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배 음식 평론가는 한식의 ‘맛’뿐 아니라 ‘뿌리’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한국 음식 문화사 분야에서 가장 공력을 인정받는 필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한중일을 넘나드는 자료 조사와 현장 취재, 그리고 인문학적 서술을 통해 한국 음식 담론을 ‘정리’하려는 시도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력과 성장 배경
박정배는 경남 남해 지역 섬에서 남해 출신 아버지와 삼천포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남해 죽방렴 멸치, 삼천포 쥐치 같은 비릿한 해산물을 어려서부터 접하며 성장해 바다 냄새와 선어(鮮魚)에 익숙한 입맛을 갖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이런 성장 배경은 훗날 그의 글에서 자주 보이는 ‘재료의 원산지와 조업 방식, 지역 식문화’에 대한 민감한 감각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젊은 시절에는 순수 음식 평론가라기보다 문화·콘텐츠 업계 전반을 넘나드는 이력을 쌓았다. 방송 프로듀서, 출판사 대표, 애니메이션 제작사 대표 등 다양한 역할을 맡으며 대중 콘텐츠의 제작과 유통을 몸으로 익혔고, 이 경험이 나중에 음식 관련 방송 출연과 대중서 집필에 상당한 기반이 되었다. 일본과의 인연도 깊어 NHK의 다큐멘터리 제작에 관여하며 일본 출장을 수차례 다녔고, 이후에는 70여 회에 걸쳐 일본 전역을 ‘먹고 마시며’ 돌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 시기 경험은 단순한 여행 스토리가 아니라, 한·중·일 음식 문화 비교와 동아시아 미식사의 입체적 이해로 이어졌다.
음식 칼럼니스트로의 전환과 매체 활동
그가 음식 칼럼니스트로 본격 알려진 계기는 실용서 성격의 첫 저서 『3000원으로 외식하기』 출간이었다. 소액으로 즐길 수 있는 외식 공간을 소개하는 이 책이 대중적 주목을 받으면서, 그는 본업을 음식 글쓰기로 점차 옮겨가기 시작했다. 이후 KTX 기내지에 ‘박정배가 찾은 최고의 맛집’을 연재하고, 음식 전문지 「쿠켄」에서는 ‘박정배의 맛 따라 멋 따라 대한민국 음식지도’를 통해 전국 각지의 식당과 음식 문화를 소개했다.
일간지와 종합지에서도 꾸준히 필력을 발휘했다. 『조선일보』에는 「박정배의 한식의 탄생」, 「음식의 계보」, 「박정배의 미식한담」 등을 연재하며 음식의 기원과 전개 과정을 인문학적으로 풀어냈고, 『중앙일보』에서는 「박정배의 시사 음식」을 통해 사회·정치·경제 이슈를 음식에 빗대어 읽어주는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연재들은 단순 맛집 정보가 아니라, 각 요리와 식재료가 형성된 역사·정치·국제관계의 맥락까지 서술하는 점에서 다른 음식 칼럼과 선이 확연히 구분된다.
방송에서도 존재감이 크다. 평화방송 라디오에서 약 3년간 「우리땅 우리음식」을 진행했고, KBS 「밥상의 전설」, SBS Plus 「중화대반점」, MBC 라디오 「건강한 아침」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 출연해 음식 이야기를 들려줬다. 특히 KBS 「대식가들」의 고정 패널로 활동하며, 음식에 대한 스토리텔링과 교양적 설명을 대중적으로 풀어내는 역할을 맡았다. 국내 레스토랑 랭킹 리스트 ‘코릿(KOREAT)’ 선정위원으로도 참여해 외식 업계 평가에도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대표 저작과 연구 성향
책으로만 보면 그는 ‘음식 스토리텔러’이자 동시에 ‘음식 문화사 연구자’에 가깝다. 『음식강산』 1·2·3권은 특정 음식의 ‘원적(原籍)’, 즉 어느 지역에서 어떤 역사 속에서 생겨났는지 추적해내는 작업으로 큰 화제를 모았다. 이 시리즈는 한식 각 메뉴를 둘러싼 수많은 ‘설’과 광고용 이야기, 구전 전설을 걷어내고, 옛 문헌과 사료를 바탕으로 음식을 다시 정리한다는 점에서 기존 맛집 가이드와 완전히 다른 결을 가진다.
『한식의 탄생: 아는 만큼 맛 있는 우리 밥상 탐험기』는 설렁탕, 북엇국, 삼겹살, 빙과류, 치킨, 짜장면, 부대찌개 등 전통과 근대가 뒤섞인 한식의 스펙트럼을 인문학적으로 해부한 책이다. 저자는 한국 음식에 관한 책들이 학자, 요리전문가, 칼럼니스트마다 서술이 제각각이고, 왜곡·과장이 난무한다고 지적하면서, 옛 문헌과 신문 기사, 행정자료 등 1차 자료를 비교·검토해 음식의 기원과 변천사를 가능한 한 객관적으로 추적하려고 한다. 독자에게는 ‘맛있는 건 먹어봐야 한다’가 아니라 ‘맛있는 건 읽어봐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지며, 음식 읽기를 통해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 길을 제시한다.
그는 한·중·일 만두와 교자를 다룬 저서에서도 유사한 태도를 보여준다.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우리가 먹는 만두는 우리가 아는 만두가 아니다”라고 말하며, 오늘날 한국식 만두(밀가루 반죽에 소를 넣어 찌거나 굽는 형태)와 원래 중국의 만터우(발효한 밀가루 찐빵) 사이의 차이를 역사적 맥락 속에서 설명한다. 이 책은 387쪽에 달하는 분량 가운데 18쪽을 참고문헌으로 채울 정도로 자료 조사가 치밀하며, 저자가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 우루무치까지 직접 찾아가 만두 문화의 궤적을 추적했다는 대목에서 그의 집요한 현장 취재 성향이 드러난다.
이 밖에도 ‘한국인이 사랑하는 내 고향 최고의 맛집’, ‘우리맛 101가지’, ‘한국의 음식명가 1300’, ‘자랑스런 한식진미 100집’ 등, 지역과 명가(名家)를 조명하는 다수의 저작에 참여하거나 단독 집필해왔다. 일부 책은 일본에서 번역 출간되며 동아시아 독자층으로까지 독서 범위를 넓혔다. 여행과 미식이 결합된 『이탈리아 여행 스크랩북』, 음식 가치와 철학을 다룬 공저 『음식의 가치』 등은 한국 음식에 국한되지 않고 세계 음식 문화로 관심을 확장한 사례다.
연구 방법과 평론 스타일
박정배 평론의 핵심은 ‘문헌 + 현장’의 결합이다. 그는 국회도서관 구석에서 한식 관련 자료를 뒤지는 것이 일상일 정도로 옛 문헌을 집요하게 파고들며, 이와 동시에 중국 변방 지역이나 일본 각지, 국내 산골과 포구까지 직접 찾아가 발로 확인하는 방식을 고수한다. 특정 음식의 유래를 말할 때 “옛날부터 그랬다”는 식의 모호한 표현을 배제하고, 가능한 한 최초 기록과 지리적·정치적 변수를 근거로 ‘언제, 어디서, 어떻게’라는 질문에 답하려 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는 한국 음식 담론을 둘러싼 ‘전설 만들기’와 ‘마케팅용 신화’에 비판적이다. 여러 인터뷰와 서문에서 우리나라 음식 책들이 서로 다른 주장과 무책임한 에피소드로 난립하고, 잘못된 식당 역사와 상식이 넘쳐난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그의 글은 맛을 묘사하는 수사보다 출전(出典)을 밝히는 문장, 연대와 지명을 정확히 짚는 문장에 더 많은 비중을 둔다. 그럼에도 서술 자체는 건조한 논문체가 아니라, 식객의 체험과 여행기, 사람 이야기를 곁들여 읽기 쉽게 풀어내는 대중적 문체를 유지한다.
또 하나 주목할 지점은 ‘시사’와 ‘음식’을 연결하는 감각이다. 『중앙일보』의 「시사 음식」 연재에서 그는 정치적 갈등, 경제 위기, 사회적 변화 같은 거시적 사건을 특정 음식에 빗대어 설명한다. 이를 통해 음식이 단지 입과 위장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정책, 전쟁, 이주, 산업 구조 변화가 응축된 결과물이라는 점을 드러내며, 독자에게 ‘밥상 위의 사회학’을 제안한다.
한국 음식 담론에서의 위치와 영향력
오늘날 한국에서 ‘음식 평론가’라는 직업군이 방송 예능과 유튜브를 중심으로 대중적으로 소비되는 가운데, 박정배는 학술과 현장, 대중성을 동시에 지향하는 드문 유형의 필자로 평가된다. 후배 칼럼니스트들 사이에서는 ‘대선배’로 불리며, 특히 한식의 역사와 음식 문화사를 다루는 필자들에게는 일종의 기준점 같은 존재로 인식된다. 중식계의 거장인 왕육성(진진)과 이연복(목란) 같은 셰프들과 호형호제하는 관계를 유지하며, 셰프들의 실무 감각과 자신의 문헌·현장 연구를 교차시켜 입체적인 음식 이해를 만들어낸다.
그가 지속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한식 세계화의 전제 조건으로서 ‘정확한 자기 이해’다. 한식의 원형과 변천사, 다른 문화와의 교류 양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세계화를 말하면 결국 피상적 이미지 수출에 그칠 수밖에 없다고 보고, 그래서 한국 각지와 한·중·일을 넘나드는 음식의 계보를 촘촘히 복원하는 작업에 자신의 청춘을 바쳤다고 말한다. 그의 연재와 저작은 정책 결정자, 셰프, 음식업 종사자뿐 아니라 일반 독자들에게도 ‘한식을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는 계기를 제공해왔다.
기자이자 작가, 평론가로서 박정배는 지금도 신문 연재와 방송 패널, 서적 집필을 병행하며 활발히 활동 중이다. 한식과 동아시아 음식 문화에 대한 장기적인 연구와 기록 작업을 이어가고 있어, 향후에도 한식 담론의 ‘기록자이자 정리자’로서 영향력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