냅코 프로젝트는 제2차 세계대전 말, 미국 전략첩보국(OSS)이 조선인 엘리트와 포로, 학병 출신들을 모아 한반도와 일본 본토에 투입하려 했던 비밀 침투·첩보 공작 작전입니다. 전쟁 막바지에 준비되었지만 일본의 갑작스러운 항복과 함께 실제 투입 직전에 해체되어 오랫동안 1급 기밀로 묻혀 있다가 수십 년 뒤에서야 전모가 드러났습니다.
탄생 배경과 기획
냅코 프로젝트의 배경에는 1944년 이후 전황 변화가 있었습니다. 독일 패망이 가시화되자 미국은 전쟁의 마지막 무대가 될 일본 제국을 어떻게 붕괴시킬지 전략을 재편해야 했고, 그중 하나로 점령지 내부에서의 정보 수집과 교란 공작을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했습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전신인 OSS는 유럽에서 이미 특수공작과 레지스탕스 지원 경험을 쌓았고, 그 노하우를 아시아 전선, 특히 일본이 점령한 조선과 만주, 일본 본토에도 적용하려 했습니다.
이때 미국 정보 당국의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재미 한인 사회와 각 전선에 흩어져 있던 조선인들이었습니다. 영어와 한국어, 경우에 따라 일본어까지 구사하는 이들은 일본 점령하 조선에 침투했을 때 현지인으로 위장하기에 최적의 인적 자원으로 평가됐습니다. 여기에 일본군에 강제 동원되었다 탈출한 학병 출신 조선인, 미국 내 포로수용소에 수용되어 있던 조선인 포로 등도 OSS의 레이더에 포착되면서, 이들을 묶어 특수 침투부대를 만들자는 발상이 구체화됐습니다.
OSS 워싱턴 본부는 1944년 말에서 1945년 초 사이, 이런 구상을 바탕으로 조선인으로만 구성된 특수요원 팀을 양성해 한반도에 공중(낙하산) 또는 잠수함을 통해 침투시키는 계획을 세우고, 여기에 ‘NAPKO Project’라는 암호명을 부여했습니다. 명칭의 어원에는 여러 설이 있으나, 어쨌든 대외적으로는 극비리에 관리되는 첩보기획 코드였고, 문서 역시 최고 수준의 보안 등급으로 관리되었습니다.
인원 구성과 선발 방식
냅코 프로젝트에 선발된 인원은 총 19명으로, 모두 조선인이라는 점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이들은 실제 이름 대신 암호명 A, B, C, D 등으로 불렸고, 각 암호명 뒤에 번호가 붙는 형식으로 팀 구성이 이루어졌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은 서로의 본명을 완전히 공유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만큼 보안이 철저했고, OSS 내부에서도 이 작전 관련 정보는 제한된 인원만 열람할 수 있었습니다.
선발 대상은 크게 세 그룹에서 나왔습니다. 첫째는 미국에 거주하던 재미 한인들로, 상당수가 대학 교육을 받은 엘리트층이었습니다. 둘째는 미국 내 포로수용소에 갇혀 있던 조선인 포로들로, 일본군이나 일본 관련 세력으로 분류되어 있다가 신원 재조사를 통해 조선인임이 확인된 인물들이 포함됐습니다. 셋째는 버마(미얀마) 전선 등에서 일본군 학병으로 끌려갔다 탈출한 조선인들로, 이들은 일본군 훈련 체계와 조직, 무기 운용 방식 등을 몸으로 겪은 경험자였습니다.
이 가운데에는 훗날 유한양행 창립자로 널리 알려지는 유일한 박사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암호명 A’로 불렸고, 독립운동가이자 미국에서 활동한 기업가라는 이력 덕분에 OSS 입장에서도 신뢰할 수 있는 핵심 인물로 평가되었습니다. 선발 과정에서는 신원조사와 더불어 일본어 능력, 조선 지리와 풍속에 대한 이해, 체력과 정신력, 그리고 반일 의지가 면밀히 검증되었고, 선발 후에도 계속 평가가 이루어졌습니다.
훈련 과정과 작전 구상
냅코 프로젝트의 본질은 한반도와 일본 본토에 조선인 특수요원을 침투시켜 첩보망과 지하조직을 구축하고, 필요 시 사보타지와 무장 저항으로까지 확대하는 종합 공작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OSS는 이들을 대상으로 장기간에 걸친 고강도 훈련을 실시했습니다. 훈련에는 낙하산 강하, 폭파·파괴 공작, 소형 무기 사용, 통신·암호, 잠입·탈출 기술 등 특수부대 수준의 군사 교육이 포함되었고, 첩보원으로서의 은폐·위장, 심문 대응, 거짓 신분 구축 훈련도 함께 이루어졌습니다.
작전 구상은 단계적으로 설정되었습니다. 1단계는 한반도에 소규모 팀을 침투시켜 일본군의 병력 배치, 철도·항만 등 주요 기반시설, 경찰·헌병 조직, 친일 세력 동향 등을 정밀 파악하는 것이었습니다. 2단계는 이 정보를 바탕으로 미군의 폭격과 상륙 작전을 지원할 수 있는 거점과 연락망을 구축하는 것이었고, 필요 시 조선 내 독립운동 세력과 연계해 지하조직을 확대하는 구상이 담겨 있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일본 본토 침투까지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조선과 만주, 일본 본토를 잇는 정보·공작 네트워크를 만들어 전후 질서 재편에서 우위를 확보하려는 전략적 계산도 포함되어 있었다고 평가됩니다.
훈련 장소와 세부 커리큘럼은 상당 부분 기밀이었으나, 미국 내 비밀 기지와 일부 해외 기지를 활용했다는 것이 뒤늦게 공개된 자료에서 확인됩니다. 요원들은 서로 다른 커버 스토리(가짜 경력과 신분)를 부여받았고, 실제 조선으로 돌아갔을 때 주변의 의심을 피할 수 있도록 말투와 생활 습관까지 세밀하게 조정하는 훈련을 받았습니다.
OSS의 전략적 의도와 한반도 의미
냅코 프로젝트는 단순한 정보 수집 작전이라기보다, 전후 동아시아 질서 구상 속에서 한반도를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미국 전략의 일면을 보여줍니다. 미국은 한반도를 일본 본토와 중국 대륙 사이의 전략적 전진기지로 인식했고, 일본 패망 이후에도 소련의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는 완충지대로 삼으려는 구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점에서 조선인으로 구성된 OSS 특수요원 네트워크는, 향후 미국이 한반도에서 주도권을 행사할 때 활용 가능한 정치·군사적 자산이 될 잠재력이 있었습니다.
또한 냅코 프로젝트는 중국 전선에서 한국광복군과 함께 진행된 ‘독수리작전(이글 작전)’과 더불어 대표적인 대(對)일본 한반도 침투 작전으로 평가됩니다. 광복군과 OSS가 협력한 작전이 중국과 만주 지역 중심의 활동이었다면, 냅코 프로젝트는 미국이 직접 선발·훈련한 한인 요원들을 매개로 한반도와 일본 본토를 겨냥했다는 점에서 성격이 구분됩니다. 이로 인해 후대 연구자들은 냅코를 “미국 주도의 한반도 침투·활용 구상”을 상징하는 사례로 보기도 합니다.
조선인 입장에서 보면, 냅코 프로젝트에 참가한 19명은 일본 제국에 강제로 동원되거나 식민지 출신으로 차별받던 위치에서 벗어나, 전쟁의 주체로서 일본에 맞서는 역할을 자임한 인물들이었습니다. 특히 일본군 학병 출신으로서 탈출 후 다시 일본과 싸우기 위해 목숨을 걸고 OSS 훈련에 참여한 인물들의 서사는, 식민지 조선인의 복잡한 정체성과 저항을 드러내는 상징적 이야기로 평가됩니다.
해체 과정과 전후의 침묵
그러나 냅코 프로젝트는 본격적인 실행 직전에 역사의 방향이 급격히 바뀌면서 끝을 맞이합니다. 1945년 5월 나치 독일이 패망한 뒤 미국은 일본 전선을 총력으로 압박했지만, 그 절정에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고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합니다. 이로써 미군이 예상했던 본토 상륙전과 장기 소모전 시나리오가 사라졌고, 그 시나리오를 전제로 준비되던 냅코 프로젝트 역시 더 이상 필요성을 잃게 됩니다.
일본의 항복과 함께 OSS 내부에서는 많은 비밀 공작 계획이 정리되었고, 냅코 역시 문서 상에서 1급 기밀로 분류된 채 사실상 해체되었습니다. 준비와 훈련에는 막대한 시간과 인력이 투입되었지만, 정작 훈련받은 19명의 조선인 요원들은 한반도에 실제 투입되지 못한 채 종전을 맞이했습니다. 일부는 전쟁 후 복잡한 국제정치와 신분 문제 속에서 다시 포로수용소 신세를 지거나, 냉전 구도 속에서 이력을 숨기고 살아야 했다는 증언과 회고가 남아 있습니다.
냅코 프로젝트가 오랫동안 역사에서 사라진 이유는 철저한 비밀 유지 정책과 냉전기 정치 환경에 있습니다. OSS 자체가 전후 CIA로 재편되면서 많은 전시 공작 기록이 장기간 비공개 처리되었고, 한반도와 관련된 민감한 작전은 특히 더 강한 보안 등급이 부여되었습니다. 그 결과 냅코 관련 자료는 30년 이상 공개되지 않았고, 관련 인물들도 자신들의 역할을 제대로 밝히지 못한 채 세월을 보냈습니다. 학계와 언론이 냅코라는 이름을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후반, 미국 비밀문서의 일부가 해제되고 관련 회고·연구가 축적되기 시작하면서부터입니다.
오늘날의 재조명과 의미
최근 들어 냅코 프로젝트는 학계뿐만 아니라 대중문화와 기업, 기념행사 영역에서도 다시 조명되고 있습니다. 2024년에는 유일한 박사를 모티브로 한 뮤지컬 ‘스윙 데이즈_암호명 A’가 충무아트센터에서 초연을 예고하며, 냅코 프로젝트와 암호명 A의 서사를 무대로 옮기는 시도가 이루어졌습니다. 작품은 일제 강점기 조선인 요원들의 비밀 첩보 작전을 전면에 내세우며, 독립운동과 글로벌 전쟁사, 기업가 정신을 함께 연결하는 서사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제약회사 유한양행 역시 창업자 유일한 박사가 참여했던 냅코 프로젝트를 기업 역사와 정체성의 중요한 축으로 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광복 80주년을 맞은 2025년에는 국가보훈부 주관 ‘코리아 메모리얼 페스타’에 참가해, 냅코 프로젝트를 테마로 한 기업 부스를 운영하며 관람객에게 유일한 박사의 비밀 첩보 활동을 알렸습니다. 이 자리에서 냅코 프로젝트는 “미 육군 전략처(OSS)가 일본을 대상으로 진행한 비밀 첩보작전으로, 한인 19명으로 구성된 특수부대가 무기 사용과 낙하산 훈련 등 고강도 군사훈련을 받고 한반도 침투를 준비한 극비 작전”이라는 설명으로 요약되었습니다.
연구 서적과 사료 출판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국학자료원은 냅코 프로젝트 관련 자료를 묶어 ‘Napko Project of OSS’ 세트로 출간해, OSS와 한국광복군이 함께 전개한 ‘독수리작전’과 더불어 대표적 한반도 침투 작전으로 냅코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방송 교양 프로그램과 온라인 백과, 나무위키 등의 서술을 통해 젊은 세대에게도 냅코의 존재가 알려지면서, “조선인으로 구성된 미국 특수요원 부대”라는 독특한 역사적 에피소드가 재조명을 받고 있습니다.
오늘날 냅코 프로젝트는 몇 가지 의미를 갖습니다. 전쟁사적으로는 미국 OSS가 한반도를 어떻게 인식하고 활용하려 했는지 보여주는 사례이며, 독립운동사적으로는 조선인들이 일본 제국에 맞서 글로벌 차원에서 싸우려 했던 또 하나의 무대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동시에 냅코에 참여한 인물들의 삶을 통해, 식민지 조선인이 겪어야 했던 강제 동원, 탈출, 다시 전쟁에 뛰어드는 선택, 그리고 종전 이후 냉전의 틈바구니에서 자신의 이력을 숨기고 살아야 했던 ‘모멸의 시대’가 입체적으로 드러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