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희나 그림책 『나는 개다』(책읽는곰, 2019 초판)는 『알사탕』에 등장했던 늙은 개 구슬이의 과거를 다룬 프리퀄로, 반려견 구슬이의 1인칭 시점에서 가족이 되어 가는 과정과 반려동물에 대한 연민·책임·사랑을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작품 개관과 기본 정보
『나는 개다』는 2017년 출간된 『알사탕』 속에서 동동이 곁을 지키던 늙은 개 구슬이의 어린 시절, 즉 동동이네 가족과 처음 만나 함께 자라게 된 과정을 다룬다. 이야기는 전부 구슬이의 1인칭 내레이션으로 진행되며, “나는 개다”라는 자기소개에서 출발해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어떤 가족과 함께 사는지, 그리고 그 가족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를 천천히 고백하는 형식을 취한다. 이 작품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을 수상한 뒤 더욱 주목받은 백희나 특유의 인형 애니메이션식 연출과 세밀한 세트 작업, 조명을 활용한 사진식 그림으로 완성도 높은 시각적 세계를 보여준다.
출간 당시 이 작품은 단독 그림책으로 나왔지만, 독자들 사이에서는 자연스럽게 『알사탕』의 세계관을 확장하는 전편으로 읽히며 동동이와 구슬이에 대한 이해와 애정을 깊게 만든다는 평가를 받았다. 스토리보울에서 재출간되며 “반려견 구슬이가 자신의 일상과 동동이와 가족이 된 사연을 담담하게 전한다”는 소개 문구와 함께 다시 주목받고 있다.
줄거리 상세 전개
이야기의 화자는 슈퍼집 개 방울이의 넷째로 태어난 강아지, 구슬이다. 구슬이는 자신이 태어난 장소, 어미 개 방울이와 수많은 형제자매들을 기억하며, 방울이가 해마다 많은 새끼를 낳기 때문에 동네에서 마주치는 웬만한 개들은 거의 다 자신의 형제자매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아직 세상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는 강아지의 어리숙한 생각이지만, 그 속에는 혈육에 대한 그리움과 소속에 대한 갈망이 자연스럽게 배어 있다.
이후 구슬이는 엄마 젖을 떼자마자 새로운 집으로 보내진다. 그곳이 바로 『알사탕』에서 보았던 동동이네 집이다. 처음 만난 사람들은 아빠, 할머니, 그리고 다섯 살 동동이다. 동동이는 울보에 떼쟁이 같은 면이 있어서 조금 성가시기도 하지만, 구슬이의 눈에는 자신보다 더 어리고 약한 존재로 보이기에 “돌봐야 할 가족”이라고 마음속으로 규정한다. 이 지점에서 백희나는 어린 강아지의 보호 본능을 통해 반려동물이 단순히 보호받는 존재가 아니라, 동시에 누군가를 지키는 존재이기도 하다는 시각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이야기 중간에는 집에 아무도 없는 시간, 홀로 남은 구슬이의 내면이 길게 묘사된다. 구슬이는 조용한 집안 곳곳을 돌아다니며, 사람 가족이 없는 빈자리를 온몸으로 느끼며 독백을 이어 간다. 창밖을 바라보거나, 가족이 돌아올 방향을 향해 귀를 쫑긋 세우고 기다리는 장면은 그림만으로도 쓸쓸함과 기다림의 감정을 강하게 전달한다. 이 때 독자는 ‘집을 지키는 개’라는 고전적 이미지와는 다르게, 집을 지키면서도 동시에 혼자 남겨진 존재의 외로움을 함께 느끼게 된다.
구슬이의 일상에는 할머니와의 산책 장면도 중요한 비중으로 등장한다. 할머니와 함께 밖으로 나갈 때 구슬이는 완전히 다른 개가 된 듯 신이 나서 거리를 달리고 냄새를 맡으며 세상을 탐색한다. 이 산책은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구슬이가 세상과 접속하는 통로이자, 할머니와 구슬이 사이에 형성된 유대와 신뢰를 보여주는 장면으로 작용한다.
한편, 구슬이는 밤마다 베란다에 나가 ‘하울링’을 하며 자신의 형제자매를 찾는 특이한 습관을 갖고 있다. 어두운 아파트 단지 너머에서 어딘가 다른 개들의 울음이 들려오면, 구슬이는 “아우우, 아우, 아울~” 하고 답을 보내며 그 소리를 통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려 한다. 이 장면에서 작가는 개의 울음소리를 일종의 ‘목소리 메시지’처럼 드라마틱하게 해석하고, 떨어져 살지만 어딘가에 있을 가족을 그리워하는 감정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이야기의 큰 사건은 동동이가 나눠준 과자(멸치깡)를 먹고 벌어지는 사고에서 시작된다. 구슬이는 동동이가 자신을 생각하며 내준 간식을 마다하지 않고 받아먹는데, 그 과자가 체질에 맞지 않았는지 배탈이 나 침대 위에 실례를 하고 만다. 아빠는 잔뜩 화가 나 구슬이를 호되게 야단치고, 결국 구슬이는 베란다로 쫓겨나 추운 밤을 홀로 견뎌야 하는 처지가 된다. 베란다에 갇힌 구슬이는 아빠에게 미안하고, 자신을 좋아해 주는 동동이와 할머니에게도 미안한 마음에 소리 죽여 운다.
그때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진다. 잠에서 깬 동동이가 조용히 문을 열고 나와, 베란다에 있는 구슬이를 발견하고 다가오는 것이다. 동동이는 아직 어리지만, 혼자 추위 속에 있는 구슬이를 보면 안쓰러운 마음이 앞서 문을 열어 주고 구슬이 곁에 선다. 이 장면은 책의 감정적 클라이맥스 가운데 하나로, 가족 안에서의 실수와 갈등, 그리고 그럼에도 서로를 포기하지 않는 애정이 어린아이의 행동을 통해 상징적으로 표현된다. 이후의 전개는 요약에서 모두 드러나지 않지만, 구슬이와 동동이 사이의 신뢰가 더욱 깊어지고, 구슬이가 스스로를 “이 가족의 개”로 확고히 인식해 가는 방향으로 이어진다.
인물(캐릭터)과 시점의 의미
『나는 개다』의 가장 큰 특징은 전편인 『알사탕』과 세계를 공유하면서도 서사를 완전히 뒤집어, “개의 시점”으로 인간 가족의 삶을 비추는 구조다. 『알사탕』에서는 외로운 소년 동동이의 눈으로 가족과 이웃을 바라보며, 알사탕을 통해 타인의 마음을 듣게 되는 이야기가 펼쳐졌다. 반면 『나는 개다』에서는 동동이 곁에 있던 구슬이가 ‘말을 할 수 있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라는 상상 아래, 자신의 눈높이에서 인간 가족을 관찰하고 해석한다.
구슬이는 자신을 단순히 “애완견”이 아니라, 가족 구성원으로 여긴다. 동동이를 “성가신데 돌봐야 하는 아기” 정도로 서술하는 대목은, 보호자와 피보호자의 관계가 역전되는 유머를 담고 있으면서도, 실제로 많은 반려동물이 집 안에서 수행하는 돌봄 역할을 잘 드러낸다. 구슬이는 집안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민감하게 감지하고, 아빠가 화를 내거나 가족이 서운해할 때마다 그 분위기를 온몸으로 느끼며 행동한다.
아빠는 때때로 엄격하고 감정이 격해지는 인물로 묘사되지만, 동시에 가족을 책임지는 존재로 표현된다. 구슬이의 실수에 화를 내고 베란다로 내쫓는 행동은 인간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이해 가능한’ 반응이지만, 개의 입장에서 보면 갑작스러운 배제와 처벌로 느껴진다. 이 간극이 바로 독자가 스스로를 반성하게 만드는 지점이다. 구슬이의 눈으로 아빠를 보면, 아빠는 예측 불가능하고 다소 무서운 존재지만, 동시에 집을 지키고 가족을 부양하는 어떤 커다란 기둥 같은 사람으로 인식된다.
할머니는 구슬이에게 가장 따뜻하고 편안한 보호자로 등장한다. 함께 산책을 나가고, 말 없이도 구슬이의 기분을 알아차려 주는 존재로, 인간 가족 중에서도 반려동물과의 정서적 교감이 가장 풍부한 인물이다. 동동이는 때로는 떼를 쓰고 울지만, 결국 구슬이가 ‘돌봐야 할 존재’이자 가장 가까운 친구로 묘사된다. 이들 인물은 모두 구슬이의 관점에서만 설명되기에, 독자는 인간이 아니라 개의 감각과 논리, 오해와 애정을 따라가며 등장인물들을 받아들이게 된다.
주제 의식과 정서
이 작품은 표면적으로는 “반려견의 일상”을 담은 그림책이지만, 그 밑에는 반려동물이 가족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와, 말 못하는 존재의 감정과 목소리를 상상해 보자는 초대가 깔려 있다. 구슬이가 밤마다 형제자매들을 떠올리며 베란다에서 하울링을 할 때, 독자는 개의 울음소리를 단순한 짖음이 아닌,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마음의 표현”으로 새롭게 이해하게 된다. 또한 동동이가 준 과자를 먹고 배탈이 나서 혼나는 사건은, 인간이 무심코 건넨 행동이 반려동물에게 어떤 결과로 돌아올 수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며, 돌봄의 책임과 섬세함을 환기한다.
이야기 전반에는 유머와 따뜻함이 공존한다. 구슬이가 스스로를 “나는 개다”라고 반복해서 정체화하면서도, 실제 행동과 감정은 마치 어린아이와 다르지 않은 면을 보여준다. 이는 “사람과 개 사이의 거리”를 줄이는 효과를 만들어 내며, 어린 독자뿐 아니라 어른 독자도 자신의 어린 시절 감정이나 가족 경험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동동이와 구슬이가 서로에게 의지하며 자라가는 모습은, 서로 다른 종이라도 함께 시간을 보내며 가족이 될 수 있다는 단순하지만 깊은 메시지를 전한다.
또한 이 책은 상실과 불안을 정면으로 다루지는 않지만, 그것이 예고된 세계관 위에서 읽힌다. 『알사탕』에서 구슬이는 이미 늙은 개로 등장해, 언젠가 동동이 곁을 떠날 운명이 암시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개다』에서 그려지는 어린 구슬이의 일상은, 독자에게 일종의 “소중한 시간의 기록”처럼 느껴진다. 지금 이 순간 함께 있다는 사실, 또 실수와 혼남, 웃음과 눈물이 뒤섞인 일상의 조각들이야말로 나중에 돌아보면 가장 값진 기억이 된다는 정서가 그림과 이야기 전반에 배어 있다.
그림체와 연출, 그리고 『알사탕』과의 연결
백희나의 다른 작품들처럼, 『나는 개다』 역시 실제 인형과 소품, 미니어처 세트를 만들어 촬영하는 방식으로 그림이 완성되었다. 작업실에는 구슬이, 동동이, 아빠, 할머니 등 이 책에 등장하는 인형이 수십 개나 놓여 있으며, 각각의 자세와 표정을 달리한 인형들을 상황에 맞게 배치해 장면을 연출한 뒤 촬영한다는 점이 여러 인터뷰를 통해 알려져 있다. 누워 있는 구슬이, 귀를 긁는 구슬이, 아파트 단지 사이를 달리는 구슬이 등 다양한 포즈가 실제 인형으로 구현되며, 사진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조명과 색감 역시 중요한 요소다. 집 안에서 혼자 있는 장면에서는 다소 어둑하고 차분한 톤으로, 베란다의 밤 장면에서는 도시의 불빛이 희미하게 번지는 푸른빛과 노란빛으로, 할머니와 산책하는 낮 장면에서는 밝고 따뜻한 빛으로 분위기가 달라진다. 이처럼 빛의 변화만으로도 구슬이의 감정선을 시각적으로 보여 주는 방식은, 사진책과 애니메이션 사이 어디쯤에 있는 독특한 미학을 형성한다.
『나는 개다』는 구조상 『알사탕』의 프리퀄이기 때문에, 두 책을 함께 읽으면 인물과 세계에 대한 이해가 훨씬 풍부해진다. 『알사탕』에서 동동이는 외로움을 느끼며 알사탕을 통해 주변 사람과 동물의 마음을 듣게 되는데, 그때 구슬이가 들려주는 속마음에는 “동동이가 싫어서가 아니라, 이제 늙어서 자꾸 눕고 싶은 것뿐”이라는 말이 나온다. 『나는 개다』를 읽은 뒤에는 이 고백의 무게와 진심이 더욱 크게 다가온다. 어릴 때부터 동동이를 ‘돌봐야 할 가족’으로 여겨 온 구슬이의 시점이 바로 이 프리퀄에서 자세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처럼 두 작품은 서로의 감정과 서사를 보충해 주는 관계에 있으며, 『나는 개다』를 통해 독자는 반려견이라는 존재를 좀 더 깊은 차원에서 이해하고, 『알사탕』을 다시 읽을 때 전혀 다른 감정적 울림을 경험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