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산맥이 병풍처럼 둘러싼 강원도 횡성. 봄 햇살이 부드럽게 스며드는 이 고장에는 깊은 산과 맑은 물, 그리고 울창한 숲이 함께 어우러져 한 해 내내 향긋한 산의 숨결을 내뿜는다. 오늘 <찐! K-푸드>가 찾아온 곳은 바로 이곳, ‘더덕의 고장’으로 불리는 횡성이다. 강원도의 청정 자연이 길러낸 흙의 보물, 더덕 한 뿌리에서 한국인의 밥상이 다시 살아난다.
프셰므는 오늘도 특유의 밝은 미소로 횡성 시장을 찾았다. 산 위에서 내려오는 시냇물이 시장 바닥을 따라 졸졸 흐르고, 좌판마다 제철 나물과 산나물 장아찌, 그리고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어우러져 봄기운이 절로 느껴진다. 시장 한켠으로 걸어가던 프셰므의 손에 들린 것은 김밥 한 줄. 그런데 그 속이 예사롭지 않다. 김 속에 밥, 단무지, 우엉이 자리 잡았고, 그 중심에는 큼직하게 썰린 더덕이 들어 있다. 마치 흰 뿌리가 김밥의 심장을 이루고 있는 듯한 비주얼이다.
“처음엔 평범한 김밥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한입 깨물자마자 아삭! 하고 톡 터지는 향이 너무 강렬해요. 약간 쌉싸래하면서 향긋한 산내음이 그대로 올라오네요.”
그의 말처럼 횡성의 더덕김밥은 일반 김밥과 비교할 수 없는 개성이 있다. 씹을 때마다 더덕의 수분이 톡톡 터지고, 입안엔 약간 쌉쌀한 산 향이 감돈다. 단무지의 단맛과 밥의 담백함이 그 향을 부드럽게 덮어주며, 특유의 향기가 여운처럼 남는다. 시장 상인은 웃으며 말한다.
“이 김밥은 그냥 간식용이 아니에요. 일꾼들이 산에 올라가기 전에 먹는 든든한 밥이지요. 더덕이 원기 회복에 좋아서, 예전부터 ‘산의 인삼’이라 불렀어요.”
잠시 후 프셰므가 향한 곳은 횡성의 한 더덕밭. 구불구불 이어진 시골길을 따라가다 보면 미세한 흙냄새와 함께 산바람이 불어온다. 밭에는 촉촉한 검은 흙이 부드럽게 깔려 있고, 더덕 줄기가 지면 위로 연둣빛 새싹을 올리며 봄을 알리고 있었다.
농부는 곡괭이를 들고 흙을 살살 헤치며 조심스럽게 더덕을 캐낸다. 마치 땅속 보물을 건지듯 한 뿌리 한 뿌리를 꺼내는데, 굵고 단단한 더덕이 줄줄이 드러난다. 프셰므도 삽을 들고 옆에서 따라 해본다.
“생각보다 쉽지 않아요. 흙 속 깊이 숨어 있어서 끄집어내려면 손끝이 저릿저릿할 정도예요. 그런데 이 냄새! 바로 건강한 흙의 향이에요.”
그는 캐낸 더덕을 그대로 반으로 뚝 부러뜨려 코끝에 대본다. 더욱 짙은 향이 퍼지며 산속의 공기가 코안 가득 들어찬다. 한입 베어 물자 약간의 쌉싸래함과 달큰한 향이 동시에 밀려온다. 더덕 특유의 뿌리 향이 진하게 퍼지면서, 그 순간 자연과 가까워진 듯한 포만감이 찾아온다.
이윽고 프셰므 일행이 향한 곳은 더덕 전문 식당. 마을 한가운데 자리 잡은 작은 한옥집이다. 문을 열면 구수한 숯불 냄새가 반긴다. 구이판 위에서 은은히 익어가는 더덕의 향기가 식욕을 자극한다.
식탁 위에는 강원도 산나물과 더덕 요리가 차곡히 놓였다. 주인장이 내온 첫 번째 요리는 더덕구이였다. 껍질을 정성스레 벗겨 칼집을 넣은 뒤, 고추장 양념을 발라 숯불 위에서 노릇하게 구워낸 것이다. 표면은 살짝 그을리고 속살은 촉촉하다. 한입 넣자마자 매콤달콤한 양념과 함께 더덕의 쌉싸래한 맛이 어우러지며, 입 안이 상쾌해진다.
“이건 그냥 반찬이 아니라, 봄철 입맛을 깨우는 향의 요리 같아요.”
프셰므의 말에 식당 주인은 웃으며 덧붙인다.
“더덕은 더덕대로, 불맛은 불맛대로. 여기에 손맛이 더해져야 진짜 횡성의 맛이 나지요.”
두 번째로 나온 메뉴는 더덕 불고기. 불고기 양념에 얇게 저민 더덕을 함께 넣어 볶아낸 요리다. 고기 사이사이에 은은히 향을 내는 더덕이 자리 잡고, 씹을수록 단맛이 돌며 기름진 고기의 맛을 중화해 준다. 일반 불고기에는 없는 깊은 산의 맛이 느껴진다. 더덕의 향이 입안에 맴돌다 혀끝을 스치고, 불고기의 단짠한 맛이 뒤따른다. 마치 두 가지 맛이 입 안에서 대화를 나누는 듯한 조화다.
이때, 식탁 위에 등장한 마지막 별미가 프셰므의 눈을 반짝이게 했다.
“이건… 더덕 육회인가요?”
그렇다. 횡성에서도 일부 식당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이한 음식, 바로 더덕 육회다. 다진 소고기와 함께 곱게 채 썬 생더덕을 섞고 참기름과 배즙, 간장을 넣어 버무린 요리다. 고기의 감칠맛과 더덕의 청초한 향이 합쳐져 묘한 조화를 이룬다. 입안에 넣자, 서늘하면서 달착지근한 더덕 향이 고기의 부드러움과 어우러져 이색적인 풍미를 선사한다.
“이 조합은 정말 신기하네요. 한국에서는 산의 뿌리와 소고기를 이렇게 함께 먹는군요. 몸이 한결 따뜻해지는 느낌이에요.”
프셰므는 감탄을 멈추지 못했다.
식사가 끝날 즈음, 주인장이 따뜻한 더덕차를 한 잔 내온다. 은은한 갈색빛 차에서 산내음이 피어오른다. 차 한 모금에 하루의 피로가 녹아내리고, 속이 편안해진다. 더덕의 효능으로는 원기 보강, 기관지 강화, 면역력 증진 등이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예전부터 횡성에서는 농번기마다 더덕으로 만든 음식을 챙겨 먹으며 하루의 활력을 담았다고 한다.
프셰므는 마지막으로 카메라를 향해 미소 짓는다.
“오늘 횡성에서 맛본 더덕은 단순한 뿌리 채소가 아니라, 이 지역의 자연과 사람, 그리고 정성이 함께 만들어낸 보물이에요. 저에게는 ‘한국의 산’이 주는 선물처럼 느껴졌습니다. 산의 향, 땅의 힘, 사람의 손맛이 어우러진 이 더덕 밥상에서 정말 1년치 원기를 충전한 기분이에요.”
그의 표정 속에는 더덕의 향처럼 상쾌한 기운이 담겨 있었다. 카메라는 푸른 산 능선을 비추며 천천히 멀어진다. 흙 속에서 새순을 틔우는 더덕, 이를 캐어 담는 농부의 손끝, 그리고 이를 맛보며 감탄하는 외국인 방송인의 모습이 교차된다.
한식의 맛은 이렇게 ‘땅의 이야기’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횡성의 더덕 밥상이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