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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문고 번따 성지된 이유

교보문고가 ‘번따 성지’가 된 이유 — 총체적 분석

‘번따’란 무엇인가

‘번따’는 ‘번호를 따다’의 줄임말로, 낯선 상대에게 접근해 전화번호를 얻어내는 행위를 뜻한다. 과거에는 주로 클럽, 술집, 헬스장 같은 장소에서 일어나는 일로 인식되었지만, 최근 몇 년 사이 교보문고 광화문점·강남점 등 대형 서점이 뜻밖의 ‘번따 성지’로 떠오르며 온라인 커뮤니티, SNS, 숏폼 콘텐츠를 중심으로 화제가 되고 있다.


1. 서점이라는 공간이 주는 ‘신뢰감’과 ‘지적 이미지’

서점이 번따 장소로 활용되는 핵심적인 이유 중 하나는, 서점이라는 공간이 주는 특유의 신뢰감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클럽이나 술집에서 모르는 사람이 말을 걸면 즉각적인 경계심이 발동하지만, 책을 읽고 지식을 탐구하는 공간인 서점에서 접근해 오면 상대에 대한 경계심이 다소 누그러들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서점을 자주 찾는 대학원생은 “술집이나 클럽이 아니라 서점에서 연락처를 물어온다면 경계심이 좀 풀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어떤 책을 좋아하는지를 보면 취향이 나와 맞는 사람인지 아닌지 가늠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즉, 서점은 ‘나는 책을 읽는 사람’이라는 지적이고 성실한 이미지를 자연스럽게 연출할 수 있는 무대가 된다. 연애 목적으로 접근하더라도 최소한의 명분이 생기고, 상대방도 거부하기 애매한 분위기가 형성된다.


2. ‘좋은 사람을 만날 확률이 높은 곳’이라는 인식

연애 심리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주말 오후 4시에 서점에 가라’는 조언이 나돌기도 한다. 이 시간대에 한가한 사람은 솔로일 확률이 높고, 집에서 쉬는 대신 서점을 찾는 사람이라면 진취적이고 부지런한 성격일 가능성이 크다는 논리다. 또한 유튜브나 SNS 대신 책으로 지식을 탐구하는 사람이라면 지적이고 건실한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는 인식도 작용한다.

일부 전문가는 ‘남자라면 소설·에세이 코너를, 여자라면 경제·경영 코너를 공략하라’는 조언도 내놓는다. 확률적으로 소설·에세이 코너에는 젊고 트렌디한 여성이, 경제·경영 코너에는 건설적이고 똑똑한 남성이 많다는 취지다. 다소 편견이 반영된 시각이긴 하지만, 서점을 하나의 ‘인구통계학적 필터링 공간’으로 바라보는 심리가 반영되어 있다.

퇴근 후 교보문고를 자주 찾는 한 20대는 “서점이 ‘연애하기 괜찮은 사람이 모여 있는 장소’라는 글을 온라인에서 많이 본 것 같다”며 “시끄러운 술집보다 취향이 맞거나 책을 가까이하는 사람을 만날 가능성이 높다는 인식이 있다”고 말했다.


3. 교보문고의 특수성 — 복합문화공간으로의 진화

교보문고가 단순한 서점이 아니라 복합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한 것도 중요한 배경이다. 예전에는 단순히 책을 구매하는 공간이었다면, 최근에는 문구류나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통해 새로운 트렌드를 접하는 복합 문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넓은 매장 면적, 쾌적한 인테리어, 독특한 향기(교보문고 시그니처 향), 다양한 연령·취향의 방문객이 섞여 드나드는 환경은 자연스럽게 오래 머물고 싶게 만든다.

교보문고의 시그니처 향과 책을 좋아하는 지적인 이미지가 시너지를 일으킨다는 분석도 있다. 향이 공간의 분위기를 차분하고 편안하게 만들고, 이 분위기 속에서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거는 심리적 장벽이 다른 장소보다 낮아진다는 것이다.


4. MZ세대의 새로운 연애 트렌드와 SNS 확산

최근 MZ세대 사이에서 만남의 방식은 빠르게 다양해지고 있다. 짧은 시간 동안 여러 사람을 만나는 ‘로테이션 소개팅’이나 ‘솔로 파티’부터 사찰에서 진행되는 소개팅 프로그램까지 등장했고, 결혼정보회사 관계자는 이러한 변화가 짧은 시간 안에 상대를 판단하고 관계를 빠르게 형성하려는 MZ세대의 연애 방식이 반영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서 ‘교보문고가 번따의 성지’라는 게시글이 잇따르고, 이를 직접 체험한 뒤 후기를 공유하는 숏폼 콘텐츠도 확산되고 있다. 특히 유튜버들이 ‘좋은 사람 만나고 싶으면 교보문고에서 번따하라’는 내용의 영상을 제작하며 이 인식이 더욱 공고해졌다. 연애 관련 콘텐츠를 다루는 유튜버들이 교보문고 번따를 추천하면서 상대적으로 괜찮은 사람을 만날 확률이 높다는 논리를 전파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번따 성공할 때까지 매일 가봤더니” 같은 콘텐츠가 계속 생산되며 일종의 놀이나 챌린지처럼 번지는 모양새다. 이 챌린지 문화가 다시 SNS에서 회자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교보문고를 번따 장소로 인식하게 되는 선순환(혹은 악순환) 구조가 만들어진다.


5. ‘텍스트힙’ 트렌드와의 연결

최근 MZ세대 사이에서 ‘텍스트힙(Text Hip)’이라는 트렌드가 유행하고 있다. 텍스트힙은 책 읽는 것을 세련되고 힙한 행위로 여기는 문화로, 독서 자체가 하나의 라이프스타일 정체성이 되는 현상이다. 전문가들은 온라인에서 시작된 취향 기반 네트워크가 오프라인 공간으로 확장되면서 서점과 같은 장소가 새로운 사회적 교류의 장으로 기능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책을 읽는다는 공통된 취향이 낯선 사람 사이의 대화를 여는 자연스러운 매개체 역할을 하는 것이다.


6. 오래된 현상의 재발견

사실 교보문고에서의 번따가 완전히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10년 전에도 로펌 변호사들이 교보문고에서 명함을 내밀며 번호를 물어보곤 했다는 증언이 있을 정도로, 서점에서의 만남 시도는 오래된 관행이었다. 다만 SNS와 숏폼 콘텐츠의 발달로 이 현상이 대중의 언어로 포착되고 ‘성지’라는 이름이 붙으면서 훨씬 많은 사람들이 의식하고 이야기하게 된 것이다.


7. 불편함과 부작용, 그리고 교보문고의 대응

물론 이 현상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크다.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접근하거나 계속 주위를 맴도는 행위가 공포감과 불쾌감을 유발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지하철역까지 쫓아와 연락처를 요청했다거나, 거절 후 곧바로 옆에 있는 다른 여성에게 번따를 시도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불편 신고가 잇따르자 교보문고 광화문점은 ‘소중한 독서의 순간이 낯선 대화나 시선으로 방해받지 않도록 배려해달라’는 내용의 안내문을 비치했다.


결론

교보문고가 번따 성지가 된 것은 단 하나의 원인이 아닌, 공간적 신뢰감, 지적 이미지, 복합문화공간으로의 진화, MZ세대의 새로운 연애 문화, SNS와 숏폼 콘텐츠의 확산, 텍스트힙 트렌드가 복잡하게 얽혀 만들어진 현상이다. 서점이라는 공간이 단순히 책을 사는 곳을 넘어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드러내는 장소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이성을 만나고 싶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게 된 것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책을 읽으러 온 방문객들이 불쾌한 경험을 한다는 문제도 함께 부각되고 있어, 서점 본연의 목적과 새로운 사회적 기능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맞출 것인지가 앞으로의 과제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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