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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아티스트 박찬경

미디어 아티스트 박찬경은 냉전과 분단, 민중미술과 무속, 동아시아 근현대사와 같은 거대한 정치·역사적 이슈를 ‘귀신·보살·망령’ 같은 상징적 이미지로 풀어내 온 동시대 한국미술의 핵심 작가다. 그는 사진·영상·설치·다큐멘터리·영화·건축적 모형까지 넘나들며, 역사와 일상, 저승과 이승, 신성과 속됨이 뒤엉킨 한국 사회의 내면 풍경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생애와 배경

박찬경은 1965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를 졸업한 뒤, 미국 캘리포니아 예술대학(CalArts)에서 사진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회화를 전공했지만 일찍부터 회화 바깥의 사진·영상·설치에 관심을 기울였고, 작가로 본격 데뷔하기 전에는 미술평론을 쓰고 전시를 기획하며 이론과 비평의 언어를 체득했다. 그는 한국 영화감독 박찬욱의 두 살 터울 동생으로도 잘 알려져 있으며, 이후 형과 함께 ‘파킹찬스(PARKing CHANce)’라는 이름의 듀오로 단편과 장편영화를 공동 연출하기도 했다.

1997년 금호미술관에서 열린 첫 개인전 〈블랙박스: 냉전 이미지의 기억〉은 작가의 향후 작업 방향을 예고한 전시로, 한국의 냉전 체제와 분단이 남긴 이미지와 기억을 설치·영상 형식으로 탐구했다. 2004년에는 에르메스 미술상을 수상하며 한국 동시대 미술의 중심 작가로 부상했고, 이후 국내외 미술관과 비엔날레에서 활발한 전시 활동을 이어 왔다.

주요 전시와 프로젝트

박찬경의 개인전과 프로젝트는 ‘과거를 통해 현재를 직시한다’는 일관된 문제의식을 보여준다. 1997년 〈블랙박스〉 이후 쌈지스페이스 〈비행〉(2005), 아뜰리에 에르메스 〈신도안〉(2008), PKM갤러리 〈광명천지〉(2010) 등에서 연이어 개인전을 열며 냉전, 분단, 신도시 개발, 종교적 상징을 결합한 독특한 작업 세계를 구축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대형 프로젝트인 「MMCA 현대차 시리즈 2019: 박찬경 – 모임 Gathering」에서는 ‘모임’이라는 키워드 아래 민중, 망령, 활동가, 예술가 등이 뒤섞여 나타나는 영상·설치 작업을 통해 한국 현대사의 억눌린 기억들을 소환했다.

해외에서도 워싱턴 D.C.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미술관(2023), 베를린 HKW, 타이베이 비엔날레, 요코하마 트리엔날레 등 유수 기관과 국제 전시에 참여하며 동아시아 현대성에 대한 시각을 세계적 담론의 장으로 확장해 왔다. 이러한 전시들은 한국 내부의 역사·종교·민중운동의 맥락을 다루면서도, 탈냉전 이후 전 세계가 공유하는 불안과 재난, 이주, 식민 경험과 연결되는 서사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2014년에는 서울시립미술관이 주최하는 미디어아트 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의 예술감독을 맡아, 자신의 작가적 관심사였던 냉전·역사·여성·무속의 감수성을 비엔날레 전시 구조 전체로 확장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그는 이 비엔날레의 기조를 ‘귀신, 간첩, 할머니’로 설정하고, 이 세 단어를 단순한 소재가 아닌 냉전, 역사, 여성성을 표상하는 상징적 키워드로 재구성해 시각적 아이덴티티와 전시 구조 속에 심었다.

작업 세계와 주제 의식

박찬경의 작업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냉전과 분단, 그리고 한국 현대사가 남긴 상처를 미디어 이미지의 층위에서 다시 구성한다는 점이다. 그는 냉전기 선전사진, 민방위 포스터, 군사도시의 풍경, 탈북자·월남자들의 증언 등을 사진·슬라이드·영상 설치로 변주해, 국가 폭력의 흔적과 그로 인해 뒤틀린 일상의 무의식을 시각화한다. 그러나 그의 작업은 단순한 고발이나 리얼리즘 재현이 아니라, 귀신과 망령, 저승과 같은 ‘보이지 않는 존재들’을 호출하면서, 억압된 과거가 현재에 돌아오는 방식을 시적이면서도 불길한 이미지로 다룬다.

이러한 관심은 전통 민간신앙과 무속에 대한 탐구로 이어진다. 대학 시절 민중미술 운동의 영향 아래 성장한 그는, 민중미술의 사회적 현실 인식과 전통 무속신앙의 신성성을 자신의 예술 두 축으로 삼았다고 직접 언급한 바 있다. 그의 무속 탐구는 미신을 향한 호기심이 아니라, ‘신성성을 유지하면서도 속된 세계와 솔직하게 만나는 태도’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되며, 무당과 굿판 등을 통해 억눌린 감정과 역사가 표출되는 장면들을 비디오와 영화로 포착한다.

〈다시 태어나고 싶어요〉, 〈안양에〉, 〈만신〉, 〈시민의 숲〉 같은 작업들은 무당과 굿, 민간 신앙을 통해 근대화와 개발, 산업화 과정에서 억눌린 한국 현대사의 균열을 드러낸다. 특히 무당 김금화의 삶과 굿판을 다룬 영화 〈만신〉은 한국 현대사의 폭력과 치유의 가능성을 동시에 담아내며 극장 개봉까지 이루어져, 미술계와 영화계 양쪽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형식과 미학적 전략

형식적으로 박찬경은 사진, 슬라이드 프로젝션, 비디오, 다큐멘터리, 멀티 채널 영상, 설치, 건축 모형 등 다양한 매체를 혼합해 다층적인 서사 구조를 구축한다. 그의 영상은 종종 선형적인 플롯을 따르지 않고, 다큐멘터리적 장면과 연출된 장면, 아카이브 이미지와 상징적 이미지가 분절적으로 충돌하는 몽타주 구조를 취한다. 이때 음악과 사운드는 중요한 역할을 하며, 반복되는 리듬과 장중한 음향은 화면에 등장하는 인물·풍경을 다큐멘터리가 아닌 일종의 신화적 서사로 탈바꿈시킨다.

〈늦게 온 보살〉(2019)은 이러한 형식 실험을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3.11 후쿠시마 원전 사고 같은 현대의 재난을 옛 고사와 불교적 은유에 대입해, 네거티브 영상의 기법으로 구성한 것이 특징이다. 이 작품에서 뒤집힌 톤의 영상은 시각적 불안과 현실의 와해감을 강하게 불러일으키고, 비선형적 내러티브와 상징 이미지의 파편적 결합은 오늘날 사회의 단절과 불연속성을 감각적으로 체험하게 한다. 작가는 이러한 형식을 통해 재난과 불안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과거의 망령과 전통적 지혜를 어떻게 다시 불러내고 해석할 수 있는지 질문을 던진다.

그의 설치 작업에서는 건축 모형과 조명, 영상, 텍스트가 복합적으로 배치되어 관람자가 물리적으로 ‘역사적 공간’을 통과하는 경험을 하도록 유도한다. 이는 미술관과 미술사가 작동하는 제도적 장치를 비판적으로 드러내는 동시에, 관람자가 수동적인 관객이 아니라 역사의 잔해 속을 거니는 참여자가 되도록 만드는 장치다.

영화, 파킹찬스, 그리고 한국 동시대 미술에서의 의미

박찬경은 미디어 아티스트인 동시에 영화감독으로도 활동하며, 장르와 제도의 경계를 넘나든다. 형 박찬욱과 함께 ‘파킹찬스’라는 이름으로 작업한 단편 〈파란만장〉 등은 베를린 영화제에서 수상하는 등 국제적 주목을 받았고, 앞서 언급한 다큐멘터리 영화 〈만신〉은 미술관 스크리닝을 넘어 상업 극장 개봉까지 이루어졌다. 이를 통해 그는 미술관과 영화관이라는 서로 다른 상영·유통 구조를 가로지르며, 역사와 신앙, 정치와 개인의 삶을 다루는 자신의 서사를 보다 넓은 관객층과 공유했다.

2014년 미디어시티서울 예술감독 경험은 그가 개별 작가를 넘어 ‘장(場)을 설계하는 기획자’로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이 비엔날레에서 ‘귀신, 간첩, 할머니’를 냉전, 역사, 여성성을 가리키는 개념적 축으로 삼아, 비엔날레의 시각 디자인과 프로그램 전반에 부적과 같은 상징체계를 도입했다. 직각은 간첩, 흐물흐물한 곡선은 귀신, 밑이 풀린 형상은 할머니를 상징하는 그래픽을 제작해 스탬프, 스티커 등으로 활용함으로써, 관람객이 비엔날레를 일종의 ‘주술적 장치’로 경험하게 하는 독특한 미적·정치적 실험을 수행했다.

이처럼 박찬경은 민중미술과 무속, 냉전과 분단, 비엔날레와 영화제라는 이질적인 요소들을 한 몸 안에 통합하면서, 한국 동시대 미술에서 드물게 역사와 제도, 영성과 정치, 미디어와 신앙을 동시에 사유하는 작가로 평가받는다. 그의 작업은 “사회와 역사에서 분리된 예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신념을 실천적으로 보여주지만, 그 방식은 선동이나 도식이 아니라, 귀신과 보살, 저승과 망령이 계속해서 우리 곁을 맴도는 이미지의 장을 조성하는 데 있다. 이런 점에서 그는 한국 사회의 집단 무의식을 탐사하는 미디어 샤먼이자, 억눌린 목소리들을 다시 만나는 복합적 장을 구축하는 예술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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