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움미술관 야외 데크에 조성된 ‘가브리엘 오로즈코 정원’은 단순한 조경이 아니라, 관람자의 움직임과 시간이 작품의 일부가 되는 ‘조각으로서의 정원’입니다.
프로젝트의 배경과 의의
리움미술관의 야외 데크는 그동안 알렉산더 칼더, 루이스 부르주아, 아니쉬 카푸어 등 세계적 작가들의 대형 조각이 놓이던 전형적인 야외 조각 공간이었습니다. 이곳에 2026년 4월 3일부터 공개된 ‘가브리엘 오로즈코 정원’은 리움이 2004년 개관한 이래 처음으로 시도하는 ‘정원 형식’의 커미션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제도적으로도 큰 전환점을 이룹니다. 그동안 데크에 놓인 작업들이 시선을 위로 끌어올리는 기념비적, 수직적 조형물에 가까웠다면, 오로즈코의 정원은 시선을 발밑과 수평으로 낮추어 공간 자체를 ‘걷고 머무는 수평적 환경’으로 재구성합니다. 이로써 데크는 작품을 “위에서 바라보는 전시 장소”에서, 관람자가 그 안을 거닐며 시간을 경험하는 생활 밀착형 예술 공간으로 성격이 바뀝니다.
멕시코 출신의 가브리엘 오로즈코(1962년생)는 특정한 한 곳에 고정된 스튜디오 없이 멕시코시티, 뉴욕, 도쿄 등 여러 도시를 오가며, 주어진 장소와 사물에 최소한의 개입으로 의미를 발생시키는 작업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2016년 런던 사우스 런던 갤러리의 방치된 부지를 기하학적 선들이 교차하는 영구 정원으로 탈바꿈시키는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2019년부터 멕시코시티 차풀테펙 공원의 800헥타르 규모 마스터플랜을 총괄하는 등 ‘정원을 조각의 매체로 확장’하는 장기 프로젝트를 이어 왔습니다. 리움의 ‘가브리엘 오로즈코 정원’은 이 10여 년에 걸친 정원–조각 프로젝트의 세 번째이자 가장 종합적인 장으로, 그가 축적해 온 경험을 압축해 보여주는 장치로 기능합니다.
세한삼우와 한국적 자연의 도입
이번 정원을 관통하는 핵심 개념은 동아시아 전통 회화와 문인 문화에서 중요한 상징인 ‘세한삼우(歲寒三友)’입니다. 세한삼우는 가장 혹독한 겨울에도 푸르름을 잃지 않는 소나무, 대나무, 매화를 가리키며, 절개와 인내, 지속성을 상징합니다. 오로즈코는 자신의 기존 정원 프로젝트에 한국적 자연과 동아시아 상징 체계를 처음으로 본격 도입하면서, 세한삼우를 이 정원의 식물학적 골격이자 개념적 뼈대로 삼았습니다.
실제 식재 구성에서도 이 상징이 그대로 구현됩니다. 정원에는 소나무 17그루, 매화나무 11그루, 약 1,500주의 대나무가 심어져 세한삼우를 이루는 세 식물이 정원의 구조를 지탱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대나무 숲은 도시 소음을 차단하는 자연의 벽이자, 데크 위에 또 하나의 내밀한 공간을 형성하는 장치로 작동합니다. 여기에 백당나무, 설유화, 찔레나무, 물매화 등 흰 꽃을 중심으로 한 식물들이 더해져, 화려한 색채 대신 겨울의 절제된 분위기, 세한의 색감을 시각적으로 구현합니다. 이 식재 전략은 한국 자연의 정조를 유지하면서도 국제 현대미술의 설치 언어와 만나, ‘한국적 풍경과 글로벌 컨템퍼러리 조각이 만나는 접점’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리움의 관계자는 이 정원이 “화려한 모뉴멘트가 아니라 지속되는 시간, 스펙터클이 아니라 인내를 지향하는 조각”이라고 설명합니다. 세한삼우가 매서운 겨울에도 생명을 지켜내듯, 이 정원은 가장 혹독한 계절에도 천천히 그러나 멈추지 않고 변화하는 예술의 시간을 보여주는 장소로 기획되었습니다. 계절에 따라 매화가 피고 지는 과정을 관람자가 반복해서 마주하게 되면서, 작품 감상은 단발성이 아니라 시간의 누적 경험으로 확장됩니다.
원의 배열과 ‘플라자 1~10’의 구성
형식적으로 정원의 구조를 관통하는 또 하나의 키워드는 오로즈코 작업 전반을 아우르는 ‘원의 배열(circle pattern)’입니다. 하나의 원에서 출발한 기하학적 패턴이 데크 전체, 즉 약 500평 규모의 바닥으로 확장되며, 크고 작은 원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플라자 1~10’이라 이름 붙여진 열 개의 연속된 공간을 이룹니다. 이 원형 패턴은 단순한 그래픽 장식이 아니라 관람자의 동선과 시선, 머무는 시간을 조직하는 일종의 보이지 않는 악보처럼 기능합니다.
각 플라자는 바닥 마감, 원 패턴의 밀도와 구도, 식재 종류, 벤치와 휴식 요소의 조합이 조금씩 달라 서로 다른 분위기와 리듬을 형성합니다. 어떤 플라자에서는 돌 바닥의 원형 패턴이 강하게 드러나 걷기의 리듬을 강조하고, 다른 플라자에서는 대나무 숲이 둘러싸며 내향적인 정원의 성격을 강화하는 등, 같은 정원 안에서도 경험의 결이 다층적으로 변주됩니다. 관람자는 이 열 개의 플라자를 연속적으로 통과하면서, 하나의 거대한 조각 내부를 이동하는 동시에 각기 다른 소규모 광장들을 순차적으로 체험하게 됩니다.
이 구조는 오로즈코가 그동안 카드, 장기판, 바둑판, 체스 등 ‘게임의 기하학’에 관심을 가져온 맥락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원의 반복과 배열은 마치 보드게임의 판과 말이 놓이는 자리를 연상시키는데, 여기서 ‘말’은 조각이 아니라 사람 자체입니다. 관람자는 바닥 패턴을 따라 걷고, 특정 지점에 멈춰 서고, 벤치에 앉아 쉬며, 시선의 방향을 바꾸는 일련의 행위를 통해 무의식적으로 ‘게임의 규칙’을 따르는 참여자가 됩니다.
‘조각으로서의 정원’과 관람 경험
오로즈코 정원에서 중요한 것은 높이 솟은 형태나 강렬한 형상이 아니라, 관람자의 몸이 거쳐 가는 동선과 시간이 곧 조각이 된다는 점입니다. 돌 바닥의 원형 패턴을 따라 걷는 행위, 대나무와 소나무, 매화 사이를 오가며 잠시 쉬는 행위, 계절마다 달라지는 빛과 바람, 향기를 감각하는 행위가 모두 이 정원을 이루는 조각적 요소로 간주됩니다. 작가는 조경을 ‘공간 안에서 시간을 조직하는 장치’라고 보고, 그 안에 포개지는 사계절의 변화와 사람들의 움직임이 작품의 완성도를 결정하도록 설계했습니다.
이 정원은 누구나 리움 운영시간 동안 무료로 드나들 수 있는 공공 정원으로 개방됩니다. 미술관 안팎의 경계가 완화되면서, 티켓을 끊고 전시장에 입장하는 전통적인 감상 방식이 아니라, 산책하듯 가볍게 들렀다가 차츰 작품의 구조와 개념을 체험하게 되는 ‘느린 감상’이 자연스럽게 유도됩니다. 특히 한남동이라는 도심 한복판에서 대나무 숲과 소나무, 매화가 어우러진 정원을 마주하는 경험은, 일상과 예술, 도시와 자연 사이를 매개하는 전형적인 ‘도시 공공조각’의 역할을 합니다.
리움 측은 이 정원이 “스펙터클보다 지속 가능성, 번쩍이는 화려함보다 시간이 쌓이는 인내를 택한 조각”이라고 밝히며, 혼자 올려다보는 기념비적 조형이 아니라 함께 걷고 머무는 공유 공간임을 강조합니다. 즉, 이곳에서 관람자는 더 이상 단순한 ‘구경꾼’이 아니라, 정원이 만들어내는 시간의 조각을 함께 완성해 가는 공동 저자의 위치에 놓입니다.
리움 데크의 전환과 도시적 의미
‘가브리엘 오로즈코 정원’은 리움 데크의 역할 자체를 재정의합니다. 과거 이곳에는 거대한 거미 형상의 루이스 부르주아 〈마망〉이나, 반짝이는 구 형태가 중첩된 아니쉬 카푸어의 〈Tall Tree and the Eye〉처럼, 강력한 시각적 아이콘이자 수직적 오브제로서의 조각들이 전시되어 왔습니다. 이들은 미술관의 위세와 상징성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랜드마크였지만, 관람자의 몸은 그 주변을 맴도는 수동적인 움직임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에 비해 오로즈코의 정원은 랜드마크의 개념을 ‘보이는 것’에서 ‘경험되는 것’으로, 수직적 조각에서 수평적 환경으로 옮겨 놓습니다. 데크 전체가 하나의 조각이자 정원으로 전환되면서, 관람자의 통행 동선 자체가 작품의 일부가 되고, 리움이 한남동, 나아가 서울 도시 환경과 소통하는 방식도 달라집니다. 미술관이 내부 전시장 중심의 폐쇄적 기관에서 벗어나, 주변 지역 사회에 열린 공공 정원과 경관을 제공하는 ‘예술 인프라’로 확장된다는 점에서 도시적 의미도 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