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뒤편의 느린 시간, 중림동 떡방앗간의 슬기로운 황혼 일터
서울역에서 남대문 쪽으로 이어지는 고가 위, ‘서울로 7017’의 마지막 끝자락에 다다르면 발길은 자연스레 낮은 지대로 향한다. 한때 철도 관사와 인쇄소가 모여 있던 서쪽 동네 — 중림동이다. 화려한 상업지대와 한 골목 차이지만, 시간의 속도가 전혀 다르다. 오래된 벽돌 담장과 손바닥만 한 가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골목 모퉁이마다 오랜 단골의 발자국이 남아 있다. 그 중에서도 유난히 구수한 떡 찌는 냄새가 퍼지는 곳이 있다. 문패에는 ‘오세온 떡방앗간 & 카페’라고 적혀 있다.
아침 햇살이 골목 담장을 넘어 들기 전, 새벽 다섯 시도 채 되지 않아 불이 먼저 켜지는 집이다. 문을 열면 기계 돌아가는 소리 대신 사람 손이 바쁘게 움직이는 풍경이 보인다. 73세의 오세온 사장님은 일흔이 훌쩍 넘었지만, 여전히 힘 있게 떡쌀을 떠 담고 절굿공이로 찧은 반죽을 만진다. “이건 기계로 하면 맛이 달라요. 손으로 해야 쫄깃하고 고소하지.” 그는 묵직한 방앗간 도구를 능숙하게 다루며, 마치 춤을 추듯 손놀림을 이어간다.
이 작은 가게의 역사는 무려 36년. 처음엔 중림동이 아니라 후암동에서 시작했다. 1980년대, 남편이 철도 정비 일을 하던 시절, 가족의 생계를 위해 시작한 방앗간이었다. “그땐 떡이 귀했거든요. 명절 전날엔 잠을 못 잤어요. 줄 서서 떡 받는 사람들로 골목이 꽉 찼어요.” 그렇게 세월이 쌓여 어느덧 평생 직업이 되었지만, 세상은 변했다. 분식집 떡이나 공장 떡이 흔해지고, 편의점에서도 떡 제품을 팔기 시작하면서 동네 떡집은 하나둘 문을 닫았다. 그래도 오 사장님은 매일 새벽 문을 열었다. “내가 쉴 때는, 이 동네에서 떡이 끊기는 거니까요.”
‘떡집 옆 카페’라는 실험
몇 해 전부터는 떡집 옆에 자그마한 카페를 함께 열었다. 아이들이 “엄마, 이제 좀 쉬엄쉬엄 해요. 그냥 손님이랑 차도 한잔하고요” 하며 권한 게 계기였다. 이름은 단순히 ‘중림다방’. 라떼머신과 떡 케이크가 나란히 놓인 진열대는 묘한 대비를 만든다. 한쪽에서는 커피 향이 돌고, 다른 쪽에서는 찹쌀이 익어가는 냄새가 섞인다. “그게 나는 참 좋아요. 요즘 젊은 사람들도 가끔 와서 커피 마시면서 인절미 하나 먹고 가지요.”
하지만 기대만큼 장사는 쉽지 않았다. 젊은 세대가 찾는 ‘핫플’의 감각에는 어딘가 어긋났다. 인스타그램에 올릴만한 화려한 인테리어도, 시그니처 메뉴도 없었다. 그러던 중 코로나19가 닥쳤고, 손님 발길은 뚝 끊겼다. “그때는 정말 문 닫을까 고민했죠. 하루 종일 떡쌀만 바라보면 눈물이 나더라고요.”
그러던 어느 날, 오 사장님은 오래된 철제 냄비를 꺼냈다. 자식들 어릴 적 방과 후에 해주던 간식 — 국물떡볶이였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예전부터 해보고 싶던 메뉴라도 해보자 싶었어요. 떡은 내가 뽑은 거고, 양념도 내가 만든 거니까요.” 그렇게 ‘떡집표 국물떡볶이’가 메뉴에 올랐다.
36년 내공의 떡으로 만든 국물떡볶이
떡볶이용 떡은 일반 분식집의 떡보다 길고 통통하다. 방앗간에서 바로 뽑으니 윤기가 흐른다. 냄비에서는 멸치와 다시마로 우린 육수가 보글보글 끓는다. 고춧가루와 간장을 섞은 양념이 들어가자 매콤한 향이 퍼지고, 밀떡이 아닌 찹쌀가래떡은 국물 속에서도 흐트러지지 않고 쫄깃함을 유지한다. “그냥 일반 고추장 쓰면 맛이 탁해요. 직접 담근 고추장으로 해야 개운하게 끝맛이 살아나지요.”
첫 손님은 우연히 들어온 서류봉투를 든 직장인이었다. “그 냄새가 너무 좋아서 그냥 들어왔어요.” 그는 국물 한 숟가락을 뜨더니 어린 시절 엄마가 해주던 떡볶이를 떠올렸다고 했다. 그렇게 입소문이 났고, 점심시간이면 몇몇 단골이 골목을 따라 가게를 찾기 시작했다. “하루에 많이 팔아야 서너 그릇이에요. 그래도 이게, 내가 만든 떡으로 다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다 생각하면 행복하지요.”
카페 한쪽에는 커피 냄새와 떡볶이 냄새가, 다른 한쪽에는 떡 찌는 수증기가 맴돈다. 다소 뒤섞인 듯하지만 묘하게 따뜻하다. 중림동 골목을 비추는 오후 햇살 속, 오 사장님은 주걱으로 떡볶이를 저으며 말한다. “세월이 참 많이 변했지요. 그래도 사람 입맛만큼은 크게 안 바뀌어요. 진심으로 만든 건 알아주니까요.”
새벽의 시작과 저녁의 마감
그의 하루는 새벽 4시 반에 시작된다. 쌀 씻는 소리, 증기 솥의 김, 반죽을 치대는 손동작 — 모두 몸에 밴 일상이다. 아침 일곱 시가 되면 동네 어르신들이 가래떡을 사러 하나둘 들른다. 그냥 떡만 사는 게 아니다. 누군가는 “요즘 허리 괜찮아요?” 하고 안부를 묻고, 누군가는 “그때 그 김떡볶이 또 할 거예요?” 하며 웃는다.
점심 무렵이면 카페 문을 연다. 손님이 없을 때는 노트에 떡 주문 장부를 정리하고, 어릴 적 사진이 담긴 앨범을 들춰본다. “옛날엔 남편이랑 방앗간 같이 했는데, 그 사람 병으로 먼저 갔어요. 그래도 이 가게 문 닫으면 그 사람하고 약속 어기는 것 같아서요.”
해 질 무렵, 하루를 마치는 시간. 남은 떡을 정리하고, 냉장고에 떡볶이 재료를 포장해 둔다. 문을 닫기 전, 카페 창문에 반사된 노을빛이 그의 얼굴을 붉게 비춘다. “이제는 돈 욕심보단 그냥 내가 좋아서 하는 거예요. 떡 뽑는 손맛을 잃고 싶지 않아요. 아직은 몸이 움직이니 감사하지요.”
중림동의 마지막 ‘손맛’
서울 한복판, 수많은 프랜차이즈 매장이 늘어선 거리에서도 여전히 ‘손맛’이 살아 있는 곳이 있다. 오 사장님의 떡방앗간은 그 흔치 않은 공간이다. 이제 이곳을 지나면 새로운 세대의 건물과 브랜드가 맞이하지만, 이 골목 안에서는 여전히 느린 시간이 흐른다. 그리고 그 중심에, 삶의 절반을 떡과 함께 살아온 한 여인의 묵묵한 손길이 있다.
“서울은 빠르게 변하잖아요. 그런데 떡이라는 건, 참 신기하게도 변하지 않아요. 쌀이 사람 먹여살린단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에요.” 오세온 사장님은 그렇게 말하며 환하게 웃는다. 새벽에 찧은 떡 한 덩어리가 그날의 하루를 시작하게 하고, 다 식은 떡볶이 한 숟가락이 하루의 피로를 풀게 한다.
그녀에게 떡은 생계이자 추억이며, 삶의 형태 그 자체였다. 서울 한복판에서 느리게 익어가는 떡 냄새. 그것이 바로 중림동의 오늘이고, 오세온 사장님의 슬기로운 황혼 일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