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

뮤지엄 산 이배 대규모 개인전

뮤지엄 SAN에서 개막한 이배 개인전은 30여 년 동안 ‘숯’이라는 단일 물질에 매달려온 작가의 궤적을 한 자리에서 체감하게 만드는, 말 그대로 회고전급 대규모 프로젝트입니다. 전시는 안도 다다오의 건축과 원주 산자락이라는 장소성이 결합된 뮤지엄 SAN 특유의 공간성을 적극 활용해, 회화·조각·설치·영상에 이르는 작가의 여러 매체 실험을 하나의 흐름으로 엮어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daum+1

전시 개요와 타이틀 의미

이번 전시의 공식 타이틀은 프랑스어와 한국어를 병기한 「En attendant: 기다리며」입니다. 문자 그대로는 ‘기다리면서’ 혹은 ‘기다리는 동안’이라는 뜻이지만, 전시 측은 이를 단순한 시간 지연이 아니라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 속에서 미래를 향해 열려 있는 시간’, 다시 말해 생성과 변화가 계속 일어나는 열린 상태를 지칭하는 개념으로 제시합니다. 숯이 나무가 불에 그슬리고 태워지는 과정 끝에서 얻어지는 물질인 만큼, 이 타이틀은 태움과 남음, 소멸과 지속 사이에 놓인 애매하고도 긴 여백의 시간에 대한 메타포로도 읽힙니다.cultura+2

전시는 2026년 4월 7일 개막해 12월 6일까지 약 8개월 동안 장기적으로 운영되며, 뮤지엄 SAN의 2026년 대표 기획전으로 자리매김합니다. 1956년생인 이배의 50여 년 작업 세계를 총망라하는 최대 규모 개인전이라는 점에서, 작가의 이력과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숯 작업이 차지하는 위상을 동시에 조망하는 성격도 강합니다.instagram+3

‘숯의 화가’ 이배: 작가와 매체

이배는 한국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뒤 1989년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를 기반으로 활동해 온 작가로, 국제적으로는 ‘차콜(숯) 아티스트’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회화, 조각, 설치 등 매체를 가로지르며 30년 넘게 숯의 물성과 상징성을 탐구해 왔고, 이를 통해 한국형 모노크롬 회화를 확장한 ‘포스트 단색화’ 세대로 평가받기도 합니다. 숯은 나무가 불을 거쳐 다른 상태로 변환된 물질이자, 기억과 시간, 생성과 소멸이 압축된 매개체로서 작가의 작업 전반을 관통하는 재료입니다.artnedition+2

국내외에서 40회가 넘는 개인전을 열고 유럽·아시아·북미 등지의 미술관·비엔날레에 참여해 온 이배는, 2013년 한국 미술평론가협회상, 2019년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 슈발리에 등을 수훈하며 국제적 위상을 굳혔습니다. 이번 뮤지엄 SAN 전시는 이러한 경력의 누적 위에, 프랑스와 한국, 그리고 청도의 숯가마를 오가는 작가의 삶과 작업 리듬을 공간적으로 번역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akimbo+2

전시 구성: 회화·조각·설치·영상의 흐름

이번 개인전은 특정 시기나 시리즈만을 다루는 통상적인 갤러리 쇼와 달리, 작가의 거의 모든 유형의 작업이 층위를 이루며 배치된다는 점에서 ‘전면전’에 가깝습니다. 전시 기획은 안도 다다오 건축의 중정, 긴 동선, 자연광이 스며드는 갤러리 구조를 고려해, 각각의 공간에서 서로 다른 스케일과 밀도의 숯 작업이 변주되도록 구성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facebook+1

가장 먼저 관객을 맞이하는 것은 대형 설치 작업들입니다. 통나무 숯을 수직으로 세워 하나의 숲처럼 조성한 조각·설치 작업은 숯이 지닌 육중한 물성과 동시에 섬세한 표면의 결을 드러내며, 관객이 그 사이를 거닐며 몸으로 감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듭니다. 이는 단순히 조각 앞에 서서 감상하는 방식이 아니라, 숯 덩어리들 사이로 들어가 냄새와 온도, 빛의 반사를 체험하는 ‘신체적 감상’을 유도합니다.cultura+1

이후 전시는 숯 가루나 숯 조각을 캔버스 위에 반복적으로 쌓고 문지른 평면 작업으로 이어집니다. 흰 바탕 위에 강렬하게 놓인 검은 획과 면들은 동양 서예의 필획을 연상시키면서도, 서양 추상회화의 평면성과 구조를 품고 있어 양쪽 전통을 교차시키는 지점에 서 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면 숯가루가 눌리고 파이고 쌓이면서 만들어낸 미세한 요철과 반짝임이 드러나, 화면 전체가 하나의 지형처럼 보이는 것이 특징입니다.artnedition+1

후반부에는 영상 작업과 사진, 그리고 작업 프로세스를 드러내는 자료들이 더해져 숯이라는 재료에 대한 작가의 집요한 연구 과정이 언급됩니다. 특히 경북 청도 등지의 숯가마와 파리 아틀리에를 오가며 작업하는 과정, 나무가 잘리고 태워져 숯이 되는 시간, 그리고 그 숯이 다시 미술관에서 새로운 시간성을 만들어내는 순환 구조가 은유적으로 제시됩니다. 관객에게는 어느 한 지점에서 ‘완성된 작품만 보는’ 대신, 재료가 생겨나고 소모되는 전체 사이클을 상상하게 하는 장치이기도 합니다.daum+2

안도 다다오 건축과 숯의 만남

뮤지엄 SAN은 원주 산자락에 놓인 콘크리트 건축과 자연 풍경의 대비로 유명한 공간으로, 빛과 그림자를 전시 기획의 핵심 요소로 삼을 수 있는 곳입니다. 이배의 숯 작업은 본질적으로 빛을 흡수하고 혹은 반사하는 흑색의 스펙트럼을 다루는 만큼, 안도의 건축과의 조우는 전시의 중요한 관전 포인트입니다. 콘크리트 벽과 깊은 창, 날카로운 빛줄기 속에서 숯의 표면은 때로는 무광의 심연처럼, 때로는 유광의 거울처럼 변주되며 공간 전체의 분위기를 좌우합니다.mk+2

전시는 동선 면에서도 건축과 긴밀하게 맞물립니다. 안도 특유의 긴 복도와 중정, 갑자기 시야가 열리는 지점들마다 서로 다른 밀도의 작업을 배치해, 관객이 ‘검은 것’과 ‘비어 있는 것’, ‘무거운 것’과 ‘가벼운 것’을 번갈아 마주치도록 구성합니다. 어떤 갤러리에서는 숯 조각들이 바닥에서 솟아오르듯 자리하고, 다른 갤러리에서는 평면 작업들이 리듬감 있게 격자를 이루며 전체 벽면을 장식해 관객의 체험을 수직과 수평, 깊이와 평면 사이에서 끊임없이 이동시키는 효과를 냅니다. 이처럼 건축과 작품이 서로를 압도하지 않고 긴장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숯의 물성이 공간 전체의 공기를 바꾸는 중심축으로 작동합니다.daum+1

전시의 의미와 동시대성

이번 뮤지엄 SAN 이배 개인전은, 한국 현대미술에서 한 가지 재료와 형식에 오랫동안 천착해온 작가가 어떻게 국제 무대에서 자신의 언어를 구축했는지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단색화 이후 세대의 작가로서 이배는 ‘검은 색’과 ‘반복’이라는 모티프를 공유하지만, 전통적인 유화 물감 대신 숯이라는 재료를 끌어들여 시간·기억·몸성의 차원을 대폭 확장했습니다. 이는 기후위기와 생태, 자원 순환, 로컬 재료의 의미가 중요한 화두가 된 동시대 맥락에서, 숯이라는 물질이 갖는 상징성을 새롭게 환기시킵니다.naver+3

또한 프랑스로 이주한 한국 작가가 자국의 향토적 재료인 숯을 통해 국제적인 미술 언어를 만들어 왔다는 점에서, 이번 전시는 이민과 이동, 정체성 문제를 사유하게 하는 계기도 제공합니다. 파리와 청도, 서울과 원주를 잇는 이 지리적·정서적 네트워크는, 작품 속 검은 화면과 숯덩이들을 단순한 조형 오브제를 넘어, 서로 다른 시간과 장소를 중첩시키는 장치로 보이게 만듭니다. 관객 입장에서는 ‘숯의 화가’라는 다소 낯설 수 있는 타이틀을 넘어, 숯이라는 매체가 어떻게 회화·조각·건축·자연과 연쇄 반응을 일으키는지 한 번에 경험할 수 있는 드문 기회입니다.woojin+4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