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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업 서산부인과

김중업과 서산부인과

1. 설계의 배경과 건축가 김중업

김중업(1922-1988)은 한국 현대건축을 대표하는 거장 중 한 명으로, 기능주의와 유기적 디자인, 그리고 인간의 삶에 대한 깊은 관심을 건축에 담은 인물입니다. 평양에서 태어난 그는 일본 요코하마 공업고등학교 건축과와 프랑스 르 코르뷔지에의 아틀리에에서 수학 후 귀국, 한국적이고 새로운 현대건축을 추구하며 여러 기념비적인 건축물을 남겼습니다.

서산부인과는 김중업의 대표작 중 하나로, 자율적이고 창조적인 건축 의지를 가장 강렬하게 드러낸 사례로 평가받습니다. 이 건물을 의뢰한 서병목(또는 서병준) 원장은 김중업의 사적인 친척 관계에 있는, 오랫동안 산부인과를 운영해온 의사였습니다. 단순한 병원이 아니라 가족의 주거, 그리고 당시로서는 드물었던 쾌적하고 인간 존중적인 병원 환경을 원했던 건축주의 의도를 김중업은 건축적으로 승화시켰습니다.

2. 위치와 시대적 맥락

서산부인과는 서울 중구 을지로7가, 현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와 광희문 사이 근처에 세워졌습니다. 1965년 설계 후 1966~1967년에 걸쳐 완공 되었으며, 5층 규모의 건물로 지어졌습니다. 30년 가까이 부인과 병원으로 운영되었으며, 이후엔 사무실이나 갤러리 등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1960년대 서울, 도시화가 급격히 진행되던 시기의 건축물로, 보수적이고 획일적인 사각형 매스 일변도의 병원 건축에서 과감하게 탈피, 매우 이례적으로 곡선을 적극적으로 사용한 유기적 형태로 설계되었습니다.

3. 건축적 특징 – 곡선, 생명, 인간 중심

외관과 형태

서산부인과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직선적이고 기계적인 느낌의 병원 건물이 아닌, 유연한 곡면과 타원형, 원형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는 점입니다. 세부적으로 보면 외벽과 발코니에 직선이 거의 없으며, 부드러운 곡률을 가진 발코니와 덩어리감이 독특합니다. 입면에 수직적 요소보다는 부드럽게 감아도는 곡선들이 눈에 띄며, 각 층은 이 곡선을 따라 이어지는 자연스러운 윤곽선을 가집니다.

건물 전체가 마치 웅크린 태아 혹은 자궁의 형상을 연상하게 하는데, 곡선 벽과 둥근 창, 구불구불한 복도, 곡률이 다른 바닥 등이 내부에서 일관되게 반복되어 유기적 공간감을 극대화했습니다.

원형과 ‘증식하는 원’

김중업은 작은 원들이 증식하듯 서로를 침범하고 결합하는 이미지를 평소 자주 스케치하곤 했습니다. 그는 생명의 근원이 되는 자궁이라는 콘셉트를 그대로 건물에 적용했으며, ‘증식하는 원’이라는 자신만의 공간 언어를 최초로 실험한 대표적 사례가 서산부인과입니다. 실제로 공간 배치와 단면을 살펴보면, 각 층마다 필요한 기능공간이 타원‧원형을 기본으로 배열되어 있고, 복도와 실마다 경계면이 곡선으로 처리되어 전통적인 병원 도면과 확연히 다릅니다.

생명과 여성성 상징

병원의 용도가 산모와 신생아, 생명을 다루는 곳이라는 점에 착안하여, 흔히 경직되고 냉정한 병원이 아니라 포근하고 따뜻한 공간을 지향했습니다. 내부 평면을 보면, 1층은 웅크린 태아나 자궁 속 생명을 연상시키는 방 배치를 가졌고, 2-3층은 수술실·입원실·인큐베이터실 등 주요 공간이 타원형과 곡선 복도로 연결됩니다. 이러한 공간들은 곧 생명의 시작, 부드러움, 모성을 시각화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기능적 배려와 혁신성

김중업은 병원을 이용하는 산모와 보호자들의 동선, 편의를 적극적으로 배려했습니다. 예를 들어, 계단 대신 완만한 경사로를 복도에 배치해 산모들이 보다 편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방과 복도, 바닥과 벽이 만나는 곳도 각지지 않고, 모두 둥글게 마감하여 심리적 안정감과 편안함을 강조했습니다. 사방으로 배치된 곡선형 발코니는 채광과 환기에도 유리할 뿐 아니라, 각 공간이 외부와 심리적으로 부드럽게 이어지도록 했습니다.

4. 건축 재료와 시공

완공 초기에는 외부가 노출 콘크리트 상태로, 재료 감각을 고스란히 드러냈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외장은 덧칠되어 그 표현이 일부 가려졌으나, 초기 모습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내부는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미장 마감과 굴곡진 벽체, 둥글게 연결된 바닥과 벽, 독특한 곡선형 창문과 모서리 마감 등 건축가의 치밀한 의도가 구현된 공간입니다.

5. 문화사적 의미와 현재 상황

서산부인과는 한국 현대건축사에 있어 획기적인 실험이자 유의미한 결과물로 평가받습니다. 단순히 병원 건축의 새로운 사례일 뿐 아니라, 김중업 작업 전반을 꿰뚫는 유기적 공간·곡선의 실험, 그리고 인간 중심의 건축적 태도를 압축적으로 담고 있습니다. 건축가 개인의 상상력과 사회적 요구, 기능이 조화롭게 합쳐진 상징적 건물인 셈입니다.

2019년에는 문화재청에서 서울시 등록 문화재로 등록 예고를 내린 바 있습니다. 당시 평가에서, 시공 초기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고, 건축 허가 당시 도면 및 공사 명세서까지 온전히 남아 있어 사료적 가치가 높다는 점, 김중업의 서울 소재 작품 중 최초로 문화재로 평가받을 만한 건물이라는 점 등이 높게 인정됐습니다.

현재 이 건물은 아리움 사옥이라는 이름으로 사무공간이나 전시공간 등으로 쓰이며, 시민과 건축가, 예술가들에게 한국 건축의 현대성과 실험정신을 느낄 수 있는 명소가 되고 있습니다.

이상으로 김중업의 대표작 서산부인과에 대한 상세 설명을 마칩니다. 추가로 궁금한 점이나 특별히 더 깊이 들어보고 싶은 부분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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