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

비비안 마이어

비비안 마이어는 생전에 단 한 번도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죽은 뒤 10만 장이 넘는 필름이 우연히 발견되면서 20세기 가장 중요한 거리 사진가 중 한 사람으로 재평가된 인물이다. 뉴욕과 시카고의 거리를 오가며, 보모로 일하던 틈틈이 찍어둔 그녀의 사진은 당시의 도시와 사람들을 놀라운 밀도로 기록한 거대한 비밀 아카이브였다.

어린 시절과 성장 배경

비비안 도로시 마이어는 1926년 2월 1일 미국 뉴욕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가정환경은 안정적이라기보다 유랑에 가까웠고,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를 따라 미국과 프랑스 사이를 오가며 성장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런 이동의 경험은 정주하지 못하는 삶, 곧 ‘길 위에서 사는 사람’의 시선을 형성했는데, 훗날 도시의 이방인처럼 거리를 서성이며 사람들을 관찰하는 그녀의 사진적 태도와도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마이어의 가족사는 상당 부분이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지만, 사진사 연구자들은 그녀의 유년기가 경제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불안정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이런 환경 속에서 그녀는 어릴 때부터 관찰하고 거리를 배회하는 습관을 들였고, 시선을 밖으로 향하게 하는 행위 자체가 일종의 방어이자 세계를 이해하는 도구가 되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보모의 삶과 ‘숨겨진 사진가’

성인이 된 이후 마이어의 직업은 대부분의 시간을 통틀어 ‘보모(nanny)’였다. 뉴욕, 시카고 등 미국 대도시의 중산층 가정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하면서, 그녀는 거의 언제나 카메라를 목에 걸고 다녔다고 증언자들은 회고한다. 173cm에 이르는 큰 키에 챙 넓은 펠트 모자, 몸을 완전히 감싸는 롱코트, 그리고 배 앞에 매단 롤라이플렉스 카메라라는 독특한 차림새는 주변 아이들에게도 강렬한 인상으로 남았다.

흥미로운 점은, 그녀가 사진을 생계 수단으로 삼으려 했다는 흔적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마이어는 평생에 걸쳐 약 15만 장 이상, 추산에 따라서는 15만~15만5천 장 수준의 사진을 촬영했지만, 정작 이 방대한 작업을 세상에 공개하거나 전시하려는 시도를 한 적이 없다. 상당수 필름은 현상조차 되지 않았고, 네거티브 상태로 박스에 차곡차곡 쌓여만 갔다. 그 결과, 타인의 아이를 돌보는 ‘보모’라는 본업 뒤에 숨은 그녀의 사진가 정체성은 철저한 ‘부캐’ 혹은 비밀스러운 사생활로 남게 된다.

함께 지냈던 아이들과 부모들은 뒤늦게 인터뷰에서 “항상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던, 어디론가 나가 사람들을 찍던 조금 이상하고 비밀스러운 보모였다”고 증언한다. 생활은 검소했고, 종종 괴팍해 보이기도 했지만, 거리에서 대상을 대할 때 그녀의 시선은 놀랄 만큼 따뜻하고 호기심에 가득 차 있었다는 점이 사진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사진 작업과 스타일

마이어의 작업은 기본적으로 거리 사진(street photography)에 속하지만, 이를 단순히 장르로만 규정하기에는 스펙트럼이 넓다. 그녀는 뉴욕과 시카고, 로스앤젤레스 등 대도시의 거리에서 행인, 노숙자, 아이들, 백화점 쇼윈도, 대중교통, 시위 현장 등 다양한 장면을 포착했다. 사진의 상당수는 사람과 건축물, 빛과 그림자가 서로 교차하는 순간을 포착한 장면으로, 도시라는 거대한 무대 위에 선 익명의 등장인물들을 하나의 연극처럼 배치하는 감각이 돋보인다.

그녀는 주로 롤라이플렉스 같은 6×6 포맷의 중형 카메라를 사용하면서, 정사각형 프레임 안에서 구조적인 구도를 만들어내는 데 탁월했다. 검은 그림자와 강렬한 빛, 유리창 반사와 쇼윈도, 물웅덩이에 비친 인물 실루엣 등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요소인데, 마이어는 이를 단순한 시각적 장식이 아니라 장면의 심리를 드러내는 장치처럼 활용했다.

또 하나의 특징은 인물 사진, 특히 거리에서 만난 낯선 사람들을 정면에서 응시하게 만드는 능력이다. 그녀의 사진 속 인물들은 종종 카메라를 똑바로 쳐다보며, 기쁨·경계심·피곤함·서늘한 공허감 같은 복합적인 감정을 드러낸다. 이는 결정적 순간에 셔터를 누르는 직관뿐 아니라, 낯선 사람을 향해 조용히 다가가도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특유의 거리감 조절 능력이 있었음을 시사한다.

마이어는 대체로 흑백 사진을 선호했고, 그 결과물은 풍부한 톤과 대비를 보여준다. 흑백이라는 제한된 색채 속에서 명암을 이용한 구성과 리듬감 있는 프레이밍이 상대적으로 더 두드러져 보이는데, 이는 그녀가 정식 사진 교육을 받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놀라운 부분이다. 일부 후기 작업에서는 컬러 슬라이드도 등장하지만, 여전히 도시의 사람과 사물의 미묘한 관계를 포착하는 시선은 일관되게 유지된다.

세계 일주와 관찰자의 시선

1959~1960년, 마이어는 혼자 세계 일주에 가까운 장기간 여행을 떠난다. 이 시기 그녀는 로스앤젤레스뿐 아니라 필리핀, 태국, 홍콩, 베트남,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 예멘, 이집트, 그리스, 레바논, 시리아, 터키, 이탈리아, 프랑스, 스위스 등을 방문하며 사진을 촬영했다. 일반적인 보모의 수입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여정이었는데, 연구자들은 프랑스 생줄리앙-앙-샹소르에 있던 가족 농장을 매각한 자금이 여행 비용으로 쓰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 세계 여행은 그녀의 아카이브에 도시 이외의 풍경,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과 거리 풍경을 더해 준다. 그러나 그녀의 시선은 관광객의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마이어는 잘 알려진 랜드마크나 기념물을 웅장하게 촬영하기보다는, 현지인의 얼굴, 좁은 골목, 시장의 풍경, 거리의 어린아이와 여성들 등 평범한 일상의 단면에 집중했다. 어느 도시의 어느 구역이더라도, 그녀의 사진은 늘 주변부에 머무는 사람들과 소외된 공간, 그 안의 사소한 몸짓과 표정에 초점을 맞춘다.

이런 태도는 그녀를 ‘관광객’이 아니라 일종의 ‘세계 시민형 관찰자’로 만든다. 국적과 언어, 계급을 가로질러 사람들을 바라보는 공통된 시선, 즉 제도와 권력이 아닌 일상의 몸짓과 표정에서 인간성을 찾으려는 태도가 그녀 아카이브 전체를 관통한다는 점에서, 마이어를 두고 ‘조용한 인류학자’라고 부르는 해석도 가능하다.

사진이 발견되기까지: 경매장 한 상자

마이어의 작업이 세상에 드러난 계기는 2007년 시카고 북서부 지역의 작은 경매장에서였다. 당시 경제적 사정이 좋지 않았던 그녀는 오랫동안 임대해 사용해 온 창고 보관료를 연체했고, 그 결과 창고에 있던 그녀의 유품—네거티브, 인화 사진, 오디오 녹음, 8mm 필름 등이 담긴 상자—가 압류 후 경매에 넘어가게 된다. 이 상자들은 세 명의 수집가에게 나뉘어 낙찰된다. 존 말루프, 론 슬래터리, 랜디 프로가 그들이다.

부동산 중개업자이자 플리마켓 마니아였던 존 말루프는 당시 시카고 건축에 관한 책을 준비하며 참고용 옛 사진을 찾고 있었다. 그는 400달러를 주고 네거티브 상자 한 묶음을 ‘블라인드’로 구입했고, 처음에는 그 가치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다. 하지만 몇 년 뒤 컴퓨터로 스캔을 시작하면서, 상자 속에 담긴 사진이 단순한 기록을 넘어선, 완성도 높은 거리 사진의 보고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슬래터리는 2008년 일부 사진을 인터넷에 처음 공개했지만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전환점은 2009년, 말루프가 자신의 블로그에서 일부 사진을 공유하고, 이미지 공유 사이트 플리커에 링크를 걸면서 찾아왔다. 이 사진들은 순식간에 ‘바이럴’ 반응을 불러일으키며 전 세계 수천 명이 관심을 보였고, 곧 사진계와 미술계에서도 본격적인 재조명이 시작된다.

사후의 명성과 논쟁

마이어는 2009년 4월 21일 사망했다. 그녀가 세상을 떠날 당시만 해도, 자신이 남긴 사진이 곧 전 세계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전시될 것이라 상상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로부터 몇 해 사이, 그녀의 이름은 거리 사진의 계보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존재가 되었고, 시카고·뉴욕·파리·서울 등 여러 도시에서 대규모 회고전이 열렸다.

특히 뉴욕에서 열린 대형 전시는, 그녀가 태어난 도시에서 처음으로 이루어진 본격적인 회고전이라는 점에서 상징성이 컸다. 전시를 통해 관람객들은 흑백 도시 사진뿐 아니라 컬러 슬라이드, 자화상, 오디오 녹음, 8mm 필름까지 포함한 보다 입체적인 마이어의 세계를 마주하게 되었다. 한국에서도 2022년 성수에서 열린 전시에서 270여 점의 사진과 영상, 육성이 공개되며 큰 관심을 끌었다.

동시에, 그녀의 사후 명성은 저작권과 윤리 문제를 둘러싼 논쟁도 불러왔다. 생전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사진도 보여주지 않았던 인물이, 본인의 동의 없이 사후에 대규모 상업 전시와 판매의 대상으로 소비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하는 질문이 제기된 것이다. 누가 진정한 상속인인지, 이미지 사용 권리는 누구에게 있는지에 대한 법적 다툼도 이어졌고, 지금까지도 완전히 깔끔하게 정리됐다고 보긴 어렵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사 측면에서 그녀의 작업을 무시하거나 묻어둘 수 없다는 공감대가 크기 때문에, 논쟁과 전시는 동시에 진행되는 독특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자화상과 ‘자기 서사’

마이어의 사진 중 주목받는 또 다른 축은 자화상(self-portrait)이다. 그녀는 거울, 쇼윈도, 그림자, 물웅덩이, 유리창 등을 이용해 자신의 모습을 여러 방식으로 프레임 안에 끌어들였다. 정면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는 사진도 있지만, 종종 반사된 이미지 속에 작게 등장하거나, 그림자로만 존재하는 형태도 많다.

이 자화상들은 ‘보모’라는 사회적 역할 뒤에 숨은 자신의 실존을 은유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처럼 읽히기도 한다. 카메라를 든 여성의 모습은 프레임 속 어디에선가 분명 존재하지만, 온전히 전면에 서지 못하고 유리, 그림자, 주변 사물 사이에 파묻혀 있다. 이는 여성 예술가가 20세기 중반 사회 구조 안에서 차지해야 했던 애매한 위치—보이되 보이지 않는 존재—와도 겹쳐 보인다.

자화상을 통해 그녀는 자신을 ‘작가’로 선언하기보다는, 관찰자이자 기록자, 거리의 유령 같은 존재로 설정한다. 그 속의 표정은 때로 냉정하고, 때로 장난스럽고, 때로 지쳐 보이지만, 카메라를 향한 시선만큼은 일관되게 또렷하다. 이는 사진이 그녀에게 단지 취미가 아니라, 세계와 자신을 이해하는 핵심적인 언어였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다큐멘터리 〈파인딩 비비안 마이어〉

마이어의 삶과 작업은 다큐멘터리 영화 〈파인딩 비비안 마이어(Finding Vivian Maier)〉를 통해 일반 대중에게 한층 더 널리 알려졌다. 존 말루프와 찰리 시스켈이 공동 연출한 이 영화는 뉴욕, 프랑스, 시카고를 오가며, 그녀가 보모로 일했던 집들과 그 가족, 이웃, 아는 사람들을 인터뷰한다. 영화는 한편으로는 숨겨진 천재의 발굴 서사, 다른 한편으로는 괴팍하고 복잡한 내면을 지닌 개인의 초상을 동시에 그려낸다.

다큐멘터리는 그녀가 아이들에게 엄격했고 때론 이상할 정도로 사생활을 숨겼으며, 집 안에 신문과 잡지를 산더미처럼 쌓아두는 등 강박적인 성향도 있었다는 증언을 담고 있다. 그러나 영화는 이러한 증언들이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기억의 왜곡인지에 대해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오히려 보는 이로 하여금 ‘우리는 타인의 내면을 어디까지 알 수 있는가’, ‘예술가의 작품과 삶을 어떻게 연결해서 읽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도록 만든다.

현대 사진사에서의 위치

오늘날 비비안 마이어는 20세기 거리 사진의 계보에서,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로버트 프랭크, 가리 윈오그랜드 등과 어깨를 나란히 언급되는 인물로 자리 잡았다. 정식 교육이나 사진계 네트워크, 상업적 커리어 없이도 오랫동안 일관된 시선으로 거리를 기록했고, 그 결과물의 수준이 당대 거장들과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점이 그 이유다. 학술적 관점에서는, 그녀가 스스로를 작가로 선언하지 않았다는 비(非)프로페셔널리즘 자체가 현대 예술과 노동, 아마추어리즘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던지는 사례로 평가된다.

또한 마이어의 재발견은 디지털 시대 이미지 유통 구조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플리커 같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무명의 작가가 사후에 ‘발굴’되고, 그 반응이 다시 미술관 제도와 상업 갤러리, 출판 시장을 움직이는 순환 구조를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이기 때문이다. 한 개인의 사적인 아카이브가 어떻게 전 지구적 문화 자산으로 전환되는지, 그 과정에서 누가 이익을 얻고 누가 목소리를 갖지 못하는지에 대한 비판적 논의도 함께 뒤따른다.

비평가들은 특히 그녀의 사진이 ‘전체를 보여주기보다 파편화된 이미지를 통해 보이지 않는 부분을 상상하게 만드는 내러티브의 힘’을 가진다고 지적한다. 도시 생활의 일부만을 잘라낸 듯한 프레임들은 화면 밖을 상상하게 만들고, 그 순간이 이어질 다음 장면, 인물의 뒷이야기를 떠올리게 하는 힘을 지닌다. 이는 사진을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열린 이야기의 시작점으로 만드는 힘이며, 마이어의 작업이 오늘날까지도 신선하게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