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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칠공예 명장 김규영

목칠공예 명장 김규영은 40여 년 동안 나무와 옻칠에 일생을 바친 장인으로, 부산을 대표하는 공예인이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목칠공예 명장이다. 그는 사찰 불단과 불상, 불화 틀, 전통 목조각과 현대적 디자인을 결합한 다양한 작품을 통해 한국 목공예의 기술과 미감을 국내외에 알리고 있으며, 특히 일본 사찰 시장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장수 장인이다.

성장 배경과 입문 과정

김규영 명장은 1959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무렵 가족과 함께 부산으로 이주했다. 어린 시절부터 목수였던 아버지가 잘라 주던 나뭇가지와 나무 장난감을 가지고 놀며 자연스럽게 나무의 결, 질감, 냄새에 익숙해졌고, 이때 느낀 즐거움이 훗날 평생 직업으로 이어지는 씨앗이 되었다고 회고한다. 그는 일반 인문계가 아닌 조형예술고등학교에 진학해 일찌감치 ‘손으로 만드는 일’을 자신의 진로로 정했고, 학교에서 다양한 조형과 공예 수업을 받으면서 나무 재료에 대한 흥미와 조각 감각을 키웠다.

고등학교 3학년이던 그는 전국기능경기대회에 출전해 목공예 분야 금메달을 획득하면서 이미 10대에 두각을 드러냈다. 당시 금메달은 단순한 상을 넘어 업계 취업과 장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통로였고, 이를 계기로 일본 회사가 부산에 차린 대형 목공예 공장에 스카우트되어 10대 후반부터 본격적인 목공예 현장에 뛰어들게 된다.

일본 수출 공장 시절과 광안공예연구소 설립

1970년대 후반, 그는 해운대 인근에 있던 공예사에서 17세의 나이에 공장장 역할을 맡으며 일본 사찰 등에 나갈 목공예품을 제조하고 수출하는 실무를 책임졌다. 이 시기 그는 일본어를 제2외국어로 배운 덕분에 일본 바이어와 직접 소통하며 주문 사양을 이해하고, 디자인·제작·납품의 전 과정을 경험했다. 사찰 불단, 불상, 용·봉황 장식, 목조건축 장식 등 규모와 난도가 높은 작업을 반복하면서 자연스럽게 정밀 가공과 구조 설계, 조립식 구조에 대한 감각이 몸에 배었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 한국 인건비와 경영환경 변화로 일본 회사가 부산 공장을 정리하고 생산거점을 중국으로 옮기면서 그는 직장을 잃게 된다. 이때 김규영은 단순 기능인으로 다른 공장을 찾아가는 대신, 스스로 공방을 열어 한국 목공예의 전통을 지키고자 하는 길을 선택한다. 1987년 부산 광안리 공무원교육원 인근에 ‘광안공예연구소’를 열고, 이름 그대로 연구와 창작, 주문 제작을 병행하는 독립 공방의 1인 대표로 나선다.

창업 초기는 혹독했다. 주문이 거의 없어 새벽 1~2시까지 밤새워 일해도 빚만 쌓이던 시기가 3년 가까이 이어졌고, 국내 공예시장의 협소함과 저가 수입품 공세 속에서 전통 목공예만으로 생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모험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그는 ‘선대부터 이어온 전통 목공예 기술을 현대적으로 계승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이유로 공방 운영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공예품을 단순 기념품이 아닌 문화 콘텐츠로 재해석해, 사찰 창건 설화나 전설 속 장면을 입체적으로 조각하는 대작 프로젝트를 기획해 일본 시장에 제안했고, 점차 수주가 늘어나며 기반을 다졌다.

작품 세계와 기술적 특징

김규영 명장의 작품 세계는 전통 사찰 목공예를 기반으로 하나, 구조와 조립 방식에서 독창성을 보여준다. 그는 하나의 나무 덩어리를 통째로 조각하는 방식 대신, 정교하게 계획된 여러 목재 부품을 별도로 조각한 뒤 조립하는 ‘접목조’ 방식을 주로 활용한다. 이 방식은 단일 목재 조각보다 설계 난도가 훨씬 높지만 변형과 균열을 줄이고, 대형 작품에서도 구조적 안정성과 치수 정밀도를 확보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예를 들어 길이 1m가 넘는 용머리 한 점을 만들 때도 하나의 통나무를 파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여러 장의 목재를 서로 다른 방향으로 붙여가며 조각한 후 정밀하게 조립하는 방식으로 완성한다. 몸통 역시 장·단 부재를 분절해 끼워 맞추는 구조로 설계함으로써, 나무 결의 방향과 힘의 흐름을 고려한 구조적 설계가 가능해진다. 이러한 구성은 마치 기계 설계에서 부품을 도면으로 나누는 것과 유사하며, 단순한 공예를 넘어 ‘목재 구조공학과 조형예술이 결합된 작업’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특기는 조립식 불단과 불상이다. 불단 상·중·하부를 모듈로 나누고, 기둥·보·공포·장식 조각을 분해 가능한 부품으로 설계해 이동과 설치, 수리, 확장이 용이하도록 만드는 기술은 국내 최고 수준으로 평가된다. 특히 일본 사찰들은 지진과 습도, 공간 제약 등 환경 요인이 까다로운데, 그 요구를 반영하여 조립식 구조를 설계하고도 전통미와 장엄함을 유지하는 그의 설계 능력이 일본 시장에서 ‘정평이 나 있다’고 전해진다.

표면 마감에서는 목조각 위에 옻칠과 채색을 더한 목칠공예의 정수를 보여준다. 나무의 결을 살리면서도 옻칠의 깊이감 있는 광택과 색감을 입혀 장엄하면서도 따뜻한 분위기를 내고, 경전·불화·연화문·운룡문 등 불교적 상징 문양을 입체감 있게 재현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사찰 창건 설화,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는 장면, 산수와 구름 속에서 피어나는 연꽃 등 이야기가 있는 장면이 하나의 목칠공예 작품으로 구현된다.

명장 선정과 공적

김규영 명장의 꾸준한 작업과 기술 축적은 2010년대 들어 공적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그는 2013년 부산시 공예 명장으로 선정되면서 지역을 대표하는 장인 반열에 올랐고, 2016년에는 대한민국 목칠공예 명장(대한민국 명장 제613호)에 선정되며 국가 차원의 공인을 받았다. 이는 단순한 경력 연차가 아니라, 창의적인 작품성과 장기간 축적된 숙련 기술, 후학 양성 기여 등을 종합 평가한 결과였다.

그의 공방인 광안공예연구소는 부산 남구 유엔평화로 인근 골목에 자리하고 있으며, 작업실에는 사찰 목공예품과 대형 조각, 밑그림, 그리고 제자들의 작품이 함께 전시돼 있다. 이곳은 단순한 제작 현장을 넘어 목공예 교육과 견학, 인터뷰가 이뤄지는 공간으로 기능한다. 언론 인터뷰에서 그는 “나무를 잡고 조각할 때 가장 행복하다”고 말하며, 나무에 생명의 혼을 불어넣는 행위를 자신의 삶의 이유로 설명한 바 있다.

그는 중소벤처기업부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선정하는 ‘백년소공인’에도 이름을 올리며, 한 세대에 그치지 않고 장기간 지역과 산업에 기여할 잠재력을 인정받았다. ‘백년소공인’ 선정은 전통 기술을 바탕으로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경영을 이어온 소규모 장인을 대상으로 하는데, 김 명장은 전통 목공예 기술을 현대 사찰 및 인테리어 시장에 맞게 재해석해 사업성과 문화성을 동시에 인정받은 사례로 평가된다.

학문적 탐구와 후학 양성

현장에서의 기술자 역할에 머물지 않고, 그는 학문적 기반을 다지기 위해 2007년 동국대학교 대학원 불교미술과에 진학해 이론 공부에 매진했다. 불교 미술사, 사찰 건축과 장엄, 불상 조형 이론 등을 체계적으로 공부하면서, 그동안 경험으로 익혀왔던 조형 감각을 이론과 역사 속에 위치시키는 작업을 진행했다. 이 경험은 이후 사찰 창건 설화나 불교 상징을 작품으로 번역할 때 더 정교하고 서사적인 구성을 가능하게 했고, 작품 설명과 교육 콘텐츠에도 깊이를 더했다.

현재 그는 국립한국전통문화대학교 미술공예과 객원교수로 활동하며 대학생과 예비 공예인들에게 전통 목공예 기술과 실제 현장 경험을 전수하고 있다. 또한 광안공예디자인연구소 내에 ‘한국공예아카데미’를 설립해 초·중·고 학생부터 일반인까지 폭넓은 연령층을 대상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목공예의 저변 확대에 힘쓰고 있다.

그는 한국디자인공예협동조합 이사장을 맡아 공예산업 발전을 위한 조직 활동에도 참여한다. 이를 통해 개별 작가와 공방들이 가진 기술과 노하우를 네트워크로 묶고, 전시·마케팅·브랜딩 등을 지원해 전통 공예가 단순한 수공예를 넘어 하나의 산업으로 성장하는 기반을 마련하고자 한다.

교육 철학에 대해 그는 “예술에 완성은 없지만, 경지에 다다르는 지름길을 알려주는 참 스승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단순히 기술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사명감과 태도, 장시간 반복 작업을 견디는 정신력을 함께 전하는 것이 장인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전통과 4차 산업 시대에 대한 시각

인터뷰에서 김규영 명장은 “한국 전통문화가 미래를 이끌 힘이 될 것”이라고 강조하며, 4차 산업혁명 시대일수록 장인정신과 숙련 기술의 가치가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한다. 디지털 기술이 발달할수록 획일화된 제품이 범람하는데, 손으로만 구현할 수 있는 미묘한 선과 비례, 나무마다 다른 결을 읽어내는 감각은 기계와 인공지능이 대체하기 어려운 영역이라는 인식이다.

그는 “우리 DNA가 깃든 공예품을 만들고 싶다”고 말하며, 한국인의 미감과 사상, 생활양식이 자연스럽게 스며든 목칠공예를 지향한다. 사찰 불단과 불상, 용과 봉황 같은 전통 모티브 속에서도 한국적 비례와 선, 색감을 강조해 ‘보는 순간 한국 작품임을 알 수 있는’ 공예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밝힌다.

또한 그는 수십 년간 일본 사찰로 작품을 수출해 온 경험을 통해, 한국 목공예의 디자인 능력과 창의력이 해외에서도 인정받고 있다는 점을 자부심 있게 이야기한다. 한국 장인들이 전통을 지키면서도 해외 시장의 수요와 취향에 맞게 변형·응용할 수 있다면, 목칠공예는 충분히 국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현재 활동과 의의

오늘날 김규영 명장은 부산 남구 광안공예연구소를 중심으로 작품 제작, 교육, 인터뷰, 전시 참여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다. 작업실에서는 불단과 불상, 사찰 장엄품과 더불어 현대 인테리어에 어울리는 목칠공예품까지 다양한 작업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으며, 일부 작품은 일본과 국내 사찰에 납품되거나 전시를 통해 공개된다.

그의 삶은 “조각에 바친 40년 외길”이라는 표현으로 요약되곤 한다. 어린 시절 나무 장난감에서 시작된 흥미가 조형예술고, 전국기능경기대회 금메달, 일본 수출 공장장, 공장 폐업과 홀로서기, 그리고 대한민국 명장과 백년소공인에 이르기까지, 우여곡절 끝에 하나의 일관된 축을 형성해 왔다.

김규영 명장은 나무를 단순한 재료가 아니라 “내 인생”이라고 정의한다. 조각칼로 나무를 깎고 다듬으며 형태를 찾아가는 과정, 옻칠과 채색을 통해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 그리고 그 결과물이 사찰과 사람들 사이에서 오랜 시간 쓰이고 바라보며 의미를 쌓아 가는 것까지를 하나의 인생 서사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 때문에 그는 기술자로서뿐 아니라, 전통과 현대를 잇는 공예 철학을 지닌 장인으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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