이트 스타일의 팬과 크러스트 구조 위에 한식 요소를 결합하는 사례를 찾을 수 있습니다(이는 개별 가게의 창의적 변주에 해당합니다).
또한 가정용 오븐과 상업용 블루 스틸 팬이 보급되면서, 집에서 디트로이트 스타일을 재현하는 홈 베이커들도 늘고 있습니다. 피자 전문 매체들은 디트로이트 스타일을 주제로 한 가이드와 레시피를 제공하면서, 높은 수분 도우 다루는 법, 팬 시즈닝, 치즈 엣지를 만드는 요령, 재가열(reheating) 방법 등 실무적인 팁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디트로이트 피자는 ‘특정 도시의 지역 음식’에서 나아가, 전 세계 피자 애호가들이 실험하고 재해석하는 하나의 스타일로 자리 잡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