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술집은 경남 창원 마산 일대에서 발전한 독특한 해산물 술집 문화로, 술값만 내면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끝도 없이 안주가 깔리는 “상차림 중심 술집”을 뜻합니다. 오늘날에는 마산을 대표하는 향토 주점 문화이자, 다찌·실비와 함께 남해안 주당들에게 상징적인 공간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통술집의 기본 개념과 운영 방식
통술집의 가장 핵심적인 특징은 ‘술값에 안주가 포함된 구조’입니다. 손님은 자리에 앉아 소주나 맥주를 몇 병 기본으로 주문하면, 그 순간부터 주방에서 준비된 여러 종류의 안주가 차례차례 상에 올라옵니다. 예전 방식에 따르면 통술집에서는 기본 상차림과 함께 소주·맥주 합쳐 5병 정도를 ‘기본 패키지’처럼 묶어 내고, 술을 더 주문할수록 안주가 점점 고급화되는 방식으로 운영되기도 했습니다.
이 구조 때문에 메뉴판에는 세세한 안주명이 적혀 있는 경우가 드물고, 술 종류와 가격만 간단히 쓰여 있거나 ‘통으로 한 상’이라는 식의 포괄적 표현이 쓰이곤 합니다. 손님 입장에서는 얼마만큼 먹게 될지 가늠하기 어렵지만, 실제로 가보면 배가 불러 젓가락을 놓을 때까지 안주가 계속해서 나오는 것이 통술집의 일반적인 경험입니다.
한편 최근에는 예전만큼 ‘무제한’에 가깝게 주는 곳보다는, 기본 상차림 수와 술병 수를 어느 정도 제한하는 대신 가격을 합리적으로 조정한 집들도 늘었습니다. 일부 통술집은 “안주 12가지 + 맥주 3병 2만 원대”처럼 패키지를 명확히 제시해 손님이 부담 없이 선택할 수 있게 하고, 추가 술 주문에 따라 안주 품목을 조금씩 업그레이드하는 방식을 쓰기도 합니다.
‘통술’이라는 이름의 유래
‘통술’이라는 단어의 어원은 정설이 확립된 것은 아니지만, 지역에서 널리 회자되는 이야기는 몇 가지로 정리됩니다. 첫째 설은 마산 오동동 일대에 요정이 많던 시절, 부유층이 비싼 요정 술상을 즐기던 문화에 대응해 서민들이 값싸게 실컷 먹고 마실 수 있는 술집을 지칭하면서 ‘통째로 술과 안주를 준다’는 의미에서 통술이라는 말이 나왔다는 설명입니다. 이때의 ‘통’은 ‘싸고 푸짐하다’는 뉘앙스를 담고 있어, 서민적인 이미지가 강하게 배어 있습니다.
또 다른 설은 손님이 처음에 일정 금액만 지불하면 막걸리든 맥주든 정해진 양만큼 자유롭게 마시고, 안주도 한 상 가득 차려주는 집이라는 의미에서 ‘통으로 술과 안주를 판다’는 데서 비롯되었다는 설명입니다. 이런 해석에 따르면 통술집은 애초부터 개별 메뉴를 선택해 주문하는 일반 주점과 달리, ‘상차림 단위’로 문화를 형성해 온 셈입니다.
이처럼 어원은 다소 모호하지만, 공통점은 모두 ‘한 번 자리에 앉으면 값 부담 없이 실컷 먹고 마실 수 있는 곳’이라는 이미지에 모여 있습니다. 그래서 통술집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자연스럽게 서민적이고 푸짐한 술상, 그리고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떠올리게 됩니다.
마산에서 뿌리내린 통술 문화
통술집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은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오동동과 신마산 일대입니다. 이 지역에는 ‘통술골목’이라 불리는 거리가 형성되어 있고, 20여 곳 안팎의 통술집이 골목을 따라 줄지어 서 있어 저녁 시간대가 되면 네온사인과 사람들 웃음소리로 매우 활기를 띱니다.
마산 통술 문화가 이렇게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인근에 마산어시장이 있다는 점이 결정적으로 작용했습니다. 시장과 가까운 이점 덕분에 통술집들은 그날그날 들어온 생선과 조개류 등 신선한 해산물을 비교적 저렴하게 들여와, 푸짐한 안주로 상을 채울 수 있었습니다. 해산물 공급이 안정적으로 이루어지면서 통술집들은 ‘바다가 한 상에 올라온다’는 평가를 들을 정도의 풍성한 상차림을 유지할 수 있었고, 이것이 마산 통술의 브랜드를 만들었습니다.
지금도 마산 오동동 통술골목에는 40~50년 역사를 내세우는 노포들이 남아 있습니다. 모녀가 대를 이어 운영하는 곳, 한 집이 수십 년간 한 자리에서 상을 차려 온 집 등 각 통술집마다 단골들과 함께 쌓아 온 이야기가 많습니다. 여행 기사나 방송에서도 마산을 ‘남자의 도시, 술의 도시’라는 이미지와 함께 소개하며, 저녁에는 통술집에서 취하고 다음 날 아침에는 복국집에서 해장하는 일정이 하나의 코스로 자리 잡고 있기도 합니다.
상차림에 올라오는 대표 안주들
통술집에 처음 가는 손님들이 가장 놀라는 지점은 안주 종류와 양입니다. 상이 앉을 자리가 부족할 만큼 접시가 올라오는데, 구성은 계절과 그날 장 본 재료에 따라 달라지지만 공통적으로 해산물이 중심을 이룹니다.
기본 상차림에는 멸치볶음, 김치, 나물무침, 두부조림 같은 소박한 밑반찬에서 시작해, 오징어 숙회, 생선회, 조개무침, 해물탕, 생선조림 등이 뒤섞여 한 상에 동시에 혹은 순차적으로 올라옵니다. 마산·남해안 특유의 해산물인 아구, 복어, 꼼장어, 멍게, 미더덕 등을 활용한 요리가 등장하는 것도 특징입니다. 4~5월 한정으로 맛볼 수 있는 미더덕회처럼 계절성이 강한 메뉴가 나오는 시기도 있어, 계절 따라 통술집을 찾는 마니아도 적지 않습니다.
술이 추가될수록 안주는 양뿐 아니라 ‘격’이 달라지는 구조도 자주 보입니다. 처음에는 비교적 단순한 무침·볶음류와 소량의 회가 나오다가, 술값이 일정 수준 이상을 넘기면 자연산 전복, 성게, 해삼, 관자 등 고급 해산물이 상에 더해지는 식입니다. 단골들에게는 술 주문량과 상관없이 주인장이 알아서 좋은 안주를 챙겨주는 경우도 많아, 통술집이 단순한 술집을 넘어 사장과 손님 사이의 관계가 중요한 ‘단골 문화의 공간’이 되기도 합니다.
통술집과 다찌·실비, 선술집의 관계
통술집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통영의 ‘다찌’와 진주의 ‘실비’ 문화를 함께 보는 것이 좋습니다. 이들 세 문화는 모두 남해안 항구도시에서 발달한 술집 형태로, 공통적으로 술값에 푸짐한 해산물 안주가 포함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통영 다찌집의 경우 소주 한 병에 1만 원, 맥주 한 병에 6000원 수준의 가격을 받으면서, 기본으로 소주 2병이나 맥주 4~5병 정도를 주문하면 20가지가 넘는 해산물 안주가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쏟아져 나오는 방식이 대표적입니다. 다찌집도 술 주문량에 따라 안주가 단계적으로 고급화되고, 일정 수준을 넘기면 자연산 전복, 해삼창자 같은 귀한 안주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통술집과 매우 닮아 있습니다.
이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선술집’ 문화가 등장합니다. 선술집은 서서 술을 마시는 서민형 술집으로, 긴 나무대나 간이 테이블에 잔술을 팔며 손님이 잠시 서서 한두 잔 비우고 가는 형태가 주를 이뤘습니다. 해방 이후 포장마차와 대폿집이 생기면서 선술집 문화가 이어졌고, 오늘날의 포장마차는 이름 그대로라면 선술집의 후예에 가깝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이런 배경 위에서 마산, 통영, 진주 같은 남해안 도시에서는 항구·어시장과 결합한 통술·다찌·실비 문화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습니다.
가격 구조와 ‘무한리필’ 술집과의 차이
통술집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종종 ‘무한리필 술집’이나 ‘뷔페식 주점’과 비교하곤 하지만, 구조와 문화는 꽤 다릅니다. 무한리필 술집은 대체로 일정 가격을 내면 손님이 직접 안주나 술을 가져다 먹는 셀프 서비스 방식이 많고, 메뉴 구성이 체인 본사에서 정해진 표준화된 형태에 가까운 편입니다. 반면 통술집은 주문의 기본 단위가 ‘상차림’이며, 안주 구성은 그날 장터 상황과 주인장의 판단에 따라 유동적으로 바뀝니다.
가격 역시 단순한 ‘무제한’ 개념보다는, 기본 상차림과 기본 술병 수를 묶은 패키지 가격이 있고 이후 추가 주문에 따라 총액이 늘어나는 구조가 일반적입니다. 예를 들어 과거 통술집에서는 기본 상차림에 소주·맥주 5병이 제공되었고, 이를 넘어서 술을 더 주문하면 안주가 점차 고급화되었는데, 안주 자체에는 별도 가격을 매기지 않는다는 점에서 ‘상차림 포함 술값’이라는 독특한 회계 방식이 유지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통술집은 가성비만을 계산하는 공간이라기보다는, 일정 금액을 지불하면 그 이상으로 넉넉한 대접을 받는다는 신뢰와, 주인장과 손님 사이의 관계가 작동하는 곳에 가깝습니다. 단골이 되면 술값은 비슷해도 안주 구성이 달라지는 경험을 하는 경우가 많고, 이런 요소들이 통술집을 ‘숫자로만 환산하기 어려운 술자리 문화’로 만들어 왔습니다.
통술집이 주는 분위기와 사회적 의미
통술집의 분위기는 전형적인 남해안 항구도시의 정서를 담고 있습니다. 좁은 테이블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실내에서 해산물 냄새와 소주의 알코올 향이 섞이고, 옆 테이블 손님들과 자연스럽게 말을 섞거나 술잔을 부딪치는 장면이 낯설지 않습니다. 많은 통술집이 TV나 라디오를 틀어놓기보다는 사람들 대화 소리가 가득 차도록 두는 편이라, 공간 전체가 하나의 큰 술자리가 된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이런 환경에서는 일행끼리만 조용히 대화하는 것보다, 옆자리 중년 직장인들과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고 안주를 서로 권하는 식의 상호작용이 흔합니다. 바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어민 출신 손님, 마산에서 오래 산 토박이들의 옛 골목 이야기, 통술집이 지금보다 훨씬 거칠고 투박했던 시절에 대한 추억담이 오가면서, 통술집은 단순한 음주 공간을 넘어 지역의 기억과 정체성이 살아 있는 구술 아카이브 같은 역할도 합니다.
관광 측면에서도 통술집은 마산을 찾는 여행자들에게 하나의 ‘문화 체험’ 코스로 자리 잡았습니다. 레트로 감성을 강조하는 여행 기사들은 마산 오동동 통술골목을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장소로 소개하며, 묵직한 아구찜과 통술 한 상,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의 복국 해장을 묶어 마산 여행의 전형적인 하루로 그립니다. 지역 주민과 관광객이 한 공간에서 같은 상차림을 공유하는 경험은, 통술집을 통해 마산이라는 도시의 캐릭터가 여행자에게 각인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통술집의 변화와 과제
세월이 흐르면서 통술집 문화도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예전만큼 ‘술만 시키면 끝없이 안주가 나오는’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기는 어려워졌고, 원재료 가격 상승과 인건비 부담, 손님들의 취향 변화 등 현실적인 제약 속에서 상차림을 효율적으로 구성하려는 노력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일부 오래된 노포들은 여전히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하지만, 젊은 세대를 겨냥해 인테리어나 메뉴 구성, SNS 홍보 방식을 바꾸는 집들도 등장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마산 통술집의 본질, 즉 ‘해산물 중심의 푸짐한 상과 서민적인 흥겨움’이라는 핵심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습니다. 통술골목은 도시 재생과 레트로 관광 흐름 속에서 마산의 과거를 현재형으로 경험하게 해주는 장소로 의미가 커졌고, 방송 다큐멘터리나 유튜브 콘텐츠를 통해 젊은 세대에게도 조금씩 알려지고 있습니다. 다만 후계자 문제, 주변 상권 변화, 경쟁적인 무한리필 프랜차이즈의 확산 등으로 인해 통술집 고유의 운영 구조를 얼마나 지켜낼 수 있을지는 앞으로의 과제가 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